비이성적 충동이 중요하다
    2010년 09월 03일 11:1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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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표지 

민주주의는 끊임없이 정치적 평등의 이상을 추구하고 있지만 ‘평등’이란 가치는 오히려 민주주의가 더욱 발전한 이 나라에서 점차 멀어져가는 것처럼 보인다. ‘투표권’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에게 다르게 주어지며 경제의 격차는 정치적 격차로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적 격차와 정치적 격차

로버트 달은 50년 간 일관되게 민주주의를 연구해 온 노학자다. 그는 언제나 ‘정치적 평등’을 강조해왔고 90살이 넘어 발간한 신간 『정치적 평등에 관하여』(로버트 달, 후마니타스, 10,000원)도 역시 ‘정치적 평등’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그는 이 책에서 그는 무엇이 인간으로 하여금 정치적 평등의 이상을 끊임없이 추구하게 하는지를 살펴본다. 그는 초기 자유주의와 합리주의 그리고 칸트로 대표되는 이성 중심의 정통적 접근과는 달리 감정이나 정서와 같은 비이성적 측면이 정치적 평등을 향한 인간적 충동을 만들어 내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답한다. “정치적 평등은 이성적으로 합당한 목표이면서 동시에 경험적으로도 실현 가능한 목표가 될 수 있을까”, “정치적 평등을 추동하는 힘은?”, “정치적 평등을 제약하는 인간 본성과 인간 사회가 갖는 불가피한 한계들은?”과 같은 질문들이다.

이 주제는 초기 자유주의 정치철학의 핵심 주제였고 1970년대 초 존 롤스에 의해서도 다시 검토된 바 있다. 로버트 달 역시 그 연장선 위에 있으며 정치적 평등의 원리가 이상적으로 실현될 수 있는 조건을 더욱 정교하게 발전시켰다.

오랫동안 그가 발전시켜 온 ① 효과적 참여, ② 투표의 평등, ③ 계몽적 이해의 획득, ④ 의제에 대한 최종적 통제, ⑤ 포괄성 등은 특정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정치적 평등의 원리에 따라 조직되어 있는가를 분석할 수 있는 개념들이다.

불평등에 반응하는 인간 정서

저자는 더 나아가 정치적 평등의 원리가 이성적으로 합당하고 규범적으로 옳다 하더라도 실제로 그것 때문에 인간의 행동이 추동된다고 말할 수 있는지에 대해 질문한다. 그는 그럴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하고, 또 그 때문에 이성의 역할을 강조한 임마누엘 칸트에 대해 비판적인 생각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달은 뇌 과학과 현대심리학의 발견에 기초해 감정이 개입되지 않는 한 인간의 인식과 판단력은 완성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한다. 결국 정치적 평등을 추동하게 하는 힘으로서 이성의 역할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많은 나라들이 민주주의를 택하고 정치적 평등을 위해 투쟁해 온 인간의 역사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저자는 이를 데이비드 흄을 통해 설명한다. 그는 시기심, 분노, 공감과 같이 특정의 불평등에 반응하는 인간 행동의 정서적 측면을 적극적으로 분석한다.

인간 본성에 내장되어 있는 불평등에 대한 저항 내지 그것을 가능케 하는 인간적 충동의 역할을 강조했다고 해서, 저자가 정치적 평등을 자연스러운 인간 사회의 귀결로 주장한 것은 아니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인간 사회는 정치적 평등을 어렵게 만드는 수많은 요인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향후 정치적 평등이 확대될 수 있을지, 아니면 정치적 평등이 약화되는 것은 아닐지를 놓고 두 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첫 번째 비관적인 시나리오는 국제적으로나 국내적으로 강력한 힘들이 정치적 불평등을 거의 되돌릴 수 없는 수준으로 밀어붙여, 정치적 평등이 실제적인 의미를 가질 수 없게 될 가능성이다.

좀 더 희망적인 다른 시나리오는 복지나 행복을 향한 욕구와 같은 강력한 인간적 충동이 문화적 전환을 촉진하게 되어, 경쟁적 소비주의라는 지배적 문화가 더 큰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한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더 많은 정치적 평등을 향한 움직임을 강하게 지지하는 시민권의 문화가 우위에 서게 될 가능성이다. 그의 답은? “다음 세대의 시민들의 실천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 * *

저자 – 로버트 달(Robert A. Dahl)

1915년 미국 아이오와 주에서 태어나, 1940년 예일대학교에서 <사회주의 프로그램과 민주정치 사이의 양립 가능성>이라는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46년부터 예일대학교에서 민주주의 연구에 매진하면서 수많은 저서를 집필했다. 1986년부터 예일대학교 정치학과의 스털링 명예교수로 재직 중이다.

대표 저작으로는「누가 통치하는가?」(1961), 「폴리아키」(1971), 「다원민주주의의 딜레마」(1982), 「경제 민주주의 서설」(1985), 「민주주의와 그 비판자들」(1989), 「미국 헌법은 얼마나 민주적인가?」(2001) 등이 있다.

역자 – 김순영

서강대학교에서 <신자유주의 시대 경제정책과 민주주의>(2005)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한국정치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며, 서강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 “한국 민주주의와 빈곤의 문제”, “민주화의 배반 : 신용불량자 문제의 구조와 특징”, “불평등과 한국의 민주주의” 등이 있으며, 공저로「위기의 노동」(2005), 「새로운 시대의 공공성 연구」(200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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