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폭발력 가진 판결이나 반쪽짜리
    불법파견, 2년 이내도 정규직돼야"
        2010년 08월 17일 04:4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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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22일 대법원에서 “사내하청 노동자라도 2년 이상 근무했다면 원청회사인 현대차가 정규직으로 고용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판결이 나온 것은 일대 사건이었다. 2명의 노동자가 승소한 재판이지만 이 판결을 적용하면 사내하청 등 비정규직 노동자 수만 명이 정규직으로 전환될 길이 열린 것이고, 이는 비정규직 운동의 기폭제가 될 수 있는 폭발력을 가진 판결이었다.

    비정규직 운동 기폭제

    17일 오전 국회 헌정기념관 대강당에서 민주노동당과 전국금속노동조합이 공동으로 주최한 ‘현대차 불법파견 판결 그 후, 정규직 전환 방안 토론회’는 바로 그 ‘전환점’에 맞춰져 있다. 현대차는 “파기환송임으로 확정판결이 아니다”며 버티고 있고, 고용노동부는 일부 사업장의 표본조사와 시정조치 정도로 문제를 축소하고 있는 상황이다.

       
      ▲토론회 모습(사진=정상근 기자) 

    이날 토론에 나선 발제자와 토론자 모두 이번 판결에 큰 의미를 두고 있었다. 권두섭 변호사는 “오랜 고민 끝에 (사내하청이 도급이 아닌 불법파견이라는)논란의 종지부를 찍은 판결”이라고 평가했고, 김형우 금속노조 부위원장은 “8년에 걸친 비정규직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헌신과 저항, 정규직 노동자의 연대가 이끌어낸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토론자인 조경배 순천향대 교수 역시 “전속적인 사내 하청기업에서 원청과의 법률관계가 도급이 아니라 불법파견임을 인정한 최초의 사례”라고 평가했고, 정부측에서 나온 고용노동부 김동욱 고용평등정책과 서기관도 “불법파견의 남용을 억제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라고 밝혔다.

    제조업 사내하청 대부분 적용 가능한 판결

    권두섭 변호사는 “그동안 제조업에서 ‘사내하청’이란 방식으로 비정규직을 사용해 왔지만 이들은 원청회사 사업장에서 원청회사 설비에 투입되어 정규직 노동자와 같은 일을 해왔다”며 “원청회사는 이를 ‘도급계약’이라 주장했지만 노동법학자들이나 노동계는 이것은 실제로 불법파견으로 본 것”이라고 말했다.

    권 변호사는 “이 판결에서 이를 불법파견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근거(하청업체가 고유기술, 자본 없이 인력만을 원청회사에 투입하는 방식)들은 자동차 등 제조업 사내 사청에서 전형적으로 볼 수 있는 사례들”이라며 “결국 이는 현대차 뿐 아니라 유사한 제조업 사내하청에 모두 적용이 가능한 판결이라는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조경배 교수 역시 “파견과 도급의 구별과 관련하여 일반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판단 기준을 명시적으로 제시하지는 않았으나, 노무지휘권의 행사 여부를 판단하는 주요 요소를 언급해 그동안 노동위원회나 법원에서 파견근로자임을 인정받지 못해 부당해고 또는 차별시정 절차에 처음부터 배제되었던 사내 하청 노동자의 해고구제신청 및 차별시정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판결이 진일보한 것은 분명하나, 발제자-토론자들은 ‘전환점’을 만들어 내기 위해 한계도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이는 앞서 기륭전자분회 김소연 분회장이 인사말을 통해 말한 내용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김 분회장은 “판결이 2년 이상 근무한 노동자로 범위를 축소함으로서 판결로부터 소외된 노동자가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김형우 부위원장도 이 점에 주목했다. 김 부위원장은 “사실 대법원의 판결은 반쪽짜리”라며 “위장도급임을 인정하면서도 2년이 지난 시점부터 정규직으로 함으로써 2년 이하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해고의 길을 열고 한시하청 노동자를 양산하거나 동희오토 같은 외주 하청을 늘려 도리어 비정규직을 양산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불법파견이면 2년 이전이라도 정규직화돼야

