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웃음 + 정치 ⇒ 변화”
        2010년 09월 03일 08:3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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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울기엔 좀 애매한』(사계절)

    “찌질한 인생, 불가촉 루저 원빈이 온다.” 최규석의 신작 『울기엔 좀 애매한』 뒷표지의 소개 문구다. TV 드라마를 보고 있자면 세상에 재벌집 잘난 아들딸들만 넘쳐나는 거 같아서 그렇지, 원빈을 비롯한 『울기엔 좀 애매한』의 등장 인물들이 엄청나게 찌질하다거나 찢어지게 가난한 것 같지는 않다. 그저 평범하달까, 돈은 좀 없고.

    “차상위계층 청소년들이라고 볼 수 있을 거예요. 자기가 정말 불행하다고 생각하기는 힘든 상태에 처해 있는 친구들이죠. 보통들 살아가는 틀 안에는 들어와 있는데, 그 틀 안에서는 제일 밑에 있다 보니까 항상 장애에 부딪히죠.”

    그런 상태나 장애라는 건 물론 돈이다. ‘김밥 극락’에서 일하는 홀어머니의 외동아들인 원빈은 학원비를 밀리고, 방학을 이용해 힘겨운 아르바이트를 한다. 미술학원 만화반의 동기들 사정도 대동소이, 최저임금 시급 4천 원짜리 알바는 언감생심 꿈도 못 꾸고, 얼굴 예쁜 덕에 시급 7천 원짜리 술집 나가는 은지가 그 중 ‘난 년’이다.

    가난한 학원생들, 그들이 웃는 이유

    “그런 거를 견디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예요. 그 친구들은 웃음으로 견디는 거죠. 이런 상황에서의 웃음이라는 게 뭘까? 어떤 사람들은 희망이라 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고통스런 현실을 잊기 위한 거짓이라고 해석하기도 하는데, 제가 보기에는 웃음이 두 가지 역할을 모두 다 가진 거 같아요.

    젊은 친구들이 모이면 심각한 이야기는 하나도 안 하고, 어떻게든 웃기려고만 한다고 하더라고요. 10대 남자 아이들은 웃기는 게 삶의 목적에 가까운 거 같아요. 왜 그런 걸까, 고민을 했어요. 결국에 웃음의 역할이라고 하는 건 이 상황을 버티게 하는 거 하나밖에 없는 거 같아요.

       
      ▲ 최규석 작가 (사진=최규석 제공)

    이런 웃음에 좋은 의미를 부여하거나 나쁜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을 거 같아요. 너희들이 처해 있는 상황이 이렇게 부조리한데 웃으며 넘어가려고 하느냐는 비난도 필요 없고, 웃는 사람에게는 희망이 보인다는 투의 과장도 필요 없어요. 웃음은 그냥 필요한 거죠.

    이렇게 웃으며 버티다가 웃음 위에 뭔가 하나를 더해야 변화가 가능한 거지, 웃음을 빼고 그 자리에 다른 거를 집어넣으면 안 되는 거 같아요. 그래서 웃음은 젊은 친구들 나름의 건강한 상태예요.”

    『울기엔 좀 애매한』이 젊은 웃음을 그린 만화이다 보니 아주 재밌다. 한참 세대 차이 나는 10대 후반 아이들 이야기라고 지레 겁먹을 필요도 없다. 진공에 격리된 아이들이 아니므로 당연히 부모, 학원 선생, 알바 부리는 사람들과 부대끼는 이야기가 나오고, ‘그럴싸하네’라고 찬탄하게 할 리얼리티가 살아있다.

    원빈을 고용한 ‘광장 서림(이해찬 전 총리가 경영했던 책방과 이름이 같다. ^^)’ 주인은 산발한 머리, 꾀죄죄한 수염에 뿔테안경을 쓰고 이렇게 말한다.

    최저임금, 당비 내는 자본가, 알바비 떼어먹기

    “최저임금 4천 원. 몰라?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임금을 법으로 정해놓은 거야. 이런 건 알아둬야지. … 난 이 미친 자본주의가 싫다. … 존경은 무슨. 짱돌 들고 투쟁하는 것도 아닌데. 옛날 얘기지. 지금은 당비나 내고 뭐.”

    이렇게 말하던 서점 주인은, 실컷 부려먹은 원빈의 알바비를 떼먹고 도망가려다가 들키고는 오히려 역정을 낸다.

    “그러니까 너 지금 내가 그깟 이사비 몇 푼 아끼려고 이사할 거 뻔히 알면서 널 고용했다고 그러는 거야? 와아~ 나~. 내가 목숨 걸고 이 천민자본주의와 맞서 싸워온 게 결국 더러운 자본가 취급이나 받을려고 한 거구만. 죽겠네.”

