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중 빙자한 '퇴행 정치' 안돼
        2010년 08월 16일 07:0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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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들어가며- 이창우 선배에게

    지난 6.2지방선거 과정에서 부산시당은 야권 후보단일화에 참여하며 당 내부의 심각한 분란의 단초를 제공하기도 했다. 비록 심상정 후보의 사퇴처럼 극적인 효과는 없었지만, 부산시당 사태로 불려진 일련의 과정은 많은 당원들로 하여금 우려와 비판을 유발하기도 했다. 이런 갈등에도 불구하고, 야권 단일화에 대한 일관된 태도를 보여주었던 사람은 바로 부산시당 선대본본부장을 맡았던 이창우 전부산시당 부위원장(이하 존칭 생략)이었다.

    최근 이창우는 <레디앙>에 기고한 일련의 글들에서 진보신당이 ‘자폐증’에 빠져서는 안 되며 적극적으로 연합정치에 참여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이와 같은 그의 입장은 지난 지방선거 과정에서 보여준 야권후보 단일화 주장이 단지 지방선거만을 겨냥한 논리가 아니라 나름대로 일관된 정치노선을 노정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창우 주장의 심각성

    나는 지금까지 부산에서 이창우와 함께 정치적 여정을 같이하며 존경하는 선배로 가깝게 지내왔다. 그러나 나는 최근 이창우가 펼치고 있는 주된 논리들에 우려를 감출 수 없다. 나는 그가 선배 활동가로서 부산지역의 진보운동에 크게 기여해 왔고, 부산시당 내에서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또한 여전히 열정이 살아 숨 쉬는 영혼을 간직하고 있고, 진보운동에 헌신적임을 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연합정치에 대한 그의 주장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여기기 때문에 이에 대한 비판은 불가피한 것 같다. 이 글은 이창우와 그를 지지하는 입장에 선 여타 동지들과의 생산적인 대화를 위해 제기하는 질문이자 그의 주장에 대한 토론으로 이해해 주었으면 한다.

    2. 이창우의 정치적 입장 : 진보적 개혁주의?

    이창우는 스스로 자신의 정치적 노선이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 명시적으로 밝히지 않는다. 그는 언제나 현실 정치 지형에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말하고자 할 뿐 자신의 정치적 노선, 이념적 정체성은 모호하게 남겨둔다. 그러나 그의 정치적 입장은 그가 쓴 글들 속에 무의식적으로 남아 있다.

    이창우는 홍세화 선생님의 글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이하 저의 생각)”에서, 진보신당의 위치를 “민주당보다 왼쪽에 있고 민노당보다 합리적으로 소통될 것 같은 정당”이라고 규정한다. 그에게 있어 진보신당은 민노당이나 국민참여당(참여당)의 왼쪽에 있는 것도 아니고 고작 민주당의 왼쪽에 있는 정당이다.

    이는 이창우가 진보신당의 이념적 위치가 참여당과 같다는 것이며, 민주노동당 보다는 오히려 오른쪽에 있음을 무의식적으로 전제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같은 글에서 참여당이나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을 진보적 개혁정당이라는 하나의 세력으로 동질화하고 있다.

    이창우가 진보신당을 진보적 개혁정당의 범주에 포함시키는 것은 그의 정치 노선 또한 진보적 개혁정당 즉 참여당류의 개혁적 자유주의 세력과 근본적인 차이가 없다는 것을 추론할 수 있게 한다. 그러므로 이창우가 “진보신당의 자폐증을 우려한다(이하 자폐증)”라는 글에서, 개혁적 대중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것을 호소하는 이유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6.2 지방선거에서 개혁적 자유주의자들은 반MB 노선을 절대화 했으며, 그에 반대하는 진보신당을 분열주의로 매도했다. 이창우는 이런 ‘개혁적 대중’과의 소통을 부정한 진보신당의 노선은 근본적으로 틀렸으며, 그나마 심상정이라는 용기 있는 지도자가 있어서 진보신당이 개혁적 대중들로부터 면죄부를 받았다고 주장한다. 그는 반MB연대를 호소했던 시민사회의 자유주의적 기회주의자들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미 진보신당의 가치에서 벗어나 ‘개혁진영’으로 스스로를 우클릭 하고 있는 것이다.

