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사랑은 평등한 관계 속에서 존재"
        2010년 08월 06일 06:2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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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속은 40분 연기됐다. 친정어머니가 편찮으셔서 딸아이를 데리고 나오는 채비인 듯했다. 댓살짜리 딸애를 외출 준비시켜 부천에서 홍대까지 나오는 데 40분 늦는 건, 목수정이 ‘프로 엄마’쯤 됐다는 충분한 증거이리라. 7월 13일 오후의 홍대 앞 카페, 예쁘게 차려 입은 엄마와 딸. 하지만 목수정과 칼리 사이의 긴장은 2년 전 프랑스로 떠나기 전에 봤을 때와 다르지 않았다.

    “엄마, 나 코코아 사줘.”
    “엄마랑 같이 나눠 먹자. 너 코코아 시켜도 한 번도 다 먹은 적 없어. 오늘도 다 안 먹을 거야.”
    “싫어. 나 코코아 좋아. 산에 올라가서 거기서 코코아 다 마셨단 말야.”
    “무슨 산, 어디 산?”
    “엄마~, 나 코코아 줘.”

    그 다음에 딸은 “코코아”를 스무 번 정도 노래했고, 엄마는 “안 돼”라고 열 번 정도 되뇌었고, 결국 타협 아닌 타협이 이루어졌다. “너 이번에 다 안 마시면, 다시는 아무 것도 안 사줘. 알았어?”

    목수정, 민주노동당을 ‘고급화’시키다

       
      ▲목수정.

    목수정에 대한 내 최초의 기억은 그냥 ‘독특한 여자’였다. 하늘하늘 공주옷에 스카프 맨 최초의 민주노동당 상근자였으니까.

    그는, 아는 이 하나 없는 민주노동당 중앙당사를 찾아 정책부장들을 만났고, 채용권자 중 한 명이었던 나는 부장들의 추천을 거절할 만큼 용기 있지는 않았다.

    목수정의 무대포 들이대기, 과감한 추천, 그리고 눈치보기 채용은 어느 모로나 투기였지만, 결과적 대성공이었다.

    문화정책연구원으로 들어온 목 덕분에 민주노동당 중앙당은 ‘고급화’됐다. 더러는 진짜 그렇게 됐고, 대개는 목 앞에서 그런 척했지만, 세상 변하는 게 다 그런 것이니 어느 쪽이든 상관 없다.

    정책자료집 디자인이 바뀌었고, 무엇보다도 “먹고 살기도 어려운데 문화는 무슨!”이라는 새마을운동 시절 세계관이 발붙이지 못하게 되었다.

    몇 년이 더 지나고, <레디앙>에서 책을 내고, 아예 살러 프랑스로 건너가고…. 어지간히 아는 사람을 인터넷 검색해 보는 건 생소한 일인데, 인터넷에 ‘목수정’을 치니 김근태, 원혜영, 하승진, 김연아 등과 함께 ‘부천의 자랑스런 인물’ 열댓 명에 꼽혀 있었다.

    “어떻게 지내요, 파리에서는?”

    “책 쓰는 게 몇 권 있어서 취직은 못하고요. 아침마다 카페로 출근해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하죠. <경향신문> 칼럼도 쓰고. 글 써서 버는 돈은 적지만, 시간 상으로는 글쓰는 게 제 일이죠. 통역일도 가끔 하는데, 일거리가 많지는 않아요.

    얼마 전에, 칸느 영화제 커미셔너로 일하셨던 분에게서 자기와 함께 소설을 써서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내자는 제안을 받았어요. 제 불어 실력이 소설을 쓸 만큼은 아니기 때문에 실제 쓰게 될지는 모르겠어요.

    8월에 『야성의 사랑학』이라는 단행본이랑 강수돌 교수 등 여러 사람이 같이 쓴 방송통신대 교재가 나와요. 그리고 <레디앙>에서 책 두 권 정도 더 낼 계획이고요.”

    파리의 학부모 커뮤니티와 한글학교 커뮤니티

    “칼리 키우는 건 어때요?”

    “지난 2년 동안 제일 열심히 했던 역할이 아이 엄마로서의 역할이었고, 제일 재미있게 관계하는 커뮤니티도 유치원 커뮤니티예요. 우연스럽게도 학부모들이 다 집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는 직업을 가지고 있어서 자주 만나곤 해요. 뮤지컬 가수, 기자, 건축가, 락 뮤지션, 그런 사람들이더라고요. 학부모들끼리 집에 모여서 밥도 같이 먹고.

    칼리를 일주일에 한 번씩 하는 한글학교에 보내기도 했는데, 아주 파란만장했어요. 한국 정부에서 주는 지원은 아주 적고, 기업 주재원들이 많기 때문에 삼성에서도 지원금을 받아요. 연 75만 원. 가르치는 사람들은 월급 50만 원을 채 못 받아요. 여건이 아주 안 좋죠. 한글학교 다니는 학생들이 한국을 좋게 생각해야 될 텐데, 프랑스 학교랑 한글학교가 비교될 수밖에 없고, 결국은 나쁜 경험 가지고 한글학교를 떠나더라고요.

