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앗! 조현오’ 참 난감한 ‘언론 마사지’
        2010년 08월 31일 09:36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한반도 주변 정세가 급변하고 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비밀리에 중국을 방문한 사실이 확인됐다. 북한 후계 구도에 대한 중국 쪽의 동의를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치와 내치를 두루 살펴야 할 이명박 정부는 ‘도덕 불감증’으로 민심을 잃어가고 있다.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가장 많은 문제를 지적받았던 인물, 사퇴 0순위 후보로 불렸던 인물, 심지어 국무총리와 장관에 쏠릴 비판을 한몸에 받아 안으라는 의미에서 ‘청문회 방패막이’로 불렸던 인물인 조현오 경찰청장 후보자를 이명박 대통령이 경찰청장으로 기용했다.

       
      ▲ 경향신문 8월31일자 2면.

    김용민 화백은 경향신문 그림마당에서 쓰레기차에 함께 올라 탄 이명박 대통령과 조현오 경찰청장을 그렸다. 이명박 대통령과 조현오 경찰청장의 임기후반 운명을 암시하는 내용이다.
    언론 입장에서 어느 정도 예상한 결과이지만, 참으로 당혹스럽고 난감한 결과이기도 하다. 언론들이 조현오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한 말이 있기 때문이다. “조현오씨는 경찰청장감이 아니다”라고 호기 있게 외쳤던 그 언론들이, 진짜 조현오씨가 경찰청장에 임명되자 참으로 난감해졌다.

    불과 며칠 전에 한 얘기를 뒤집기도 쉽지 않고 청와대의 ‘내 마음대로 인사’는 언론을 참으로 난감하게 했다.

    다음은 31일자 전국단위 아침신문 1면 기사다.

    경향신문 <"조.중 친선바통 후대 잇자">
    국민일보 <"정권 재창출 위해 함께 노력">
    동아일보 <"청 인사라인 문책해야" 여권 ‘3인 낙마’ 후폭풍>
    서울신문 <몸 낮춘 조현오…친서민 강조하는 이재오>
    세계일보 <김정일 "북중 친선 후대에 잘 넘겨야">
    조선일보 <중국, ‘북 김정은 권력승계’ 용인한 듯>
    중앙일보 <김정일 "6자 회담 조속재개 희망">
    한겨레 <끼니차별 없는 교실 "아이들이 밝아졌죠">
    한국일보 <김정일 "북중친선 후대에 잘 넘겨야">

    언론 기사가 보도가 무서운 이유는 모두 기록으로 남기 때문이다. 언론이 ‘이중잣대’를 적용하지는 않는지, 말 바꾸기를 하지는 않는지 모두 검증의 대상이다. 언론도 대놓고 말 바꾸기를 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최소한의 언론 자존심이자 눈에 뻔히 보이는 잘못을 하지는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청와대는 언론의 그런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 언론이 싫든 좋든 마사지를 할 것을 강요(?)한다. 8월23일 조현오 경찰청장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이미 ‘부적격’ 여론을 들었다.

    국민은 물론 경찰 내부의 동의도 구하지 못할 사람을 치안총수로 기용하는 것은 상식에도 맞지 않고, 실현 가능성도 떨어지기 때문이다. 무리수를 써서 경찰청장에 앉히더라도 그의 리더십은 이미 바닥에 떨어졌고, 언제 그만둘지 모르는 상황이다.

    청와대, 조현오 경찰청장 임명 강행

       
      ▲ 경향신문 8월31일자 1면.

    게다가 청와대가 ‘공정한 사회’를 그토록 강조했는데 위장전입 등 명백한 불법행위가 드러난 인물을 자신 있게 ‘공정한 사회의 적임자’라고 주장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관측도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관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이명박 정부의 독특한 도덕적 잣대를 간과했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인사의 원칙은 도덕성과 능력 자질이 아닌, ‘대통령에 대한 충성도’라는 지적을 이번 인사에서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한겨레는 1면 <조현오 임명 강행…야당 "퇴진 운동">이라는 기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30일 노무현 전 대통령 차명계좌 발언 등으로 사퇴 요구를 받아온 조현오 후보자를 경찰청장으로 임명했다”고 보도했다.

    한겨레 "MB, ‘야 조현오 이리와 봐’ 부를 정도로 가깝게 대해"

       
      ▲ 한겨레 8월31일자 5면.

    이명박 대통령이 정치적 부담을 무릅쓰고 조현오 경찰청장을 기용한 배경은 무엇일까. 한겨레는 5면 <MB ‘조현오 구하기’ 더 밀리면 위험해질라?>라는 기사에서 “조 청장에 대한 이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한겨레는 “한나라당의 친이명박계 핵심 의원은 ‘이 대통령이 대선 무렵 지방에 갔을 때 멀리 있는 조 청장에게 ‘야, 조현오 이리와 봐’라며 부를 정도로 가깝게 대했다’고 전했다”면서 “이 대통령이 임기 후반기 강력한 공권력 집행의 적임자로 조 청장을 포기할 수 없었다는 게 정치권의 해석”이라고 설명했다.

