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꽃다지, 그 이름을 기억해
        2010년 08월 16일 11:3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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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겐 꽃다지에 대한 희미한 기억이 있다. 초등학생 때 아빠 손에 이끌려 간 노천극장. 그곳 무대에서 남녀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는데 어떤 곡이었는지는 생각나지 않는다. 그냥 TV에서 봤던 대중가요와 뭔가 다르다는 것, 그리고 멜로디가 생경하다는 정도였다.

    “저 사람들 이름이 뭐야?” “꽃다지란 그룹인데 생긴 지 얼마 안 된 거 같네.”

    그때 아빠는 그 공연에 왜 날 데리고 갔을까. 가끔씩 품는 의문이었는데, 나중에 대학생이 된 뒤 운동이라고 말하기도 부끄러운 운동 언저리를 헤매고 있을 때 술자리에서 아빠가 슬쩍 힌트를 던져줬다. 꽤 긴 얘기 속에서 내가 발췌한 건, 본인도 노조원으로 열심히 활동해봤지만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 그러니까 너도 쓸데없는 데 시간 낭비하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하라는 것이었다. 아빠가 노조원이었다니! 순간 근면하고 건실했던 가장이 한 남자로 보였다.

       
      ▲ 지난 13일 상상마당 LIVE HALL에서 열린 꽃다지 콘서트 (사진=오명록)

    ‘이 사람은 어떤 인생을 살아왔을까. 내가 봐왔던 아빠의 모습이 전부가 아니구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고 어느덧 성인이 그 아이와 술잔을 마주하면서 스쳐지나가듯 내뱉은 과거사가 왜 그렇게 가슴에 박혔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내게 꽃다지란 이름을 처음 각인 시켜준 그는 30년 넘게 성실히 한 회사를 다니고 있고 몇 년 후 퇴직을 앞두고 있다.

    다시 만난 꽃다지

    어린 시절 기억 속에 묻혔던 꽃다지를 다시 만난 건 대학 1학년 때 들어간 동아리에서였다. 내겐 가히 신세계였던 그 공간에서 새로운 문화와 사람들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이고 있을 때 민중가요는 훌륭한 촉매제가 돼줬다.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하나의 목소리로 같은 노래를 부르고, 너와 내가 우리가 되어 세상을 바꾸자는 외침에 심장이 파르르 떨렸던 거 같다. 이 사람들을 위해서라면 나를 던져도 상관없을 거란 착각까지 들 정도로. 창피하게도 선배가 ‘운동’에 ‘운’자만 꺼내도 멋있어 보이던 시절이었다. (오해하지 마시길. 운동하시는 분들은 늘 존경스럽다)

    그해 여름, 농활을 준비하면서 율동을 처음 배웠는데 선택된 곡이 ‘바위처럼’이었다. 몸치에 박치인 나로선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는데 다들 어찌나 호흡이 척척 맞던지 의기소침해져선 자꾸 뒤로 내뺐던 기억이 난다. 그런 내 모습이 선배들에겐 딱 놀림감이어서 한동안 애정 어린 구박을 받았던 거 같다. 여하튼 연습 때문에 너무 많이 들어서 이골이 난 ‘바위처럼’이 꽃다지의 곡이라는 건 시간이 한참 지난 뒤였다. 무지했던 난 이렇게 꽃다지를 또 기억 속에 묻어뒀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직장인으로 몸과 마음이 찌들고 있을 때쯤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주말에 꽃다지 공연이 있는데 보고 리뷰를 써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이었다. ‘아, 내가 꽃다지에 대해 뭘 안다고. 팬이거나 그 음악에 대해 관심 있는 사람이 써야 하지 않나.’ 근데 내가 뱉은 첫마디는 “꽃다지 너무 좋죠. 꼭 가고 싶어요.”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어린 시절 아련한 기억과 대학생 때 누군지도 모르고 춤만 췄던 그들의 음악을 제대로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 같다. 나름 정한 리뷰 컨셉은 이랬다. 음악 평론가도 아니고 민중가요 팬도 아닌 일반인이 접한 꽃다지. 그렇게 공연장에 들어섰다.

       
      ▲ 사진=오명록

    느긋하게 의자에 앉아 공연을 즐기면 된다고 예상했다. 안내데스크에서 만난 홍보 담당자의 첫 마디. “늦게 오셔서 자리가 없어요. 서서 보셔야 될 거 같은데 괜찮으시죠?” 이게 무슨 황당한 경우람. 그녀는 분명 내게 리뷰 기사를 청탁하면서 티켓을 준비하겠다고 얘기했었다. “자리가 없다고요?” “네. 그렇게 됐어요.”

