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태 복지국가, 통합진보정당으로
    진보신당 '사회당 2' 될 수도 있어"
        2010년 08월 17일 08:4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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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 총선을 얼마 앞둔 때로 기억된다. 사회당은 장애인 단체들과의 연대에 공을 들이고 있었다. 장애인들과 함께 쇠사슬을 묶고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며 지하철 선로를 점거하였다. 선관위를 찾아가 장애인이 투표에 불편함이 없도록 1층에 투표소를 설치하라고 시위를 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사회당이야말로 몸과 마음으로 진짜 장애인들과 함께 하는 당이라는 격려도 받았다.

    2004년의 씁쓸한 기억

    그런데 총선이 다가오자 함께 투쟁했던 장애인 단체는 돌연 민주노동당의 지지를 선언하였다. 이들 장애인 단체는 민주노동당이야말로 장애인 이동권이나 차별금지법 등을 해결할 정책 정당이라고 추켜세웠다.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그 분들은 자신들의 요구를 법과 제도로 현실화시킬 수 있는 당을 원했던 것이다. 원내 진출이 가시권에 들어있는 당과 낮은 지지율로 인해 등록 취소를 걱정해야 하는 당 사이에 그분들이 어떤 당을 정치적(!)으로 선택할지는 충분히 예견된 일이었다.

    내가 사회당원으로 있던 동안(2000~2006년) 주위 사람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바로 "사회당이 민주노동당과 어떻게 다른가?"라는 질문이었다. 반면 과거 민주노동당원들은 "사회당과 어떻게 다른가?"라는 질문을 받아 본적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그것은 소수파 정당의 숙명이었다. 자신의 차이점을 부각시키지 않으면 소수파 정당은 존재의 이유를 상실하게 된다. 운동권 언저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나마 그 차이를 설명하기는 편하였지만 시골에 계신 부모님에게 그것을 설명하기란 불가능하였다.

    사회당원들이 시달린 질문

    사회당의 전신인 청년진보당이 창당된 것은 1998년이었다. 청년진보당의 초동 주체들은 미약한 주체적 역량(청년)에도 불구하고 민족주의 세력에게 진보정당을 선점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창당을 서둘러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2000년 초에 창당된 정당은 민족주의자들만의 당이 아니라 민주노총을 기반으로 한 정파연합당인 민주노동당이었다. 2000년 총선에서 양당 모두 원내 진출이 실패하면서 청년진보당은 두 개의 진보정당 중 하나로 존재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이 2002년 대선에서 권영길 후보를 TV토론에 출연시키고 2004년 원내 10석을 확보하면서, 사회당은 그에 반비례하여 존재감을 상실하게 되었다.

    처음부터 진보정당으로 출범한 청년진보당이 2001년 사회당으로 당명 변경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사회주의로 내세우지 않고서는 또 다른 진보정당인 민노당과의 차이를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당명 변경과 무관하게 사회주의로의 이행 전략에 대해서 진지한 탐구는 없었다. 사회주의는 반(反)자본주의이고, 반(反)조선노동당주의이고, 여성주의이고, 환경 옹호론이고, 장애인 중심주의이고, 평화주의였다. 그것이 어디로 향할지는 누구도 모르지만 언젠가는 도달하게 될 이른바 ‘과정으로서의 사회주의’였다.

    결국 사회당의 사회주의는 고전적 사회주의의 개념에서 벗어난 급진적 반(反)자본주의 운동의 다른 이름에 불과하였다. 민노당과의 복잡한 문제는 반(反)조선노동당-반(反)자본주의라는 테제 하나로 간단히 머리에서 지울 수 있었다. 하지만 잇따른 선거를 경과하면서 눈앞에 펼쳐진 당의 현실은 참담하였다. 사회당의 다른 이름은 ‘고립과 폐쇄’였다.

    정당의 당원이 된 까닭은?

    왜 나는 시민단체도 아니고 하필 정당의 당원이 되었던가? 정당을 통해 현실 정치를 바꾸고 그 힘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내가 선택한 당은 명백한 실패의 길을 걷고 있었다. 당직자들의 생활은 말이 아니었으며, 당은 미래의 전망을 꿈꾸기는커녕 존속 자체를 버거워했다.

