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운동권 엘리트당 못벗으면 '자연사'
    논쟁 회피, '지도부 연장론' 위험해
        2010년 09월 03일 09:0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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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의 진로 논쟁 보다 치열해야

    최근 진보신당에서는 당의 진로 문제와 관련하여 독자적 성장의 길을 택할 것인지, 연대연합(통합)을 통한 성장을 택할 것인지를 놓고 정체성은 물론 활동의 진정성까지 운위하는 날선 논쟁이 전개되고 있다. 나는 이 논쟁이 이 땅 진보정치의 만개를 위해 불필요하거나 유해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이 논쟁이 왜 이제야 시작됐는지 불만이기조차하다. 마치 나를 비롯한 진보정치세력의 대중에 대한, 그리고 여론과 변화에 대한 둔감함의 표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최근 이명박 정부의 민주주의에 대한, 서민경제에 대한 야수적 도전이 반복, 누적되면서 대중들의 정부여당에 대한 불신은 최고점에 이르고 있다. 그럼에도 소위 중도보수 자유주의 정치세력으로 분류되는 민주당은 대중들의 반MB 반한나라 정서에 편승할 뿐 그 어떠한 혁신의 의지도 벼르지 못하고 있다.

    이보다 더 심각한 것은 소위 진보 혹은 개혁세력이라고 통칭되는 정당들 매한가지로 정치 상황과 대중들의 변화, 쇄신 요구에 이념과 신념 등을 앞세워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는 점이다. 고작 한다는 짓이 진보정치의 정체성을 지킬 것인지, 대중의 지지를 택할 것인지 요상한 선택 논쟁을 지피고 있다. 이로 인해 대중들은 정치적 허무주의에 깊이 빠져 들게 되면서 기존의 기득권 정치구조를 안착 시켜가고 있다.

    지난 30여 년 동안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활동했던 내가 스스로에게 해왔고, 함께 이 길을 걸어왔던 숱한 동료들로부터 들어 왔던 말이 있다. "조급해 하지 말고 우직하게, 우리가 걸어왔던 이 길을 꾸준히 걷다보면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은 변해 있을 것이라고. 지금까지 그래 왔다고. 그것이 역사라고." 이런 말 또는 ‘믿음’에는 책임정치가 들어설 공간은 작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많은 사람들이 그런 얘기를 주고받으며 겪어왔던 무수한 과정들 속에 묻혀 있는 해묵은 갈등이 있다. 정체성이냐, 대중이냐. 정치적 실리냐, 변혁의지냐…..

    참 부질없는 짓이다. 지금 시기 진보신당에 보다 더 절실하게 부족한 것이 ‘진보적 가치나 정책’일까? 아니면 흔히 존재감으로 표현되는 대중적 지지일까? 양자택일을 요구하는 이러한 질문이 매우 곤혹스럽다. 그래도 대답해야 한다면, 적어도 나의 판단으론 지금 시기 진보신당의 가장 커다란 문제는 진보적 가치와 지향을 실현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정치적 능력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대다수 대중들은 진보신당이 다른 진보 혹은 개혁정당과 어떻게 다른지 잘 모르거나, 달라야 될 이유를 찾는 것도 불필요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이 나의 판단이다. 아마 이는 이런저런 이유를 대더라도 현재의 당은 당의 차별성을 대중공간에서 실현시켜 낼 능력이 없음을 증명해 주는 것 외에 아무것도 아님을 말해 주는 것 일게다.

    그럼에도 당은 이후에도 끊임없이 진보정당으로써 타당과 분명하게 구분, 정립되는 내용의 생산과 대중정치 활동이 실현되어야 한다. 단, 다수 대중들로부터 배타적 지지를 획득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구분정립일 때만이 의미있는 차별성으로 인정받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대중적 지지 없는 차별성은 운동엘리트의 관념적 허욕일 뿐이다.

    진보신당, 오래된 운동권 엘리트 정당 못 벗어나

    진보신당은 출범한 지 10년에다 또 그 후 만 2년 만에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대중들에게 진보정당으로서의 특화된 의제나 정책을 제시하는데 실패했다. 또한 무능부패 집단의 오명을 벗겨내는데 실패한 민주당을 대체할 정당으로서의 가능성도 보여주지 못했다.

