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법원 판결 이후, 어떻게 할 것인가?
        2010년 08월 31일 05:4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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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7월 22일 대법원은 현대차 비정규직 한 해고자가 제출한 ‘부당해고구제신청’에 대해 “제조업체의 사내하청도 근로자파견에 해당하므로 2년 이상 근무한 사내하청 노동자는 정규직으로 고용한 것으로 간주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번 판결은 그동안 자동차 등 제조업에서 ‘사내하청’이라는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를 사용해온 것에 대해 대법원이 오랜 고심 끝에 ‘합법도급’이 아니라, ‘불법파견’이라고 규정한 것이다.

       
      ▲지난 7월 26일, 대법원 판결 이후 금속노조 입장과 향후 계획을 밝히는 기자회견. 

    대법원, 논란의 종지부를 찍다

    그간 제조업에서 ‘사내하청’이라는 방식으로 비정규직을 널리 사용해 왔는데, 주로 도급계약의 형식을 취하고 있었다. 이를 둘러싸고 원청회사측은 ‘합법적인 도급계약’이라고 주장해 왔고, 많은 노동법학자들과 노동계에서는 한국의 사내하청은 도급계약을 위장한 것이며, 하청업체의 실체조차 인정하기 어려워 원청회사에 묵시적 근로관계가 성립된다고 주장하였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대표적인 자동차기업이면서 약 1만명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는 현대자동차에서 불법파견을 확정하고 이들의 정규직화를 명시했다는 점에서 사내하청을 둘러싼 지금까지의 논란에 종지부를 찍은 의미가 있다.

    한편 대법원의 판결은 이번 사건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자동차 등 제조업에 일반화된 사내하청 모든 노동자가 “불법파견”에 해당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에, 현대자동차는 물론이고 자동차 완성업체, 부품업체, 전자, 철강 등 최소한 컨베이어벨트에서 일하는 여타 제조업 비정규직 노동자가 혜택을 볼 것으로 예상된다.

    과연 그렇다면 자동차업종에까지 확산된 사내하청 노동자의 규모는 어느 정도이며, 어떤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가? 금속노조 정책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자동차업종에 약 5만명, 금속산업 전체로 추산할 경우 약 10만명의 사내하청 노동자가 존재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더 심각한 문제는 현대모비스와 동희오토와 같이 ‘사내하청공장’이 확산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현대모비스의 경우 전국 12개 공장의 정규직과 사내하청 비율을 확인한 결과에 따르면, 사내하청 노동자가 정규직 대비 140%에 이른다. 특히 12개 공장 중에서 울산 수출물류, 광주, 창원, 진천 등 4개 공장을 제외한 8개 공장은 비정규직 비율이 최소 287%에서 최대 1,989%까지에 이르러 비정규직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특히 울산, 이화, 아산, 서산공장 등은 정규직은 관리직이고, 사실상 비정규직만으로 운영되는 ‘사내하청공장’이다.

    비정규직 공장이 늘어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기아차 모닝을 생산하는 동희오토의 경우 관리직을 제외한 950명의 생산직은 모두가 17개 사내하청업체에 소속되어 있는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최근 현대차와 기아차의 변속기생산을 위해 건설된 현대파워텍 또한 생산직이 모두 사내하청인 ‘비정규직 공장’이다.

    이러한 상황의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와 현대자동차는 사내하청 노동자의 불법파견 판정의 의미를 축소하기에 바쁘고, 정규직화요구를 회피하기에 급급하고 있다. 특히 그들은 사내하청 노동자의 정규직화로 인한 비용 부담이 너무 크다는 점을 언론을 통해 유포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금속노조 정책연구원이 자체 조사한 임금비교표에 따르면, 현재 약 1만명으로 추산되는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한다고 하더라도 현대자동차의 추가비용은 약 1173억원에 불과하다.

    근속년수 4.3년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를 기준으로 할 때, 월급여의 차이는 약 97만 7355원이기에 이를 연봉으로 추산하면, 약 1172만 8260원의 차이가 난다. 즉 약 1만명의 사내하청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현대차의 추가인건비 부담은 매년 약 1173억원이 될 것으로 추산된다.

