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인작가는 출판사의 '밥'
    By 나난
        2010년 08월 24일 11:4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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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게는 몇십 권에서부터 많게는 수백만 권씩 팔리는 책.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저자만을 기억할 뿐, 그 책에 들어간 수많은 노동은 알지 못한다. ‘출판.’ 그 중에서도 외주출판 노동자들의 근로실태는 열악하기 그지없다. 편집자, 디자이너, 번역가, 대필가, 글작가, 그림작가 등.

    이에 <출판노동자협의회>는 ‘외주출판, 노동을 말하다’를 통해 책 뒤에 감춰진 외주출판 노동자들의 노동에 주목하고, 그들 스스로 자신의 노동을 말하고자 한다. 노동시간과 노동강도, 통제방식 등 불연속적 노동환경에 처한 그들이 스스로 ‘권리찾기’에 나선 것이다.

    <출판노동자협의회는>는 이번 기획을 바탕으로 외주출판 노동자와 유사한 형태로 일하는 가내노동자의 노동권 확보를 위한 기틀을 마련하고, 향후 법적․제도적 권리보장을 위한 입법안을 확정한다는 계획이다.

    이번 연재는 상대적 약자일 수밖에 없는 외주출판 노동자들의 처지를 고려해 모든 글은 익명으로 처리될 예정이다. 이번 연재는 <출판노동자협의회>가 기획했으며 <레디앙>이 전한다. <편집자주>

    책 내고 싶으면 말 들어라

    아마도 내가 경험한 일들은 상대적으로 관계의 보호망이 약하고, 연대 집단이 없는 신인 글작가에게는 빈번하게 일어나는 사례가 아닐까 한다. 글 쓰는 일을 천직으로 선택해 어렵게 생계를 꾸려나가는 이들에게는 소위 ‘천형’이라는 창작의 고통보다 창작 그 이후의 고통이 삶과 노동의 무게를 한층 더하지 않나 싶다.

       
      

    나는 현재 전업 글작가로 살아가고 있다. 작년까지 몇몇 출판사의 편집자로 일하다가 글 쓰는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이후, 한 회사의 직원이 아닌 프리랜서 글작가의 입장에서 출판계의 좋지 않은 관행들을 경험하였다. 이에 나의 경험담을 풀어보고자 한다.

    신인작가는 출판사 대표들에게 요리하기 쉬운 먹잇감이다. 검증된 이력이 없기 때문에 원고료도 인세 아닌 매절 지불로 간단히 끝낼 수 있고, 매절도 책 한 권에 150~200만 원 선에서 가볍게 지불하면 되고, 그나마 지불도 출판계 사정이 어렵다는 핑계로 짧게는 한두 달에서 길게는 일 년까지 무기한 연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로 독하게 원고료 독촉을 하지 않으면 책 한 권을 쓰고도 빈털터리 신세가 되기 십상이다.

    얼마 전 내가 경험한 C기획사의 사례는 좀 더 지독했다. C기획사는 G출판사와 출판제작대행 계약을 맺은 업체로, 작가를 섭외하여 원고를 의뢰, 편집까지 진행하는 회사였다. 원고 의뢰가 왔기에 기획안과 샘플 원고를 작성해 OK를 받았다.

    계약 없는 일 진행으로 번번이 피를 본 터라 이후부터는 계약서를 써야 원고를 쓰든, 회의를 하든, 본격적인 일을 하겠다고 하였다.

    실종된 신인작가의 권리 

    "큰 출판사와의 일이니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는 편집주간의 말에 따라 헐값에 매절 계약서를 썼다. 그리고 기획사가 아닌 출판사가 원고료를 지불하는 터라 그쪽 관행에 따라 계약금 없이 원고료를 한꺼번에 주기로 했다. 계약서는 G출판사의 직인을 받은 후 바로 다시 보낸다는 약속을 받았다.

    결과만 요약하자면 계약서는 여러 차례 문의에도 불구하고 한 달 째 돌아오지 않았고, 초고를 완료한 후 기획사 편집자에게 보냈지만 계약은 일방적으로 파기됐다. 계약금도 받지 않았고, 계약서도 공중에서 사라졌으니, 애초의 계약 내용도 모두 구두 약속이나 다름없게 된 것이다.

    C 기획사 편집자는 ‘유방암 치료’로 투병 중이라며 얼굴을 보지 못했고, 일을 의뢰한 C기획사 편집주간은 10만 원의 위로금을 주겠다며 적당한 선에서 해결하자고 말했고, G출판사는 본사에서는 일련의 일에 대해 책임이 없다며 난색을 표명했다.

    위의 사례 외에도 출판사 대표나 편집자를 만나 계약서 얘기를 꺼내면 으레 “계약서는 기획/샘플 단계가 충분히 끝나면 쓰자!” 혹은 “친분도 있는데 굳이 계약서를 써야 하냐?”고 답하는 경우가 많다. 상황이 나빠지면 슬그머니 몸을 빼겠다는 나쁜 신호다.

    이런 식의 반응을 보이는 경우 계약서 작성을 밀어붙이면 십중팔구 일 의뢰가 깨지고 관계까지 나빠지기 마련이다. 애초부터 신인작가의 권리를 지켜줄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당신이 우리 출판사와 일을 하고 싶으면 군말 없이 따르라는 논리가 지배적이다.

    L출판사와 일을 할 때도 비슷한 경우가 있었다. 사적인 친분이 있는 상태에서 기획 아이디어 논의를 몇 주에 걸쳐 진행하더니 어느 날 갑자기 약속한 인세를 줄여야 한다는 통보가 오고, 며칠 후에는 아예 ‘매절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일방적인 의사 전달을 해왔다. 끝까지 구두로 약속한 인세 조건을 지키라 했더니 이번에는 다른 문제를 이유로 들어 2권이나 잡혀 있던 출판 계획을 아예 취소해 버렸다.

    글 쓰는 일도 명백한 노동이다

    많은 출판인들이 ‘글 쓰는 일’을 노동이 아닌 단순 창작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위에서 말한 C기획사의 편집주간은 “집필은 발명과 유사한 일이고, 발명이 실패했을 때 발명가에게 아무 보상이 없는 것처럼 원고가 반려될 때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러나 ‘원고’는 명백한 노동의 결과물이다. ‘작가’라는 인적 용역은 최소한의 생계를 영위해야 노동을 할 수 있다. 우리들도 모든 노동자와 마찬가지로 생활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출판계는 작가의 노동 조건에 대해 뚜렷이 인식해야 한다. 그럴수록 양질의 노동력이 노동시장에 유입되고, 양질의 작업 결과물을 받아볼 수 있다.

    늘 돈 얘기는 치사스럽다. 편집자에게 원고 방향이 아닌 계약서, 계약금, 원고료 달라고 독촉하는 일은 더 치사스럽다. 하지만 가장 치사스러운 일은 집필을 정당한 노동으로 인정하지 않는 일부 출판인들의 시각이다.

    소설가 김유정은 죽기 전에 닭 한번 원 없이 먹는 일이 평생의 소원이었다고 한다. ‘작가도 먹고 살아야 계속 작가 짓을 한다’는 개념을 부디 절절하게 공감하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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