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든 군인이 지키는 공사장
    2010년 09월 02일 03:0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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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4일. 다시 낙동강으로 떠났다. 지율스님이 머물고 있는 상주에 도착했다. 중동면 회상 삼거리에서 식사를 마치고 식당 앞마당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사진동호회 진상 회원 홍상환 씨가 말했다.

“저는 마음이 거칠어질 때면 우포늪을 찾습니더. 우포늪에서 떠오르는 해를 보면 마음이 조금씩 진정이 되거든예.”

지율스님이 혼잣말하듯 대답했다.
“그래요? 나는 자연만 보면 거칠어지는데…….”

   
  ▲ 답사팀과 지율스님 (사진=이상엽 작가)

모기가 가마솥을 뚫는다

상주의 옛 이름은 사벌이다. 새로운 넓은 벌판이라는 뜻이다. 상주의 서쪽은 소백산맥이 자리 잡고 있고, 동쪽은 낙동강이 흐른다.

태백에서 발원한 안동천, 소백산에서 내려오는 내성천, 월악산에서 흘러오는 영강. 이렇게 세 강이 상주에서 만나 낙동강 본류 700리가 시작된다. 이렇게 여러 물줄기가 만나는 물골이어서 비옥한 평야가 발달했다.

버스가 달리는 길옆으로 작은 논들이 이어지고 있다. 경작을 하지 않는 이 논들은 앞으로 적치장으로 이용될 것이다. 버스는 매골 버스정류장을 지나 회상 마을로 들어선다.

지척에 스님이 세 들어 사는 집이 있다. 스님이 이 마을에 자리 잡은 것은 작년 11월이었다. 낙동강 전체 구간에서 상주에 터를 잡은 것은 접근성이 좋아 사람들이 많이 찾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상주는 낙동강 본류가 시작되는 곳이고 서울과 부산 사이 중간께에 위치한 지역이다. 스님은 서산대사의 법어 ‘모기가 가마솥을 뚫는다’는 말로 상주에 온 이유를 설명한다.

“모기가 가마솥을 뚫을 때 어떻게 뚫어요? 제가 사는 집에 가마솥이 있는데 저녁에 물을 담아놓고 아침에 보면 물이 없어요. 새는 거지. 근데 구멍이 안 보여요. 돌아다니면서 보면 제일 얇은 데가 있을 거라는 거죠. 그곳을 계속 집중해서 뚫는 거예요.”

스님은 카메라와 캠코더를 들고 다니며 낙동강변의 사계절을 지속적으로 촬영하고 있다. 공사가 진척되며 사라져가는 강을 기록하기 위한 것이다.

지율스님이 상주에 자리를 잡자 ‘말썽 피우는 사람이 왔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퍼졌다. 주민들은 마을회의를 소집해 대책을 논의했다. 시와 면 단위에서도 대책을 세우고 세를 준 집주인을 닦달했다. 어려운 상황에 처할 때마다 힘이 되어준 것은 집주인이었다.

   
  ▲ 지율 스님 (사진=이상엽 작가)

“‘스님한테 말 못하고 힘든 일이 많았다’고 해요. 그럴 때마다 그렇게 얘기했대요. ‘나는 4대강을 반대하지 않지만 반대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중요하다. 새가 두 날개로 날지 한 날개로 나느냐?’ 그러면서 맘 편하게 사시라고 격려를 해주셨어요. 지금은 마을 분들이 먹을 것도 조금씩 덜어서 주시고 잘 지냅니다. 물론 찬반에 대해서는 별 변함이 없어요.”

회상 마을을 빠져나가자 푸른 논밭이 시야를 가득 채운다.

“이 논들이, 못 느끼실지도 모르겠는데, 하회마을보다 더 아름답다고 생각할 정도에요. 이 논들의 반쪽이 잘려져 나갑니다.”

논 사이로 난 길 한편에 버스를 세우고 차에서 내렸다. 강 옆으로 난 ‘갈밭길’을 따라 걷는다. 뙤약볕이 쏟아진다. 오 분 남짓 걷자 일부가 파헤쳐진 밭이 보인다. 서둘러 문화재 지표조사를 한 후 흙을 덮고 떠난 흔적이다. 여기 저기 공사 구역을 알리는 빨간 깃대가 꽂혀 있다. 강을 직선화하기 위해 일직선으로 열을 지어 꽂은 것이다.