    나는 버티기 힘들었다. 내가 사회당에 탈당계를 낸 것도 그 즈음(2006년 가을)이었다. 그 이후 가벼운 마음으로 민주노동당 노회찬, 심상정 의원이 나오는 TV 토론을 즐겼다. 숲에서 나오니 숲이 보인다고, 그렇게 미워하던 경쟁 정당의 의원들이 우호적으로 보였다. 왜 사람들이 그들을 좋아하는지 이해가 되었다. 다음해 내 생애 처음으로 사회당 후보가 아니라 민노당 권영길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

    탈당 이후에도 사회당 홈페이지에 들러 동향(?)을 파악하는 습관은 오래 동안 남았다. 2006년 말 금민씨가 사회당 대표가 된 이후 사회당은 사회주의란 말을 공공연히 내걸지 않았다. 금민씨는 ‘사회적 공화주의’라는 다소 생소한 개념을 들고 나온다.

    금민씨는 『사회적 공화국』이라는 저서에서 “민주공화국의 기초는 주권자에게 최소한의 사회경제적 조건을 보장”해주는 것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주권자의 정치 참여를 가능하게 위한 현실적 조건으로 복지 문제에 대해 관심이 옮아갈 수밖에 없다. 사회당의 이러한 노선 전환은 정치노선상 관념주의에서 현실주의로의 전환으로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정치노선의 변화만큼 그에 따른 ‘조직 노선’의 전환이 아직까지 보이지 않는다. 사회당은 사회적 공화주의를 앞당길 핵심 정책으로 기본소득을 내세우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모든 국민에게 일정 금액을 현금으로 지급하는 것이 의료, 주거, 교육, 노후 등에서 현물 지원을 하는 것보다 어떤 장점이 있는지, 현금 지원의 액수는 얼마이고 어떤 방식으로 그에 필요한 재원을 확보할 것인지 해명이 되지 않으면 기본소득제가 ‘진보판 허경영식 구호’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따라서 사회적 공화주의의 이상을 살리되, 그에 합당한 복지 정책의 발굴에 대해서는 진보진영과의 폭넓은 교감을 추구해야 하며, 기본소득을 진보 연합의 배타적 기준으로 내세우지 말 것을 주문한다.

    복수 진보정당 공존은 불가능하다

    사회당과 민주노동당의 10년 역사(1999~2008년)를 통해 볼 때, 내가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한국에 진보정당의 지지표는 5~10%로 일정한 층을 형성하고 있는데, 이들 진보성향의 지지표는 마치 당선 가능한 야당 후보에게 표가 몰리는 것처럼 될 성싶은 진보 정당에게 몰린다는 점이다.

    서로 연합을 해서 하나의 진보정당이 되든, 대중의 냉엄한 선택이 하나의 진보정당을 사멸시키든, 두 개의 진보정당은 장기적으로 공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회당은 민주노동당과 손을 잡을 수도 있었지만 결국 독자 생존의 길을 택하였다. 사회당이 민주노동당과 연합할 기회를 차버린 것은 무엇보다 주사파에 대한 반감 때문이었다. 그것이 원내 진출에 대한 의지보다 더 컸다.

    2008년 민주노동당이 분리되어 진보신당이 만들어졌을 때, 나는 곧장 진보신당에 합류하였다. 나는 새로운 진보정당을 열망하는 국민들의 요구에 노회찬-심상정의 대중적 정치력이 합쳐져 진보신당이 진보 제1정당으로 커갈 것이라 기대하였다. 만약 그렇게만 된다면 주사파 옆에서 곁불 쬐지 않고도 좌파 중심의 진보정당을 만들 수 있으리라 생각하였다.

    그러나 대중은 권영길과 강기갑을 살리고 이정희를 키웠으며, 노회찬과 심상정을 떨어뜨렸다. 민주노동당을 대체하는 진보정당을 만들겠다는 사회당 이래의 내 오랜 꿈은 진보신당에서도 성공하지 못하였다.

