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동적 복지국가를 위한 시민정치운동
    2010년 08월 16일 02:2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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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대한민국이라는 하나의 경제공동체에서 살아가는 같은 국민이 맞는가? 서민들뿐만 아니라 상당수의 중산층 사람들조차 “소외감을 느낀다. 사는 게 불안하다. 우리에게는 기회가 제대로 주어지지 않는 것 같다.우리 사회는 공정하지 않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된다. 우리 자식들에게 이런 험한 세상을 물려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공동체가 사라진 정글 사회

우리의 경제공동체 대한민국은 지금 심화되는 양극화 성장으로 인해 사실상 공동체성을 잃어가고 있다. 명백하게 20 : 80의 정글 사회다.

2010년 상반기 우리나라의 수출은 전년 동기에 비해 33%나 늘었고, 주요 제조업체의 영업이익도 거의 두 배나 늘었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수출경제는 호황이었으되, 내수경제는 불황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제조업의 양극화와 내수경제를 이끌 국내 서비스업의 침체 때문이다.

우리가 이미 오래 전부터 알고 있던 우리사회의 여러 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양극화, 즉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양극화, 수출경제와 내수경제의 양극화, 노동시장의 양극화, 교육 등 사회서비스의 양극화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전에는 잘 몰랐고 모호하게 인식하였지만, 이제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지금 신자유주의 양극화 성장체제에서 살고 있다. 우리나라는 1994년에 금융자유화를 실시하였고, 세계화를 선언하면서 신자유주의 세계경제 질서에 편입되기 시작하였다. 이로 인해 촉발된 1997년의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충실하게 이행함으로써 우리나라에서 ‘신자유주의 양극화 성장체제’가 구조화된 것이다.

우리네 민생불안이 신자유주의 양극화 성장체제와 잔여주의 복지체제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것도 이제 많은 사람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논리 정연하게 체계화된 지식으로는 아니더라도, 우리 국민은 이제 신자유주의 양극화와 민생불안을 삶의 현장에서 피부로 느끼고 있다.

기대와 희망 그리고 정치세력

늘 불안하고 여유가 없다. 행복하지 않다. 그래서 우리 국민의 67%는 우리나라가 장차 ‘행복지수가 가장 높고 더불어 살기 좋은’ 북유럽 복지국가 방식으로 발전하길 원하고 있고, 우리 국민의 72%는 이러한 복지를 위해서라면 세금을 기꺼이 더 내겠다고 한다(한겨레신문 5월 14일자).

지난 6.2지방선거에서는 지난 선거들과 다른 뚜렷한 특징 하나가 부각되었다. ‘보편적 복지’에 대한 국민적 기대가 하나의 정치현상으로 나타나 일정한 정치사회적 흐름을 형성한 것이었다. 보편적 무상급식이 서민과 중산층의 민생불안을 파고드는 강력한 정치구도를 형성하면서 우리 국민은 보편적 복지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고, 이를 실현해줄 ‘복지 지방정부’의 가능성에 기대를 품게 된 것이다.

삽질에 능한 지방정부가 아니라 보편적 복지를 통해 우리네 삶을 개선해줄 지방정부를 요구하게 된 것이며, 이러한 ‘기대와 희망’이 투표를 통해 정부여당을 심판하는 것으로 귀결된 것이다.

사실, 민생불안의 해소와 삶의 질 향상이라는 국민적 ‘기대와 희망’이 말처럼 그렇게 쉽게 달성되는 것은 아니다. 사회구성원 모두의 불안이 제도적으로 해소되고 삶의 질이 안정적으로 보장되려면 우리나라의 현실에 맞는 토종형의 보편주의 복지국가를 잘 설계하고 실현해야 하는데, 우리는 이것을 역동적 복지국가라고 부른다.

우리나라가 지금 유럽 선진국 수준의 역동적 복지국가를 제도적으로 달성할 때까지는 아무리 빨라도 10년 내지 20년이 걸릴 것인 바,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첫 번째 요소는 복지국가를 염원하는 다수 국민의 지속적인 ‘기대와 희망’이며, 두 번째 요소는 이에 조응하는 강력한 복지국가 정치세력의 존재이다.

희화화된 복지국가

10여 년의 신자유주의 양극화 시대를 거치며, 특히 지난 6.2지방선거를 통해 풀뿌리 속에서 그 모습을 드러낸 민생불안의 해소와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보편적 복지와 복지국가에 대한 국민적 ‘기대와 희망’은 이미 싹트고 자라나고 있다. 이러한 ‘기대와 희망’을 품지 않으면 도저히 안 되겠다는 풀뿌리 정서는 역설적이게도 신자유주의가 만들어낸 양극화 정글 사회의 산물이다.

