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도 예비 외주인일 뿐"
    By 나난
        2010년 08월 31일 01:3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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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게는 몇십 권에서부터 많게는 수백만 권씩 팔리는 책.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저자만을 기억할 뿐, 그 책에 들어간 수많은 노동은 알지 못한다. ‘출판.’ 그 중에서도 외주출판 노동자들의 근로실태는 열악하기 그지없다. 편집자, 디자이너, 번역가, 대필가, 글작가, 그림작가 등.

    이에 <출판노동자협의회>는 ‘외주출판, 노동을 말하다’를 통해 책 뒤에 감춰진 외주출판 노동자들의 노동에 주목하고, 그들 스스로 자신의 노동을 말하고자 한다. 노동시간과 노동강도, 통제방식 등 불연속적 노동환경에 처한 그들이 스스로 ‘권리찾기’에 나선 것이다.

    <출판노동자협의회는>는 이번 기획을 바탕으로 외주출판 노동자와 유사한 형태로 일하는 가내노동자의 노동권 확보를 위한 기틀을 마련하고, 향후 법적․제도적 권리보장을 위한 입법안을 확정한다는 계획이다.

    이번 연재는 상대적 약자일 수밖에 없는 외주출판 노동자들의 처지를 고려해 모든 글은 익명으로 처리될 예정이다. 이번 연재는 <출판노동자협의회>가 기획했으며 <레디앙>이 전한다. <편집자주>

    나는 이번 시리즈에 글을 쓰기에는 자격이 부족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나는 외주출판노동자가 아니라 출판사의 정규직 편집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모든 책을 만들 때마다 여러 분야의 외주노동자들과 함께 일을 한다. 교정교열이나 디자인이 가장 많고, 어떤 경우에는 기획과 편집 진행 자체를 외주화하는 경우도 있었다.

       
      

    나는 8년쯤 편집자로 일하는 동안 외주자와 함께 일하면서 갖가지 어려움을 겪었고, 고민도 많았다. 요즘 유능한 편집자란, 외주자들을 잘 관리하는 편집자인 것 같다. 그만큼 출판의 많은 작업과정들이 외주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정규직 편집자다

    내가 일을 시작한 2003년, 처음 출근해서 한 일은 교정지를 외주자에게 택배로 보내는 일이었다. 모르는 사람 이름을 꼭꼭 눌러 써 가면서 나는 편집일의 많은 부분 중 외주관리부터 배웠다. 그 후 본격적으로 일을 하면서 점차 내 업무 중 많은 부분이 외주화되는 것을 경험했다.

    교정과 교열은 애초부터 외주화되어 있었고, 출판사에서는 기획을 제외한 편집 진행 자체도 외주화하기를 원했다. 그래서 그렇게 해 보았는데, 비용이나 일정, 결정권 등 편집 진행의 많은 요소가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나온 결과물의 품질은 기대에 훨씬 미치지 못했다.

    그게 당연했지만, 출판사는 외주 관리에 문제가 있다고 할 뿐이었다. 왜 출판사에서 자꾸 업무를 외주화하려고 하는지는 간단하다. 그것이 더 적은 비용으로 책을 만들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외주작업 발주 시 가장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바로 작업의 품질은 비용에 거의 정비례한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도 작업환경과 보상이 적절하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제 능력을 다 발휘하지 않는다.

    그러나 작업비는 적게 주면서 작업 퀄리티(Quality)는 높게 나오기를 바라는 것은 모든 출판사 편집자들의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이런 인지상정 뒤에는 엄정한 자본논리가 있을 것이다.

    두 번째는 작업 일정이다. 1천 매 원고 교정을 보는 데 며칠이 소요되는 것이 적절할까? 여기에는 여러 가지 고려할 사항이 있을 것이다. 그 일을 하는데 얼마의 비용을 받기로 했는가, 적절한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투여되어야 할 시간은 최소 얼마인가, 그리고 노동자로서 인간답게 일 할 수 있기 위해 어느 만큼의 시간이 필요한가.

    외주관리 혹은 돈 관리

    이런 요소들이 서로 뒤섞여서 어떤 합의점으로 도출되는 것이 현실에서의 작업 일정이다. 그러나 출판사들은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가급적 빨리 해주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시간 역시 비용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비용과 일정이야 말로 외주작업을 발주 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는 철저하게 출판사 내지 자본의 논리에 종속되어 있을 뿐, 편집자 개인이 발주처의 실무 노동자로서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책을 기획할 때는 기획서를 쓰고, 그 항목 중에는 비용 계획이 들어간다. 이때 저자 인세나 종이값, 인쇄비 같은 실 제작비용은 거의 고정비용이다. 특별한 형식의 책을 만들지 않는 한 갑자기 줄어들지도 늘어나지도 않는다. 그러나 외주비용은 변동폭이 상대적으로 크다.

    비용 자체의 변동폭이 있고, 외주처리 하지 않고 내부에서 작업하는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모든 계획은 단 하나의 시스템에 종속되어 있다. 바로 "손익분기 프로그램"이다. 이러이러한 비용을 투입하여 책을 만들면 몇 부를 팔아야 이익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1+1=2라는 자연 법칙이 아니라, 2중에서 너와 내가 어느 만큼씩 나누어 가질 것인가, 하는 분배의 문제도 깃들어 있다. 손익분기프로그램에서 외주비를 올리면 책값이 올라가가거나 손익분기부수가 올라간다. 다시 말해서, 증가한 비용은 책 가격에 포함되어 독자들에게 전가되거나 아니면 출판사가 떠안아 더 많은 책을 팔거나 해야 한다는 것이다.

    외주출판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

    독자, 출판사, 외주출판노동자 이 셋이 탁자에서 앉아서 누가 더 많은 부담을 안을 것이냐를 결정하는 광경을 떠올려 보자. 이 순간 제 입장을 관철시키지 못하는 가장 약한 존재는 바로 외주출판노동자들이다.

    나는 2003년부터 매년 적은 액수이지만 5%에서 10% 사이의 비율로 월급이 올랐다. 그러나 외주 교정자의 경우 장 당 교정비는 거의 한 푼도 오르지 않았다. 물가가 올랐으니 실제로는 매년 조금씩 깎인 것이다. 그럼 그 깎인 만큼의 이익은 누가 가져갔을까? 아마 내 월급으로도 얼마쯤은 들어왔을 것이다.

    이런 사정은 출판사에서 일하는 편집자들은 다 알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어느 한 사람, 어느 한 회사가 나서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전체 시스템에서 힘의 관계로 결정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손익분기 프로그램의 엄정한 수식으로 포장되어 있는 것은 실제로는 힘센 쪽이 더 갖는다는 자본의 법칙이다.

    나는 출판노동의 나쁜 관행 중 많은 부분은 당연히 자본의 논리에서 봐야 하는데, 그걸 어떤 순수한 수학적 법칙으로 주장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외주교정비나 외주비를 올리면 책값이 올라가고, 그건 독자들에게 부담을 주는 행위’라는 말은 철저하게 정치적으로 어떤 한 편의 이익을 보장해 둔 상태에서 하는 이야기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런 자본 논리 속에서 자신의 이익을 지키는 길은 딱 하나 밖에 없다. 바로 단결하여 힘을 키우는 것이다. 그리고 요구하는 것이다. 나는 일 잘하고 똑똑한 선배들이 어느덧 외주자로 나서는 것을 많이 보았다. 나 역시 ‘예비 외주자’일 뿐이다. 일단은 외주노동자들의 단결과 나아가 출판노동자 전체의 힘을 모으는 틀이 꼭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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