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들의 사랑이 만든 길, 개발로 잃다
        2010년 08월 09일 09:3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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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산리에서 버스를 타고 낙동강 18공구 현장인 함안보로 향했다. 함안보는 4대강 공사장 중 유일하게 600미터에 걸쳐 은폐막을 설치했다. 환경단체의 문제제기로 언론 보도가 잦아지면서 공사장을 가리기 위해 설치한 것이다. 그래서 공정률이 다른 공사장보다 느려 13% 정도에 머물고 있다.

    함안보는 보를 세울 경우 지하수위 상승으로 함안 인근 지역의 침수 피해가 우려되는 곳이다. 처음 이 문제를 도외시하던 정부는 뒤늦게 침수피해 사실을 인정하고 함안보의 관리수위를 7.5미터에서 5미터로 낮추는 것으로 수정했다.

       
      ▲ 함안보 공사현장 (사진=이상엽 작가)

    하지만 전문가들은 5미터로 수위를 낮춰도 침수 피해를 해결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수위를 낮춰 설계를 다시 하고 있는 정부는 이를 다시 부정하고 있다. 4대강 문제와 관련한 다른 문제들처럼 하나의 거짓말을 막기 위한 또 다른 거짓말이 이어지는 양치기들의 공사장이다.

    함안보 인근 마을 농민들은 전국적으로 유명한 특산물인 수박을 비롯 오이, 복숭아, 파프리카 등의 농사를 짓고 있다. 보 건설로 농지가 침수되면 과일의 당분이 떨어지는 데다, 안개로 인한 피해도 예상되고 있다. 함안보 공사장에 도착하자 은폐막 곳곳에 펼침막이 걸려 있다.

    ‘낙동강 사업은 생명 살리기입니다.’
    ‘우리가 꿈꾸는 강의 이름은 행복입니다’
    ‘생명을 살리는 행복한 기적이 낙동강에서 시작됩니다.’

    선거관리위원회는 지방 선거 기간 동안 4대강 사업 반대 활동을 선거법 위반이라며 가로막으면서도 찬성 활동은 눈감아주었다. 환경단체들의 문제제기로 오늘은 보수단체에서 내건 펼침막이 보이지 않는다. 1주 전까지 걸려 있던 보수단체의 펼침막 내용은 강경했다.

    ‘썩은 물을 먹으란 말이냐?’
    ‘4대강을 반대하는 자들은 방문을 환영하지 않는다’

    함안보 맞은편 1급 생태계 습지였던 둔치는 완전히 사라지고 없다. 공사장의 소음이 들려온다. 강바닥의 암반을 파는 소리 같다.

    개들의 사랑이 만든 길, 개발로 잃다

    강변을 끼고 달리는 본포 나루터 가는 길은 어지럼증을 느낄 만큼 쉼 없이 포크레인과 덤프트럭이 보인다. 공사장 한가운데를 달리는 기분이다. 그래도 해변길과 다른 강변길의 운치가 아직은 남아 그 풍경에 가슴이 흔들리면서도 학살의 현장을 지나는 아픔이 교차한다.

       
      ▲ 함안보 건설 현장 (사진=이상엽 작가)

    임해진을 지나고 있다. 임해진은 이 마을 앞까지 바닷물이 올라왔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열세 가구가 사는 이 마을은 4대강 공사로 마을 전체가 사라지게 된다. 임해진을 지나 청학로를 달린다. 청학로는 개비리길에 새로 이름 붙인 도로명이다.

    노리를 지나 학포리까지 2km에 달하는 길이다. 청암 마을과 이름 그대로 ‘학과 더불어 사는 마을’ 학포리에서 한 글자씩 따서 청학로라고 명명했다. 천애절벽 길을 따라 이어지는 개비리길엔 두 마리 개의 사랑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고개를 두고 임해진과 노리 마을이 있었다. 두 마을은 험한 산으로 가로막혀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서로 오고 가는 데 많은 고생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개 한 마리가 산을 넘어 두 마을을 오가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개가 다니는 길을 따라가 보았다. 가파른 절벽길을 따라가 보니 산 너머 마을에 짧은 시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두 마리 개들이 그 길을 통해 만나고 있었던 것이다. 개들은 매일 같이 험한 산길을 오갔고, 발길이 잦아지면서 길이 만들어졌다. 그후 사람들은 편리하게 마을을 오갈 수 있었다. 세월이 흘러 개들이 모두 세상을 떠났다. 마을 사람들은 노리와 임해진 사이에 길을 만들어준 두 마리 개를 추모하기 위해 비석을 세우고 봉분을 쌓아 무덤을 만들었다.

    사람들은 고마움을 잊지 못하여 비를 세웠는데 이를 개비(또는 개로비)라 전해져 오고 있다. 개비리길은 1970년대 공병대 훈련용으로 만든 2차선 도로를 만들면서 사라졌다. 4대강 공사로 인해 청학로마저 사라질 운명에 처했다.