    조현오 경찰청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차명계좌’ 발언을 꺼낸 논란의 당사자라는 점도 정치적으로 고려됐다는 분석이다. 경향신문은 1면 <조현오 경찰청장 임명 강행>이라는 사설에서 “이 대통령이 조 청장 임명을 강행하고 한나라당이 정당성을 옹호하는 것은 ‘차명계좌 불씨’를 염두에 둔 측면이 있다. 차명계좌 문제가 부각되면 ‘청문 정국’ 탈출에 불리할 게 없다는 것과 이 때문에 야당이 거세게 반발하지 못할 것이란 이중계산”이라고 설명했다.

    홍준표, 차명계좌 정보 있느냐 질문에 "말하지 않겠다"

       
      ▲ 조선일보 8월31일자 5면.

    세상을 떠난 전직 대통령에 대한 모욕을 넘어 조롱으로 느껴질 수도 있는 행동이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정치적 탈출구를 찾기 위해서는 다시 ‘노무현 카드’를 만지작거릴 수 있다는 것이다.

    홍준표 한나라당 최고위원이 8월29일 한나라당 의원 연찬회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차명계좌 존부(存否)에 대해 자신이 있었기에 기용한 것 아니겠느냐는 발언을 해 언론의 관심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홍준표 최고위원의 주장은 슬쩍 치고 빠지는 형식으로 정치적 목적을 이룬 발언이다. 정치적 책임은 피해갈 길을 만들면서 의혹을 부풀리는 방식이다. 그의 주장은 신빙성이 있을까. 언론은 그의 주장을 대서특필 했을까.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도 그의 주장을 대서특필하지 않았다. 아니 보도를 하기는 했다. 조선일보는 5면 하단에 <"노 차명계좌 존부에 자신 있으니까 조현오 임명한 것 아니겠느나">라는 기사를 실었다. 조선일보는 “하지만 그는 ‘차명계좌 존부에 대한 정보가 있느냐’는 질문에는 ‘말하지 않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동아일보 "조현오, 기소되면 퇴진 압력 견디기 어렵다"

       
      ▲ 동아일보 8월31일자 4면.

    차명계좌 발언을 둘러싼 특검 문제도 논란의 초점이 됐지만, 동아일보는 4면 기사에서 <여야 ‘특검반대 당론’은 불변>이라는 중간 제목을 달았다. 홍준표 최고위원의 치고 빠지기 발언에 보수신문도 별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는 셈이다.

    조현오 경찰청장은 논란 끝에 경찰청장 취임식까지 강행했지만, 그의 앞길은 가시밭길, 자갈밭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동아일보는 4면 <‘고발당한 경찰총수’…조현오 무거운 첫발>이라는 기사에서 “검찰이 노 전 대통령 차명계좌 발언과 관련해 수사하고 있는 만큼 현직 경찰 총수가 임기 중 검찰 조사를 받는 처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최악의 경우 차명계좌 존재 여부가 드러나지 않아 기소되는 상황이 온다면 야권의 퇴진 압력을 견디기가 쉽지 않다”고 전망했다.

    한국일보 6면 <조현오 "모든 허물은 부덕의 소치" 사과로 취임식>이라는 기사에서 “조현오 신임 경찰청장은 30일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 강당에서 열린 취임식을 사과로 시작했다.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 차명계좌 등 막말 파문에 대해 낮은 목소리로 ‘이 자리 오기까지 심려를 끼쳐드렸다. 모든 허물은 저의 부덕의 소치’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조현오 순항에 의문 제시한 언론

       
      ▲ 국민일보 8월31일자 5면.

    한국일보는 “일선의 분위기는 여전히 부정적 기류가 강했다. 서울시내 한 경찰서에 근무하는 A경위는 ‘차명계좌 발언, 위장전입 등 청문회에서 제기된 의혹이 말끔히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청장으로 임명돼 경찰을 잘 이끌어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고 지적했다.

    국민일보도 5면 <‘조현오 경찰호’ 순항할 수 있을까>라는 기사에서 “’강북경찰서장 항명 파동’의 원인이 된 ‘조현오식 성과주의’를 어떻게 현장에 적용해 나갈지 주목된다”면서 “‘궁중 암투를 보는 것 같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흐트러졌던 경찰 내부 분위기를 추슬러야 하는 과제도 있다”고 설명했다.

