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소수자 운동의 새로운 가능성 '지역'"
        2010년 08월 16일 10:3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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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전 연재글에서 나는 하비 밀크의 예시로 지역이란 공간 속에서 소수자 대표성을 내세워야 함을 주장한 바 있다. 물론 지역 정치가 소수자 정치를 하는 예는 단순히 소수자 정치인을 내세우는 것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다양한 풀뿌리 운동, 지역 운동과 이들 운동 주체와 어떻게 관련을 맺을 것인가 또한 지역 정치의 중요한 주제이다.

    지역정치가 이들 운동과 만나는 과정은 운동 속에 내포되어 있는 급진성을 정치적 의제를 삼는 방식일 수도 있고, 철저하게 개별 운동 주제와 요구들을 실현시킬 도구로서 행정을 활용하는 방식일 수도 있다. 지역 내에 존재하는 소수자 운동들의 요구와 목소리는 지역 공간의 대표인으로서 소수자를 내세움으로써 극대화될 가능성이 있으나, 그렇지 못한 경우에도 지역 정치와 밀접한 관련을 통해서 상승 작용을 한다.

    사실, 대다수의 한국 사회 소수자 운동(특히 성소수자 운동)은 지역 단위보다는 중앙에서 소수자 정체성으로 싸워 왔으며 철저히 중앙 정부와 대응해 온 역사를 갖고 있다. 김대중 정부 때 설치한 국가인권위원회는 인권 프레임 속에서 ‘소수자 인권’을 얘기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로 역할을 수행하였다. 인권 프레임은 ‘소수자라서 차별 받지 않을 권리’로 명명되었고 중앙 정부가 지켜야 할 원칙으로 간주되었으며, 인권 활동가에게는 효과적인 도구가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차별 받지 않을 권리’는 가시적인 ‘차별’이 발생했을 때에는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 되나 전반적인 소수자 지위의 누락, 소수자 지위의 향상을 위해 권력을 배분하는 데로까지 시야를 넓히지 못했다.

    ‘지역’은 소수자 운동에서도 새롭게 주목 받는 주제이다. 이는 이명박 정부를 맞아 중앙 정부에 대한 다양한 운동 단체들의 접근성이 막혔기 때문일 수도 있고, 지역이라는 생존 공간 속에서 스스로의 길을 개척해 나갈 필요성을 절감했던 것일 수도 있다. 한국 사회에서는 성소수자 운동이 지역 내 소수자 운동을 경험해 본 적이 없고, 미개척된 지역 분야에 대한 궁금함과 기대 또한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지역과 소수자 운동이 보다 잘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이 처음부터 내재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표를 의식하는 정당이 중간 다리 역할을 했을 때 소수자 대중은 정당이 언제나 다수 유권자를 의식하는 모양새를 두려워하게 마련이고, 정당에 의존하는 것이 자신들의 자율성을 훼손할 것으로 우려한다. 정당 역시 진보정당이라 할지라도 특별한 절박감 없이는 소수자 운동과 굳이 절충점을 찾을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런던시의회의 급진성

    1980년대 영국노동당이 집권한 런던시의회는 이런 면에서 여러 모로 살펴볼 만한 사례라 할 수 있다. 당시 영국은 데쳐 정부 아래 신자유주의와 가족 가치를 중심으로 한 신보수주의의 공격이 본격화되었고 노동당은 정권 획득 실패 속에서 재기를 노려야 할 상황이었다.

    이에 대해 당시 노동당은 온건중도적 입장으로 옮겨가는 것이 아닌 급진 사회주의 모델에 대한 실험을 추진하였다. 당시 런던시의회에 집권한 노동당 내 신좌파 세력들은 기존 노동당의 관료적이고도 중앙집권적인 모습을 극복하고 다양한 정치 주체들의 욕구와 의제를 지역 정치 속에 담아내려고 노력하였다. 성소수자 의제 또한 여기에 포함되는 것이었고, 영국 정치 내 성소수자 의제에 관한 흐름 들이 새롭게 시작될 수 있었다.

