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장폐쇄, 노조깨기 유행병 되나?
    By 나난
        2010년 08월 26일 11:5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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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 우창정기, 대구 상신브레이크, 경남 양산의 진흥철강 등 8월 한 달에만 금속노조(위원장 박유기) 소속 사업장 세 곳이 연달아 직장폐쇄를 단행했다. 직장폐쇄가 유행병처럼 번지고 있는 셈. 이에 이 문제 대응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많다.

    직장폐쇄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아래 노조법) 2조 6호에 파업 및 태업 함께 규정돼 있다. 파업이나 태업이 노동조합이 벌일 수 있는 쟁의행위라면 직장폐쇄는 이에 대항해 사용자가 할 수 있는 합법적 쟁의행위다.

    하지만 최근 사용자들이 직장폐쇄를 단순히 노조의 쟁의행위에 대한 방어수단이 아니라 사실상 노조 자체를 깨기 위한 공격무기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져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노동자들의 쟁의행위를 회사 안에서 못하게 해 생산시설을 보호하려는 목적을 넘어서는 의도를 갖고 있다는 뜻.

       
      ▲ 경기 우창정기, 대구 상신브레이크, 경남 양산의 진흥철강 등 8월 한 달에만 금속노조 소속 사업장 세 곳이 연달아 직장폐쇄를 단행했다. 직장폐쇄가 유행병처럼 번지고 있는 셈. 이에 이 문제 대응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많다. 8월23일 상신브레이크 공장정문을 용역경비들이 막고 서있다.(사진=금속노조)

    생산시설 보호목적 넘어선 의도가진 직장폐쇄

    지난해 12월 직장폐쇄를 단행한 포항 진방스틸은 이미 악질적 노조탄압으로 악명높은 회사다. 회사는 2008년부터 2차에 걸친 정리해고와 단협해지, 직장폐쇄 등 상상할 수 있는 모든 탄압수단을 동원해 왔다. 회사는 8개월이 넘은 현재까지도 노조를 탈퇴하면 현장에 복귀시켜주겠다고 하면서 노조원을 상대로 한 직장폐쇄를 유지하고 있다.

    올 1월 경기 안산의 인지컨트롤스는 노조 쪽이 쟁의행위를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직장폐쇄를 단행해 물의를 빚었었다. 당시 회사는 노동자들이 금속노조에 가입하자 한 해 전에 만든 ‘유령노조’를 앞세워 교섭을 거부했고, 금속노조 조합원들만을 대상으로 각종 불이익을 주는 등 노조 무력화에 혈안이 돼 있었다. 그 뒤 회사는 4개월 동안 직장폐쇄를 유지하며 조합원들이 생계부담으로 떨어져 나갈 것을 기대했지만 조합원들의 ‘이탈’이 적자 결국 직장폐쇄를 거뒀다.

    지난 2월 설 연휴 직후 직장폐쇄를 단행한 경주 발레오만도 역시 마찬가지. 당시 발레오만도지회(지회장 정연재)는 회사가 단체협약을 어기고 비생산직 아웃소싱을 강행하려하자, 일시적으로 태업을 벌였다. 낮은 수준에 불과한 쟁의행위를 벌였을 뿐. 하지만 회사는 조합원들만을 대상으로 직장폐쇄를 단행한 뒤 관리직들을 동원해 생산을 이어갔다. 회사는 지회 조합원 과반 수 이상이 현장에 복귀했음에도 직장폐쇄를 유지하다 법원에서 직장폐쇄 효력 정지 결정이 나오고서야 폐쇄를 풀었다. 직장폐쇄 99일 만이었다.

    조합원 생계부담 노조이탈 기대?

    구미 KEC는 지난 6월 30일 새벽 직장폐쇄를 해 현재까지 조합원 출입을 막고 있다. KEC지회(지회장 현정호)는 당시 판매영업조직 분리에 따른 고용불안 문제와 노조전임자 처우 및 노조활동 보장에 관한 요구를 걸고 파업투쟁을 벌이고 있었다. 지회는 회사의 직장폐쇄가 지회를 무력화시키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보고 있다. KEC 사측의 벌이는 조합원에 대한 회유와 탄압 양상은 경주 발레오만도와 판박이라는 게 현지 조합원들의 전언이다.

    이달 18일 직장폐쇄를 단행한 우창정기. 경기 우창정기지회(지회장 최우섭)도 회사의 직장폐쇄가 노조와해를 노린 공격이라고 주장한다. 회사는 “노조가 법에 어긋나는 전임자 임금지급을 요구하며 무리한 쟁의를 하기 때문에 직장폐쇄를 했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지회에 따르면 전임자임금 관련 논의는 실제 노사간 쟁점도 아니었다는 것. 지회는 회사가 외주화와 구조조정을 추진하면서 전임자 임금문제를 핑계 삼아 걸림돌인 노조를 탄압하는 것이 본질이라고 보고 있다.

