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신의 과학과 사회학
        2010년 08월 16일 09:3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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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질 무렵 아파트 화단을 지나오는데 문득 강렬하고 매력적인 향기가 발길을 붙잡았습니다. 돌아보니 키 높이의 나무에 장미를 닮은 하얀 꽃들이 탐스럽게 피어있었습니다. 평소엔 풀 한 포기도 뽑기를 주저하지만 이때는 도저히 유혹을 이길 수 없더군요. “미안하다.” 한마디 던지고선 황급히 한 송이를 꺾어다가 거실 한 구석에 모셔놓았습니다. 향기가 일주일 정도 간 것 같습니다. 그러는 사이 꽃잎도 하나씩 하나씩 시들어버렸겠죠?

    사람은 어떨까요? 일단 사람의 숨이 끊어지면 육신은 육신대로 썩어가고, 영혼은 영혼대로 흩어지겠죠. 화담 서경덕이 ‘죽고 나면 기가 흩어진다’고 말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제법 걸리겠죠? 목이 꺾인 꽃도 향기가 일주일을 갔잖아요. 몸을 이끌어왔던 ‘나’라는 에고(ego), 그 독특하고 밀도 높은 에너지 덩어리가 그렇게 금방 흩어져버리지는 않겠죠?

    귀신의 조건

    티벳 <사자의 서>에선 사람이 죽고 나면 49일 동안 ‘바르도(중음신)’라는 상태로 머물면서 온갖 체험을 하게 된다고 합니다. 이 기간을 잘 견디면 바르도는 다른 존재로 환생하거나 극락으로 간답니다. 그럼 바르도가 곧 귀신일까요? 귀신은 49일짜리가 가장 오래된 건가요?

       
      ▲ KBS에서 방영된 <전설의 고향>의 한 장면

    <사자의 서>에는 바르도가 아름다운 빛에 현혹되거나 두려움에 도망을 치면 길을 잃게 된다고 합니다. 길 잃은 바르도, 그것이 귀신이 되겠죠. 물론 49일이 지나면 더 이상 바르도가 아니고 그냥 이승을 떠도는 원귀인 거죠.

    여기서 귀신의 조건을 한번 따져 보겠습니다. 귀신도 하나의 현상입니다. 현상이 존재하기 위해선 객관적인 조건과 주관적인 조건이 필요합니다. 객관적인 조건이란 물리적인 것인데요. 여기선 자기정체성(에고)을 가진 에너지 덩어리가 되겠습니다. 기(氣)라고 부르기로 하지요.

    가령 잘게 부숴진 쇳가루를 생각해봅시다. 쇳덩이를 잘게 잘게 부수면 흩어지겠죠. 근데 자석을 갖다 대면 흩어졌던 쇳가루가 자석을 중심으로 다시 모이겠죠? 무쇠로서의 성질이 남아있다면요. 이때 쇳가루가 바로 기(氣)에 해당되고 자석은 주관적인 조건, 곧 관찰자의 의식이 됩니다.

    귀신의 존재를 결정하는 주관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라는 게 있죠? 관찰 대상의 위치와 에너지는 관찰자의 주관에 의해 결정된다는 겁니다. ‘관찰을 한 게 아니라 귀신이 스스로 나타난 것’이라는 사람도 많을 텐데요. 일단 귀신은 뉴톤물리학적인 존재는 아니니까 하이젠베르크류의 양자역학에 따라 이해하는 게 좋겠습니다. 물론 양자역학 훨씬 이전부터 이미 존재를 인식의 영역으로 이해한 사상들이 있어왔죠.

    <우리에게 귀신이란 무엇인가>(모시는 사람들刊)란 책에서 이찬수 종교문화연구원 원장은 “귀신을 믿는 이에게 귀신은 실상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태고종 열린선원 원장 법현 스님은 “귀신도 다른 모든 존재처럼 일정한 틀이 없다”라고 합니다. 모두가 관찰자(경험자)의 주관이 귀신의 존재를 결정한다는 뜻일 겁니다.

    그러므로 성리학자들이 조상의 제사를 설명하면서 “후손이 정성껏 제사를 지내면 그 순간 조상귀신에 다시 기(氣)가 모인다(남효온)”라거나 “죽어서 이(理)와 기(氣)가 흩어져도 이(理)만으로 조상과 후손이 교통할 수 있다(이이)”라고 말한 것은 결코 논리적 비약이나 신앙적 표현이 아니라는 겁니다.

    물론 오래전에 죽어 흩어져버린, 자기정체성조차 희미해진 에너지는 ‘자석’의 힘으로 다시 모인다 해도 밀도가 낮아져 물리적으로는 별 의미가 없을 겁니다. 그러나 바르도의 상태에서는 강한 감정이 남아 있게 되는데, 생전보다 그 힘이 9배나 증폭된다고 하니 신경을 써야 할지도 모르지요.

    귀신 이야기 범람하는 이유

    이제 2010년 이곳에 왜 그렇게 귀신 현상이 범람하는지 이야기해봅시다. 전쟁이 쓸고 간 땅에는 가시나무가 무성해진다고 합니다. 무슨 뜻일까요? 2005년 이후 한국의 자살율은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높다고 합니다. 10만명당 24명이 넘습니다. 원통한 죽음들이 그만큼 많다는 말이겠지요.

    그뿐이 아닙니다. 해마다 조류독감이다 구제역이다 해서 수백만 마리의 닭과 오리, 개, 돼지, 소들이 지옥같은 죽임을 당하는 이 땅에 어찌 음습한 독기가 없겠습니까? 4대강 사업은 또 어떤가요? 강에 기대어 사는 숱한 생명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공사현장에는 어떤 기운들이 남아있을 것 같습니까?

    그래서 지금 이 땅엔 앞에서 말한 물리적인 조건, 즉 귀신이 될만한 에너지들이 넘쳐납니다. 살아있는 사람들도 걱정과 불안, 두려움이 일상적인 게 되어버렸죠. 그러니 귀신 현상이 흔한 것은 당연합니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일수록 기괴한 이야기가 많이 돌아다닌다고 합니다. 노자(老子)는 <도덕경>에서 “도(道)로써 천하에 임하면 귀신이 주인노릇을 하지 않는다(以道蒞天下 其鬼不神)”고 했습니다. 역으로 귀신이 설치는 것은 세상에 도(道)가 사라졌기 때문이라는 거죠. 그래서 귀신 이야기는 산 사람의 몸 상태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고 실재와 인식에 관한 철학적인 예시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우리 시대가 겪고 있는 고통의 크기를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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