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터무니 없는 액수보다 더 놀란 건"
        2010년 08월 17일 02:0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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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게는 몇십 권에서부터 많게는 수백만 권씩 팔리는 책.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저자만을 기억할 뿐, 그 책에 들어간 수많은 노동은 알지 못한다. ‘출판.’ 그 중에서도 외주출판 노동자들의 근로실태는 열악하기 그지없다. 편집자, 디자이너, 번역가, 대필가, 글작가, 그림작가 등.

    이에 <출판노동자협의회>는 [외주출판, 노동을 말하다]를 통해 책 뒤에 감춰진 외주출판 노동자들의 노동에 주목하고, 그들 스스로 자신의 노동을 말하고자 한다. 노동시간과 노동강도, 통제방식 등 불연속적 노동환경에 처한 그들이 스스로 ‘권리찾기’에 나선 것이다.

    <출판노동자협의회는>는 이번 기획을 바탕으로 외주출판 노동자와 유사한 형태로 일하는 가내노동자의 노동권 확보를 위한 기틀을 마련하고, 향후 법적․제도적 권리보장을 위한 입법안을 확정한다는 계획이다.

    이번 연재는 상대적 약자일 수밖에 없는 외주출판 노동자들의 처지를 고려해 모든 글은 익명으로 처리될 예정이다. 이번 연재는 <출판노동자협의회>가 기획했으며 <레디앙>이 전한다. <편집자주>

    한 고양이를 알고 있다. 점박이 털옷을 입은 그는 자유로운 영혼에, 보기 드문 관찰력을 가지고 있다. 그는 자칭 문명세계라 하는 인간세계를 두루 살피고는 유쾌하게 저들의 허위성을 폭로한다. “문명세계라고! 흥, 과연!”

    나쓰메 소세키의 장편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 등장하는 그 이름 없는 고양이 얘기다. 더워 죽겠는데 웬 고양이 타령이냐고 물으신다면, 글쎄요. 잠시 귀 좀 열어주실래요?

    나는 외주 편집자다

    흔히 출판산업을 문화산업이라고 부른다. 책은 단순히 상품이 아니라 문화를 만들어내고 담론을 창출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화산업이라는 이 출판산업에도 어둠이 자리한다. 일한 만큼 대우 받지 못하고, 파트너로 인정받지도 못하는 외주 노동자들의 현실.

    나도 저 점박이 고양이의 당당함을 좇아, 이 출판문화산업의 허위성을 낱낱이 파헤치고 싶으나 그럴 능력도, 그럴 열정도 모자라다. 하여 나는 그냥 외주 편집자로 살아가면서 겪은 출판계의 한 모습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나는 외주 편집자다. 3년 정도 출판사를 다니다, 타고난(혹은 내면화한) 대인기피증을 이기지 못하고 출판사를 나왔다. 기계적인 노동 시스템에 회의를 느낀 것도 회사를 미련 없이 그만둔 이유다. 그리고 지금까지 외주 편집자로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

    울타리가 없는 사람들이 대개 그렇듯 소속 없이 외주로 일하는 편집자도 정당한 대우를 받기란 참 힘들다. 수개월 일하고도 1개월 월급 정도를 받기 일쑤고, 돈을 떼이기도 한다. 물론 계약서를 쓰면 이런 일은 피해갈 수 있지만 문제는 출판사 쪽에서 계약서를 잘 쓰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계약서 작성은 남의 나라 얘기

    일을 시작할 때 계약서를 작성하는 것은 상식 중의 상식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데 외주 편집자 쪽에서 말을 꺼내지 않으면 계약서 작성은 보통 남의 나라 일이다. 특히 나는 금욕주의자도 아니면서 되도록 돈 이야기는 피하려 든다.

    고흐가 동생 테오한테 “화가들은 무슨 생각을 하든, 돈 이야기는 본능적으로 피하려고 한다”고 했듯이 나도 그런 편이어서 내가 먼저 “계약서를 작성해야지요” 라고 말하는 게 참 고역이다.

    어쨌든 지금 내가 하려는 이야기도 계약서를 쓰지 않아 낭패를 본 경험담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계약서가 아니라 인간의 예의에 관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나는 기획안을 만들어, 한 출판사에 제출하였다. 인문 관련 기획안이었고, 나름 괜찮다고 여기는 출판사에 문을 두드렸다. 이틀 만에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편집장이라는 분을 만나 편집 방향과 출간 의의 등을 밝혔다. 흔쾌히 일을 진행하자는 결론이 났다.

