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필작가, '몇 억'씩 챙기다?
    By 나난
        2010년 08월 10일 01:1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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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게는 몇 십 권에서부터 많게는 수백 만 권씩 팔리는 책.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저자만을 기억할 뿐, 그 책에 들어간 수많은 노동은 알지 못한다. ‘출판.’ 그 중에서도 외주출판 노동자들의 근로실태는 열악하기 그지없다. 편집자, 디자이너, 번역가, 대필가, 글작가, 그림작가 등.

    이에 <출판노동자협의회>는 [외주출판, 노동을 말하다]를 통해 책 뒤에 감춰진 외주출판 노동자들의 노동에 주목하고, 그들 스스로 자신의 노동을 말하고자 한다. 노동시간과 노동강도, 통제방식 등 불연속적 노동환경에 처한 그들이 스스로 ‘권리찾기’에 나선 것이다.

    <출판노동자협의회는>는 이번 기획을 바탕으로 외주출판 노동자와 유사한 형태로 일하는 가내노동자의 노동권 확보를 위한 기틀을 마련하고, 향후 법적․제도적 권리보장을 위한 입법안을 확정한다는 계획이다.

    이번 기획은 상대적 약자일 수밖에 없는 외주출판 노동자들의 처지를 고려해 모든 글은 익명으로 처리될 예정이다.이번 기획은 <출판노동자협의회>가 기획했으며 <레디앙>이 전한다. <편집자주>

    “베스트셀러 목록을 눈여겨봐라. 그중 얼마나 많은 것이 유령들의 작품인지 알면 아마 놀라 자빠질 것이다. 논픽션에서 소설까지 모두. 우리는 디즈니 월드의 숨은 일꾼처럼 출판계를 지탱하는 그림자 군단이다. 유명 인사들의 지하 터널을 따라 달리다가 두더지처럼 여기저기에서 튀어 올라 이 캐릭터 저 캐릭터에 옷을 입혀 주는 식으로 이 마법 왕국의 말끔한 환상을 보존하는 존재들인 것이다.” – 로버트 해리스 <고스트라이터> 중에서

    얼마 전 개봉한 한 영화의 주인공을 맡은 배우는 이완 맥그리거였다. 잘 생기고 멋진 이 주인공의 직업은? 영화 제목대로 ‘유령작가’, 아니 ‘대필작가’ 되시겠다.

    원작소설의 제목 ‘고스트라이터’는 우리말로 ‘대필작가’다. 소설 속 주인공은 케임브리지를 나온 수재이며, 거물급 정치인의 회고록을 대필하는 대가로 약 3억 원 가량의 고료를 제안 받는다. 이는 평소 그가 받던 금액의 약 10배쯤 되는 액수라고 나온다. 즉 그는 다른 대필 작업을 할 때는 한 3천만 원 정도 받았던 모양이다.

       
      ▲ 영화 <유령작가>의 한 장면

    이쯤에서 이미 내 눈은 튀어나오기 직전이다. 명색 한국의 ‘고스트라이터’ 노릇을 해본 바 있지만 대필을 하고서 그만큼의 고료를 받아본 적도 없고, 주변에서도 그만큼을 받는다는 얘기는 거의 못 들어봤기 때문이다.

    궁극적 목적이 아닌 일시적 수단으로서의 대필

    대필이란 것을 처음 시작한 지도 한 6~7년이 되었다. 문예창작학과의 공부를 하고 나서 신춘문예나 각종 공모전에 낼 작품을 습작하고 있던 그 무렵에는, 설마 내가 7년 후에까지 대필이란 일을 하고 있게 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세상일이라는 게 대개 그렇듯이, 꿈을 품고 달려든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꿈을 품고 습작을 하던 소위 ‘작가지망생’이라고 해서 모두 성공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런 와중에 한 출판사의 아는 선배가 ‘아르바이트 삼아’ 한 번 해보라며 던져 준 대필 일을 그야말로 ‘이번 한 번만’ 하자며 아무 생각 없이 맡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시작으로, 틈틈이 내 글의 습작을 하다가, 비정규직으로 다른 일도 하다가, 잡지나 사보에서 부탁받은 글도 써주다가, 또 궁하면 대필도 한 건 더 하다가, 이러면서 이름 없는 작가지망생의 대필 경력이 쌓이기 시작했다.

    ‘위대한 대필작가가 되어서 훌륭한 출판물을 만들어야지’라고 마음먹고 시작한 게 아니라, ‘알바’ 삼아 한 번 했던 것이 두 번이 되고, 두 번이 세 번이 되다 보니 어느 날 ‘대필작가’로 불리고 있더라는 것이다.

    그간 15권이 넘는 책의 대필을 했고, 이미 작성된 원고의 문장을 다듬는 윤문 작업도 여러 권 했다. 프리랜서라는 이름으로, 잡지 청탁 원고를 써주고 고료를 받는 일도 해오고 있다. 글로 할 수 있는 노동이란 노동은 닥치는 대로 했던 셈이다.