    한글학교 학부모들끼리의 알력도 적지 않아요. 부모가 모두 한국인인 경우와 부모 중 한 명만 한국인인 경우가 있는데, 요즘은 뒤쪽이 더 많아요. 하지만 그 사람들은 학부모 커뮤니티에 낄 수가 없어요. 교민사회와 대사관의 얽히고 설킨 권력관계가 학교에서도 그대로 드러나요.”

    “한글학교보다는 프랑스 유치원의 학부모 커뮤니티가 더 좋다는 거죠?”

    “한국에서, 길거리에서 남자 학부모를 만나면 서로 어색하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고 지나가는 거 이상을 할 수 없겠죠. 그런데 칼리 남자친구 아빠랑은 김대중 얘기도 하고, 여자가 되고 싶다는 그 아이와 성(性)에 대해서도 얘기를 나눠요.”

    “프랑스라도 보통의 직장 가진 사람들은 부모들끼리 그렇게 만날 기회가 없을 거 같은데. 그 동네가 부촌이라서 그런 거 아니예요?”

    “『야성의 사랑학』을 쓰면서 인터뷰를 조금 했어요. 한국에서 중학교까지 다니고, 프랑스에서 고등학교 나온 아이를 만났는데, 그 친구가 파리 외곽에 못사는 동네에서 학교를 다녔어요. 그 친구 다니던 학교에 매년 임신하는 학생들이 있었는데, 학교와 지역사회에서 임신과 육아, 학업을 잘 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해줘요.”

    모든 사랑은 평등 관계 속에서 가능

    “전에 폭동 났던 파리 외곽 빈민촌에서 청소년 출산 같은 건 많겠지만, 칼리네 유치원 학부모들처럼 아이들 의사를 존중해주고 개방적인 성교육을 할까요? 그런 데는 그런 문제에 훨씬 보수적이지 않나요?”

    “이제 예순이 되는 칼리 고모가 가톨릭 기숙사학교를 나왔는데, 창 밖에 지나가는 남자들을 보면 안 된다는 식으로 교육을 받았대요. 그런데 고모가 부모가 돼서는 딸들에게 그런 교육을 하지 않았대요. 딸들이 집에 남자친구 데리고 드나드는 것에도 관대했고. 칼리 고모네가 특별히 잘 사는 집안은 아니었어요. 그 사회가 대체로 그런 거죠.”

       
      ▲ 칼리

    “칼리는 엄마 아빠 말 잘 들어요?”

    “칼리 할머니가 말하길, ‘어떻게 너는 이렇게 말을 안 듣는 딸을 낳을 수 있니? 세상에 처음 봤다’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도 억압없이 키우고 싶어요. 모든 사랑은 평등한 관계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하죠. 비록 부모 자식 관계일지라도.

    화나면 가끔 ‘야, 이렇게 해’라고 거칠게 말하기도 하죠. 그러면 칼리가 ‘엄마, 자기 딸한테 ‘야’라고 말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이름을 알면 이름을 불러야지’라고 반발해요. 칼리가 그렇게 반발하면 수긍하고 들어주는 편이예요.”

    “유치원 다른 학부모들도 그래요? 유럽 부모와 선생들이 아이들에게 더 엄격하지 않나요?”

    “이 문제로 한참 토론한 적이 있어요. 다른 학부모들보다는 제가 아이 자율성을 더 인정해주는 편인 거 같아요. 프랑스 부모들은 잠자는 시간, 밥먹기 습관이나 예절은 굉장히 엄격하게 지키죠.

    칼리가 저랑 자주 싸우는 게 ‘모든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거 할 수 있어, 엄마’라고 말할 때예요. 그럼 저는 ‘그렇지. 하지만 네가 하고 싶은 게 다른 사람이 하고 싶은 거 방해하지 않을 때만 그런 거야’라고 설득해요. 초록색 옷 입고, 싶은 거나 노란색 옷 입고 싶은 건 맘대로 해도 되고, 길거리에서 막대기 휘두르고 싶은 건 안 된다고 설명해주죠.”

    “자기 딸한테 ‘야’라고 말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이런 부모의 진술은 아이들에게 확인해봐야 한다. 하지만 벌써 머리가 굵은 칼리는 엄마 앞에서 엄마가 말한 바와 다른 말을 하지 않는 지혜를 발휘한다. 다만 ‘엄마가 더 무서워, 아빠가 더 무서워?’라는 질문에는 확고하게 ‘엄마’라고 답한다. 희완은, 목수정이 화낼 때 칼리를 안고 대피하는 부드러운 아빠다.

    “칼리, 어떤 때 엄마가 제일 미워?”