    지난 6월 지자체 선거를 통해 드러난 진보표 쏠림 현상은 진보신당이 아니라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으로 드러났다. 민노당을 넘어서는 진보대표정당을 만들겠다는 꿈은 또다시 실패하였다. 문제는 오늘의 진보신당이 ‘사회당2’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민주노동당도 변화할 수밖에 없어

    그런데 민노당도 옛날의 민노당이 아니다. 분당 사태를 겪은 이후 민노당에서 종북주의가 공공연히 드러난 적이 없다. 작년 5월에 2차 핵실험이 있을 때, 올해 NLL을 넘는 해안포 사격이 있었을 때 민노당은 북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밝혔다.

    진보정당을 지지하는 대중들이 종북주의를 허용하지 않는데, 다음에 당선되고 싶은 정치인이 어찌 공공연히 북을 옹호하는 발언을 할 수 있을까? 패권주의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당내 민주주의가 정착되고, 당원의 수가 늘어나면 몇몇 패당 집단에 의해 당의 의사결정이 좌지우지 되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결국 당심도 민심을 쫒아 움직일 수밖에 없다.

    여전히 "민주노동당이 진보신당과 어떻게 다른 정당이냐?"라는 물음보다 "진보신당이 민주노동당과 어떻게 다른 정당이냐?"라는 물음이 많을 것이다. 후자의 물음이 많을수록 진보신당이 수세에 처해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실 진보신당이 창당된 지 2년이 넘은 현재 진보신당의 창당 정신(종북주의 및 패권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을 들어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의 차이를 설명하는 것은 옹색하기 그지없다. 대중은 한가하게 2년 전 과거를 기억하지 않는다.

    그 동안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이 발표한 성명과 정책을 보고 평가해보자. 민노당이 받아들일 수 없는 정책이 무엇이며, 진보신당이 수용 못할 정책은 또 무엇인가? 사실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은 아무런 차이가 없다.

    2012년 계획 없는 진보신당 사수는 옥쇄하자는 말

    진보신당의 창당 정신을 지키고 그 실험을 계속해야 한다는 동지들이 있다. 이 당이 조직노동자의 힘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비정규직, 여성, 청년의 당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당원들도 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당은 그분들의 투쟁에 ‘몸 대주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책대안을 제시하고 입법화해 ‘정치를 바꾸는 것’이 목적이다.

    그렇게 하려면 무엇보다 대중들이 이 당을 찍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강력한 ‘권력의지’와 ‘수권의 가능성’을 보여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장애인들과 열심히 연대하였지만 정작 선거 때 장애인 단체의 지지 선언을 이끌지 못하는 사회당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

    그렇다면 현재 진보신당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인가? 그것은 진보정당들이 난립해있고, 그 속에서 진보신당이 진보정당의 대표주자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을 만날 때마다 "언제 통합할 건데?"라는 질문을 받는다.

    시민들로부터도 이런 질문을 받는다. "그렇게 분열되어서 당선 되겠어?"(분당 당시 민노당이 다 망할 것처럼 떠들던 언론들과 진보 인사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인가? ) 현재의 정치구도가 2012년에 그대로 유지된다면, 진보신당이 유의미한 결과를 얻기는 굉장히 힘들다.

    만약 민노당에서 울산 북구에 후보를 낸다면 조승수 의원의 당선을 기대할 수 있을까? 서울 경기지역에서 국민참여당, 민노당 후보가 나왔을 때 노회찬, 심상정 대표의 당선을 안심할 수 있을까? 지차제와 달리 창조한국당까지 비례후보를 낸다고 하였을 때, 3% 득표를 장담할 수 있을까?

    2008년을 떠올려보면, 언론의 우호적 환경, 현역 의원 프리미엄, 당원들의 열정적 참여 등을 최대로 활용하여, 그나마 2.96%를 얻었다. 그렇다면 과연 2012년에 그를 능가하는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있을까?

    다른 것은 몰라도 사회당 10년의 경험을 통해 분명히 말하건대 진보신당이 의석을 배출 못하거나 국고보조금을 받지 못한다면 제 아무리 ‘진보 할애비’가 와도 진보신당은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그 아무리 좋은 정책과 이념이 있어도 이를 현실화시킬 수 있는 물리적 힘을 갖추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이다. 그것이 유물론이다.

