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조는 내 인생의 '거의' 전부였다"
        2010년 08월 23일 09:1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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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 1월 22일 전노협 출범식장에 내가 서 있었다. 지금 나는 평범한 주부로 살고 있다. 20년 전, 그날의 기억이 마치 꿈속의 일처럼 흐릿하지만, 그 벅찬 가슴은 여전하다.

    흐린 기억, 벅찬 가슴

    당시 나는 서울대병원노동조합 간부였다. 그날 농성장을 잠시 떠나 전노협 출범식에 참석했다. 부랴부랴 출범식을 끝내기는 했지만, 최루탄 연기에 눈물 콧물을 흘려야했다. 이날은 우리 노동자들이 뭉치는 것에 대항해 3당이 합당한 날이기도 했다.(민정당, 통일민주당, 공화당이 민자당으로)

    87년 노동자대투쟁 때 우리도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당시 우리 급여는 여덟 개 종합병원 중 최하위였다. 무엇보다 직급체계가 엉망이었고 따라서 노동자들의 불만도 많았다. 노동조합을 만들고 파업할 때 간호사와 간호조무사가 함께 어깨를 걸자, 이것이 큰 이슈가 될 정도로 차별이 심했다. 노동조합을 통해 직종간의 차이를 우리 스스로 없앨 수 있게 되었다.

    그 시절 나의 사고는 그저 무시당하고 공정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노동자의 억울한 불평등을 바꿔내야 한다는 단순한 생각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해 내 시간을 내주면 되는 것으로 판단했다. 시간 나는 대로 노조 활동에 전념했다. 나를 포함해 대부분의 간부들이 미혼이라 이런 활동이 가능하기도 했지만 아이가 있는 경우에도 그 핑계로 일을 소홀히 하지는 않았다.

    우리에게 노조 생활은 인생의 전부이다시피 했다. 근무 시간 때문에 각종 모임은 새벽에 끝나는 적이 많았지만 피곤한 줄 몰랐다. 모임 후 술 마시며 이야기하는 뒤풀이는 하루의 꽃이었다. 노조 소식지 [신새벽]은 그야말로 새벽까지 만든 것이었다. 수작업으로 매일 저녁 때 남아서 신문을 오려 붙이고 글을 썼다. 대의원 봉투교육도 했다. 함께 봤으면 하는 논평을 오려붙여 대의원들에게 주는 것이다. 일종의 교육 자료였다.

       
      ▲ 노조 소식지 [신새벽]

    고맙다 전노협

    그때는 노래 공연도 참 많았다. 연세대 노천극장에서 거의 주말마다 뭔가를 했다. 노동자들은 공연을 관람하기도 했고, 무대에 서기도 했다. 청구성심병원노조, 지하철노조에서 파업을 하면 노래패가 달려가 공연을 했다. 우리가 싸울 때 그들이 달려왔듯이. 그게 연대였다. 우리는 어느새 ‘빨갱이’로 찍혀있었다.

    그렇게 열심히 활동할 수 있었던 힘은 어디서 나왔을까. 나의 의식이 투철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시대가 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밀어줬다. 그리고 작은 힘들이 모이고 모여서 전노협을 결성하고 이끌어 갔다고 본다. 삶의 모든 것을 내걸고 조직의 주축이 되어 이끌어간 간부들의 헌신과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쉽게 잊어서는 안 되는 숭고한 정신이다.

    20년이 흘렀고 예전과 달리 시대가 받쳐주지 않는 상황이 되었다. 그래도 나는 이 땅에 정의를 꿈꾸는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다. 그들이 제각각 흩어져 있지 않고 하나로 있었으면 좋겠다. 한때 나의 삶을 순수하게 하고 열정적으로 살게 했던 전노협에 고마움을 전하며 기억의 문을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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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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