    일주일 있다 저자와 나, 출판사 편집장이 함께 만나 가벼운 담소를 나눈 뒤 저자와 출판사 간 계약이 이루어졌다. ‘저자와의 계약이 끝났으니 외주 편집자인 나와도 곧 계약을 하겠군.’ 하고 나는 속으로 생각했는데 출판사 쪽에서는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나는 출판사를 꽤나 신뢰하고 있었으므로 굳이 계약서를 쓰지 않아도 되지 싶었다. ‘뭐, 작업비 얘기는 나중에 해도 되겠지.’ 나는 속 편히 생각하였다. 얼마 뒤 저자한테서 육필 원고를 받아 검토를 끝내고 출판사로 넘겼다. 육필 원고를 워드로 쳐야 했기 때문에 나는 출판사한테 타이핑을 의뢰하였다.(육필 원고를 한글문서로 만드는 일-타이핑-은 출판사 측이 맡기로 첫 미팅 때 합의를 했다.)

    적어도 2주면 타이핑이 끝날 것이라 예상하고 느긋이 기다렸다. 그런데 두 달이 다 되어가도록 연락이 없었다. 걱정이 되어 출판사에 전화를 했더니 원고 내용이 너무 난해하다, 일반인의 정서에 맞지 않다, 이 원고가 어떻게 책으로 완성될지 감이 안 온다 등등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출간이 어렵겠다는 것이다.

    계약서가 아닌 인간 예의에 관한 문제

    나는 참으로 황당하였다. 기획자이자 책임편집을 할 당사자와는 한마디 논의도 없이 자기네끼리 결론을 내놓은 상황 앞에서 나는 잠시 멍해졌다. 그리하여 나는 정중히 말하였다.

    “원고 내용이 어려울 수는 있다, 형이상을 다룬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려운 내용도 쉽게 풀어내는 방법이 있다, 그것이 내 역할(편집자 역할)이라고 본다, 관련 자료(명화나 시)를 충분히 활용하고 주석을 편하게 달아주면 결코 이해 못할 내용은 아니다.

    그리고 일반인의 정서에 맞지 않다는 것은 자의적 판단인 것 같다, 과연 일반인의 정서란 게 무엇이냐, 꼭 당신네 출판사에서 이 책을 내야 한다고는 생각지 않지만 벌써 출간 계약을 마친 상황에서 대안은 생각해보지도 않고 아예 없던 일로 한다는 것은 신뢰를 저버리는 일이다. 우선 내가 한 꼭지를 편집하여 샘플로 보내주겠다, 그걸 보고 출간 여부를 다시 판단해도 늦지 않을 것 같다.”

    출판사 측이 알았다 해서 나는 편집 샘플을 보냈고, 출판사에선 그제야 안심하고 출간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그렇게 일은 시작되었다.

    나는 애초 출판사에, 기획을 했으니 책임편집까지 도맡을 것이라고 말해두었다. 그리고 열심히, 거의 사명을 다해 일을 했다. 저자가 원하는 자료들을 챙겨주고, 판형이나 디자인 꼴, 표지 등등 무엇 하나 소홀히 하지 않고 꼼꼼히 체크하였다.

    어느 덧 세 계절이 훌쩍 갔다. 이제 며칠 후면 책이 나올 것이었다. 나는 이제 출판사와 작업비를 논의해야 될 때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출판사는 도무지 나와 만나자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아, 조금 더 기다려보자’ 나는 안달하고 싶지 않아, 잠자코 기다렸다. 왜냐면 나는 정말 그 출판사를 꽤나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터무니없이 적은 액수보다 더 놀라운 건…

    그런데 며칠 뒤 생활비를 꺼내려 은행에 갔다가 깜짝 놀랐다. 웬 돈이 입금되어 있었던 것이다. 설마! 그 돈은 출판사가 보낸 돈이었다. 내가 예상한 금액보다 훨씬 적은. ‘작업비를 두 번에 걸쳐서 나눠 주려는 것인가?’ 하고 나는 생각했다. 간혹 어떤 출판사는 자금 사정이 어려워 한꺼번에 돈을 주지 않고 나눠서 주기도 하니까 말이다.

    그러나 돈이 적게 입금되었다는 것보다 더욱 놀란 것은 작업한 사람(나)한테 단 한 마디 말도 없이 돈을 보냈다는 사실이다. ‘일을 어느 정도 했고, 진행비는 얼마 정도 들었는지’와 같은 이야기를 당사자와 나눈 뒤에 합리적인 작업비를 책정하는 게 상식이라고 믿는 나로선 정말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어떻게 출판사는 자기네끼리 금액을 정할 수 있을까? 황당하였다. 나는 믿었던 출판사에 뒤통수를 맞은 격이었다. 기획에 책임편집까지, 온전히 다 맡아서 하고도 전에 출판사 다닐 때 받은 1개월분 급여 정도만 받은 것이다.

    나는 너무 놀랐다. 이런 일이 가능한가? 먹고 떨어지라는 얘기인가? 나는 터무니없이 적은 돈보다는 전적으로 일을 도맡아서 한 당사자를 배제하고 자기네끼리 금액을 결정하여 ‘집행!’하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외주 편집자로 몇 년을 일 해왔지만 처음 겪는 일이었다.

