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멸부른 '한식 세계화 프로젝트' 동영상
        2010년 08월 20일 08:2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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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하루 종일 학회에서 다른 학자들의 논문 발표를 듣고 있었습니다. 핀란드, 헬싱키에서 개최되는 북구 일한학회인데, 생각보다 활기차고 재미있었습니다. 특히 오늘은 한 소장파 학자가 한국에서의 최근 ‘한식 세계화 프로젝트’에 대해 분석했는데, 아주 압권이었습니다.

    연성 권력 획득에 재미 붙인 대통령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이미 미국산 무기의 세계 최대의 구매자, 세계에서 중국, 인도 다음의 제3위 무기 수입자라는 명예스러운 위치를 얻으시고, 조선의 군대를 파밀 고원 밑으로까지 파견하시어 천자의 현대판 ‘서역 평정'(?)에 도움의 손길을 보내주시는 등등 무위를 만방에 떨치시는 우리 나라님께서 최근에 문무를 겸하시려는 높으신 뜻에서 ‘연성 권력’ 획득에 큰 재미를 붙이면서 사십니다.

    유사들에게 엄명을 내려 천하 제후, 사대부들에게 조선의 명성을 높이려는 방안을 연구하게끔 하시어, 결국 태권도부터 한식까지 ‘전세계를 장악할 우리 문화’의 몇 가지 요소를 뽑은 것입니다. 미국산 쇠고기에 대해서까지도 위험에 대해 눈을 감으시고 관대하게 봐주시지만, 아무래도 조선의 식사상에 애착이 크신 모양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발표에서 본방의 왕궁을 요람으로 하는 이 ‘한식 세계화 프로젝트’를 대표하는 홍보동영상을 보여주면서 금상(今上)의 성의(聖意)를 자세히 설명했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감흥이 깊어져 끝에 가서 아예 즐거움(?)의 비명을 지를 황홀한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성은(聖恩)이 망극하옵니다, 라고 되풀이하면서요…

    ‘어륀지’ 발음 테스트에 충분히 통과될 완벽한 내지인의 발음으로 만들어진 이 동영상은, 먼저 조선 음식에 대한 예찬을 올렸습니다. 5천년의 전통, 모든 영양 요소의 화합, 건강에 최적, 웰빙 음식의 전형…

    화면에서 보여주는 우동이나 떡볶기 등은 5천년 전이라기보다는 19세기나 20세기 초에 조선인의 상에 오르게 됐다는 것은 더 정확한 이야기가 되겠지만, 세계적으로 일본의 초밥과 싸우면서 이기겠다는 전투열에 불타시는 분에게는 그런 시시콜콜한 부분까지 관심 두실 여유는 없으실 걸요.

    오바마 천자님의 근영과 불고기

    그다음, 맨 중간 시점에 버럭 오바마 천자님의 근영(近影)이 나투시었습니다. 천자님께서 불고기를 좋아한다는 걸 천하만방에 선언하셨는데, 그걸 동영상을 만드신 분들은 핵심적 요소로 삼은 셈이었습니다. 글쎄, 천자의 수라상에 청구(靑丘)의 근역(槿域)에서 바쳐진 토산물이 오른다는 걸 갖고 자랑거리 삼자면 뭐, 그 요즘 양놈들의 ‘세계화’를 할 것도 없죠.

    신라 때부터 조선말기까지 이미 그래왔으니까요. 단, 그 때의 천자는 동쪽에 아닌 서쪽에 있었다는 건 유일한 차이점이었죠. 그리고 동영상의 맨끝에 금상(今上)과 그 충신현상(忠臣賢相)들의 위대한 결의가 만방에 포고됐습니다.

    10년간 세계 각국에서 엘리트급 한식당 100개 신설! 한식을 중식, 일식, 프랑스식, 이태리식과 같은 반열에 올려 세계의 5대 요리 문화로 삼게 할 것! 참, 전세계의 엘리트들의 건강한 식습관까지 걱정해주시고 그들에게 떡볶기를 하사해주실 금상(今上)의 어진 보살핌을 생각하면 할수록 눈물겨워집니다.

    역시 동쪽 동방(仁邦)의 명문가(名門家)다우신 혜안이셔요. 그 촌스러운 되놈이나 도이(島夷. 섬나라 오랑캐)들의 먹이야 만국의 무산자들이 대충 쳐먹어버리면 그만이지만, 천자의 번국 중에서 늘 상위에 있었던 본방의 신선로나 불고기는 꼭 위에서 천자님께, 아래에서는 오로지 문무의 경(卿), 공(公)님들께 우선적으로 올려드려야 한다는 것은 어의(御意)의 본의.