그럼에도 우려스러운 것은 야만적 정글 사회에서는 이러한 국민적 ‘기대와 희망’이 일회적·산발적인 것으로 되는 경향이 있고, 지속적인 것으로 표출되고 조직화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이에 대한 대책이 요구된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우리에게는 아직까지 우리 국민이 믿고 의지할만한 강력한 복지국가 정치세력이 없다.

풀뿌리 수준에서 국민적 ‘기대와 희망’에 올바르게 부응할 우리의 복지국가 담론을 널리 확산하고, 이를 느슨하게라도 노동·시민사회단체, 정당, 온라인 매체, 언론, 여러 가지 수다클럽(커피 당) 등 다양한 형식의 네트워크들로 담아내고 조직해야 한다. 신자유주의 양극화 체제를 극복할 대안 담론인 역동적 복지국가는 보편적 복지, 적극적 복지, 공정한 경제, 혁신적 경제라는 네 가지 원칙의 통합적 구조물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네 가지 원칙은 동시적으로 작동하며, 긴밀하게 연계되어 유기적으로 상호작용을 끼치므로 어느 하나를 떼어낼 수 없다는 점이다. 가령, 적극적 복지만을 떼어내서 이것을 수사적(사회투자)으로 강조한다면 이는 더 이상 진보가 아니며(신자유주의 제3의 길 등 가짜 진보), 결과적으로 복지국가를 희화화하는 것이 된다.

마찬가지로 보편적 복지만을 강조한다고 해서 복지국가가 되는 것도 아니며, 공평과세 원칙의 누진적 조세제도가 포함된 공정한 경제와 혁신적 경제 또한 보편적·적극적 복지와는 서로 뗄 수 없는 유기적 통합체다.

풀뿌리 수다와 정치지형의 변경

결국, 역동적 복지국가는 신자유주의 양극화 사회의 민생불안을 해소하고 모든 국민이 삶의 안정성과 역동성을 향유할 수 있도록 하는 우리 시대의 진보담론이자 정치적 과제이다. 오늘도 경쟁만능의 양극화 정글 사회에서 시장적 방식으로 만성적 불안의 해소책을 찾아 나선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면 우리의 역동적 복지국가 담론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까?

우리는 풀뿌리 시민사회의 담론을 완전히 바꾸어 놓아야 한다. 오랫동안 우리 뇌리와 습관 속에 박혀있는 경쟁과 효율·성장 만능의 ‘경제적 자유주의(신자유주의)’ 담론을 ‘역동적 복지국가’ 담론으로 바꾸어 놓는 일은 누구의 몫인가? 지식인과 노동·시민사회·진보정당운동을 포함한 진보개혁진영 모두가 나서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지역 단위의 풀뿌리 시민운동이 중심에 서야 하고,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이 일의 주체로 나서야 한다.

결국, 우리는 모두 수다쟁이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역동적 복지국가의 담론과 정책을 널리 확산하고, 이를 중심으로 다양한 형태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이것을 시민사회운동과 복지국가정치운동의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 이러한 흐름이 풀뿌리의 수다쟁이 운동을 통해 들불처럼 번져 나간다면, 우리나라의 정치지형은 순식간에 바뀔 것이다.

범야권 정치세력 모두가 자신들이 ‘역동적 복지국가’ 정치의 적임자임을 자임하며 앞 다투고 경쟁할 것이다. 이러한 정치과정에서 장차 누가 ‘진정한 진보’ 정치세력인지는 국민적·역사적 평가를 통해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될 것이다.

역동적 복지국가를 위해 진보정치의 담론과 세력을 재편하고 규합하는 일이나 민주당의 진보적 재편을 촉구하는 일도 매우 중요하다. 만약 이러한 일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전국의 풀뿌리 수준에서 진행될 역동적 복지국가를 위한 수다쟁이 운동이 한층 더 탄력을 받게 될 것이다. 이는 위와 아래가 제대로 조응하기 때문이다. 즉, 풀뿌리 수준에서 역동적 복지국가의 담론과 정책의 확산에 탄력이 붙게 될 것인 바, 이는 다시 진보개혁 정치세력의 전반적 강화를 촉진하게 된다.

이렇게 역동적 복지국가 담론의 풀뿌리 확산과 복지국가 정치의 활성화가 능동적 상호작용이라는 선순환의 관계를 갖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추구하고자 하는 ‘역동적 복지국가 시민정치운동’의 전략이자 방법이다. 이제 시민정치운동의 주체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이에 동의하는 지식인, 노동·시민사회의 활동가, 진보적 정당인, 복지국가 정치 희망자, 그리고 우리 풀뿌리 보통 국민들의 참여와 관심이 매우 중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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