    진보신당은 대부분의 지역에서 선거운동 기간 내내 좌충우돌 자중지란, 몇몇 뛰어난 지역 진보정치인의 개인기로 당의 부실함을 숨겨가는, 당인으로서는 매우 비겁한 선거운동을 감내해야만 했다. 대중들의 지지를 먹고 사는 대중정당으로서의 지향과 위상은 의심받을 수밖에 없었고, 당연하게 선거 이후 당에 대한 환골탈태의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현재 진행되고 있는 해묵은 정체성과 진로  논쟁을 보면서 예의 ‘우직하게’라는 단어를 되씹게 된다. 나는 현재의 진보신당을 불통정당, 운동권 엘리트 정당으로 지목한다. 소수의 운동권 엘리트들의 완고한 도덕주의와 배타적 우월주의가 다양한 성분의 당원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억누르고 있다.

    당은 진보개혁적 다원주의가 자유분방하게 자기 자리를 찾아 가기에는 예의 그 가벼움을 허용치 않는다. 무지개 정당은 그저 말뿐이다. 다원주의가 들어설 자리가 없으니 당연하게 제아무리 열려있는 대중공간이 있다손 치더라도 그곳은 이미 우리가 들어설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진보신당은 대중들에게 한번도 대중정당인 적이 없었다

    이번 6.2지방선거를 치르면서 국민들의 반MB, 반한나라당 정서가 민주당의 선거 승리로 귀결됐지만 이는 민주당에 대한 정치적 신뢰 때문에 나타난 결과가 결코 아니며, 진보개혁정당 세력이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메우지 못하는 정치적 공백을 차지할 만한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국민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 대부분이 동의한다.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최근 우리나라는 포스트-민주화라는 새로운 조건 속에서 민주 대 반민주 전선을 걷어내고 새로운 정치적 대치선을 형성해야하는 새로운 국면으로 이행하고 있음을 뜻한다. 이것은 민주 대 반민주의 대치 전선에서 구심으로 역할했던 민주당을 대체하는 정당의 출현과 이에 걸 맞는 새로운 전선 즉, 보수 대 진보의 대치선이 목전에 와 있음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결국 여기서 결정되지 않은 것은 ‘대안정당’이 누구이고 어떻게 형성될 것이냐는 문제인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진보신당은 진보의 재구성을 단기적 임무로 설정하고 출범한 과도 정당이라 이해해왔다. 이러한 해석이 크게 틀린 것이 아니라 한다면 진보의 재구성과 관련한 구체적 계획이 최소한 지난 6.2지방선거 이전에는 마련되고 추진됐어야 한다.

    그런데 당은 이 문제와 관련해 책임을 방기했거나 무능했다. 사태가 이러했음에도 6.2지방선거 이전 당내 어디서도 이러한 무능과 방치를 탓하는 그 어떠한 비판도 없었다는 점은 참으로 뼈아프다. 결국 대중들은 당의 대안정당화에 대한 가능성을 접었고 이러한 자신들의 판단을 이번 지방선거에서 솔직하게 보여 준 것이다.

    이렇듯 이번 6.2지방선거는 당에 대한 대중들의 엄중한 심판의 장이었다. 나는 당의 일부 책임있는 간부들의 6.2 지방선거에 대한 평가가 정부여당에 대한 심판과 진보신당의 대표 진보정당으로의 성장 가능성이 확인된 것으로 보는 단견에 매우 절망스럽다.

    우리는 당을 진보정당이자 대중정당으로 규정해 왔고 이를 풍부히 하기 위한 제반의 활동을 조직해 왔다고 굳게 믿고 있다. 일부는 사실이다. 그러나 내 판단엔 그렇게 믿는 구체적 ‘사실’과 관련해선 부정돼야할 몇 가지의 중요한 것들이 있다.

    진보정치 영역에서 오래된 활동가들의 대부분이 대중을 설득의 대상, 혹은 교화의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아주 못돼먹은 습관들이 있다. 물론 자신의 이러한 습관을 인정하는 활동가들은 많지 않다. 대중들의 이해와 요구에 입각해서 어찌어찌 해야 한다는 습관적이고 상투적인 주장은 구체적 사실을 근거로 한 냉정한 성찰 대상이 돼야 한다. 

    내 기억엔 대중들이 지금까지 우리 진보정치 세력에게 자신들의 이해를 위해 무엇을 해결해 달라고 요구했던 적이 거의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우리에게 그런 준비가 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다만 이 야만의 시대에 고맙게도, 올곧은 주장을 하는 세력이 필요하고 그런 점에서 가상하다는 격려는 잊지 않아 온 것 같다.