    “내가 장난할 때, 엄마가 화내서. 나도 내가 왜 자꾸 엄마가 싫어하는 행동을 하는지 몰라. 하고 싶지 않은데 자꾸 나와. 내가 눈물을 흘리고 싶지 않은데도 눈물을 흘리는 것처럼, 엄마 말 잘 듣고 싶어도 맘대로 안 되는 거야. 엄마, 내가 클 때까지 이러면 안 되겠지? 내 걱정 많이 했지? 나도 나한테 걱정 많이 했어.”

    “아이들 키우면서 정말 좋은 점은, 아이들이 상상도 못했던 처음 듣는 질문을 던지는 거예요. 거기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 보면 제가 미처 몰랐던 진실을 발견하게 되요. 어느날은 칼리가 ‘왜, 모든 꽃은 아름답고, 모든 새들의 노래소리는 예뻐?’라고 물어보더라고요.”

    “아빠 차 타고 부르고뉴 가는데, 지나가는 옆에 꽃이 있었어. 그리고 사슴, 토끼, 너구리, 멧돼지, 고슴도치 봤어.”

    “그래서 희완이 칼리에게 ‘모든 자연은 아름다워’라고 답해줬어요. 꽃은 나무가 사랑하는 기관이고, 노래는 새들이 사랑하는 방식이죠. 그래서 예쁜 거죠.”

    사랑이라서 아름답다

    목수정의 사랑은 그가 세상과 만나는 한 방법이고, 희완과 칼리는 세상에 대한 그의 사랑의 축소판이다. 물론, 세상 모두가 ‘사랑’을 그렇게 보지는 않는다. <경향신문> 인터넷판의 목수정 칼럼 아래에는 두 개의 광고 문구가 달려 있다. ‘여성들 확 달아오르는 남성 크기’, ‘루이비통·구찌·샤넬 홍콩 명품가방 최저가’

    “이명박 정부의 문화정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노무현 정권 때의 문화정책에 대해서는 비판할 말이 있지만, 이명박 정부의 문화정책에 대해서는 비판할 말이 없어요. 왜냐하면 유인촌 장관이 ‘문화 파괴’만 했기 때문이예요. 이명박 정부는, 노무현 정부가 했던 정책을 없애는 것만 했어요.

    조희문 영진위 위원장은 영화계에서 유일하게 스크린쿼터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던 사람이죠. 이건 통일에 반대하는 사람이 통일부장관을 맡는 거 같은 거죠. 모든 게 그런 식이예요. 완장 찬 유인촌이 지금까지 있던 사람들 끌어내리는 거밖에 안 했어요. 문화파괴부죠.”

    목수정이 가장 유명세를 떨친 건 ‘정명훈 사건’ 때였다. 당시 목에 대한 성토자들 중에는 진보신당 논객들을 비롯한 좌파도 적지 않았는데, 그들의 논리는 ‘예의’와 ‘문화’였다. 언제부터 그렇게 예의를 차리고 살았는지, 해고는 얼마나 예의 있는 짓인지, 목수정에 대한 사냥이 또 얼마나 문화적인 행위인지….

    칼리는 코코아를 다 마셨다

    어쨌든 목수정과 정명훈으로 하여 한국의 문화비평가들과 좌파 마초들은 그 끝을 보여주었다. 삼성 자본의 힘 만큼이나 강한 혈연과 학연, 인맥의 근원적 보수성도 낱낱이 드러냈다. 결국 자신의 ‘문화’를 파괴당한 목수정은 진보신당에서 탈당했다.

    물론, 그는 멈추지 않았다. 지방선거 투표일 직전에 귀국해 투표를 했고, 돌아오자마자 인터넷의 주부 커뮤니티에서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한국 체류 기간 동안 칼리를 보내는 유치원에서는 속바지를 입힐 것을 권했고, 아이가 거추장스러워 할 것이 걱정된 그는 ‘선배 엄마’들에게 조언을 구했고, 그곳의 엄마들은 다들 입히라고 조언했다.

    논란이 조금 더 커진 후에 덧글을 보니, ‘세상이 흉흉하니 옷 하나라도 더 입혀 여자아이를 보호해야 한다’라거나 ‘여자아이는 조신하게 키워야 한다’는 논리가 대부분이었다.

    갈 길이 참 멀다. 먼 길은 혼자 갈 수 없다. 진보정당들의 ‘무지몽매함’과 맞서싸우거나 강고한 문화권력을 폭로할 때는 목수정이 한 점 쐐기 같이 앞서가면 됐지만, 넓고 깊은 수렁은 혼자 곧장 건널 수 없는 법이다.

    목수정의 예측과 달리 칼리는 코코아를 다 먹었고, 아마도 딸은 엄마의 말을 부정키 위해 그렇게 노력했을 것이다. 칼리가 엄마에게 뭔가 말하고 있는 게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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