모래사장을 걸어 물가에 도착했다. 아직 공사를 시작하지 않은 곳이라 포크레인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물빛이 흐리다. 준설공사를 하는 상류의 영향이다. 공사 전엔 물이 투명해 육안으로 헤엄치는 물고기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스님이 물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우리도 신발을 모래 위에 벗어두고 물속으로 들어갔다. 수심이 얕아 강 너머까지 걸어 다닐 수 있다고 한다. 발바닥에 닿는 모래가 부드럽다. 스님이 멈춰 서서 자신의 발등을 내려다본다. 그녀의 발이 보가 되었다.

   
  ▲ 지율 스님 (사진=이상엽 작가)

“모래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굉장히 빨리 흘러요. 이렇게 막아두면 금방 모래가 쌓여요. 상주보의 경우 앞으로 모래 문제가 큰 문제가 될 것 같아요. 모래가 계속 쌓일 테니까.”

나도 발로 보를 만든다. 모래는 금세 내 발등을 넘어 흘러간다. 보를 넘쳐흐른다.

상주보는 세 개의 강이 만나 흐르는 곳이다. 스님은 여러 강에서 흘러온 모래가 퇴적되면서 발생할 문제에 대해 충분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우리가 재난 가까이 가고 있다

물속에서 나와 스님이 모래 위에 그리고 있는 낙동강 지도를 바라본다. 거침없이 강과 땅 이름이 쏟아져 나온다. 태백 황지못에서 을숙도까지 모래 위에 낙동강 지도가 완성된다.

우리가 서 있는 곳에서 2킬로미터 위쪽에 ‘700리 낙동강’의 발원지가 있다. 세 강이 만나는 자리다. 낙동강은 큰 지천이 10개 정도 있고, 작은 지천이 720개 정도 있다. 강은 지천을 만나면서 커지고 평야를 만들면서 흘러간다.

“아까 농사 안 짓는 땅들 보셨죠? 예전엔 다 홍수터였어요. 물이 들어왔던 곳이죠. 강이 만들어놓은 저지대 땅들이에요. 제가 다니면서 보니까 그동안 우리 선조들이 터를 잡을 때는 항상 지천과 낙동강 본류 중간에다 잡았어요. 옛날 어른들은 물길을 피해서 안전한 곳에서 살았어요.”

상주시가 그렇고, 안동천과 태백산 중간에 있는 안동이 그렇고, 소백산과 낙동강 중간에 있는 예천 영주가 그렇고, 대구가 그렇다. 선조들은 낙동강 본류에서 15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곳에 도시를 만들었다.

“어제도 주민들이 땅이 범람한다는 거예요. 실제로는 옛날에 강이었던 땅에 우리가 들어가서 살면서, 그것을 강이 넘쳤다고 하는 거죠. 주체를 바꿔버린 거예요. 사고의 주체를. 재난이 이쪽으로 온 게 아니라 우리가 재난 가까이 갔다는 생각을 안 하는 거죠. 그리고 예전에는 홍수가 없었는데 지금은 홍수가 많이 나는 이유 중 하나는 제방을 쌓기 때문이에요. 제방을 쌓고 직선화하고 홍수터의 물을 빼냈어요. 그래서 강물이 범람하는 겁니다.”

스님이 전에 만든 홈페이지가 있다. ‘낙동강 3.14’(nakdongkang314.org)다. 숫자 ‘3.14’에 담긴 의미를 설명한다. 물은 평지에 펼쳐놓아도 돌기 시작한다. 물의 에너지는 곡선으로 흐르기 때문이다. 강은 직선거리의 3.14배만큼 회전한다. 실제 스님이 낙동강 전 구간을 계산했을 때 2.9배의 회전률이 나왔다. 3.14배에 이르지 못한 것은 그동안 강을 직선화했기 때문으로 추측했다.

   
  ▲ 지율 스님 (사진=이상엽 작가)

“물이 얼마나 무거우냐면요. 1입방미터에 1톤이에요. 그 무거운 물이 부피가 늘면 힘을 가지면서 굉장히 많은 일을 합니다. 지금 우리가 보면 물이 너무 조용하게 흘러가죠. 저 바위들을 깎았어요. 우리가 막아놓은 제방, 우리가 편리해서 강 가까이 가지고 온 것들을 얼마든지 무너뜨릴 수 있어요.

자연이 어떤 일을 할 지 우리는 잘 모릅니다. 강도 화를 내요. 가능하면 재난 가까이 안 가는 것이 가장 큰 일인데. 지금 이 사업들이 문제인 것은 물의 에너지 안으로 계속 들어간다는 거예요. 그런데 강은 언제든지 범람하게 돼 있고 또 범람해야만 땅이 건강해지고 기름져져요.”

