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없는 출판사, 권리 없는 편집자
    By 나난
        2010년 09월 02일 01:1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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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게는 몇십 권에서부터 많게는 수백만 권씩 팔리는 책.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저자만을 기억할 뿐, 그 책에 들어간 수많은 노동은 알지 못한다. ‘출판.’ 그 중에서도 외주출판 노동자들의 근로실태는 열악하기 그지없다. 편집자, 디자이너, 번역가, 대필가, 글작가, 그림작가 등.

    이에 <출판노동자협의회>는 ‘외주출판, 노동을 말하다’를 통해 책 뒤에 감춰진 외주출판 노동자들의 노동에 주목하고, 그들 스스로 자신의 노동을 말하고자 한다. 노동시간과 노동강도, 통제방식 등 불연속적 노동환경에 처한 그들이 스스로 ‘권리찾기’에 나선 것이다.

    <출판노동자협의회는>는 이번 기획을 바탕으로 외주출판 노동자와 유사한 형태로 일하는 가내노동자의 노동권 확보를 위한 기틀을 마련하고, 향후 법적․제도적 권리보장을 위한 입법안을 확정한다는 계획이다.

    이번 연재는 상대적 약자일 수밖에 없는 외주출판 노동자들의 처지를 고려해 모든 글은 익명으로 처리될 예정이다. 이번 연재는 <출판노동자협의회>가 기획했으며 <레디앙>이 전한다. <편집자주>

    편집자 없는 출판사

    상시적으로 이뤄지는 출판사에서 내 업무가 어떤 식으로 아웃소싱되는지, 그 중에서도 편집 업무는 어떤 형태로 아웃소싱되는지를 내 경험을 통해 드러내고자 한다.

    나의 경험이 외주 편집자 일반의 노동을 대표한다고는 볼 수 없지만, 교정교열에 한해서가 아니라, 외주 편집자가 책 한 권을 통째로 만들어 출판사에 납품(?)하는 것이 전혀 낯선 풍경이라고 할 수 없는 상황에까지 이른 출판계인지라, 그 외주화의 모습을 실제 경험을 통해 밝히는 것은 유의미하리라 본다.

    어느 가을, 책 만드는 사람이 아닌 책 만드는 기계가 되어간다는 생각에 지독한 슬럼프에 빠졌고, 결국엔 출판사를 나왔다. 처음엔 2~3년간 공부를 하면서 나를 추스르고 다시 출판사로 들어갈 작정이었다. 때문에 별 고민 없이 학비와 생활비를 벌 목적으로 아르바이트 삼아 외주 편집 일을 시작했다.

       
      

    맨 처음 한 작업은 알 만한 시인의 평론집이었다. 원고 검토를 했고, 얼개를 짰다. 찔끔찔끔 보충되는 원고 덕에 최종 교정지가 나올 때까지 전체 페이지가 매겨지지 않았다. 출간 행사가 잡혀 있는 책이어서 내게 주어진 시간은 일주일 정도밖에 안 되었다.

    교정교열만 해도 모자랄 시간이었는데, 진행까지 했어야 해서 정말 잠 한 숨도 못 자고 일을 했다. 출력실에 가서 검판을 하고 보도자료까지 써서 넘기고 받은 작업비는 80만 원이었다.

    1주일에 80만원이면 괜찮지 않냐고요?

    모르는 사람은 일주일 정도 일해서 80만 원이면 괜찮지 않냐 할지 몰라도, 정말 그럴까? 400페이지나 되는 책인데. 그리고 그 많은 분량을 그 짧은 시간 동안 책임편집을 했다? 아, 이건 미치지 않고선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고 나서 그 출판사의 일을 두어 개 더 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그 출판사엔 편집자가 없어서였다. 관리자도 있고 영업자도 있었음에도 정작 책을 만드는 편집자는 없었다. 때문에 나는 그 출판사의 작업을 하는 동안은 내부 직원들에게도 저자들에게도 편집장으로 불렸다.