    런던시의회는 지역 성소수자 운동 주체들이 갖고 있는 정치적 요구에 맞추어 상당한 자원을 배분하였고 처음으로 런던 내 성소수자들을 지역 정치의 일 주체로 호명하였다. 이는 성소수자 진영과 지역 진보정치 간의 긴밀한 유대가 생기기 시작한 첫 사례라 할 수 있다.

    그 가운데 가장 상징적인 것은 성소수자를 탄압하는 내용의 ‘섹션 28’을 둘러싼 데쳐 정부와 런던시의회와의 충돌이다. 영국 의회에서 런던시의회가 ‘전통적인 가족 가치를 가르쳐야 할 교육 현장에서 게이가 될 권리를 가르치고 있음’을 비난하면서 지방정부법(1988) 개정에 섹션 28 조항을 삽입하고자 하였다. 섹션 28의 골자는 ‘지방 정부는 고의적으로 동성애를 옹호하거나 동성애가 가능한 가족 형태로 받아들이도록 가르쳐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었다.

    섹션 28은 당시 지방의회가 당면한 에이즈 문제에 대한 대응으로 성소수자평등 학교 교육 등을 실시하자 이에 대한 중앙 정부의 반동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법안의 통과는 광범위한 게이 레즈비언 대중의 공분과 대중 운동을 일으켰다. 영국의 지방정부법 개정 방향 자체가 런던시의회 등 지방정부의 권한 축소였으며 동시에 게이 레즈비언 권리에 직접 타격을 가하는 것으로서, 런던시의회와 게이 레즈비언 운동과의 연결을 보여주는 상징이었다.

    1980년대 데쳐 정부는 전통적 가족주의와 신보수주의 흐름을 만들고자 하였고, ‘사회는 없다. 개인과 가족만이 있을 뿐이다’라는 명제를 통해 신자유주의를 내세웠다. 이것이 ‘섹션 28’의 근본 배경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실제 상당수의 유권자들에게 성소수자 의제가 중요하게 다가오지 않는 속에서 런던시의회가 섹션 28 등의 공격에 대응하며 게이 레즈비언 권리를 중요하게 다룰 수 있었던 것은 영국 노동당 내 신좌파 진영이 이들 문제를 중요하게 다루게 된 노동당 내 지난한 역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역 성소수자 운동 또한 그 동안의 정치와 괴리되어 왔던 조건에서 더 나아가 스스로의 정치적 욕구를 의제화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 노동당이 처음부터 게이 레즈비언 정치에 우호적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대다수의 노동당 지도부들은 게이 레즈비언 문제를 언급하기를 회피하거나 다른 문제에 비해 부차적인 문제로 취급하였다. 그러나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 다수의 페미니스트와 레즈비언 게이들이 노동당, 특히 지역 단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기 시작하였고, 노동당 내 레즈비언 게이 인권을 위한 캠페인(LCGR)을 형성하였다. 이들의 압력은 1981년 노동당 전국집행위원회가 게이 레즈비언 인권을 위한 노동당 활동이 부재해 왔음을 비판하면서 ‘게이 레즈비언 권리’에 관한 정책 문건을 지지하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이들의 압력이 당 내외적으로 순탄한 과정 만을 거친 것은 아니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1982년 Bermondsey 보궐 선거에서 공개 커밍아웃한 게이 정치인 피터 테쳐(Peter Tatchell)가 노동당 후보로 출마하였다가 황색 언론 등의 공격에 실패한 사례이다. 노동당에게 안전한 선거구로 여겨졌던 선거구에서 실패한 경험을 한 노동당 지도부는 당 내 성소수자 당원들의 요구를 억누르거나 회피하고자 하였지만, 성소수자 당원들은 노동당 내 대규모로 커밍아웃하면서 언론의 공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노동당 지도부의 반성을 촉구하였다.