아무도 모르게 시작된 4대강 사업

물가에서 나와 모래사장을 걷는다. 지율스님은 4대강을 기록하기 위해 찾아온 우리들을 향해 “일찍 일찍 기록들 좀 하지”라며 아쉬움을 내비쳤다. 스님은 앞으로 이 강변에서 낙동강을 지킬 것이라고 예고했다.

“사진 잘 찍어두세요. 많이 찍어놨다가 제가 여기서 기숙하게 되면 이곳에 대한 이야기를 여러분이 해주셔야 돼요.”

다시 버스를 타고 경천대로 향했다. 경천교를 건너 경천대 아래 주차장에서 내려 산길을 올랐다. 10여 분 후 경천대 전망대에 도착했다.

낙동강이 S자를 그리며 흘러가는 모습이 한 눈에 보인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회상 들’은 반달 모양이다. ‘회상 들’은 회상 마을 앞 들녘으로 우리가 앞서 걸었던 곳이다. 오른쪽 풍경 끝으로 상주보가 보인다. 상주보에 이르기까지 강은 산 하나를 에돌아 흐른다. 모래사장은 수술대 위에서 내장을 드러낸 환자처럼 누워 있다.

“저 산 끝까지 농사를 안 짓고 있어요. 강이 만들어놓은 땅에 모두 모래가 들어가게끔 사대강 사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경성천을 따라 펼쳐진 초록색 들은 복토 대상지에요. 상주 땅의 1/3은 모래를 저렇게 쌓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우리가 어떤 선택을 계속 하는가가 문제인 것 같아요. 지금 이런 선택을 했지만 매순간 환경문제에 있어 선택을 할 때 이것이 큰 교훈이 되도록 운동을 해나가야 되는 거죠. 반대하는 것도 너무 중요하지만 이것이 진행된 과정과 결과를 모니터링해서 환경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들여다보고 있으면 너무 마음이 아파요.”

상류 쪽으로 제방이 쌓여 있다. 지난 해 스님이 터를 잡을 무렵엔 없던 제방이다. 정부는 정권 초기부터 이곳에 제방 공사를 하고 있었다. 오래 전부터 국민들 모르게 4대강 사업이 시작된 셈이다.

총을 든 낙동강의 군인들

이번에 도착한 곳은 청강부대 숙영지가 있는 문경시 영순면의 35공구 현장이다. 버스에서 내려 영풍교를 걸었다. 영풍교는 영강과 낙동강의 합수머리에서 2km 거리에 있다.

영풍교 난간에 기대 강을 바라본다. 그동안 공사 현장에서 보지 못한 낯선 군청색 포크레인 몇 대가 강에 입을 벌려 모래를 퍼올리고 있다. 군용 포크레인이다. 주변의 모래들이 배를 뒤집고 널브러져 있다.

지난 5월 국가의 부름을 받은 117명의 군인들이 중장비 70대 가량을 앞세우고 4대강 현장으로 왔다. 지방선거 전날인 6월 1일 기습적으로 공사를 시작했다.

영풍교 끝에 다다를 무렵 다리 밑으로 수달 등의 동물 발자국이 보인다. 스님은 이 자리에서 수달 똥을 많이 발견했다고 한다. 그들의 먹이인 물고기가 풍성한 이 강변으로 자주 내려왔던 것이다. 수달이 되돌아간 숲이 어둡다.

일행은 태극기가 꽂혀 있는 숙영지를 향해 걸었다. 청강부대의 4대강 사업 투입은 국군의 의무인 안전보장, 국토방위와 무관한 병력 배치라는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청강부대 숙영지는 들리는 말에 의하면 생태공원이 들어설 것이라고 한다.

“낙동강 가는 곳마다 생태공원이라는 팻말과 리모델링이라는 말이 같이 있는데요. 그걸 잘 지켜보면 대체로 생태공원이라고 하는 큰 단지들은 그 뒤에 복토를 넓게 하고 있습니다. 즉 부지 조성이에요. 군인들 들어가면 길 닦는 거하고 똑같습니다. 산업단지나 주택단지나 테크노파크가 들어오는 곳에 생태공원이 조성되고요. 부대시설의 하나라고 생각하면 돼요. 이런 것들이 생태적인 공원이 아니고 다른 목적을 가진 공원이 많아요.”

청강부대에 도착했다. 두 명의 위병이 총을 들고 경계를 서고 있다. 당황한 지율스님이 목소리를 높인다.