    대필을 맡은 책의 저자들은 TV 프로그램이나 광고에 나오는 유명인도 있었고, 회사의 CEO도 있었고, 아주 유명하진 않지만 자기 분야에서 나름 명성을 쌓은 사람들도 있었다. 그 책들 중에는 건강과 관련된 실용서적도 있고, 자전 에세이도 있고, 자전적인 이야기를 가미한 자기계발서도 있다.

    어떤 책들은 그 저자의 대표 저서이자 ‘스테디셀러’라고 불리며 몇 년이 지나도 서점에서 꾸준히 팔리고 있는 경우도 있다. 또한 해당 출판사들은 우리나라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대형 출판사가 대부분이다.

    유령의 존재를 절대 알리지 말라

    그러나 결코 허술하달 수 없는 대필 경력이 쌓이고 나서도 나 자신이 ‘대필작가’라 불리는 것은 별로 자랑스럽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정해진 원고료를 받기 때문에 그 책이 잘 팔린다고 해서 내게 이득이 더 생기는 것도 아니거니와, 일에 대한 자부심이 큰 것도 아니다. 우선 대필은 노동의 대가를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일이다.

    출판의 다른 분야, 예를 들어 기획이나 편집, 교정교열, 디자인, 영업 같은 세분화된 분야들, 즉 한 권의 책을 만드는 데 있어 반드시 필요한 각 분야의 전문 인력들이 (수입의 수준은 둘째 치고) 어찌됐건 책의 판권에 이름도 나가고 전문 일꾼으로 인정받는 반면, 분명 그 일을 했고 그 책이 출간되는 데 있어 매우 비중 있는 기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판권에 이름 한 글자 찍힐 수 없는 유일한 분야가 대필이다.

    계약을 한 출판사와 계약서 한 장씩을 나누어가지고, 저자와 담당 편집자가 대필자의 존재를 알 뿐 나머지 과정에서는 철저히 ‘유령’으로 취급되기 때문이다.

    영미권 출판계에도 대필이라는 분야는 엄연히 존재하지만, 공저자라는 이름으로 책 표지에도 이름이 올라가곤 하는 그들과 달리 한국 출판계에서는 대필을 여전히 ‘절대로 존재를 밝혀서는 안 되는 터부’로 인식한다. ‘너의 존재를 절대 알리지 말라’는 것이다.

    다른 건 다 올라도 대필 고료는 안 오른다

    무엇보다 징글징글한 건 고료다. 원래 출판 쪽의 노동 비용은 물가가 아무리 올라도 오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지만, 고료가 오르지 않는 건 대필도 만만찮다.

    내가 맨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 매뉴얼과 자료 정리 분량이 많은 실용서적의 경우 약 500만 원을 받았고, 글이 위주인 에세이 종류인 경우 700만 원 안팎을 받았다. 그런데 7년쯤 지나 물가도 오르고 신입사원 초봉도 오르고 밥값도 오르고 교통비도 오른 지금, 유명인의 에세이를 맡길 때 출판사가 제시하는 원고료는 단 한 푼도 오르지 않았다.

    오르기는커녕 내가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보다 훨씬 적은 비용을 제안하는 경우가 더 많다. 고료가 너무 적다는 의견을 내비치면 ‘됐다. 다른 작가 알아보겠다’고 하고서 연락을 끊는다.

    잘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 책 한 권을 써주고서 한 번에 몇 백 만원씩을 받는다고 하면 ‘괜찮은 거 아냐?’라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계약서를 쓰고, 한 달쯤 저자 인터뷰를 하고, 한 달 반에서 약 두 달 정도 원고를 집필하고, 원고를 넘긴 후 책이 만들어지고 인쇄되고 출간되기까지는 수개월 이상이 소요된다.

    그런데 대개의 경우 대필작가는 원고만 써주면 바로 고료를 지급받는 것이 아니라, 처음에 약간의 계약금을 지불받은 후 책이 ‘출간’되고 한 달이 지나야 나머지 금액을 지급받는 경우가 많다. 이것이 대개의 출판사의 관행이란다.

    총 원고료를 그간 소요되는 개월 수로 나눠보면, 조그만 회사의 신입사원 월급은커녕 그야말로 최저 수준의 ‘알바 비’나 받는 것과 그리 큰 차이가 없다. 대필만 해서는 먹고 살 수 없다는 얘기다.

    나보다 연배가 위인 이른바 선배 대필작가들의 경우 여건은 오히려 더 나았다. 10년도 더 전에 지금보다 더 높은 단가를 받고 일하기도 했다. 왜일까?

    우선 대필작가의 공급량이 많아졌다. 대필작가의 이력은 그야말로 다양하다. 전직 기자, 전직 출판사 직원, 전직 방송작가, 작가지망생, 전국의 문창과 재학생이나 졸업생, 무명작가, 심지어 이미 등단을 하고 책을 낸 기성작가들도 생계를 위해 대필에 뛰어든다.

    자서전 대필 등을 전문으로 하는 대필 대행업체들도 존재한다. 현재 유명해진 작가들 중에도 데뷔 초나 무명 시절 대필을 해본 경험은 흔하디흔하다. 쉬쉬할 뿐이다.