    나는 출판사에 전화를 걸어 부당함과 무례함을 밝히려고 하였다. 그러나 잠시 숨을 고르고, 하루를 묵힌 다음 전화통화 대신 메일을 보냈다.

    “나로선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금액이 너무 적은 것은 차치하고 어떻게 일한 당사자와는 말도 없이 멋대로 금액을 결정할 수가 있는가? 이게 관행인가? 이게 진짜 벌어진 일인가? 이게 상식적인 일인가? 단순히 내가 모욕을 받았다는 감정보다는 어떻게 사람한테 이럴 수 있는지, 어떻게 일한 당사자를 배제할 수 있는지…. 서글픔이 앞선다, 또한 무슨 기준으로 작업비를 책정했는지도 모르겠다, 괜찮은 출판사로 믿고 있었는데, 그래서 많이는 아니더라도 적정선을 지킬 줄 알았는데, 너무 놀랐다” 등등

    마치 도둑처럼, 그렇게

    그제야 출판사 직원은 거듭 사과를 하며 자기네가 미처 그 부분을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덧붙여 사장과 다시 금액을 조정해보겠다고 했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을 웃기게 만든 상황이 문제인데 그 직원은 돈 얘기만 하였다.

    나는 거기다 대고, “그럼 부탁드릴게요” 따위의 말은 하지 않았다. 다만 이 말만 하였다. “다음에 외주 편집자하고 일을 하게 되면 이런 식으로는 하지 마세요” 딱 이 말만 하고 말았다. 정말 그 사람이 자기네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할 생각이 있었다면 내가 굳이 부탁하지 않아도 본인이 알아서 사장한테 부당성을 이야기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사람은 끝내 사장한테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이후 내게 연락도 하지 않았다.

    사실 내가 좋아서 한 기획이고, 세상에 단 하나뿐인 책을 소개하고픈 열망에서 작업한 책이다.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이 책 하나만 편집하면 미련 없이 편집 일을 그만둘 수 있겠다는 심정으로 한 일이었다. 목숨 걸고 했다고는 감히 말할 수 없지만 소명을 갖고 최선을 다했다.

    이런 순수한 열정을 출판사가 인정하든 안 하든 그건 상관없다. 그러나 최소한 상식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대우를 해줘야 되지 않는가? 그리고 적어도 당사자와 논의하여 보수를 결정해야 되지 않나?

    그래, 나는 일을 했고, 책이 나왔다. 출판사는 자기네 맘대로 정한 금액을, 내 통장에 보냈다. 보낸다는 말 한 마디도 없이, 마치 도둑처럼, 그렇게.

    거기에 ‘사람’은 없었다

    나는 출판사가 왜 그리 행동했는지 잘 모르겠다. 애초에 계약서를 쓰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 건 맞다. 정말로 진행비를 비롯한 기타 작업비를 서로 협의하여 계약서에 명시하였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지 모른다. 그런데 달리 생각해보자. 비단 계약서만의 문제일까? 아니라고 본다.

    최소한 사람에 대한 예의만 있었더라도 출판사가 저리 행동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예수는 안식일에 손 굽은 사람을 치유하고, 앉은뱅이를 일으켰다. 이 모습을 보고 바리새인들이 따져 물었다. “안식일에는 일하지 말라 했는데 어찌 당신은 일을 하오?” 여기에 예수는 명쾌하고 따뜻한 대답을 내놓는다.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계약서라는 한낱 종이에 기대지 않아도 최소한 인간에 대한 예의만 있다면 얼마든지 노동자와 사용자는 상생의 길을 갈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사용자와 그 사용자한테서 월급을 받는 저 일꾼은 사람에 대한 예의를 저버렸다. 그들은 내게 보수를 지불한 게 아니라, 국민은행 통장이라는 종이수첩한테 비합리적인 보수를 지불하였다. 나라는 사람은 거기 없었다.

    슬픈 일이다. 이게 비단 나만의 일일까. 아닐 것이다. 얼마나 많은 외주 편집자가 사측의 파트너가 아닌 일개 용역으로 푸대접을 받으며 일하고 있을까.

    미디어는 대개 베스트셀러니, 스타 작가니 하며 출판문화산업의 화려함만을 다룬다. 그 화려함 뒤에 자리한 어두움, 슬픔, 부조리함은 거의 외면하고 있다.(왜냐하면 미디어는 출판광고를 따내야 하니까.) 그래서 목마른 놈이 우물 판다고 외주 출판노동자들이 조심스레 발 벗고 나섰다. 출판 자본가가 어떻게 외주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홀대하는지를 알리고 싶어서!

    오늘도 많이 덥다. 허나 이 폭염도 사그라질 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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