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대 깨는 건 한일 두 나라 똑같아"
        2010년 08월 16일 06:2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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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에 다녀왔다. 일본인들과 한국인들이 함께 참여하는 NHK의 ‘니혼노 고레카라 : 일본, 지금부터’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여러 가지 주제를 가지고 논의를 하는 도중 가장 흥미로운 것은 경제 분야 토론에서 나왔던 ‘한국을 배우자’라는 이야기였다. 그것은 단순히 ‘욘사마’ 열풍으로 시작된 이미지의 향연이 아니었다.

    일본 주류 "한국을 배우자"(?)

    일본사회의 주류는 한국을 배우자고 외치고 있었다. 삼성, LG, 현대에게 반도체 시장에서 밀리고, 경쟁력 순위에서 한국에 2009년 기준으로 밀렸단다. 한국의 젊은이들에 비해 일본의 젊은이들이 무기력하다는 것도 일본 주류사회의 걱정거리였다.

    한국의 젊은이들은 스펙을 쌓기 위하여 전지구적으로 가장 훌륭한 영어 성적을 가지고 있고, 배낭여행을 하고, 글로벌한 인턴십에 전세계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또한 초등학교부터 무한경쟁에 노출된 한국의 젊은이들은 늘 ‘경쟁’의 감각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일본의 젊은이들이 이를 본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일본의 어떤 저널리스트는 일본의 대학에서는 미국으로 유학을 보내준다고 해도 신청자가 없어서 기회가 없어진다는 이야기도 전하면서 일본 젊은이들의 무기력함에 대해서 꾸짖기 시작했다.

       
      ▲ 마쓰모토 하지메가 코엔지에서 운영하는 상점 <아마추어들의 반란> 모습 (사진=양승훈)

    논의 중간 한국과 일본 사회 공히 나타나는 ‘격차(양극화)사회’에 대한 문제점에 대한 이야기도 간간이 나오기도 했다. 자살률 1위, 2위를 다투고 있는 한국과 일본의 문제가 등장하기도 했다. 경쟁에 적응하지 못하는 한국과 일본의 젊은이들의 현실과 양극화를 이어서 논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가의 일’과 ‘기업의 일’과 ‘시민사회의 일’을 나누면서 각각의 영역에서 어떻게 문제를 풀고, 함께 어떻게 협력해서 글로벌한 경쟁에 대한 대응과 복지사회를 달성할 거냐고 묻는 일본 기업 로손(LAWSON) 사장의 주장에 이야기는 다시금 경제발전과, 그리고 사회경제적으로 ‘건강한 국가’를 만들기 위한 방법 쪽으로 모아졌다. 로손 사장의 주장이 워낙 ‘합리적’이었기 때문에 논의는 그의 프레임으로 빨려 들어갔다. 한국의 기업하는 사람들과 그들을 지지하는 ‘이데올로그’들의 말과는 달리 훨씬 정교했다.

    다른 한편 일본의 집권당인 민주당이 바라보는 경제성장에 대한 프레임은 ‘신자유주의’의 최첨단을 달리고 있는 한국의 집권당과 달랐다. 한국의 민주당과도 달랐다. 그들은 2008년 경제위기 이후 드러난 ‘신자유주의의 폐해’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했다.

    "일본 민주당, 그들은 케인지안이었다"

    비정규직이 늘어나기 때문에 가처분소득이 줄어들고, 고용이 불안해진 상황에서 소득이 불안정하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소비를 줄여 결국에 내수경기의 침체가 벌어지며 그것이 일본경제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는 진단이었다. ‘경쟁력’의 관점에서도 비정규직이 증가하여 불량률이 증가하고, 도요타 자동차의 ‘리콜 사태’도 그러한 관점에서 진단하기도 했다. 요컨대 그들은 케인즈주의자들이었다.

    경제정책에 대한 논쟁에 대한 평가는 또 따로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경제적 입장의 ‘상대적 진보’와 상관없이 일본의 젊은이들에 대한 기성세대의 이야기는 한국과 비슷했다. 일본의 극우파들이 그들을 ‘패기’가 없다며 훈계할 때, 일본의 민주당의 주요 세력은 젊은이들에게 글로벌한 감각이 없냐고 꾸짖었다.

    일본에서 주로 들었던 일본 젊은이들에 대한 기성세대의 주장이 대체로 이랬다. “애들이 아무 것도 모르고 아무 것도 안 한다.” 이런 이야기는 운동권 주위에서도 들을 수 있었다. 일본에서 잘 운영되고 있는 전통적인 풀뿌리 운동, 생협운동들을 진행하는 절대다수는 60대 정도의 전공투 세대였다. 나이든 활동가들은 젊은 애들이 오지를 않는다며 꾸짖곤 했다.