    개들의 사랑이 만든 길은 인간들에 의해 사라졌고, 다시 사라지고 있다. 노리마을 앞 강변엔 모래톱이 넓게 펼쳐져 있다. 마을 앞으로 흐르는 강은 17공구 공사장이다. 낙동강 지킴이 김상화 씨는 이 길을 ‘인간의 손때가 묻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강’이라고 표현했다. 한 발 늦게 달려온 우리는 공사장을 바라보며 달리고 있다.

       
      ▲ 사진=이상엽 작가

    창원의 옛 나루인 본포 나루터에 도착했다. 낙동강의 마지막 주막이 있던 곳이다. 본포나루에서는 1980년대 말까지 나룻배 한 척이 운행되었다. 본포리와 학포리를 연결해주던 나룻배의 역할을 현재는 본포교가 대신하고 있다.

    옛 나루터에 있던 찻집 ‘알 수 없는 세상’은 제방공사로 인해 사라지고 제방만이 우리를 맞이한다. 지난 10여 년간 이 찻집에서 시인들이며 가수들이 모여 노래를 부르고 글을 나누었다. 찻집에 앉아 창 밖으로 낙동강이 흘러가는 풍경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머잖아 이곳에 소박했던 찻집 대신 현대식 카페가 들어서는 것은 아닐까?

    일행은 곧 문을 열게 될 낙동강선원 예정지로 향했다. 이 마을 인근은 주로 감나무 농사를 짓고 있다. 우리가 오르는 산도 감나무 과수원이다. 감나무 길을 걸어 올라간다. 낙동강 선원 예정지는 낮은 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다. 현재 이곳은 금강사 자흥 스님의 수행공간이다. 낙동강 지역의 환경운동가들은 이 공간을 낙동강선원으로 만들어 현장을 관찰하고 4대강 사업을 막기 위한 활동을 펼칠 계획이다.

    산마루에 오르니 진경이 펼쳐진다. 본포 모래톱과 함께 낙동강 물줄기가 휘돌아가는 모양이 한눈에 다 보인다. 지금까지 찾아간 곳 중 모래를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곳이다. 본포 모래톱의 하중도와 드넓은 모래사장은 철새들이 펼친 날개 같기도 하고, 강 위에 띄운 커다란 배처럼 보이기도 한다. 모래톱 위에서 가느다란 다리를 지닌 새들이 쉬고 있다.

       
      ▲ 본포 하중도 (사진=이상엽 작가)

    부동산 투기를 부르는 낙동강 공사

    본포 모래톱은 멸종위기종인 재두루미(천연기념물 제203호)의 중간 기착지이고 중요한 쉼터이다. 세계적으로 재두루미는 5000여 마리 정도가 남아 있다. 겨울이면 재두루미들이 모래톱에 까맣게 모여 앉아 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겁이 많은 재두루미는 사방이 환히 트인 곳을 좋아한다. 오백미터 근방에 물체가 접근하면 날아가버린다고 한다. 함안보에 설치된 조망도엔 깃을 펴고 있는 재두루미 사진이 있었다. 하지만 보를 건설하고 강바닥을 준설한 후엔 재두루미는 물론 수심이 얕은 곳을 좋아하는 우리나라 철새들은 이곳을 다시 찾지 않을 것이다.

    물길을 막고 차량이 드나들 수 있게 강을 가로지르며 만든 모래길이 보인다. 본포 모래톱은 모래와 함께 시간이 쌓여 있다. 본격적인 공사가 시작되면 긴 세월에 걸쳐 형성된 수억 생명들의 서식지 본포 모래섬은 2~3개월 안에 모두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이 글을 쓰는 현재 사라져가는 본포 모래톱의 마지막 모습을 사진으로 보고 있다). 감병만 씨가 재두루미와 철새들의 미래를 일러준다.

    “낙동강에 날아오는 새의 90%가 수영을 못하는 다리가 긴 새들입니다. 낙동강 전 구간에서 모래톱을 없애고 친수공간을 만들면 새들의 90%는 사라지게 돼요. 나머지 수영할 수 있는 애들도 낙동강 수위가 대략 6미터 정도를 유지한다는데, 수압을 견디고 잠수해서 먹이를 먹을 수 있는 애들이 얼마나 되겠어요? 새가 찾아오지 않으면 사람도 찾아오지 않게 됩니다. 그것은 독일의 이자강이 정확하게 보여줬죠.”

       
      ▲ 사진=이상엽 작가

    독일은 150년 전 정비한 이자강의 수로가 지하수를 고갈시키고 홍수를 유발한다는 것을 깨닫고 원래의 자연하천으로 복원했다. 그후 이자강은 사람과 새들이 찾는 강이 되었다. 오늘 여정을 함께하고 있는 곽상수 씨는 ‘낙동강을 생각하는 대구사람들’에서 활동하는 환경운동가다.