    대필작가가 필요할 수밖에 없는 출판 시스템

    출판사에서 대필자를 구하는 수요 자체도 예전에 비해 훨씬 늘었다. 원래 대필이라고 하면 ‘자서전 대필’을 떠올리기 쉽다. 자비출판용 자서전의 대필에 대한 수요가 많은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흔한 정치인 대필이 대표적 예다.

    그러나 자서전이 아니더라도 출판계의 대필 수요가 급증했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예전에는 책이라고 하면 전문 지식과 저술 능력이 있는 저자의 콘텐츠가 중요했지만, 21세기 사회에서 책이란 하나의 상품이다. ‘저자’가 저술능력이 전혀 없어도 출판사에서 그 책이 ‘팔릴 만하다’고 평가되면 얼마든지 출간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것이다.

    책은 이제 하나의 기획물이자 상품이므로, 상품 가치만 있다면야 대필작가 하나쯤 구해 글을 만들게 하는 건 출판사 입장에선 일도 아니다. 유명인의 책, 연예인의 책들이 폭발적으로 양산되는 현상도 같은 맥락이다.

    물론 저자 자신이 다재다능해서 다른 일도 잘 하는데 글도 꽤 잘 쓰는 경우도 있을 수 있겠지만, 글 못 써서 책 못 내는 일은 없단 얘기다. 책상에 앉아 자판 두들길 시간이 없어도, 그들이 ‘썼다’는 책은 척척 나온다.

    특출한 문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매끈하게 잘 읽히는 평이한 문장 수준이면 상품을 만드는 데 큰 문제가 없기 때문에, 대필작가에게 요구되는 문장력도 엇비슷하다. 전직이 뭐든, 경력이 얼마나 되었든, 무명작가든 등단 작가든 그리 큰 차이가 있는 것도 아니므로, 발에 차이는 게 대필작가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터이다.

    그러니 출판사 입장에서는 잘 빠진 상품 하나 만드는 데 있어서 굳이 높은 고료를 요구하는 콧대 높은 작가를 쓸 이유가 별로 없는 것이다. 선배 대필작가들의 경우에는 1천만~2천만 원 혹은 그 이상의 고료도 받으며 일했다는 이야기도 ‘무용담’처럼 들었지만, 요즘의 경우 대필을 하고 1천만 원 이상을 받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물론 어떤 경우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딱 잘라 단정 짓기는 어렵다. 한국 출판계에서 대필은 ‘유령’이라는 이름만큼이나 그 실체가 드러나지 않은 분야이기 때문에, 나와 내 주변 작가들의 경험을 통해 유추할 뿐이다.

    그나마 자금 사정이 좋지 않은 출판사와 계약을 했다가 고료를 아주 늦게 지급받거나 떼어먹히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실제로 많은 대필작가들이 무수히 겪고 있는 ‘수난’이다. 그러니, 아무리 소설이고 영화라고 해도 잘 생기고 럭셔리한 케임브리지 출신의 대필작가가 몇 천만, 몇 억씩의 고료를 받고 대필을 한다는 설정 앞에서 눈이 튀어나올 수밖에.

    대필은 ‘폐해’가 아니라 ‘때에 따라 필요할 수도 있는’ 합당한 노동이다

    아직도 대필을 출판계의 ‘폐해’니 ‘없어져야 할 관행’이니 ‘비윤리적’인 행태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천만의 말씀이다. 그것이 왜 ‘문제’인가?

    대필은 ‘필요악’이 아니다. 현재의 출판 시스템에서 실질적으로 ‘필요한’ 일이다. 숨기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책은 상품이고 출판사는 상품으로 장사를 하는 곳이다. 팔아먹을 만한 콘텐츠를 가졌는데 글 쓰는 기술이 없는 저자일 수도 있다.

    글은 물론 아무나 쓸 수 있다. 그러나 글 쓰는 기술이란 재능이기도 하거니와 훈련이기도 하기 때문에, 글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정제된 글을 갑자기 쓰지 못하는 건 너무나도 당연하다. 그러한 책을 출간하는 데 있어 글 전문가가 투입되어 책의 제작에 참여를 하고 노동의 대가를 받는 것은 ‘폐해’도 ‘비윤리적’인 일도 아니다. 그것을 터부시하는 현재의 출판계 관행과 사람들의 사고방식만이 비윤리적일 뿐이다.

    실제로 누군가가 이런 조사를 한다고 치자. 국내 발간된 단행본 중 대필작가의 노동이 가미된 책의 종수와 대필자의 이력, 지급된 고료 수준 등을 집계한다면? 저자가 소설가나 전문 저술가가 아닌 이상 출간물의 과반수 혹은 70~80% 이상이 대필작가의 손을 거친 책들이라는 이야기는 결코 ‘뻥’이 아니다.

    지하세계의 ‘그림자 군단’인 이름 없는 유령들도 출판계의 엄연한 노동력들이다. 있는데 없는 것처럼 쉬쉬하고, ‘대필 나부랭이나 해먹고 산다’고 자타가 비하하고, 돈을 적게 받거나 못 받아도 할 말 없어 마땅한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나는? 글쎄, 솔직한 심정으로다가, 경제적 여건만 나아진다면 대필은 더 이상 안 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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