       
      ▲ KEC지회는 회사의 직장폐쇄가 지회를 무력화시키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보고 있다. KEC 사측의 벌이는 조합원에 대한 회유와 탄압 양상은 경주 발레오만도와 판박이라는 게 현지 조합원들의 전언이다. 7월21일 KEC파업투쟁 승리를 위한 영남권 금속노동자 결의대회를 마친 조합원들이 구미시내를 행진하고 있다. (사진=금속노조)

    이 달 23일과 24일 잇따라 직장폐쇄 조치된 대구 상신브레이크와 부산 진흥철강. 이곳 노동자들은 앞선 사례들처럼 회사가 사전에 준비한 노조파괴 공격일 수 있다는 판단으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노조법 46조는 직장폐쇄 요건으로 노동조합이 쟁의행위를 개시한 이후에만 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이어 직장폐쇄에 앞서 사전에 행정관청 및 노동위원회에 신고하도록 돼 있기도 하다. 특히 회사의 직장폐쇄가 노조의 쟁의행위에 대한 대항 및 방위 수단으로 활용되는 경우에만 정당성을 인정해 줄 수 있다는 대법원 판례도 있다. 공격적 직장폐쇄는 불법인 셈.

    지난 5월 경주 발레오만도의 직장폐쇄 효력 정지를 결정한 대구지방법원 경주지원은 이 같은 대법판례를 근거로 “직장폐쇄가 대항적 성격을 상실하고 근로자에게 심한 타격을 주어 이들을 굴복시키고 나아가 근로자의 단결권자체를 위협하는 성격으로 전환한 경우 정당성을 상실한다”고 봤다. 직장폐쇄 단행 뒤 3개월이 걸려서 나온 결정인데 그 동안 노조는 회사 탄압에 사실상 와해됐다. 법의 결정 순서보다 회사의 공격 속도가 더 빨랐던 것.

    법 결정 순서보다 회사 공격속도 더 빨라

    이같은 공격적 직장폐쇄 자체가 불법이기도 하지만, 직장폐쇄 과정에서도 회사는 많은 위법행위를 자행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용역깡패를 들여와 조합원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도록 하는 것. KEC에 투입된 용역들은 여성노동자에 대한 성폭력까지 자행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직장폐쇄 기간이라도 노동조합 사무실이나 기숙사 출입은 허용해야 하지만, 이 역시 대부분 지켜지지 않고 있다. 심지어 일부 사용자들은 생산을 유지하기 위해 파업기간임에도 신규 채용을 하고 있다. 이는 노조법 43조 위반으로 사용자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천 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게 된다. 물론 법의 결정까지 수개월 이상이 걸리니 그 동안까지의 승산은 노조의 ‘버티기’ 실력에 오로지 달려있는 셈.

    사용자들이 이 같은 불법행위에 대한 부담과 생산차질로 인한 손실 및 용역투입 비용까지 감수하면서 공격적 직장폐쇄를 단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문상환 노조 조직국장은 “노동조합을 무력화시키겠다는 강한 목적의식 말고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고 강조한다.

    금속노조 소속 사업장 중 올해 들어 직장폐쇄를 단행한 곳은 무려 7곳에 이른다. 26일 현재까지 직장폐쇄를 유지하고 있는 곳은 작년 말 직장폐쇄에 돌입한 진방스틸을 포함해 5곳이다. 다른 해와 달리 올 들어 유독 직장폐쇄가 늘고 있는 셈. 문 국장은 “특히 이명박 정부 들어 노동부의 반노동적 행정이 한층 노골화된 점이 사용자 입장에서 노조 깨기의 좋은 기회로 삼고 있는 것”이라고 그 배경을 설명한다.

    현재 금속노조 소속 50 여 곳이 임단협을 타결하지 못한 상태다. 이들 중 대다수는 심각한 노사 갈등을 겪고 있다. 직장폐쇄 사태는 더 늘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금까지 노사관계가 원만했던 곳도 비껴갈 수 없기도 하다.

    실제 발레오만도와 KEC 직장폐쇄는 노동조합 설립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정연재 발레오만도지회장은 “직장폐쇄에 대한 노조의 대응 매뉴얼이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고 주문한다. 이같은 제안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직장폐쇄에 시달려오고 있는 이들이 입을 모으고 있는 주장이다. 

    * 이 글은 금속노조 기관지 <금속노동자>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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