    ‘낙동강을 생각하는 대구사람들’의 회원들은 대구의 앞산 터널 공사 반대운동을 펼친 단체 ‘앞산을 꼭 지키려는 사람들’에서 활동한 이들이 주로 모였다. 이들이 지난 3월부터 다시 낙동강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곽상수 씨가 그동안 낙동강 공사현장을 찾아다닌 소감을 전한다.

    “저희들이 그동안 현장을 돌아다녔는데 사람들이 노출된 곳은 가급적 공사를 안 하고 있어요. 그에 비해 사람들이 접근하기 힘든 곳, 가려진 곳은 엄청나게 공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포크레인이 직접 강에 들어가서 모래를 긁어내요.

    최근 한나라당에서 ‘친수공간 특별법’을 제정한다고 하더라고요. 제방 주위 2킬로미터 정도는 수자원공사에서 땅을 개발할 수 있게 법을 만들려는 것이죠. 특히 현대건설이 하는 대구 구간을 보면 2킬로미터 안에 큰 개발이 가능한 왠만한 노른자 땅들이 다 들어옵니다.”

    낙동강 사업의 이면에 또 다른 개발과 함께 부동산 투기의 목적이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낙동강 뿐이랴. 4대강 전역은 이미 강을 이용한 부동산 투기가 이뤄졌고 앞으로 강 주변을 이용한 2차, 3차 투기가 이어질 것이다. 4대강 개발을 막기 위한 방안을 묻는 질문에 곽상수 씨가 망설임 없이 대답한다.

    “저희 단체는 조직적 결정이 없기 때문에 좀 더 자유로운 결정을 할 수 있어요. 쉽게 말해서 현장을 사수할 수도 있어요. 그런 부분은 논의 과정에서 결정될 것 같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어요. 저희는 물리적인 충돌도 각오하고 있습니다.”

    “12년 동안 한 번도 파업을 벌인 적이 없었어요”

    이번 답사에서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은 화원유원지다. 유원지 입구에 위치한 <대구경북지역 골재원노동조합> 사무실을 찾아갔다. 우리를 맞이한 이는 김창수(수석부위원장) 씨다. 이곳 조합원들이 해온 일은 낙동강에서 골재(모래와 자갈)를 채취하는 것이다. 조합원들은 준설선 선장과 선원, 포클레인 기사, 살수차 기사, 덤프트럭 기사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이 알려준 준설 과정은 이렇다. 준설선에서 강바닥의 모래를 빼낸 후 선별기를 통해 모래와 자갈, 물을 분리해 쌓는다. 분리된 모래는 덤프트럭에 실어 목적지까지 옮긴다. 골재는 건물을 짓고 도로를 건설하는 기초 자재로 사용된다. 부위원장은 모래를 트럭에 실어주는 로더 기사이다. 그가 12년 전 노동조합을 만들던 때를 회상한다.

       
      ▲ 낙동강변 모습 (사진=이상엽 작가)

    “그때는 노동 강도가 너무 셌어요. 밤낮없이 일했습니다. 일이 많을 때는 새벽 4시부터 밤 11시까지 했어요. 너무 힘들어서 더 못하겠더라고요. 임금이 체불되고 해서 이렇게는 우리가 살 수 없다. 그래서 우리 권리를 찾자는 뜻에서 만들었습니다.”

    노동조합은 창립 이후 지난 12년 동안 한 번도 파업을 벌인 적이 없었다고 한다. 처음 벌인 파업이 어느덧 1년이 되어간다.

    “민주노총 행사에는 자주 가봤지만 집회를 어떻게 하는지도 몰랐습니다. 우리가 낙동강에서 1년간 생산하는 모래 양이 1300만 루베(입방미터, 1루베=1580kg) 정도인데, 4대강 공사로 생산하는 양이 4억 4천만 루베입니다. 이 양이 상상이 안 될 텐데요. 어느 정도냐면, 경부고속도로 전 구간을 22층 높이로 쌓아둘 수 있는 양입니다. 그 양을 1년만에 다 들어낸다니까 저희들은 삶의 터전을 뺏길 수밖에 없습니다.”

    4억 4천만 루베는 골재채취 노동자들이 34년 동안 일해야 준설할 수 있는 양이다. 낙동강은 전국 골재 생산량의 70%를 생산하고 있다. 1개 업체가 1년 동안 판매하는 모래 양은 30만 루베 가량이다. 업체에서 30만 루베의 골재 채취를 허가받는 데 걸리는 환경영향평가 기간은 1년이 넘는다. 하지만 4억 4천만 루베의 골재를 채취하기 위한 환경영향평가는 겨우 4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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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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