    진보신당 가치에서 벗어난 것

    진보신당은 당 강령에서도 뚜렷하게 지적하고 있듯이 이 사회의 근본 모순인 자본주의의 극복을 자신의 목표로 하며, 현 단계에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대와 대안을 조직하는 것으로 구체화하고 있다. 이는 자유주의적 개혁주의자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지향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창우가 동지로 생각하는 참여당은 바로 그 신자유주의를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집단이다. 참여당은 자본주의의 현단계인 신자유주의에 근본적인 토대를 둔 채 그 부작용을 부분적 복지라는 허울을 통해 극복하려는 개혁적 자유주의자들 일 뿐이다. 그리고 최근 민주노동당 주류는 민주당을 지지함으로써 참여당과 근본적으로 다를 것이 없는 정치적 입장을 보여주고 있다.

    이창우 자신도 참여당이 이런 문제가 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는 과거에 쓴 글에서 노무현 정부 시절 그들의 실정을 누구보다도 주도적으로 비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이제 과거의 그가 아니다. 자신이 비판했던 신자유주의적 정책들을 입안한 인물들과 같은 정치적 정체성을 표방하며, 그들과의 세력 규합을 통해 민주당과 경쟁하고자 하는 선배 활동가가 되고 있을 뿐이다.

    진보신당이 신자유주의를 반대하는 것은, 그가 단순하게 쓰고 있듯이 이념에 집착하기 때문이 아니다. 이념만의 문제였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신자유주의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경제의 금융화와 투기화, 국가간 계층간 적대의 심화, 불균등 발전과 성장으로 인한 자연의 파괴, 사회적 제도적 안정을 파괴하는 시장화로 인한 삶의 질서 전체를 붕괴시키고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런 현실을 주도한, 구밀복검(口蜜腹劍)한 자들과 동거정당을 꾸리려 하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이 지배하고 있는데, 존경하는 선배가 자유주의적인 발상으로 그 길을 제시하니 따라가는 후배로서 가슴 아프지 않을수 있겠는가…

    3. 권력과 정의 : 이른바 ‘책임의 윤리’

    이창우는, ‘자폐증’에서 진보진영이 “문제제기나 의제설정만 하는 ‘등대정당’이 아니라 집권을 목표로 하는 ‘수권정당’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수권정당이 된다는 것은 단지 허무한 구호만을 외칠 것이 아니라 대중들의 삶에 대해 구체적으로 책임질 수 있는 ‘책임의 윤리’를 갖는 것이라고 한다.

    여기서 ‘책임의 윤리’가 말하는 바는 진보신당이 수권정당으로서의 실력과 비전, 실현가능한 집권 경로의 구성해야 한다는 의미가 포함된다. 더불어 진보적 개혁대중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노선을 선택해야 한다는 점도 덧붙여질 수 있다.

    이창우가 진보진영이 ‘수권정당’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주된 이유는 “힘없는 정의의 허망함” 때문이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권력을 장악하지 못하면 당이 이루고자 하는 의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 ‘힘없는 정의의 허망함’이다.

    진보진영이 권력을 장악해야 자신의 정책을 구체화할 수 있고, 그럴 때에만 고통 받는 대중을 구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그가 말하는 ‘책임의 윤리’이다. 민주노동당이 툭하면 ‘2012년 집권’하고 떠들던 관념적 구호와 자기 중심적 사고를 가지던 과거의 기억을 새롭게 보는 듯하다.

