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장관 만나 활짝 웃을 때입니까"
    2010년 09월 06일 09:4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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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김영훈 위원장님께 묻습니다.

민주노총 김영훈 위원장님, 9월 3일 아침 박재완 신임 고용노동부장관이 취임 인사를 위해 민주노총을 방문하면서 위원장님과 신임 노동부장관이 파안대소하는 사진이 여러 언론에 실린 것을 보았습니다. 그늘진 표정 없이 환하게 웃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은 마치 동지를 만난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동지 같았던 두 사람

한 신문은 “밝게 만난 노동장관-민노총”이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쓰면서 “민주노총 가면 달걀 세례라도 받을 줄 알았는데, 이거 의외인데요.”라는 노동부 간부의 말을 실었습니다.

박재완 장관은 민주노총에 오기 전 먼저 ‘정책연대의 파트너’ 한국노총을 먼저 방문했죠. 출입구부터 조합원들의 거센 항의 시위를 받고, 한국노총 위원장의 쓴 소리가 끝난 뒤에도 조합원들에게 가로막혀 당황했던 박재완 장관이 민주노총의 ‘달걀 세례’가 아닌 환대를 받았으니 눈물 나도록 고마웠을지 모르겠습니다.

   
  ▲ 3일, 박재완 신임 고용노동부 장관과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이 서울 정동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만났다.(사진=이명익 기자 / 노동과세계)

위원장께서는 노동부라는 이름을 내다버려 노동자들의 분노를 샀던 고용노동부를 ‘우리 부’라고 불렀고, 이에 박재완 장관은 “위원장이 고용노동부를 ‘우리 부’라고 해 너무 감사하다. 우리도 민주노총을 ‘우리 민주노총’이라고 부를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고 화답했던 기사를 보며 제 눈과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위원장님과 대화를 마친 박재완 장관이 “오늘 큰 틀에서 보면 위원장과 제가 생각하는 방향이 비슷한 것 같다. 향후 민주노총과 정부가 동행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고 한 얘기에 이르러서는 불신을 넘어 온 몸에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김영훈 위원장님, 위원장께서는 박재완 장관이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으로 민주노조 말살을 위한 노동조합법 개악, 4대강 죽이기 사업, 세종시 수정안 강행을 주도했던 이명박 정권의 핵심 인물이라는 것을 잘 알고 계실 겁니다.

흉악범에 가려 청문회 통과한 파렴치범

청문회 과정에서 이명박 정권의 상징인 ‘위장전입’은 물론이고, 고혈압을 이유로 방위 근무, 논문 이중게재 의혹을 받았지만 ‘흉악범’들에 가려 운좋게 청문회를 무사통과한 인물이라는 것도 모르시지는 않았을 테지요.

김영훈 위원장님은 지금 노동현장과 노사관계가 노동부에 의해 어떻게 ‘개판’이 되고 있는지 알고 계십니까?

노동부가 하루가 멀다 하고 금속노조 사업장을 찾아가 사용자들에게 단체협약을 바꾸지 않으면 세무조사를 하거나 부당노동행위로 고소하겠다고 협박하고, 금속노조 간부들에게는 검찰을 동원해 조사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위원장님이 장관을 만나고 있던 그 시간에도 노동부의 압력에 견디지 못한 사용자들이 금속노조 간부를 만나 ‘제발 임금을 돌려줬다는 확인서를 써 달라’고 애원하고, 노동부의 협박으로 노조 간부들이 두 달째 임금을 받지 못해 아이들 학원을 끊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위원장님은 듣고 계시겠지요?

김영훈 위원장님, 노동부 관료들이 조합원이 20명인 회사까지 금속노조의 모든 사업장을 샅샅이 뒤져 타임오프 위반을 조사하면서, ‘사내하청 노동자는 2년 이상이 지나면 정규직으로 간주된다’는 7월 22일 대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불법을 저지르고 있는 사업장에 대해 ‘일손이 부족해’ 전수조사를 못하겠다고 버티고 있다는 것도 모르시지는 않을 겁니다.

노동부가 지금 하는 짓을 알면서

노동부가 사용자를 핑계 삼아 노동조합과의 공동조사를 거부하고, 대법원 판결의 내용을 2005년 7월 1일 이전 입사자, 즉 구 근로자파견법 적용 대상자와 정규직과의 혼재 작업 노동자로 축소 은폐하고, 사용자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한 형식적인 실태조사를 벌이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계시겠지요?

대법원 판결이 난 이후에도 현대자동차는 불법파견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채용하기는커녕 사내하청 노동자를 해고하고 있고, 노동조합 가입이 폭발적으로 늘어나자 하청업체 관리자가 맥주병으로 노조 간부의 머리를 내리치고 식칼을 휘두르는 폭력 만행과 부당노동행위가 버젓이 저질러지고 있다는 사실도 들으셨겠지요?

김영훈 위원장님, 이명박 정부와 노동부가 아무리 미워도 만나서 대화를 하고,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하셔서 그 날 장관을 만나셨을 거라는 짐작도 해보았습니다. 직선으로 뽑히지는 않았지만 80만 민주노총 조합원의 대표이시니, 조합원들의 얘기를 노동부에 전하고 싶으신 마음도 당연히 있으셨을 줄 압니다.