    난 그들에게 무엇을 기대했을까

    알고 보니 좌석 배정이 따로 없는 선착순 입장이라 먼저 온 사람이 자리에 앉는 시스템이었다. 순간적으로 짜증이 확 일었다. 자리를 마련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면 그녀는 최소한 내게 공연이 선착순 입장이니 가능한 빨리 오라는 정보는 줘야 마땅했다. 그것도 모르고 공연 10분 전에 설렁설렁 들어온 내게 두 시간 동안 서서보라니.

    그건 둘째 치고 좌석과 입석 가격을 다르게 받는 것도 아닌데 늦게 도착했다는 이유로 (안 좋은 자리도 아닌) 공연 내내 서서 보라는 건 관객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정해진 공간에 정해진 좌석 수가 있는데 왜 더 많은 표를 판 거지?’ (이 의문에 대한 답은 후에 밝히겠다)

    좌석은 이미 만석. 통로까지 꽉 채운 사람들이 꽃다지가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앉은 사람이 반, 서 있는 사람이 반일 정도로 인파가 넘치는 공연장, 대체 어디쯤 서 있어야 무대가 잘 보일까. 운 좋게도 앞에 선 사람이 키가 작아 하이힐을 신은 내 키가 머리 하나 쯤은 더 컸다. 곧이어, 스크린이 사르륵 올라가고 꽃다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남자, 여자, 여자, 남자.

    내가 아는 ‘바위처럼’은 없었다. 가사를 곱씹어야 할 거 같은 비장함, 왠지 팔뚝질이나 어깨동무를 해야 할 거 같은 분위기, 함께 후렴구를 외쳐야 할 거 같은 느낌도 없었다. 난 뭘 기대하고, 뭘 예상했던 걸까.

    그저 아름다웠다는 말 밖에

    꽃다지에 갓 입단한 홍소영이 말한다.

    “두 달 전에 다니던 직장에 사표 내고 들어왔어요. 노래가 너무 하고 싶었거든요. 지금 이 무대가 꿈만 같아요. 떨려서 제대로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 사진=오명록

    노래한다고 직장 때려 친 사람도 신기하지만 찾아온 공간이 꽃다지라니. 누가 민중가요가 한 물 갔다고, 더 이상 현실에 맞지 않는다고 얘기할 수 있나. 그녀의 존재가 곧 반증이 아닐까. 데뷔식을 치르듯 긴장된 표정으로 솔로 곡을 부른 그녀, 일순간 공연장을 홍소영이란 사람으로 채워버린 그 목소리에 난 완전히 넋이 나가 버렸다. 진심으로 열망하는 무언가를 해낼 때 저런 모습이 나올 수 있구나, 하는. 아름다웠다는 말 밖에 못 하겠다.

    두 아이의 엄마 정혜윤이 말한다.

    “꽃다지가 힘들었던 때가 있었어요. 운영도 그렇고 사람들이 우리 노래를 많이 찾지 않을 때 다들 많이 힘들어 했는데 그때 힘이 되어 준 아이가 있어요. 어느덧 그 애가 커서 열 살인데, 그 아이를 위해 이 곡을 만들었어요.”

    다름 아닌 정혜윤의 아이다. 가수인 엄마를 따라 다니며 공연장을 누빈 아이, 꽃다지 멤버 모두의 조카이자 그들이 모두 삼촌, 이모인 아이. 그 아이를 키우는 정혜윤의 노래에서 한 엄마의 일상을 엿볼 수 있었다. 요즘 세상에 아이 키우기가 어디 만만한가. (그래서 난 결혼도, 출산도, 육아도 두렵다. 국공립 보육 시설 하나 제대로 못 갖추면서 출산율 운운하시는 분들, 그럼 니네가 낳아라) 거창하게 정치까지 올라 갈 것도 없다. 생활 그 자체가 전쟁인 시대, 정혜윤의 노래는 여느 투쟁가 못지않게 치열하게 느껴진다.

    우리에겐 위로가 필요해

    일부에선 꽃다지의 노래를 두고 ‘(점점 갈수록) 투쟁가 같지 않다’, ‘힘을 너무 뺐다’는 평을 내린다고 들었다. 노래 주제가 일상적이어서? 이쯤하면 ‘투쟁’의 정의부터 다시 내려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파업, 해고, 임금 협상 등 소위 굵직한 것만 투쟁은 아니지 않나.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간 어제도, 지금 이 순간조차도 우린 크고 작은 결정들을 내리며 투쟁 속에 사는 게 아닐까. 잔잔한 일상의 문제들을 떼어놓고 큰 것만 바라보는 것도 어불성설일뿐더러, 사실 사안의 우선순위도, 가치도 함부로 매길 수 없는 문제라 생각한다. 공연을 보면서도 인상적이었던 건 노랫말이 강한 곡보다 ‘너무 힘들면 잠시 쉬어가도 괜찮아’ 하는 위로 시리즈의 노래에 사람들의 반응이 더 컸다는 거다. 그래, 우리에겐 위로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노래 분위기가 말캉해서? 투쟁가다운 게 뭔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앞에서 말했듯 운동 경험 없는 일반인 입장에서) 쉽게 생각하면 이런 노래도 있고 저런 노래도 있는 거 아닌가. 좀 더 전투적인 노래가 필요한 현장이라면 그런 곡을 선택하시면 그만, 꽃다지의 방향성이나 정체성을 두고 가타부타할 일은 아니라 여겨진다. 물론 각자 생각과 의견의 자유는 마음껏 펼치시고요.