    책 만드는 과정에선 저자가 편집자인 나를 신뢰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필요한 까닭에 내가 알아서 먼저 편집장 명함을 내밀기도 했다.(아무래도 저자 입장에선 자신의 책을 외주로 만든다고 하면 찜찜해할 게 분명하니까)

    학교에 다니고 있었기에 출판사로 매일 출근할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출판사 사장이 부르면 만사 제치고 달려가야 했다. 편집은 출판사의 상시 업무인데 그 일을 외부에서 하고 있으니 어쩌겠는가? 편집자로서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어서 당시엔 그래야만 하는 줄 알았다.

    그 출판사 다음으로 관계를 맺은 출판사는 대규모 출판사였다. 내부에는 기획자만 잔뜩 있었고, 편집일은 외주 편집자에게 맡기는 시스템이었다. 나처럼 책임편집을 하는 외주 편집자가 있었고, 한 주에 2~3일 출근해서 교정교열만 하는 외주 교정교열자가 있었다.(나는 개인적으로 편집 작업을 세분화하여 기획자, 편집자, 교정교열자로 구분한 뒤 층위를 나누는 데 문제의식이 있다)

    상근 편집자로 사칭하다

    영업자 출신으로 편집 일에 대해선 문외한인 기획자, 책 한 권 만들어보지 못한 대학을 갓 졸업한 기획자를 담당자로 두고 일을 했다. 담당자는 기획원고 하나를 던져주면 그만이었고, 나는 원고 진행 중에 저자도 만나고 번역가도 만나고, 일러스트레이터와 디자이너와도 소통하면서 책을 만들었다.

    일러스트레이터나 디자이너는 나와 같은 외주자(외주업체)였기 때문에 상관없었지만, 저자는 또 달라서 역시나 이전 출판사에서 그랬던 것처럼 나는 그 출판사의 편집자인 양했다.

    한번은 내 담당 기획자가 섭외하고 싶은 저자가 있었는데, 그 저자가 예전에 내가 몸담았던 출판사에서 나름 판매가 좋았던 책을 썼던 이였다. 그래서 나는 마치 이직한 것처럼 꾸며 외국에 있던 그 저자에게 메일을 보내 함께 책을 만들고 싶다는 의향을 밝히기도 했다.

    내 말을 곧이곧대로 믿은 저자는 (규모로만 따지면 더 좋을 수밖에 없었던 그 출판사로) 이직한 것을 축하한다는 말을 전해왔으니, 아, 도대체 나는 왜 그런 거짓말까지 해가면서 책을 만들었어야만 했던 걸까?

    세 번째 책 작업을 진행할 때였을까? 담당 기획자가 정해준 외주 디자인업체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내가 아는 디자이너를 추천했다. 어차피 책 진행은 내가 하는 것이니까 나랑 손발이 잘 맞는 디자이너가 좋겠다 싶었는지 담당자는 그래도 좋다고 했다.

    그 뒤로 그 출판사의 일을 관둘 때까지 내가 선택한 디자이너와 작업을 했다. (외주 편집자가 외주 디자이너에게 작업 지시를 내리면서 일하는 것, 나는 가끔 이게 뭔가 싶을 적이 있다. 규모가 크든 작든 출판사 내부에 편집자도 디자이너도 두지 않는 시스템을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권당 150~200만원 수준

    그렇게 일하면서 내가 받은 작업비는 권당 진행비 100만 원에 교정교열비로 원고 매수당 1,000원이었다. 책 한 권당 200만 원이 넘을 적도 있었고, 150만 원 정도일 적도 있었다.(원고 매수가 적다고 해서 진행이 더 쉬운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나는 차라리 원고 매수가 많은 게 좋겠다 싶기도 했다. 그래야 작업비가 올라가니까)

    출간 후 반응이 빨리 오는 책은 두 주 만에 결제가 되었고, 보통은 한 달이나 두 달이 지나서야 결제가 되었다. 결제가 안 된 적은 없었지만 결제일이 분명치 않아서 담당자에게 몇 번이나 독촉을 하기도 했다. 담당자 입장에선 자기가 돈을 주는 게 아니라서 난감했겠지만, 어쩌겠는가, 나도 곤란한 걸.

