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드웨건 코리아, 올레!
    2010년 08월 17일 03:0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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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웨건 효과(band wagon effect)’라는 말이 있다. 밴드웨건이란 본래 행렬의 맨 앞에서 분위기를 띄우거나 음악을 연주하는 악대차(樂隊車)를 말하는데, 요새는 유행에 따라 상품을 구입하는 소비현상을 일컫는 경제 용어로 쓰인다. 서부개척시대에 밴드웨건이 흥이 나는 음악을 연주하면서 등장하면 어김없이 사람들이 모여들었는데, 이를 빗대 충동구매를 하는 모방심리를 설명하는 의미로 활용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 이 일반인들의 편승심리는 기업들이 의도적으로 밴드웨건을 끌고 다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를 세련된 용어로는 PR, 마케팅 기법으로 포장하지만 터놓고 말하면 일종의 선전․선동의 방법이다. 실제로 상당수의 경영학 서적들은 밴드웨건 효과를 만들라는 친절한 조언을 건넨다.

기분이 나쁘긴 해도 기업경영의 기법까지 왈가왈부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기업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제품을 파는 것이고, 기업들이 유도했다곤 해도 잘못된 선택을 하는 소비자들에게도 분명 잘못은 있으니까. 하지만 국민을 보호해야 할 정부가 그런 얄팍한 선전․선동을 일삼는다면 어떨까? 국민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정부가 국민이 아닌 특정한 누군가를 위해서 밴드웨건을 끌고 있다면.

지구 온난화… 탄소 줄이자… 그러니까, 녹색성장!

지구온난화 전성시대다. TV만 켰다하면 에너지를 아끼자는 공익광고가 흘러나오고, 다큐멘터리들은 온통 친환경 삶을 살고 있는 외국의 마을들을 집중 조명한다. 정부는 ‘녹색성장’만이 살길이며 하루빨리 삶의 방식을 바꾸라는 이메일을 뿌려대고, 기업들마저 온실가스를 획기적으로 줄인 제품이라 홍보에 열을 올린다. 하지만 누구도 시민들이 실제로 온실가스를 얼마나 배출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오직 당신이 쓰고 있는 에너지 때문에 지구온난화가 일어난다고만 강변한다, 죄의식을 만든다.

   
  ▲ 2008년 부문별 최종에너지 소비현황

하지만 과연 그럴까? 2008년 우리나라는 최종에너지 기준으로 산업이 58.31%, 가정․상업이 19.84%, 수송이 19.6%, 공공․기타 부문이 2.25%를 소비했다.

경기 안정을 위해 소비 진작을 유도하는 정부의 경제정책 때문인지, 음주가무를 즐기는 시민들의 성향 때문인지 책임이 명확치 않은 상업부문의 최종에너지 소비량을 합친다고 하더라도 시민들이 직접 사용하는 에너지는 20%가 채 되지 않는 것이다.

자가용 증가로 인한 수송부문을 포함시켜도 기업들의 물류․수송을 제외하면 시민들이 직접 에너지 사용은 30% 안팎에 불과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시민들이 억척스러운 에너지절약과 효율화를 통해 20%정도를 절약한다고 해도 우리나라 전체 에너지소비의 6% 정도를 줄일 수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온실가스 배출의 주원인이 일반 시민들에게 있는 것처럼, 정부나 기업 모두가 전기 코드를 뽑고, 자동차 요일제에 참여하고, 에어컨 온도만 줄이면 지구온난화를 막을 수 있다는 듯 대대적인 광고를 쏟아낸다.

그럼 시민들의 에너지 사용량이 그다지 많지 않다면 배출증가율이 높기 때문일까? 그 역시 사실이 아니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2050년까지 1990년 대비 온실가스를 50% 이상 줄여야한다고 입을 모으는 지금, 우리나라는 1990년 대비 100% 이상 증가해 심각한 수준이다. 하지만 가정상업분야의 에너지 소비량이 1990년 대비 2008년까지 64.8% 증가한 반면, 산업분야는 194.4% 순증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어떤 지표를 봐도 우리나라 에너지 수요 급증의 주된 요인은 산업분야인 것이다.

산업 에너지 증가 194%

이는 온실가스 배출량 통계에서 더욱 명확해진다. 2007년 국내 온실가스 배출 총량은 6억2천만tCO2eq.로 이중 광업, 농림어업, 가정·상업, 공공·기타 부분은 모두 합쳐도 11.51%밖에 되지 않는다. 수송분야 역시 17.19%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모두 산업부문에서 배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발표한 지구온난화 대책에서 기업은 여전히 열외다. 오히려 그 밴드웨건에는 기업이 동승하고 있다.