       
      ▲ 사진=오명록

    대신 몇 곡을 더 듣고 판단하면 좋겠다. 그들이 변함없이 경각심을 일깨우는 끈을 놓지 않았다는 걸 온전히 느낄 수 있는 노래들이다 – 방파제에 갇혀 썩어가는 시화호의 얘기를 다룬 <난 바다야>, 승자독식사회 대한민국을 신랄하게 꼬집는 <파이터>, 대통령 아저씨, 정신 좀 차리세요 <Hey, Mr. Lee> 등. (*인터넷으로 꽃다지 노래를 전부 듣긴 어렵다. PLSong.com에서 일부 감상이 가능하다. 올해 말에 새 음반이 나올 예정이라니 관심 있는 분들은 겨울을 기다려 주시길)

    공연이 끝나고 이어진 앵콜 요청. 신청곡들이 쏟아져 나왔다. 누군가 소리쳤다. “바위처럼이요!” “네? 바위처럼이요?” 꽃다지 멤버들이 너털웃음을 짓는다. 역시 꽃다지에서 ‘바위처럼’을 빠트릴 순 없지. 근데 너무 시끄러워서 말을 잘못 알아들은 거였다. ‘바위처럼’이 아니라 다른 곡을 말한 거였는데 뭔지는 모르겠다. 여하튼 직접 들을 수 있는 기회를 놓쳐서 조금 아쉬웠다는. 혹시 아나, 내가 바위처럼에 맞춰 춤췄을지도.

                                                                * * *

    같이 간 지인에게 두 시간 내내 서서 관람한 거에 대한 불만을 토했다. 구두 신은 발은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고 (잠시 스쳐지나간 생뚱맞은 생각은 서서 근무하는 직업이 얼마나 힘든지 그 고충을 잠시나마 알겠다는 것) 공연 기획자가 무모한 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근데 나란 인간이 그 정도 그릇이었나 보다. 나중에 확인한 꽃다지 대표의 트윗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2만 5천원이라는 티켓 가격으로는 공연장을 현매가로 채워도 적자라는… 대관비, 세션비, 진행비를 생각하면 4~5만 정도 티켓가격을 책정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에 가까운 돈이죠. 뭐 그래도 최근 10년간의 콘서트 중에 두 번째로 최저 적자입니다. 다들 콘서트를 하고 싶어도 못하는 이유예요. 활동비는 그대로 유지하더라도 콘서트는 하자는 게 꽃다지의 입장. 착한 관객들의 격조 높은 콘서트 관람 태도가 고마웠어요>

    꽃다지의 상황에 무지했던 난 결국 격조 높은 관객이 되지 못했다. 매사를 딱 부러지게 칼로 재단하는 게 시크한 것인 양, 마치 원칙도 상식도 없다는 식으로 생각한 내가 부끄럽다. 그러기 전에 그들이 처한 입장과 그들이 보여줄 수밖에 없는 ‘상식’을 이해했어야 했다.

    심심한 반성 차원에서 홍보를 덧붙인다. 올해 말 선보일 새 음반을 위해 공동제작자를 모집한단다. 십시일반으로 제작비를 마련하기 위한 모금인데, 자세한 참여 방법은 http://hopesong.com (8월 18일 오픈)에서 확인하시길.

                                                                * * *

    공연 다음날, 아빠한테 물어봤다. “어렸을 때 나 데리고 꽃다지 공연 간 거 기억나? 어제 공연 있어서 보고 왔는데.” “꽃다지? 글쎄, 그랬었나?” 싱거운 우리 아빠, 기억이 안 난단다. 내겐 어릴 적 아빠와 쌓은 추억 중 하나인데, 그에겐 뭐였을까? 그냥 한번쯤 딸애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공연이었던 걸까. 만약 가능하다면 나도 내 아이에게 꽃다지를 보여줄 테다.

    “엄마, 저 사람들 이름이 뭐야?” “꽃다지”

    그리고, 훗날 아이가 커서 다시 물어보거든 잊지 말고 꼭 대답해 줘야지. (그러려면 꽃다지가 앞으로 최소한 십년 이상 활동하셔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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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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