    최규석은 만화 주인공들을 통해, 이런 세상을 만든 어른들을 돌려 비판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서점 주인 같은 사람이 간혹 있죠. 정치적인 윤리와 현실에서의 윤리를 완전히 따로 떼놓는 사람들이 종종 있잖아요. 자기들이 꿈꾸는 세상 따로, 자신이 살아가는 모습 따로인 사람들. 그러면서도 선거철 되면 특별당비는 꼭 챙기는 사람들.

    서점 주인을 등장시킨 건 딱히 진보진영의 사람들을 비판하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니예요. 남들처럼 자기 이익만을 위하는 나쁜 어른들일 뿐이예요. 자신이 바라는 것과 현실을 분리시켜서는 안 되죠.”

    최규석의 전작들에도 자취방을 소굴 삼은 대학생들이나 취업시험에 사그라드는 인생들이 자주 출몰한다. 그가 읽는 88만원세대의 현실은 무엇일까?

    임금격차와 입시지옥, 그리고 돈과 꿈

    “임금격차가 심화된 게 이런 학생들 생활을 어렵게 하는 제일 큰 원인인 거 같아요. 그리고, 인간의 가치를 판별하는 기준이 돈으로만 몰리니까, 더 좋은 직장을 얻어야 되고, 더 좋은 직장을 얻으려면 시키는대로 할 수밖에 없게 된 거죠. 점수가 좋아야 좋은 학교에 들어가고. 굉장히 큰 공포에 짓눌려 있는 거죠.

    이 친구들의 가난이 문제가 아니라, 꿈의 종류에 따라서 드는 돈의 액수가 달라진다는 거가 문제예요. 화가라거나 연주자라는 꿈이 엄청난 꿈이 아니잖아요. 아이들이 당연히 꿀 수 있는 꿈이잖아요. 이런 당연한 꿈을 꾸는데, 지출할 수 있는 돈의 액수에 따라 그 꿈이 좌우되는 구조가 문제죠.”

       
      

    대학등록금이 없어 재수하게 된 은수의 자취방에 찾아온 동생 준수는 집안 형편도 모른다고 형을 타박한다.

    “철이 없는 건 형이지. 형한테는 엄마 아빠보다 만화가 더 중요하지. 나 같으면 대학이고 뭐고 벌써 때려치우고 공장 갔다. … 그냥 형 보면. 나한테 꿈이 없는 게 참 다행스럽달까.”

    스물이 채 안 된 아이 입에서, 꿈이 없어 다행이라는 말이 나오게 하는 세상. 최규석은 어떻게 하고 싶을까? 그가 웃음 위에 더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웃음 다음에 플러스 알파는 당연히 구조적인 부조리에 눈을 뜨는 거고, 바꾸기 위한 노력이겠죠. 그거밖에 없잖아요. 여럿이 힘을 모을 수 있으면 더 좋겠고, 하다못해 공부만 조금씩 해도 엄청나게 많이 바뀌겠죠. 정치에 대한 공부, 시민으로서의 당연한 권리에 대한 자각을 해야죠. 이 만화 주인공들은 가난하다는 이유로 교육받을 권리를 침해받고 있는 거잖아요.”

       
      

    ‘결론은 버킹검’이라고 해서, 정치가 쉬운 건 아니다. 정치의 발견이 어려운 만큼이나 정치에서의 도전은 힘겹다. 최규석도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밑바닥의 고민이 세상이다

    “심상정씨 사퇴한 다음에 정치 얘기는 잘 몰라요. 찍어야 할 사람 사퇴해서 찍을 사람 없었고, 투표장 가서는 유시민씨 찍었던 거 같아요. 심상정씨가 어떻게 하실지는 앞으로 지켜봐야죠.

    진보신당 분들에게서 가끔 연락이 와요. 저 하는 일이 만화 그리는 거니까 그런 부탁에 당연히 응하기는 하는데, 안타까운 생각이 들 때가 많아요. 저뿐만 아니라 당에 몸담고 있는 여러 사람들을 당장 써먹기보다는 키워서 써먹어야죠. 핥고 핥아서 단물 다 빠지면 나중에 못 써먹잖아요.

       
      

    우리가 워낙 어렵다 보니 갑갑함은 충분히 이해되지만, 어차피 하는 고생인데, 길게 보고 길게 갔으면 좋겠어요. 제가 직접 당 일을 하는 것도 아니면서 이런 말씀 드리는 게 죄송하지만, 진보진영이라는 게 원래 고생스러운 거잖아요.”

    최규석 작가는, 『사채꾼 우시지마』와 『자학의 시』라는 일본 만화가 리얼리티가 뛰어나다며 <레디앙> 독자들에게 읽어보길 권했다.

    “이 만화는 사람들이 형이상학적 고민을 하는 게 아니라, 사느냐 죽느냐는 현실적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줘요. 밑바닥의 고민들을 이어붙이기만 해도 얼마든지 세상의 구체적인 모습을 그릴 수 있다는 방법론을 보여줘요.”

    ‘재미있는’ 노동운동 장편만화를 구상 중이라는 최규석 작가와의 인터뷰는 9월 1일 오후에 최 작가의 작업실이 있는 부천의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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