여러 기업들이 지구온난화에 관심을 가지고 공익 광고를 내주지만, 고맙긴 해도 달갑진 않다. 광고 어디에서도 ‘자신들이 훨씬 더 많은 온실가스를 내뿜고 있다, 그래서 죄송하다’는 인식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불리한 전쟁을 시작합시다.(중략) 반드시 이겨야만 하는 전쟁을 시작합시다”란 멘트로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 광고가 있다. 이게 대림건설이라는 건설사의 아파트 광고라는 건 참 언짢은 일이다. 얘기인즉슨 지구온난화가 심각하니 에너지를 아껴야한다, 그렇기 때문에 에너지 사용을 줄일 수 있는 자신들의 아파트를 구매해달라는 얘긴데, 여기서도 시민들은 주거공간에서 에너지를 다량으로 소비하는 주체쯤으로 설정되어 있다.

아파트 건설의 주원료인 시멘트사업이 국내 5대 에너지다소비업종의 하나이고, 온실가스 다배출 업체 20위권 내에 시멘트 업체가 4개나 포함되어 있으며, 그 4개 업체가 가정․상업은 물론 광업․농업․임업․어업, 공공․기타 부문을 모두 합친 것의 절반정도에 이르는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있다는 사실에는 침묵한다. 자신들의 아파트를 구입하면 오히려 온실가스 배출량이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는데도 말이다.

   
  ▲ 2007년 부문별 온실가스 배출량

다른 기업들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온실가스 다배출 업체 중 9위를 차지하고 있는 SK 에너지는 ‘희망에너지’라는 광고를 통해 “땅속의 석유가, 땅속의 우라늄이 모두 사라지기 전에 우리는 생각했다. 이젠 땅위에서 에너지를 찾겠다고”라며 자신들의 노력을 강조했다. 광고 속에서 SK에너지는 오직 배출에 대한 책임은 없는 공급자일 뿐이다.

하지만 자신들이 연간 1천만 톤이 넘는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전체 매출액 중 71%, 영업이익의 65%(2008년 기준)가 온실가스 배출이 높은 석유부문이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어쨌건 소비는 소비자가 하고 있다는 인식 때문일까? 정말로 “생각이 에너지다.”

모든 탓은 소비자 몫?

혹자는 기업의 생산이익은 시민들에게로 돌아가는 것이고, 시민들이 소비를 줄이고 물건을 아껴 쓴다면 기업들이 쓰는 에너지 소비량도 줄어들 게 아니냐는 원론적인 얘기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닐 터다. 하지만, 그렇게 순진한 방법으로 이 상황을 타개하기에는 산업부문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너무 많다.

게다가 기업의 생산량을 줄인다는 것은 경기 위축을 감수하겠다는 말인데, 그럴 바에는 산업부문에 직접 규제를 가하는 게 더욱 효과적이지 않겠는가. 정부나 기업이 시민들에게 에너지절약을 강조하는 것은 비겁한 책임회피에 지나지 않는다. 정작 책임을 져야할 당사자들은 뒤로 빠지고 이제사 시민들에게 ‘노력해주십시오’라고 외치는 것을 절대로 용납해서는 안 된다.

물론 일반 시민 역시 온실가스 배출에 책임이 있고, 아무리 배출량이 적더라도 생활을 친환경적으로 전환하는 건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사회의 시스템을 전환하는 데에 있어 민간 영역 역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 시민들의 노력은 반드시 병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민들에게 일정부문 책임이 있다고 해도, 어쨌건 지금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산업분야에서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는 주체는 기업 아니던가. 그런 사실은 왜 전혀 고려되지 않나. 여전히 주택용 전력요금의 75% 수준에 불과한 산업용 요금은 언제쯤 올릴 것이고, 기업의 온실가스 규제는 대체 언제쯤 하겠다는 것인가.

차제에 한 마디만 덧붙이자. 일부 유수의 시민환경단체들 역시 이런 원인과 결과가 일치하지 않는 왜곡된 상황에 일조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친환경 삶도 좋고, 에너지 절약도 좋다. 하지만 온실가스 배출의 주범인 기업들은 지난하니까 뒤로 밀고, 기업을 지키기 위해 시민을 제물로 바치려는 정부는 간간이 성명서로 언급할 생각이라면 ‘시민’이란 명함은 쓰레기통에 던져버려라. 선인들은 그런 걸 ‘부화뇌동(附和雷同)’이라 불러왔다. 하루빨리 부정의(不正義)의 밴드웨건에서 내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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