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기위, 심상정 위해 당을 버렸다"
        2010년 08월 26일 09:2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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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23일) 저녁 진보신당 중앙당기위는 회의를 열어 경기도지사 후보직을 사퇴하고 국민참여당 유시민 후보를 지지한 심상정 당원에게는 경고를, 충남도시자 후보직을 사퇴한 이용길 당원에게는 자격정지 4개월의 징계를 결정했다.

    이 결정이 보도되자마자 진보신당 홈페이지는 당원들의 항의글로 도배되었다. 선거에서 후보가 다른 정당 후보를 지지하고 사퇴했는데도 ‘경고’라는 면죄부를 준 것도, 선거에서 다른 정당의 후보와 무원칙한 연합에 반대하며 후보를 사퇴한 이용길 당원과의 형평성도 어느 것 하나 이해가 되지 않는 결정이었기 때문이다.

    심상정 개인을 위해 당을 버린 결정

    당기위의 이번 결정을 통해 심상정 당원은 당직과 공직후보자 선출에 출마할 수 있는 권리를 유지하게 되었다. 사실상 면죄부를 받게 된 것이다. 이렇게 심상정 당원에게는 면죄부가 주어졌지만 이로 인해 진보신당이 받을 타격은 무척 크다.

    이번 당기위 결정에 앞서 진보신당은 7차 전국위원회를 열고 6.3지방선거와 관련하여 아래와 같이 결정했다.

    “막팍 출구전략의 일환으로 검토해 볼 수 있는 전술이었으나 부산과 경기의 광역단체장 후보가 민주당 등과의 야권 단일화를 이유로 사퇴한 것은 정치적으로 적절하지 못했다. 이는 당조직의 판단과 달리 개인의 판단을 우선해 단일화와 관련 후보직을 사퇴한 것으로 조직질서를 위배한 것이다. 또한 충남의 광역자치단체장 후보는 대표단의 일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후보직을 사퇴한 것 역시 큰 문제였다.”

    중요한 결정임으로 길더라도 그대로 인용하였다. 결정을 보면 심상정 당원은 당조직의 판단을 어기고 후보직을 사퇴했으며, 그런 행위가 조직질서를 위배한 것으로 분명하게 적시되어 있다. 그런데 불과 이틀 전에 전국위원회에서 이런 결정이 있었는데도 당기위는 ‘경고’라는 솜방망이 징계를 결정했다.

    전후의 맥락을 보면 당기위의 징계 결정은 다음과 같이 해석된다. ‘진보신당의 후보로 출마한 후보가 선거에서 당조직의 방침과는 다르게 개인의 판단을 우선해 사퇴하고 다른 당의 후보를 지지해도 경고 이상의 징계를 내릴 수 없으며, 해당 후보자는 계속 당 안팎에서 아무런 제재 없이 활동할 수 있다.’ 이런 결정인 것이다. 나는 이 결정이 진보신당의 정당으로서의 존립기반 자체를 허문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2012년 선거, 민주당을 지지하든 한라나당을 지지하든 괜찮다?

    정당은 정치적 이념을 같이 하는 사람들의 결사체이다. 따라서 정당은 무엇보다 통일된 정치적 실천을 통해 주권자의 지지를 규합하는 것을 핵심적인 목표로 한다. 그리고 그 ‘정치적 실천’의 핵심 중 하나가 바로 선거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특히 선거는 정당에게는 일상적 활동의 성과를 단기간에 쏟아 붓는, 흔히 전쟁에 비유될 정도로 모든 당력이 투입되는 정치활동이다. 따라서 정당의 통일성과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선거 시기에 일관된 방침과 대오를 유지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진보신당의 당기위는 이런 선거 시기에 후보가 개인적인 판단으로 당조직의 판단을 거스르고 다른 당의 후보를 지지하는 등 당의 선거전술 전반에 혼란을 가져와도 후보가 ‘정치적 견해’라고 하면 징계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막말로 2012년에 진보신당 후보가 중앙선대본의 반대에도 한나라당 후보를 지지하며 사퇴해도 ‘정치적 소신’이라고 하면 징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후보들이 당의 통일성과 정체성을 마구 훼손해도 ‘정치적 소신’이라고 하면 징계할 수 없는데, 하물며 당원들이 한나라당 후보 지지 활동를 공개적으로 한들 이를 징계할 근거는 없을 것이다. 나아가 후보 당원이 다른 당을 후보를 지지하는 그런 당이 굳이 독자적인 정당으로서 존재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그리고 국민들은 당연히 존재이유가 없는 당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이번 결정을 통해 진보신당은 선거에서 – 일상사업에서는 물론 – 일치된 정치적 실천을 할 수 있는 기본적인 근거를 상실하게 되었다. 그리고 일치된 정치적 실천을 보장할 수 없는 당은 더 이상 독자적인 정당이라 할 수 없다. 그 결과 진보신당은 충분히 결집시킬 수 없는 지지도 결집시키지 못한 채 약화될 기로에 처하게 되었다.