그렇다면 최소한 긴급 중앙집행위원회나 산별대표자회의를 개최해 노동부장관을 만날 것인지에 대해 토론하고 결정했어야 하는 게 아닐까요? 현장 노동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노동부 장관을 만난다면 어떤 얘기를 전달하고 어떻게 현장의 분노를 알릴 것인지를 논의하는 게 너무나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김영훈 위원장님이 박재완 장관과 ‘환담’을 나누고 있던 9월 3일 11시 10분경이었습니다. 금속노조의 한 간부가 민주노총 건물에 있는 감사위원회에 다녀오다가 헐레벌떡 뛰어오는 기자를 만나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그 기자는 노동부장관이 민주노총에 왔다는 얘기를 전해줬습니다. 

우리는 왜 피켓시위를 했나

현장에서는 노동부 개입으로 노사관계가 파탄지경으로 내몰리고 있는데 장관이 어떻게 뻔뻔하게 민주노총에 올 수 있냐며 금속노조 간부 10여명이 11시 15분 경 급하게 민주노총 앞으로 갔습니다. 회의를 마친 박재완 장관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왔고, 우리는 “노사관계 파탄내는 노동부는 물러가라”는 손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쳤습니다.

노동부 장관은 급히 차를 타고 사라졌고, 우리는 민주노총 대외협력실장에게 왜 노동부장관 방문 사실을 알리지 않았느냐며 항의를 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미조직비정규사업실에 알려줬는데 못 들었냐?”고 말했습니다.

금속노조 미조직비정규사업실장은 노동부장관이 방문하기 전날인 9월 2일 밤 12시가 가까운 시간에 민주노총에서 전화가 걸려와 “노동부장관이 내일 민주노총 오는데 동희오토 등 비정규 투쟁 단위에서 피켓시위가 계획된 게 있느냐?”고 물었고, 그는 “수련회 중이라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저에게는 이 얘기가 더욱 충격이었습니다. 서울 양재동 현대기아차그룹 본사 앞에서 55일째 노숙투쟁을 벌이고 있는 동희오토, 40도 불볕 더위와 태풍 속에서도 경비실 옥상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는 기륭전자 동지들, GM대우 비정규직, 쌍용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부장관 방문 사실을 알고 피켓시위를 준비했으면 노동부장관 방문 시간을 조절했을 것이라는 뜻인가요?

설마, 설마, 그런 뜻은 아니겠지요? 그렇다면 밤 12시에 전화를 해서 내일 노동부장관 방문에 맞춰 시위를 해 달라는 ‘깊은 뜻’이 담긴 얘기였을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고,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밤 12시 전화는 무슨 의미일까?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님, 민주노총은 위원장 개인의 사유물이 아닙니다. 폭염과 태풍보다 더 가혹한 이명박 정부의 노동자 탄압 속에서도 현장과 민주노조를 지키며 싸우고 있는 모든 노동자들과 민주노조의 조직이 민주노총입니다.

금속노조 현장은 불법적 타임오프로 인해 산별교섭을 포함해 현장이 ‘개판’나고 있고, 공공은 하루가 멀다하고 단체협약이 해지되고 있으며, 공무원노조와 전교조는 처참하게 짓밟히고 있고, 투쟁사업장은 날이 갈수록 늘어만 가고 있습니다.

최악의 노동조건에서 80만 조합원의 대표인 김영훈 위원장께서 고용노동부장관을 왜 만나고 계신지, 무엇 때문에 만나는지 현장의 조합원들은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설마 위원장께서 이명박 정권이 어떤 정권인지 몰라서, 대화를 통해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고 계시진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부자와 재벌만을 위한 이명박 정권이 저항의 세력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만들어낸 개악노조법과 불법적 타임오프로 인해 20년 민주노조운동의 진지가 곳곳에서 무너지고 있는 2010년 9월, 민주노총 위원장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묻고 싶습니다.

얘기가 두서없이 길었습니다. 민주노총을 소중하게 여기는 한 조합원이 위원장께 드리는 고언이라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몇 가지 질문들

김영훈 위원장께 마지막으로 여쭙겠습니다.

민주노총 위원장과 노동부 장관의 면담은 개인 사이의 회동과 다릅니다. 이명박 정부의 노조 무력화 정책과 이를 최일선에서 집행하는 노동부 장관과의 면담은 노동 진영과 권력과의 관계 속에서 결정되고 조절돼야 합니다. 정권의 노조 말살책이 정점을 향해 달리고 있고, 이에 맞선 조합원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있는 현 시기, 노동부 장관과의 만남 자체에 대한 결정은 신중했어야 한다고 봅니다. 어떤 논의 과정을 거쳐 노동부 장관과 만나기로 결정하셨습니까?

밤 12시 민주노총에서 금속노조 미조직비정규실장에게 전화를 한 이유는 무엇이며, 이는 위원장의 지시에 따른 것입니까.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항의시위가 계획됐었다면,  장관의 방문을 연기하도록 하실 계획이셨습니까?

노동부 장관의 ‘예방’에 감사하며, 이에 대한 화답으로 ‘답방’을 하겠다고 했다는데, 언제, 왜, 누구와 방문할 예정이며, 무슨 대화를 나눌 생각이십니까? 

이번에 노동부장관을 만난 것에 대해 조합원들 앞에 사과하고, 답방 약속을 취소할 용의가 있으십니까?

부자와 재벌만을 위한 이명박 정권이 저항의 세력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만들어낸 개악노조법과 불법적 타임오프로 인해 20년 민주노조운동의 진지가 곳곳에서 무너지고 있는데 민주노총 위원장이 해야 할 일이 정말 무엇입니까?

위원장님의 답신을 기다리겠습니다.

2010년 9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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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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