    ‘생태적 복지국가’를 내세우고 ‘통합진보정당’으로

    그렇다면 진보신당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그 길은 ‘진보정당의 2012년 원내 진출’이라는 목표점과 ‘현재 처해 있는 출발점’을 연결하는 직선으로 설명될 수 있다.

    내가 진보신당이라고 쓰지 않고 진보정당이라고 쓴 점에 주목해주길 바란다. 우리 당의 정식 이름은 ‘진보신당 연대회의’이다. 그것은 그 신(新)이라는 이름에서 드러나듯 더 큰 정당으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당이 가설 정당, 발판 정당이 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진보신당을 현재의 정태적 개념으로 이해하면, 진보신당의 전망조차 찾기 힘들다고 판단한다.

    더 큰 진보정당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민주노동당 문제를 외면할 수 없다. 우리는 정서적으로 인정하기 싫지만 국민들 눈에 진보세력이라고 보이는 국민참여당도 있다. 이 당의 중추는 구(舊) 열린우리당 세력이라고 할지라도 민주당이 아니라 그들을 지지한 국민들의 성향은 분명 민주주의의 신념과 진보적 열정이 있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이들 세력을 어떻게 규합할 것인가의 문제가 필연적으로 도출된다. 작은 정당이지만 무시할 수 없는 역사를 갖춘 사회당 세력도 통합의 대상이다. 2012년의 화두는 통합 진보정당이 될 수밖에 없으며, 이것을 주도적으로 만든 세력과 정치가가 2012년에서 가장 주목받는 세력이 될 것이다.

    나는 진보신당,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사회당까지 포괄할 수 있는 모든 세력의 공통된 이념은 ‘생태적 복지국가’에 대한 문제의식이라고 생각한다.

    생태적 복지국가는 ①신자유주의 노선의 해체와 금융자본에 대한 규제 ②출산, 교육, 주거, 의료, 노후 등에서 복지의 확대와 양극화 해소 ③비정규직 사용 사유의 제한 국가적 차원에서 노동 안전성 보장 ④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생태국가 건설 ⑤평화주의에 입각한 군비축소와 평화협정 체결 ⑥비례대표제의 확대와 결선투표제 실시 등을 핵심 가치로 담아야 한다.

    정치행위에 대한 최종 판단은 당기위 아닌 당원 몫

    이제 서로의 패를 보일 때가 되었다. ①진보신당을 항구히 존속하는 정당으로 사수할 것인가? 아니면 더 큰 진보정당으로 나아가기 위한 발판으로 볼 것인가? ②우리 당을 노동자 중심의 ‘사회주의 정당’으로 할 것인가? 아니면 서민 다수의 이해를 바탕으로 한 복지 중심의 ‘사민주의 정당’으로 할 것인가? ③우리 당을 ‘사회운동 중심 정당’으로 할 것인가 아니면 의석 진출을 목적으로 한 ‘선거중심 정당’으로 할 것인가?

    진보신당은 창당 이래로 이러한 문제에 대해 차후의 과제로만 남겨두고 당의 총의를 모으지 못했다. 이번에야말로 노선 문제를 확실히 정리하고 넘어가야 한다.

    심상정 전대표 문제도 같은 맥락이다. 지자체 선거 시기 그의 도지사 후보 사퇴도 결국 향후 당의 진로와 관계된 정치 행위이므로, 그가 당 대표 출마를 통해 확인받아야 할 당원들의 선택을 중앙당기위가 사법적 결정으로 대신할 수는 없다. (필자는 심상정 전대표가 재심신청이라는 행위를 통해 사실상 당 대표 출마 의사를 밝힌 것이라고 보고 있다) 결국 최종 선택은 당원들의 몫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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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보신당 내부에서 노선 논쟁이 진행되고 있는 중에, ‘연합정치’를 강조하는 의견을 가진 진보신당의 당원들이 <레디앙>이 지속적인 투고를 하겠다고 밝혀왔습니다. 4~5차례 정도 게재될 예정입니다. 다른 견해를 가진 독자 여러분들의 활발한 투고를 기대하겠습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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