    금속노조 역시 이를 우려해 투쟁방향에서 “2년 이상 근무한 노동자에 한정되어 있는 대법원 판결을 넘어 2년 이하 사내하청-한시하청 노동자까지 정규직화 및 직접고용, 고용보장을 위한 교섭과 투쟁을 전개한다”고 결정했다. 김 부위원장은 “기간이 아닌 상시업무에 대해서는 반드시 정규직으로 채용해야 한다는 방침을 현장에서 관철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조경배 교수 역시 “합법파견, 불법파견 가릴 것 없이 모두 2년이 경과한 후에야 인정한다는 판결”이라며 “처음부터 불법파견은 불법인 날부터 사용사업주와 직접적인 고용관계가 발생되어야 한다고 보아야 하고, 처음에는 합법적인 파견이었지만 기간이 초과되어 불법이 된 경우 초과된 날부터 직접적인 고용관계가 발생한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토론자들은 결국 이번 판결을 바탕으로 입법부와 행정부가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데 입을 모았다. 권두섭 변호사는 “오랜 기간을 통해 이러한 판결이 나왔다면 국회는 입법논의를 시작해야 하고 노동부는 즉각 후속조치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조경배 교수도 “행정부는 행정감독과 형사처벌을 강화해 정규직 전환 및 불법파업을 근절해야 하고 파견과 도급의 구분기준에 관한 지침 및 행정지도에 나서야 한다”며 “입법부 역시 현행법령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개선하고 직접고용간주 조항을 복귀시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형우 부위원장은 노동계의 행동 역시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김 부위원장은 “노동자들부터가 1사 1조직으로 우리 내부에서부터 스스로 원청노동자성을 인정해야 한다”며 “모든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노조에 가입시키고 교섭투쟁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파견법 확대 움직임 막아내야

    김 부위원장은 또한 하반기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예측되는 ‘파견법 확대’에 강한 경계심을 드러내며 “몇천 명을 정규직화 하면서 수십만 명을 비정규직화 시킬 수 있다”며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정당, 노동단체, 비정규직단체, 시민사회단체 등 모든 단체를 묶어 ‘불법파견 사내하청 노동자 정규직 전환과 파견법 개악 저지를 위한 시민사회대책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동욱 고용노동부 서기관은 “이번 판결로 불법판결 남용을 억제할 수 있겠으나 모든 사업장을 불법파견으로 볼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고용노동부에서는 실태 점검을 통해 직접고용을 우선적으로 고려토록 하고 이견을 조정해나가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토론회에 앞서 박유기 위원장은 “오랜 기간 사내하청노동자들은 패배와 절망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며 “이제 다시 새로운 활로를 모색해야 할 시점에 이번 판결은 현대자동차를 중심으로 금속사업장의 사내하청노동자들을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사내하청노동자의 조직화와 정규직 비정규직 연대와 공동투쟁을 실현해 정부와 사측을 응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는 “대법원 판결에 기쁘지만 이제 가장 중요한 것이 정부의 역할”이라며 “정부가 적극적으로 사업주들을 독려해 불법상태를 해소시키고 감독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뿐 아니라 국회도 정규직 전환 사업장을 돕는 법을 논의해 지원제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며 “판결을 빨리 집행시키는 것이 어떤 고용증진 제도보다 강력하고 효과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조승수 진보신당 의원은 “이번 판결은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기나긴 투쟁의 결과로 의미가 있다”며 “하청노동자들이 정규직이 되는 것은 당연한 권리임에도 현대자동차는 정규직-비정규직 갈등을 유발하고 일방적 해고를 자행하는 등 관계개선을 어렵게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적극적인 하청노동자들의 정규직화에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토론회는 민주노동당 최은민 최고위원의 사회로 권두섭 민주노총 법률원 변호사와 김형우 금속노조 부위원장이 발제를 맡았으며 순천향대학교 조경배 교수와 고용노동부 고용평등정책과 김동욱 서기관이 토론자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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