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 기다리는 야만의 정치판
    2010년 09월 02일 08:59 오전

Print Friendly

그들은 종종 의표를 찌른다. 인터넷 카페 ‘여성 3국’으로 알려진 ‘소울드레서’ ‘쌍코’ ‘화장발’이 그들이다. 그들의 겉모습은 평범하다. 거창한 슬로건 따윈 눈에 띄지 않는다. 카페의 화두는 패션과 미용, 그리고 아름다움이다. 회원은 10대 후반에서 20~30대 젊은이들이 주축이다. 그들은 디지털문화에 익숙하다. 그들은 필요한 생활 정보를 인터넷에서 서로 주고받는다. 의도적으로 조직된 모임이 아닌 만큼 그들은 순수하다.

2년 전 그들의 행보도 뜻밖이었다. 촛불집회가 이명박 정부를 몰아붙이던 때였다. 집회에 적극 참여한 것은 물론 일간지 광고를 통해 이명박 정부의 독선을 매섭게 비판했다. 그들의 모습은 낯선 것이었다. 정치적인 집단도, 운동권 학생들도 그들은 아니었기에 시민들은 의아스러운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촛불이 잦아들자 그들도 사라졌다. 그들의 모습이 다시 사람들의 눈길을 끈 것은 지난해 7월이었다. 그들은 서울 명동에서 미디어법과 이를 날치기 처리한 한나라당을 생생한 몸짓으로 고발했다. 그들이 펼친 ‘플래시몹’은 시민들에게 이명박 정부의 독선과 언론장악 음모를 새삼 일깨워줬다. 

   
  ▲ 까페 ‘소울드레서’의 ID 찹쌀떡(왼쪽)님과 까페 ‘쌍코’의 단사마 님 (사진=미디어오늘/이치열 기자)

그들은 지난 달 29일 또 한 번 움직였다. 이명박 정권이 추진하는 4대강 사업은 결코 해서는 안 될 사업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부분 공감하는 목소리다. 그러나 그들의 외침은 묘한 여운을 남긴다. 그들은 정치 집단과 거리가 먼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만큼 그들의 목소리는 자연의 소리에 가깝다. 그 순수한 힘에서 무한한 잠재력을 느낀다. 그들은 뜻밖에 불의에 민감한 특성을 지녔다. 어쩌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거대한 힘이 거기에 담겨 있는지 모른다.

이 행사를 이끈 닉네임 ‘찹쌀떡’(29·사진 왼쪽 ·소울드레서)과 닉네임 ‘단사마’(31·사진 오른쪽 ·쌍코)의 말을 들어보았다.

-정치적 행보와 카페 설립 취지가 부딪치지 않나.

“정치는 우리의 삶과 직결돼 있다. 특정 정파에 치우치지 않는 한 정치적 관심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정치는 정치인에 맡겨도 될 듯하다.

“정치인을 믿을 수 없다. 그들은 거짓을 일삼는다.”

-지난 번 지방선거 과정에서 카페 회원들의 관심은 어디에 있었나.

“적극적인 투표 참여가 최우선 관심사였다. ‘투표 안 하면, 뽀뽀도 없다’(No Vote, No Kiss)는 슬로건이 카페 안에 자연스럽게 울려 퍼질 정도였다. 4대강 사업을 포함한 정책을 살피고 후보자를 선택할 것을 주문하는 의견도 많았다.”

-많은 카페 회원들이 정치·사회적 이슈에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이는가.

“물론 아니다. 행동으로 옮길 정도로 능동적인 회원은 아직 소수다. 그러나 불의에 대한 공감대의 폭은 넓다.”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확신하는가.

“힘의 한계를 인정한다. 이명박 정부가 당장 4대강 사업을 포기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5·18도 평범한 시민의 혁명이었다.”

-언론은 완전히 장악됐다.

“맞다. 김미화 언니의 용기를 존경한다. 조중동은 이미 우리의 관심권에서 멀리 벗어나 있다. 카페는 진실을 공유하고 있다.”