    "힘 있어야 정의 실현" 주장 안 믿어

    권력이 정의를 실현하는 수단이라는 말은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있어왔다. 힘을 통해 자신의 의지를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 모든 위정자들의 꿈임을 우리는 잘 안다. 이명박도 권력을 잡아야 자신의 구상을 실천할 수 있다고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힘이 있어야 정의가 실현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얼마나 많은 진보인사들이 힘 있는 정당으로 가서 무엇을 했던가를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또한 나는 “힘이 있어야 정의를 실현할 수 있다”는 낡고 기만적인 주장을 전혀 믿지 않는다. 지금까지 그 어떤 권력자도 진정한 정의를 실현하지 않았다. 권력을 잡기 위해 우익으로 전향한 자들, 권력과 손잡은 시민사회의 지도자들이 만들어 놓았던 처참한 결과를 여기서 더 언급해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권력의 달콤함 속에 안주하는 유럽의 사민주의자들은 거의 대부분 신자유주의의 세련된 옹호자로 탈바꿈 되었을 뿐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가깝게는 한국의 역사를 보아도 그렇고 세계 모든 역사를 보아도 그렇고 정의를 실현한 것은 민중들의 투쟁이었지 권력이 아니었다. 우리의 강령에도 나와 있듯이 동학농민군은 권력이 없었음에도 그 어떤 위정자들보다 더 위대한 정의를 실현했고, 도청을 지켰던 광주의 시민들은 80년대 전체를 정의의 시대로 변화시켰던 장본인들이었다.

    존경하는 이창우 선배 스스로도 그와 같은 세대의 자랑스러운 일원이 아니었던가? 이창우는 언젠가 부산시당 홈페이지에 하워드진의 타계를 애도하며, 그가 쓴 『미국민중사』를 언급했다. 이 책의 주제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권력을 지니지 못한 무지렁이 민초들이 미국 진보의 진정한 주체였다는 것이다. 하워드 진은 죽음을 앞두고서도 권력을 통해 진보를 이루겠다는 오바마의 말을 절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고 충고했다.

    『미국민중사』를 언급하던 이 산전수전 다 겪은 노장 활동가가 갑자기 ‘힘없는 정의의 허망함’을 외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아마 지난 6.2선거 과정에서 진보신당이 경험한 ‘끔찍한 고립’에서 오는 ‘좌절’ 때문일 것이다. 그는 이 좌절을 진보신당의 영원한 몰락의 전조로 보는 듯하다. 그렇기 때문에 진보신당 당원들을 두고 ‘자폐증’이라는 극단적 표현을 써가며 자신의 갑갑함을 이해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성급함에서 비롯된 과대망상

    그러나 이는 그의 성급함에서 비롯된 과대망상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번 지방선거에서 진보신당이 고립된 것은, 반MB연대라는 ‘과잉결정’된 정세의 결과였다고 생각한다. 또한 현재의 진보신당의 고립이 우리 당의 비전을 절망 속으로만 몰아 붙일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민주당이든 민주-민노-개혁정당의 연정이든, 한나라당을 대체하는 그 어떤 야당연합의 집권도 현재의 신자유주의 질서를 지속시킬 뿐이며, 그 과정에서 정의는 여전히 권력이 아니라 ‘저항하는 민중’들에게 있을 뿐이고 진보신당은 바로 이 저항하는 민중과 함께 민중의 집을 하나하나 만들어 나가고 투쟁함으로써 민중과 함께 역사의 주체가 되어야 하는 창당정신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4. 개혁적 대중정당인가 반신자유주의 연대인가?

    이창우의 주장은 ‘연합정치’로 요약된다. 진보신당은 애초에 ‘진보신당 건설을 위한 연대회의’였듯이,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을 위해 적극적으로 연합정치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앞에서 썼듯이, 그가 상정하는 연합의 대상은 민주당 왼쪽에 있는 모든 세력을 아우른다. 참여당, 창조한국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이 그들이다. 이는 물론 심상정의 구상과 동일하다.

    그러면서 진보신당이 능동적으로 연합정치에 임하지 못한다면 통합진보정당 건설의 주도권은 민주노동당으로 넘어갈 것이라 전망한다. 민주노동당은 과거의 패권적 사고가 그대로 남아있고, 이들이 통합진보정당을 주도하게 된다면 과거의 문제가 다시 불거지는 불상사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보신당이 연합정치를 주도하고 그 과정에 개혁적 대중들을 적극적으로 동참시킨다면, 민주당을 대체하는 개혁적 진보정당을 건설할 수 있다는 것이다.