    그들은 이러한 추가인건비가 큰 부담이 된다고 항변할 수 있지만, 현재 현대차의 경영성과로 볼 때, 자금여력은 충분한 것으로 판단된다. 현대차가 매년 약 2조 5000억원 이상의 당기순이익을 얻고 있다는 사실에 기반할 때, 당기순이익의 약 5%를 정규직 전환비용으로 소요하기만 한다면, 사내하청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은 지금이라도 당장 가능하다.

    추가비용 부담 가능, 정규직 전환 당장 가능

    특히 현대차그룹의 정몽구 회장이 국민에게 약속한 자신의 사회공헌기금을 제대로 내기만 하면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은 전혀 추가 비용이 들지 않는다. 2006년 4월 검찰소환을 앞두고 정몽구 회장은 “사재를 출연해서 1조원의 사회공헌기금을 조성하고 이를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분명히 말했다.

    더욱이 2007년 5월 항소심 공판 현장에서 “기금 출연은 1년에 1200억원씩 7년에 걸쳐 출연하겠다”고 했고, 재판부도 실형을 유보하는 전제조건으로 “사회봉사활동의 일환으로 8400억원을 내놓으라”고 판결하였다. 하지만 2009년 7월 현재 정몽구회장이 기부한 금액은 글로비스 주식 900억원을 자신이 만든 ‘해비치재단’에 출연한 것 뿐이다. 만일 정몽구 회장이 약속한 대로 매년 사회공헌기금 1200억원을 출연하고 이를 정규직 전환기금으로 활용한다면 현대차의 부담은 전혀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현대차그룹을 필두로 한 한국의 재벌대기업은 이번 대법원의 판결에 대해 소위 ‘법적인’ 대응으로 일관함으로써, 사내하청문제의 사회적 여론화에 김을 빼고 현재 금속노조가 추진중인 조직화사업에 찬물을 끼얹코자 할 것이다.

    실제로 이번 판결이 5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는 점을 악용하여 금속노조의 집단적 법정소송투쟁을 개별 사안으로 분리, 협소화시키고자 할 것이다. 더 나아가 그들은 2년 이상 사내하청 노동자 중 2005년 7월 1일 이후 입사자들은 이번 판결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법적 논리를 가지고 대응할 것이고, 2년 미만 사내하청 노동자의 경우 법적인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사내하청업체와의 계약해지를 통한 정리해고를 실시하거나, 전성도급화및 외주화를 통해 고용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자 할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지금 시기는 금속노조가 과거 어느 때 보다 원칙과 방향에 대한 폭넓은 동의에 기반한 조직응집력을 강화하고 비정규직 사내하청 노동문제에 대한 긴밀한 사회적 지지와 연대방안을 적극적으로 구사해야 할 시점이다. 

    구호성 투쟁, 심정적 호소로는 안 된다

    특히 구호성에 그치거나 심정에 호소하는 방식에 기울어 있는 ‘무조건적인’ 정규직화의 함정에 빠지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된다. 이번 투쟁의 본질적 의미가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를 단지 정규직으로 만드는 것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한편 10대 재벌대기업들은 작년에 이어 올해 사상 최대의 영업실적을 거둘 것으로 예상되며, 이에 따라 엄청난 규모의 사내유보금, 이익잉여금과 현금성자산을 축적하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자신의 금고에 돈만 쌓아둘 뿐, 투자부진과 일자리감소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서민과 노동자의 바램은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이제라도 재벌대기업은 산업기반의 부실과 고용위기에 시달리고 있는 2010년 한국사회의 현실을 정확히 인식하고 사회적 책임주체로서 소임을 다하기 위해 대법원이 판결한 ‘사내하청 노동자의 정규직화’를 실행에 옮겨야 할 것이다. 즉 재벌대기업은 한국사회의 시대적 과제로 부상하고 있는 ‘질 좋은 일자리 만들기’를 위해 ‘금고에 돈만 쌓아두지 말고 곳간을 열어 달라’는 사회적 요구를 겸허하게 받아 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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