    그리고 대중들은 우리의 주장에 대해 실현 가능한 것이라고 너희들이 믿고 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는 반문과 함께 자신들의 좌절을 해결할 실질적 힘을 만들 것을 요구하는 모순된 기대를 표출하기도 한다. 우리는 이러한 대중들의 상태와 요구를 매우 자의적으로 해석해 왔고 결과적으론 진보정치의 대중적 확산을 지연시켜 왔다. 현재 대중들이 진보정치 세력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요구하고 있는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그것이 대중정당으로의 자리매김의 첫걸음이라 나는 굳게 믿고 있다.

    비주류 태도와 관점으론 대안정당 약진 불가능

    대한민국에서 우리 진보정치 세력은 주류로서 지역이나 국가를 운영해 본 경험이 거의 전무하다. 그러니 당연하게 대안보다는 비판, 세밀한 실현 계획보다는 거시 담론 등에 익숙해 있고, 이것이 진보정당에 대한 인상으로 각인되어 있다.

    이것은 시대상황상 진보정치의 숙명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반독재 민주세력의 집권과 실패 후 어느 정치 세력이 ‘대안정당’이 될 것인지를 둘러싼 각축이 전개되고 있는 현실에서 정당의 헤게모니 장악은 집권 가능성과 권력 관리의 능력을 대중들에게 보여 줄 수 있을 때만이 가능해진다. 담대하고 세밀한 진보의 재구성과 거기에 부합하는 비전과 임무 수행이 필요하다. 그 출발은 넓은 품이다. 세력 확대와 관리 능력의 안정화는 투쟁이나 지식 습득의 문제로 환원될 수 있는 영역의 문제가 아니다.

    갈등, 분열이 우려되니 현 지도체제를 연장하자?

    당 출범 이후 노회찬, 심상정 공동대표 체제, 노회찬 단일 지도체제를 거치면서 당은 창당의 주요 목표 중 하나였던 진보의 재구성에 관한 실체적 계획의 수립과 집행을 온전하게 실현하지 못했다. 당 정체성 확보에도 충분한 성과를 만들어 내지 못했다.

    또한 당은 일상 정치활동에서도, 거듭되는 선거에서도 대중적인 존재감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대중공간에서 당의 존재감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는 것은 당이 유지돼야 할 대중적 명분이 약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만일 6.2지방선거 후 선거평가와 당 발전을 위한 진로 설정를 놓고 내부적으로 갈등과 충돌이 없다면 이미 당은 회생불능의 사망선고를 확정받은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 다행히 당이 소란스럽다. 이러한 때에 진보신당은 당 대표단 선거를 통해 신노선이든, 구노선이든 당원들의 적극적 참여를 조직하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당의 새로운 전망을 세우려 하고 있다.

    그런데 당 일부에서 당의 갈등과 분열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책임정치 실현을 목표로 당 대표가 당원과 국민을 향해 발표하고, 이를 근거로 당발특위에서 논의하고 전국위에서 통과된 지도부 조기 선출을 없던 일로 하잔다. 충정은 이해가 되지만 바람직한 판단은 아니라 본다. 당의 위기의 근원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전혀 파악하고 있지 못한 둔감함의 소치려니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뼈아프다.

    역설적으로 나는 이 시점에서 당의 분열을 촉구한다. 명백히 다른 견해와 전망이 대충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차이로 축소되는 것은 더 이상 진보정치의 미래를 위해 위험한 일이다. 진보정당의 대안정당화를 위해 모든 걸 걸고 투쟁하자. 그것이 무기력증에 빠져 대중으로부터 멀어져가는 위기의 당을 살리는 현재로선 유일한 길이라 나는 굳게 믿고 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격언이 새롭다

    무슨 일이든 실패를 두려워하면 어떤 것도 얻을 수 없다. 정치에서 실패를 두려워하면 시대의 흐름과 대중의 요구와 변화 욕구를 놓치게 된다. 나는 이것이 현재 진보신당의 위기의 핵심이라 생각한다. 진보신당은 그간의 낡은 노선을 대체할 신노선을 필요로 하고 있다. 또한 경직성으로부터 자유로운 창의적인 지도력을 요구받고 있다.

    이것 없이는 현재의 진보신당의 위기 극복이 매우 난망하다는 것이 나의 판단이다. 지지자의 요구와 관심을 반영하는 정치보다는 내부 노선투쟁에 과도한 에너지를 소모하는 지식인 정당, 운동엘리트 정당으로는 대중들의 이해와 요구를 해결할 수 없다.

    이러한 각성이 전제되지 않는 한 현재의 진보신당은 대중정당으로의 진화는 거의 불가능하다. 뼈를 깎고 살을 도려내는 독한 자세로 새롭게 출발하지 않으면 진보신당의 자연사는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실패를 두려워 않는 대범한 도전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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