    초밥이나 춘권을 길거리에서 아무렇게나 촌스럽게 팔아도 상관없지만, 불고기를 ‘세계화’하자면 엘리트 식당부터 각지에서 잘 세워서 각국의 노심자(勞心者)들에게 보급해야 한다는 국위선양의 위대한 결의이십니다.

    "떡볶기 먹고 싶어요"

    불고기를 드시면서 아프간이나 이란을 ‘볶고 조지는’ 일이나 성과있게 잘 토론하시게요. 그리고 엘리트 불고기에 틀림없이 반해버릴 천자와 그 장상(將相)들이 상명하달(上命下達)하기만 하면 한식이 당장에 ‘세계 5대 요리 중의 하나’로 엄숙하게 선포되어 천하의 만백성이 이에 모두 기쁘면서 따를 줄로 동영상의 제작자들이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임금은 마음은 바로 백성의 마음, 바람이 불면 풀이 눕는다… 그런 사고방식인가요? 아니면, 아무런 사고방식도 없이 그저 금상(今上)의 국정 철학을 너무나 잘 내면화한 결과인가요?

    뭐, 이 사람들이 백성에게서부터 거둔 혈세를 미국산 무기 사재기에 쓰든, 4대강 죽이기에 쓰든 엘리트 불고기를 세계화에 쓰든 큰 차이가 있나 싶어요. 어차피 어떤 방식으로든 낭비를 할터이니까요. 굳이 그렇게 이야기하자면 엘리트 한식 식당을 각국에서 세우는 데에 보조금을 준다면, 미국산 무기 사재기보다 훨씬 더 ‘착한’ 허비의 방법이겠지요.

    아이고, 이 못난 몸도 – 솔직히 이야기하면 – 오슬로에 한식당이 전혀 없는 이유로 아주 많은 고생을 늘 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떡볶기 먹고 싶어요!" 라고 외치고 싶기도 하고요. 단, 엘리트 식당이 세워진다면, 제가 거기로 안 갈께요. 월급쟁이로서 할 짓이 아니기도 하고, 그냥 원칙상 그렇기도 해서요…

    그런데 좌우간, 이 사람들이 남의 경멸만 초래할 이런 류의 동영상만 만들지 말고 정말로 한식을 널리 보급하고 싶다면, 한 가지 배워야 합니다. 한식이라는 게 대부분 ‘엘리트 음식’은 아니란 것에요. 대부분은 단순히 배를 채워야 하는 가난뱅이들의 요기감이죠.

    한식은 ‘엘리트 음식’이 아니다

    그래서 그렇게 맵기도 해요. 맛없는 음식을 먹어야 하는 가난뱅이는, 매운 걸로 그 무미함을 메꾸는 식입니다. 한국 음식이 그렇게 매워진 것은, 사실 다수의 가난뱅이들에게 대량급식을 하게 된, 그리고 동시에 공업적 고추가루 생산이 가능해진 일제시대이죠.

    조선시대 왕실이나 사대부 음식은 별로 매울 리는 없었죠. 그래서 저 같은 무산계급의 지식분자들에게는 한식이 좋은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이죠. 웰빙이고 뭐고 잘 몰라서 건강을 상하게 하면서 맵고 짠 걸 선호할 수밖에 없는 공순이, 공돌이들의 음식이기 때문이죠.

    지금까지 서구나 러시아에서 성공한 한국 음식 – 예컨대 라면 등은 – 대체로 바로 한국 가난뱅이들의 전형적 요깃감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계속 그 성공의 여세를 몰아 한식을 초밥과 같은 궤도에 올리자면, ‘김밥천국’과 같은 류의 집들을 외국에 세우는 데에 도움주는 게 더 유의미할 것 같아요.

    조금 덜 맵게 한다면, 김밥과 라볶기로 런치를 때우는, 오슬로 중심부 공사장의 폴란드 노무자들을 제가 충분히 상상할 수 있습니다. 웰빙이라고 하긴 뭐하지만, 맥도널드보다 백배 낫죠. 그런데 우리 나라님은 오슬로 공사장 노무자의 입맛에 관심이 없는 것 같고, ‘엘리트’라는 말을 아주 좋아하십니다.

    외국 ‘엘리트’들이 현대자동차를 몰고 다니는 일도, 농심 라면이나 초코파이를 사먹는 일도 별로 없다는 사실을, 천자의 황궁을 향한 열정 속에서 이미 망각하신 게 아닌지, 아주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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