    언론은 조현오 경찰청장의 문제점을 모르는 바 아니다. 조현오 경찰청장이 국회인사청문회를 받은 다음날인 8월24일자 지면을 되돌아보면 그를 향한 비판과 냉소의 언어가 가득했다.

    서울신문, 몸 낮춘 조현오?

       
      ▲ 서울신문 8월31일자 2면.

    그런 인물을 경찰청장으로 기용했다. 그런데 언론이 말을 아꼈다. 자신의 입으로 ‘부적격’이라고 주장해놓고 막상 기를 기용했는데도 이에 대한 강한 비판이 없다. 세계일보는 4면 <닻 올린 ‘조현오호’ 순항할까>라는 기사에서 “경찰 내부에서는 전날까지만 하더라도 조 후보자가 청장에 임명될지 반신반의하는 분위기였다”고 지적했다.

    조현오 경찰청장 임명의 문제점을 잘 알고 있지만, 임명 강행을 비판하는 사설은 없다. 앞서 세계일보는 8월24일자 지면에 <차명계좌 못 밝힌 조 후보자 경찰청장 자격 없다>라는 사설을 내보낸 바 있다.

    서울신문을 살펴보자. 서울신문은 2면 <몸 낮춘 조현오…친서민 강조하는 이재오>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기사 제목만 놓고 보면 조현오 경찰청장의 겸손함을 강조한 내용이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서울신문은 “우선 조직 안정이 발등의 불이다. 그의 성과주의에 대한 내부 반발이 거센데다 임명 과정에서 경찰대와 비경찰대의 ‘권력 암투설’까지 더해져 인사청문회장을 달구기도 했다. 일선 경찰들조차 ‘경찰조직의 동요가 생각보다 크다.’고 공공연하게 말할 정도”라고 지적했다.

    한국일보, 조현오 경찰청장 기용에 "존중한다"

       
      ▲ 한국일보 8월31일자 사설.

    서울신문은 “최악의 경우 현직 경찰총수가 기소되는 불명예를 겪을 수도 있다. 이 경우 야권의 사퇴압력을 감당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기사를 쓴 기자의 의도와 무관하게 제목이 뽑혔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누구나 다 아는 문제 인물 조현오 경찰청장을 기용했는데 이를 그럴듯하게 포장하려니 언론의 ‘마사지’가 필요한 셈이다. 언론은 8월29일자 8월30일자 지면에서 청와대의 인사스타일, 이 대통령의 인사 원칙에 대해 비판적인 보도를 쏟아냈다. 그런데 똑같은 잘못을 반복한 조현오 경찰청장 기용에는 말을 아낄까.

    심지어 한국일보는 “존중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국일보는 <‘국민 청문회’에 선 조현오 경찰청장>이라는 사설에서 “(이 대통령은)조 청장에 대한 신임은 철회하지 않았다. 우리는 이러한 결정을 일단 존중하되, 조 청장에게 오늘부터 본격적인 ‘국민 청문회’가 새로 시작됐음을 알려 주고자 한다”고 밝혔다.

    반면 한겨레는 <조현오 임명 강행한 청와대, 아직도 정신 못 차렸나>라는 사설에서 “여러 차례 위장전입의 불법을 저질렀고, 재임 중 모친상 때 받은 억대의 조의금은 재테크에 이용했다. 청문회에선 인터넷이나 잡지에 떠도는 소문만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 차명계좌’ 발언을 했다고 실수를 시인하면서도, 관련 의혹은 어떻게 해서든 유지하려고 애쓰는 추한 모습도 보였다”고 비판했다.

    경향 한겨레 정도만 분명한 어조로 비판

       
      ▲ 한겨레 8월31일자 사설.

       
      ▲ 경향신문 8월31일자 사설.

    경향신문도 <조현오 경찰청장 임명이란 위험한 도전>이라는 사설에서 “스스로 경찰의 이미지를 왜곡하고 위신을 깎아내린 이가 또 있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찰총수로 발탁되어 임기 후반 권력의 안전판 기능을 하는 경우가 있는지 궁금하다”고 지적했다.

    경향신문은 “이명박 정권에 충성을 바치면 끝까지 봐준다는 조폭 논리를 심어줌으로써 임기말 권력 누수를 차단하겠다는 생각인지 모르지만, 권력은 정당성을 잃으면 정권도 보호해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현오 경찰청장 기용을 강한 어조로 비판한 언론은 경향신문과 한겨레 정도이다. 다른 언론들은 마음은 다르지 않으면서도 말을 아끼고 있다. 오히려 ‘마사지’를 자처한 언론도 있다. 서글프지만 엄연한 대한민국 언론의 현실이다. 아직은 바뀌지 않는 우리시대 언론의 자화상이다.

    필자소개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