-희망의 싹을 보았는가.

“지난번 지방선거에서도 작은 기여를 했다고 자부한다. ‘절벽’ 같은 보수주의자 아버지 말고는, 엄마와 여동생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주위의 친지 10명의 마음을 바꾼 것도 보람이다. 아버지조차 이명박 정부를 반대하는 이유를 차분히 설명하자 수긍하는 눈치였다.”

-야당은 희망인가.

“아니다. 말과 행동이 다름은 여당과 다름이 없다. 크게 기대하지 않는다. MB 정권의 독선을 제지하는 일이 무엇보다 급했을 따름이다. 지방선거 직후 보궐 선거에서 야당에 ‘채찍’을 내린 뜻을 정치권은 곱씹어 볼 일이다.”

화장발 회원 수는 30만, 소울드레서와 쌍코도 10만 안팎에 이른다. 이들 거대 조직의 움직임을 전문가들은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신진욱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몇 년째 인터넷카페를 면밀히 관찰 중이다.

-네티즌의 움직임은 눈여겨 볼만한 대상인가.

“노동·학생운동보다 오히려 네티즌의 활약에 주목한다. 거대한 잠재력의 보고이다. 그들은 일상적으로 행동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거대 이슈 앞에서 폭발하는 특성을 지녔다. 시민사회의 새로운 비판적 저항수단이기도 하다.”

-그들은 이따금 출현했다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그들은 숨죽이고 있지만, 언제든 뛰어넘을 태세로 ‘문턱’ 앞에 모여 있다. 그들은 많은 정보를 공유하고 정보를 처리하는 속도도 빠르다. 그들에게 ‘사명감’과 ‘신바람’을 주는 감동적 콘텐츠가 문제다.”

-온라인 세계의 한계를 인정해야 되는 것 아닌가.

“물론 평상시 그들은 한없이 조용하다. 그러나 그들의 뜻이 ‘비등점’을 넘으면 공감대는 폭발적으로 확대된다. 수백 명의 공감대가 수만 명으로 확산되는 데 채 일주일이 걸리지 않는다. 다만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될 때의 이야기다. 그들은, 나와 관련된 이슈인가, 내가 행동에 나서야 풀리는 문제인가,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는가를 생각한다.”

-얼굴 없는 의사 표현의 함정, 온라인 세계의 ‘조작’ 가능성은 문제 아닌가.

“물론 기술적으로 인위적 ‘작업’이 가능하다. 그러나 네티즌의 자정 능력은 무섭다. 익명성을 등에 업고 ‘알바’들이 날뛰지만 그들을 퇴치하는 기술도 대단하다. 네티즌은 ‘검색’이라는 과학적 수단과 통로를 통해 불순물을 거르는 능력이 빼어나다. 건강한 인터넷 카페에서 알바들의 활동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한때 네티즌 토론 프로그램을 운영했던 김태형 PD(40)도 네티즌의 잠재력을 인정한다.

“그들의 자발성에 주목한다. 그들은 자본과 마케팅에 영향 받지 않는다. 정치·사회적 불합리에 대해 자연스럽게 말하고 공감대를 형성한다. 그 순수성은 그들로 하여금 단기간에 집단적 합의에 이르게 한다. 언제 그들이 폭발할는지 모른다. 그들의 미래는 예측 불가능하다. 온라인 동아리의 특성은 충성도가 높고 사명감도 대단하다.”

인터넷 카페 ‘여성 3국’은 야만의 정치를 폭로하는 상징물이다. 그들의 경고는 정파를 초월한다. 그들은 정치판의 혁명적 변화를 추구한다. 전통적 체계의 경계와 상상력의 한계를 뛰어넘는 ‘제3의 마당’을 열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정작 정치판에서는 그들의 행동에 둔감하다. 그들은 아예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그들의 잠재력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터다. 야만의 정치판은 혁명을 기다리고 있다.

필자소개
레디앙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