    이러한 경험은 커밍아웃한 당 내 성소수자 관료들이 보다 능동적으로 게이 레즈비언 이슈에 대처하게끔 하였다. 노동당 내 게이 레즈비언 당직자 조합이 건설되었고 이들은 런던시의회에서 게이 레즈비언 이슈를 적극적으로 의제화하는 데 일조하였다.

    또 하나는 성소수자 운동이 기존의 분리주의적•급진주의적 면모로부터 좀더 구체적인 생활과 차별 이슈로 관심사가 옮겨갔던 부분이다. 특히 레즈비언 분리주의의 영향력이 점차 감소하였다. 이는 이전의 성소수자 운동이 보다 급진적이고 추상적인 섹슈얼리티 위계에 집중했다면 이후 점차 정체성에 근거한 정치로 관심이 옮겨가는 것을 의미했다.

    우선 성소수자들은 집이나 양육 등의 이슈에서 이성애자들로부터 부당한 차별을 받고 있다는 점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성소수자로서 정치적 대우가 평등하게 다루어지길 바랬다. 이들 문제는 특히 1980년대부터 유행한 에이즈 이슈에서 첨예했는데, 에이즈는 성교육과 성별 위계질서, 가족 정치 등이 뒤섞인 문제였고 특히 일반인들의 공포심은 남성동성애자들에게 직접적인 차별로 다가왔다.

    성소수자 운동 진영은 지방 정부가 에이즈 문제에 대해 자원과 서비스를 제공해줄 것을 희망하였고, 런던시의회는 이를 제공할 수 있는 자원을 갖고 있었다. 이는 정당과의 관계 형성이 자신들의 독립성을 훼손할 것으로 우려하였던 성소수자 운동 진영이 정당과 새롭게 관계를 형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런던시의회 정치의 한계

    물론 이와 같은 지역 정치를 통한 정당-성소수자 운동의 관계 설정이 전적으로 성소수자 문제를 해결해낼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런던시의회는 데쳐 정부의 압력으로 점차 활용할 수 있는 수단이 제한되었고 무력해졌다. ‘섹션 28’이 결국 통과된 것으로부터 알 수 있듯이 영국 노동당은 이러한 반동적 흐름을 막아낼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을 갖고 있지 못했다.

    그리고 런던시의회가 성소수자 대중에게 약속했던 것들은 실제 실현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당시 런던시의회가 취했던 것은 성소수자 대중의 실질적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 아닌, 성소수자라는 문화적 상징성을 취했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런던시의회는 성소수자의 평등권이라는 급진적인 약속을 통해 데쳐 정부에 대한 방어 헤게모니를 구축할 수 있었으나 이를 구현할 만할 능력을 가지지는 못했다.

    또 한가지 비판적으로 검토해 볼 부분은 런던 시의회가 성소수자 의제를 정치적으로 묶기 위해 사용하였던 “평등한 참여” 패러다임이다. “평등한 참여” 패러다임은 런던시의회가 주요하게 내세웠던 모토로써, 지역 구성원의 자발적 욕구가 동등한 참여 기회를 통해 정치와 민주주의 과정 속에서 평등하게 구현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인종적 소수자들, 여성들, 성소수자들은 정치 과정에서 동등한 일 주체로서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최근의 시민권 정치에서 특히 ‘참여 시민권’에 방점을 찍는 모습의 초기 형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성소수자가 단지 정치 참여에서 하나의 정체성으로서만 평등권을 부여 받는 것은 성소수자 내 다양한 차이를 반영하는 것이나 결과적으로 성적 위계 구분이 사라지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참여 시민권’이란 주제가 결국 성소수자를 ‘모범적인 시민’으로 만드는 것으로 귀결되었다는 비판이 현재 제기되는 것도 이 까닭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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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소개 – 토리 / 성정치위원회

    개별적 연구와 활동만으로 만족해 하다가 모 캠프 때 모 진보정당인의 눈물에 맘이 흔들려 최현숙 선거에 동참한 후 지금까지 진보신당 성정치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차별화된 진보운동과 성정치, 신좌파적 의제 확산에 관심을 갖고 연구, 활동을 병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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