    당기위의 단순 오판 아니라면 더 큰 문제

    문제는 당기위가 왜 이런 결정을 내렸는가 하는 점이다. 대체 당으로 최소한의 규율을 허물고서라도 보존해야 할 무엇이 있었을까? 경기도당 당기위에서 내려진 자격정지 1년이라는 징계수준을 반토막도 아니고 그야말로 파격적으로 ‘경고’로 끌어내릴 이유가 무엇인가? 이 부분에 대해서는 동시에 이의신청을 한 이용길 당원에 대한 징계와 비교해 보면 짐작이 가능하다.

    심상정 당원은 후보를 사퇴했을 뿐만 아니라 국민참여당 후보를 지지했다. 이용길 당원은 후보만 사퇴했다. 두 당원이 후보를 사퇴한 이유는 정반대였는데, 심상정 당원은 진보신당이 국참당 등과 적극적인 선거연합을 해야 한다는 이유로, 이용길 당원은 민주당, 국참당 등과 무원칙한 선거연합을 하면 안 된다는 이유로 사퇴했다.

    이 두가지 반대되는 주장은 당기위의 주장대로라면 ‘정치적 소신’ 이므로, 이를 제외하고 본다면 당연히 심상정 당원의 징계수준이 높아야 했다. 그런데 결과는 정반대로 심상정 당원은 경고, 이용길 당원은 4개월 자격정지로 나왔다. 이런 황당한 결정의 결과 심상정 당원은 10월 17일 당 대표단 선거에 출마할 수 있게 되었고, 이용길 당원은 출마할 수 없게 되었다. 이것이 중요하다.

    이 부분에서 나는 당기위가 이번 심상정 당원이 10월 17일에 있을 당대표 선거에 출마하는데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무리하게 징계수위를 조정한 결과가 이런 황당한 징계결정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물론 당기위는 강하게 이를 부인하겠지만 당기위의 ‘정치적’ 결정의 결과는 심상정 출마가능, 이용길 피선거권 박탈이다. 명확한 근거 없이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을 하면서 이런 결과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만약 당기위가 심상정 당원의 정치적 생존을 위해 당으로서 존립을 허무는 결정을 했다면 이것은 진짜 큰 문제다. 당기위가 단지 오판을 했다면 바로잡으면 된다. 그러나 당기위라는 당의 최고 사법기구가 당내 일부세력에 의해 장악되어 한 개인을 위해 당을 농단하고 있다면 이것은 심각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민주노동당 시절 지긋지긋하게 겪었던 다수파에 의한 민주주의 파괴와 후안무치, 이에 따른 당력의 낭비를 다시 겪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당대회에서라도 바로잡아야

    이제 결정은 내려졌다. 중앙 당기위가 당내 징계와 관련한 최고 결정기관이므로 이 문제를 당기위에서 논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유일하게 당기위를 제어할 수 있는 기관은 전국위원회와 당대회이다. 그러나 9월 5일 진보신당 당대회를 앞두고 있는 마당에 전국위원회를 다시 소집하는 것도 무리가 따를 것이다. 결국, 이 문제를 재론하려면 당대회에 안건을 상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더군다나 이번 당기위 결정은 진보신당의 당으로서 최소한의 존립기반을 허문 결정이므로 이를 한시라도 방치할 수는 없는 일이다. 당의 최소한의 기강을 허문 명백한 행위에 대해 당대회까지 가야 하는 상황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그래도 당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뜻있는 대의원과 당원들이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사족하나.
    당기위 결정 2일 전에 전국위원회는 심상정 당원 등의 후보 사퇴에 대해 정치적으로 적절치 못했으며 조직질서를 위배했다고 결정했다. 당기위가 내릴 수 없다던 정치적 판단이 2일 전에 전국위에 의해 명확히 내려진 것이다. 그러나 당기위는 전국위의 이런 결정도 애써 무시하며 황당한 징계결정을 내렸다. 마지막으로 김상하 당기위원장을 비롯한 당기위원들에게 묻고 싶다. 진정 정치적 판단을 한 것은 당기위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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