    내 담당 기획자가 출판사에서 입지가 좁아지면서 내 일도 덩달아 중단되었다. 그러면서 나는 어쩔 수 없이 다른 출판사를 찾았다. 규모는 작았으나 브랜드가 두 개인 출판사였다. 나는 그 중 한 브랜드의 책을 만들었는데, 역시나 명함이 나왔다. 저자를 안심시키기 위해서였다. 하여, 내가 진행하는 책의 저자 강연회에도 가고, 출판사 송년회에도 갔다.

    면접을 보는데, 사장이 계약서를 쓰자고 했다. 그동안 근로계약서든 외주계약서든 계약서라곤 써본 적이 없었던지라 계약서를 쓴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출판사와 사장에게 믿음이 갔다. 그러나 계약서라는 게 현실에선 정작 아무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사장은 작업비로 권당 진행비 100만 원에 매당 1,000원을 책정하자고 했다. 큰 출판사에서 그렇게 받아 일했으면서 작은 출판사에서 더 받으면 안 되지 않냐고 하는데, 달리 뭐라 항변할 수가 없었다. 계약조건은 작업이 들어가기 전에 계약금으로 총 비용의 20%를 계약 체결일로부터 15일 이내에 지급받고, 작업이 끝난 후에 30%, 나머지는 책 발행 후 3개월 안에 지급받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게 참 뭣한 것이, 140만 원가량 되는 작업비를 완납받기까지 최소한 넉 달이 소요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제때에 지불되지도 않아서 몇 번이나 독촉을 했어야만 했다. 한번은 교정교열만 한 적이 있는데, 작업비가 50만 원에 불과했다.

    그나마 제때 지불 안돼

    그럼에도 계약조건은 같았고, 역시나 제때에 지불되지 않았다. 얼마 되지도 않는 작업비가 두어 달에 걸쳐 십여만 원씩 들어오는데, 나중엔 오기가 생겨서 꼭 받아내고 말리라 했다.

    강남에 위치한 출판사면서 근로기준법을 피해가려고 출판사 직원은 4인만 두고(사장이 내게 한 말이다) 외주 편집자한테 명함을 만들어주고 관리하는 출판사, 많지도 않은 돈임에도 제때에 지불해주지 않는 출판사와는 더는 일해서 좋을 게 없다 싶어 관계를 끊어버렸다. (역시나 이 출판사에도 내부에 디자이너는 없었다)

    이 출판사와 일하면서 실감했다. ‘계약서가 만능은 아니구나.’ ‘상대적으로 약자일 수밖에 나는 부당한 계약조건도 받아들여야 하고, 출판사가 계약서에 따라 작업비를 지불하지 않아도 어디 가서 호소할 데가 없구나.’ ‘나한텐 의무만 있고 권리는 없구나.’

    외주출판노동자에게 법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내용증명을 보내도 출판사가 작업비를 안 주면 그만이고, 법원이 지불명령 확정을 내려도 출판사가 이행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민사소송으로 갈 텐가? 배보다 배꼽이 더 클 텐데?

    작업비는 그렇다 치고 열 받아서 못살겠다 싶어서 출판계의 대표적인 인터넷 사이트에 출판사 실명을 거론해가며 피해 사실을 올린다? 자칫하면 출판사가 명예훼손과 업무방해로 고소해올 텐데? 억울하지만, 절대 받아들이고 싶지 않지만, 이것이 외주출판노동자의 현실이다.

    외주출판노동자의 슬픈 현실

    독자들은 책의 판권에 이름 찍힌 편집자, 디자이너, 영업자가 출판사 정규직 직원이라고 생각할 테지만, 실상은 꼭 그러하지 않다. 계약직일 수도 있고, 노동자임에도 노동자로서의 법적 제도적 권리가 제어당하는 외주자일 수도 있다. 설령 출판사 안에서 일하고 있다 하더라도 신분은 외주자인, 이른바 ‘상근 외주자’일 수도 있다.

    앞서 연재된 글에서 출판사 재직 편집자가 자신을 “예비 외주자”라고 표현했다. 그 말의 함의를 파악하는 것, 우리는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할 듯하다. 전체 출판노동자의 단결된 힘은 자신의 출판노동이 왜 억압당하고 있는지 그 근본 원인을 찾고, 재직과 외주를 구분하기보다는 왜곡된 출판산업의 구조 속에서 우리 모두가 고통 받고 있다는 인식을 함께하는 데서부터 만들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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