    허망한 정세의식의 반영

    이창우의 비민주 통합정당은 덩치만 키우려는 것이 아니라 당의 중장기적 정치적 목표를 근본적으로 수정하려는 것이다. 수십 년간 민중운동이 지향해왔던 가치를 벗어던지고 ‘권력을 통한 정의’에 동참하려는 수정주의의 발호인 것이다.

    물론 이 구상은 이창우 자신의 허망한 정세의식을 반영하고 있을 뿐이다. 왜냐하면 참여당은 현재 진보신당이나 민주노동당과 통합할 의사가 전혀 없으며, 오히려 민주당과의 통합에서 어떻게 지분을 챙길 것인가를 두고 계산기를 두드릴 뿐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향후 통합정당을 주도할 세력은 민주당이 될 것이다. 정동영/김근태/천정배 등 비당권파들의 구상은 사실 야당 대통합이다. 이 통합의 핵심 대상은 물론 참여당과 창조한국당과 NGO당을 표방하는 자유주의적 시민사회 세력인 것이다.

    또한, 민주노동당을 통합의 대상으로 언급하고 있지만 민주노동당이 그런 선택을 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민주노동당 주류는 오히려 반한나라당이라는 명목으로 민주당과 연정을 구성하거나 강력한 선거연합을 통해 자신의 지분을 확대하려 할 것이다. 민주당에 대한 비판적 지지를 통해 반MB연대의 명목과 당의 지분 확보라는 실리를 동시에 취하려 할 것이다.

    이와 같은 민주노동당의 전략을 가장 돋보이게 하는 것이 진보신당과의 통합이다. 진보신당을 흡수할 수 있다면 민주노동당은 명실상부한 대표적 진보정당이 될 것이고, 이는 다시 민주당과의 협상에서 더 유리한 지위를 확보할 것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진보신당 내부에 정치적 지향을 분명히 하는 예비 정치인들의 지위도 한결 개선될 것이다. 안정된 당의 구조에 들어감으로써, 비록 작은 지분이나마 확실하게 다질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와 같은 통합정당의 건설에 반대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진보신당의 독자 강화

    민주노동당은 민주당과의 연정마저 공공연히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개혁의 성취를 중요한 정치적 목표로 설정할 것이다. 그리고 현재 상태에서 진보신당이 민주노동당과 통합한다면, 통합정당 내부에서 민노당 우파의 노선을 제어할 수 있는 현실적인 수단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진보신당의 주류는 민노당 주류에 흡수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진보신당이 지금 집중해야할 과제는 반신자유주의 연대의 강력한 구성이라고 생각한다. 민주노동당 주류가 신자유주의를 수용하여 서구 사민주의 정당과 같이 오른쪽으로 이동한다면, 현재 진보신당이 추구해야 할 것은 다양한 좌파를 재구성하여 민주노동당의 우익화를 비판하며, 민주노동당 내부의 건강한 좌파 세력과 연대를 모색하고 다양한 진보적 가치를 가진 세력들과의 통합을 이루어 내야 한국사회에서 제대로 된 진보정당 하나 생기지 않을까하고 생각하며 이것이 우리가 표방하던 진보의 재구성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진보신당의 독자 강화이다. 진보신당 스스로 독자적인 기반 위에 안정된 틀을 갖추어야만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는 진보진영의 독자적 힘을 구축할 수 있다.

    이를 토대로 연대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야만 힘을 가질 수 있고 민주노동당과의 통합은 장기적으로 민주노동당이 보수정당과의 관계를 분명히 청산하고, 좌파연대가 민주노동당 우파세력을 최소한 견제할 수 있는 힘이 될 때 진행되어도 늦지 않다. 그 기간 동안 진보신당은 독자 생존을 모색하는 것이 진보전당운동의 진정한 대의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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