“공사하러 온 사람들이 총을 들고 나오면 어떻게 해요? 무섭다. 사람들이 지나가다 무슨 생각을 하겠어요?”

청강부대 앞엔 지난 두 달간 준설한 모래를 쌓아올린 5미터 높이의 적치장이 있다. 지율스님이 적치장 위로 올라간다. 스님을 따라 올라가보았다. 미처 예상치 못한 엄청난 넓이의 모래밭이 펼쳐진다. 사막 같다.

카메라를 든 스님이 어느새 사막 끝으로 멀어져간다. 그녀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이 푹푹 빠진다. 사막을 헤매는 구도자 같다. 사진기를 든 기록자들도 하나둘 적치장으로 올라와 ‘밖으로 쫓겨나고 버려진 강’인 모래를 향해 셔터를 누른다.

   
  ▲ 지율 스님 (사진=이상엽 작가)

군인들이 있고, 총이 있고, 다 사라진 강이 있고, 이 모든 것들의 결과인 사막이 있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 걸까? 태극기가 막사 위에서 휘날리고 있다.

앞서서 했던 사람들은 끝까지 해줘야 돼요

지율스님이 각별한 애정을 지니고 있는 낙동강 상류 내성천으로 향하고 있다. 청강부대에서 10km 떨어진 상류다. 내성천을 따라 계속 올라가면 회룡포다. 이 땅의 가장 아름다운 마을 중 하나인 회룡포는 관광지화 되고 있다. 벌써 펜션이 들어서고 주차장을 조성하고 있다고 한다.

곧이어 내성천이 모습을 드러낸다. 우리나라에서 보기 힘든 자연생태하천이다. 스님은 ‘안동천이나 다른 곳도 모두 예쁘지만 내성천만 하지 않다’고 말한다.

“안동천 물은 애초 안동댐 때문에 물이 그렇게 맑지는 않아요. 내성천은 물이 투명하게 느껴지잖아요. 내성천이 낙동강과 섞이면서 정화작용을 많이 하거든요.”

모래사장을 지나 내성천으로 걸어갔다. 상류에 이렇게 드넓은 모래사장이 있는 곳은 세계적으로 드물다고 한다. 모두 신발을 벗고 강물 속으로 들어간다.

상류인 내성천에서 비로소 물고기들을 만났다. 송사리들이 헤엄치고 있다. 맑은 물을 보며 사람들이 연방 감탄사를 내뱉는다. 지율스님도 강을 거닐며 처음으로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다.

내성천의 아름다움은 맑은 물과 가을날 서걱대는 갈대밭, 해질 무렵의 해넘이 풍경에 있다. 하지만 이날은 강에 번지는 노을을 볼 수 없었다. 내성천을 떠나 하루 일정을 마무리하고 숙소를 향해 떠났다. 돌아가는 길에 지율스님이 당부하듯 말한다.

“앞서서 했던 사람들은 끝까지 해줘야 돼요. 환경문제는 10년 이상 모니터링하고, 실질적으로 자료가 나오지 않으면 선례가 안 생기잖아요. 새만금 하다 끝나면 뭐하고, 또 뭐하고, 이렇게 해선 안 되는 거죠. 우리가 제기한 문제들이 결론이 어떻게 나오는가에 대해 조사하고 책임을 져야 하는 거예요.”

스님은 낙동강 상류가 보호되면 4대강 사업으로 강이 파괴되어도 20년 가량 지나면 자연적으로 치유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아무리 강을 준설해도 물은 결국 자기 자리로 돌아가기 때문에.

“다만 그 안에서 살던 생명들은 100년 안에 다시 돌아오지 못할 거라는 거죠. 최소한 백년 이상 걸려야 그 생명들이 자기 자릴 잡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를 안타까워하고 우리가 잃어버리는 이 순간의 시점을 잘 기록하는 일이 정말 필요합니다. 우리 국토가 어땠는지를 후손들에게 계속 알려줘야 하고 또 어떤 힘들이 가했던 폭력에 대해 기억하고 이것을 지키는 다른 힘들을 만들어 나가야 해요.”

저녁식사를 마치고 숙소에 짐을 풀었다. 숙소 마당엔 숭어 양식장이 있었다. 항생제로 자라는 숭어 떼가 가득했다. 북적거리는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사람들 사이에 끼어 화난 표정으로 부대끼는 이들처럼 숭어들은 비좁은 수조에서 서로 몸을 부딪치며 퍼덕거렸다. 낙동강에서 볼 수 없는 숭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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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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