    일본의 여러 가지 잡지를 만드는 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프리터스 프리Freeter’s Free>라는 잡지의 주요 구성원들은 30대 후반, 조금 나이가 많으면 40대 초반이었다. 대학교수, 평론가, 여성주의 활동가, 노조 간부 등으로 이루어진 그들은 젊은이들이 ‘이론’을 모른다며 꾸짖기 시작했다. 젊은 활동가들이 “과연 이론을 알고 말하는 것”인지에 대해 논하고 꾸짖기 시작했다. 여기에서는 “애들이 가라타니 고진도 모르고, 맑스의 이론도 모른다!” 버전이었을 따름이다.

    물론 그들은 지역별로 있는 20대들의 ‘프리타 노조’와 연대하고 있었고 훨씬 더 젊은 세대의 문제에 대해 잘 이해했지만, ‘이론’에 대한 강박은 한편으로 활동가들과의 벽 같아 보였다. 또 재미있는 것은 그들은 한국의 운동권에 대해 배우고 싶어 한다는 점이었다. 어떻게 대중을 그렇게 많이 동원하냐며 부러워했다. 젊은이들이 훨씬 더 능동적이라며 부러워했다.

    일본 20대들의 분개

    흥미로운 것은 코엔지에서 만났던 20대 활동가의 이야기였다. 그들은 기성세대가 그렇게 말하는 것에 대해 분개했다. 자신들도 공산당을 지지하고, 신문도 만들고, 온라인에 글도 쓰고 있는데 기성세대가 욕한다는 것이었다.

    동시에 그 젊은 활동가는 사회주의, 공산주의 모두 다 ‘근대’의 이데올로기 아니냐며 왜 다른 방식으로 운동을 사고하지 못하는지에 대해 비판을 했다. 물론 그도 ‘근대적’인 이념인 아나키즘을 자신의 입장이라고 하긴 했지만, 그의 말에는 들을만한 구석이 분명 있었다.

       
      ▲ 마쓰모토 하지메 (사진=양승훈)

    마쓰모토 하지메(빈민운동가)가 있는 코엔지에 한국에서 많은 활동가나 이론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찾아와서 마쓰모토 하지메와 ‘동네 사회주의’에 대해서 논의하려고 온다고 한다. 그러면 마쓰모토는 “나 사회주의 모르는데”하는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그냥 ‘재미있게’ 살려고 하는데 자꾸 이름 붙이는 게 웃긴다는 반응이다.

    한국에서 한동안 마쓰모토 하지메, 아마미아 카린, 유아사 마코토 등을 ‘영웅화’해서 마케팅했던 것도, 다른 한편에서 좌파들이 그들의 노선을 ‘이론 부재’라고 비판하는 것도 그들에 대한 ‘진실’을 말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아보였다. 모두 스테레오타입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던 것은 아닐까.

    일본사회는 우파들과 민주당과 같은 세력이 똑똑해서인지, 자본주의 사회가 고도화되어서인지, 아니면 노인 활동가들의 힘이 너무 세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사회가 한국에 비해 빽빽하고 틈이 별로 없어서 ‘젊은 운동권’들이 비집고 들어갈 여지가 그리 커 보이지 않았다.

    "20대 혼내는 건 두 나라 똑같아"

    일본에서 가장 급진적인 것처럼 보이는 운동들도 한국 기준으로 평가하면 ‘애들 장난’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에 반해 한국의 젊은이들은 그들에 비해 훨씬 역동적이다. 집회는 격렬하고, 촛불을 들었던 ‘10대들’이 이제 20대가 되었다.

    진보정당에 대해서도 일본에 비해 훨씬 더 관심이 있고 온라인에서 젊은이들은 여러 가지 훨씬 더 많은 논쟁을 벌인다. 일본에는 블로그에 글을 쓰는 20대가 거의 없다고 한다. 게다가 한국사회도 일본사회보다는 틈이 많아 보이고 여러 면에서 여지가 있어 보인다.

    결국 이 꾸짖는 것에서 조금 벗어나서 다른 방식의 말 걸기가 진행된다면 젊은이들이 한국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지 않을까. 그런데 나오는 이야기라 봐야 이재오 특임장관처럼 취업/대학 재수생을 농촌, 공장으로 보내겠다고 하는 식이다. 좌파나 진보라고 해봐야 특별히 젊은이들을 끌어당기는 유인은 가지고 있는 것 같지 않아 보인다. 관성적인 조직 운영의 방식으로, 즉 하던 대로 대하고 젊은이들이 관심 없거나 떠나면 꾸짖는다.

    일본이 한국을 배우든, 한국이 일본을 배우든 결국 두 나라가 공유하고 있는 것은 혹시 젊은이들에 대한 꾸지람이 아닐까? 그들의 스테레오타입 바깥에 젊은이들의 진실이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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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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