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체질, 참 중요하긴 한데…"
        2010년 08월 24일 10:1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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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무슨 체질인가요? 가르쳐 주시면 안되나요?” 가끔씩 듣는 질문입니다. 그리 반갑지는 않습니다만. “저는 소양인이라 **이 안맞거든요. ** 들어가면 절대 안됩니다!” 이 정도면 좀 힘들어집니다. 그냥 직접 처방을 하시는게…. “기름기 많은 음식은 피하는 게 좋겠습니다.” “저는 **체질이라 고기를 먹어줘야 한다던데요?” 윽! 이 경우엔 한참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아니면 ‘그러시군요’ 하고 넘어가면서 혼잣말을 합니다. 체질, 참 중요한데. 정말 중요한데. 뭐라 말도 못하고.ㅡㅡ;;

    한국 한의학만의 특징 ‘체질의학’

       
      

    사실 체질의학은 서양의학은 물론 중국 한의학과도 구별되는 한국 한의학의 특징이자 자랑입니다. 중국의 전통의학(TCM)은 병의 증상에 주목합니다. 병증과 치료체계도 공식화되어있어 마치 서양의학같은 느낌을 줍니다. 반면 한국의 한의학은 사람을 중심에 둡니다. 병 자체보다 병을 불러오는 사람의 특징을 먼저 본다는 뜻이지요. 허준의 동의보감이 그렇고 이제마의 사상의학, 그후의 여러 체질의학들이 모두 그렇습니다.

    형맥증치(形脈證治)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의학의 치료원칙이랄 수 있는데요. 형(形)은 사람의 특징을 말하고, 맥(脈)은 원인, 증(證)은 눈앞의 증상을 말하는 겁니다. 이 세 가지가 순차적으로 중요하며 그에 따라 치료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체질을 따지는 건 한의학의 원칙에 충실한 치료법인 거죠. 같은 증상이라도 다른 치료를 한다거나 다른 병증이라도 같은 치료를 하기도 하는 게 체질의 같고 다름 때문인 겁니다.

    그러나 임상에서 이 원칙을 따르기가 그리 쉽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당장 불편한 병증이 먼저 눈에 띄게 마련이죠. 특히 요즘같은 즉물적인 감성의 시대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의사도 환자도 모두 조급해지고 근시안적으로 되어가고 있거든요. 열이 오르면 열 내리는 약 먹이고, 뭐가 생기면 잘라내고, 고장나면 바꿔넣으면 된다고들 생각하잖아요? 참 쉽지 않습니다. 사암침법으로 유명한 금오 김홍경 선생님은 ‘병을 보지 않고 사람을 보는데 10년이 걸렸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는 체질의학이라는 공식이 있어 ‘누구나 쉽게’ 체질을 가늠해볼 수 있으니 참 재미있습니다. 동무 이제마 선생님의 ‘사상의학’이 그 시작이죠. 정말 대단한 의학체계입니다. 마르크스가 경제현상을 과학적으로 분석한 최초의 인물이었다면, 이제마는 사람의 체질을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그 치료법까지 정리한 최초의 인물입니다. 덕분에 체질의학을 깊이 공부하지 않은 저같은 사람도 태음인이니 소양인이니 하는 분류를 유익하게 활용하고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 이목구비의 생김, 체형 등에 따라 약을 달리 쓰도록 한 ‘형상의학’도 대단한 통찰력의 결과입니다. 가령 개그맨 서**같이 코가 흘러내린 사람은 장이 찹니다, 그러므로 우선적으로 장을 따뜻하게 하는 약을 써야 합니다. 개그우먼 신**같이 코가 들린 사람은 방광이 샙니다. 어떤 증상으로 와도 이것을 고려해야 합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외형을 보고 그 사람의 체질적인 특징을 짚어내다니요. 공부를 하면서도 감탄할 때가 많습니다.

    체질의학의 조건과 한계

    그밖에도 ‘팔체질’이라는 체계가 있고, 5행 체질, 16상 체질, 32상 체질 등 많은 체질 공식이 만들어졌습니다. 가히 체질의학의 천국이라고 할 정도죠. 그런데 공식이라는 건 항상 조건이 따르잖아요. 가령 수학의 공식도 자연수, 실수 등의 조건을 만족할 때 성립하는 것이거든요. 체질공식도 그런 조건과 환경이 함께 고려되어야 임상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가령 콩 심은데 콩 나는 게 만고의 진리지만 모래밭에 심은 콩과 진흙밭에 심은 콩은 상태가 전혀 다를 겁니다. 그늘에 심은 콩과 볕 잘드는 곳에 심은 콩이 또 다르겠죠. 이런 땐 콩이란 품종에 근거해 약이나 비료를 줘야합니까? 아니면 환경이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합니까?

    글고 체질 분류 자체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왜냐면 이들 이론들에는 분명 관념적인 부분이 있고 실재적인 부분이 있거든요. 관념과 실재를 동일시하면 오류가 발생하기 마련인데 많은 경우 이걸 간과하고 있습니다. 사상의학은 유교적 세계관이라는 관념체계가 밑바탕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런 관념이 현실에 적용되기 위해선 상황에 따라 틀 자체에도 수정을 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정교하게 끼워맞춰도 오류는 필연적인 것입니다. 생각해보시죠. 전문가들 중에서도 여기선 태음인이라 하고, 저기선 소양인이라 하는 경우가 한두번이던가요?

    이런 사정들이 있는데 일반인들이 체질 분류에 너무 집착하는 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사람의 특징을 살핀다는 게 꼭 체질 공식에 끼워맞추는 일이 되어서는 놓치는 게 많습니다. 체질이론은 훌륭한 의학체계라 참고할 만하지만 절대시하면 종교가 됩니다. 사람은 유기체라 늘 변하거든요.

    어떻게 보면 변화 그 자체가 존재의 본질인 겁니다. 복잡한 기준보다 상식적으로 관찰하고 분별해내는 눈을 하나씩 열어가는 게 더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가령 뚱뚱한 사람은 기름기를 피하고 마른 사람은 기름기를 좀 먹어주는 게 상식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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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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