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 철폐, 새로운 여정의 시작
    2010년 08월 05일 09:0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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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폭 65주년 ‘원수폭금지세계대회’가 시작되었다. 4~6일은 히로시마에서, 7~9일은 나가사키에서 민간단체와 시당국이 주최하는 각종 집회와 워크숍, 국제심포지움, 각종 이벤트와 행사가 열린다.

히로시마시가 주관하는 공식행사는 6일, 나가사키시가 주관하는 공식행사는 9일 예정되어 있지만-각각 피폭일에 해당된다-역사적으로 핵무기에 반대하는 대규모 행사를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개최하기 시작한 것이 민간 차원의 원수폭반대운동 단체들이었다는 점에서 시나 정부당국이 주관하는 행사보다 민간 주최의 각종 행사들이 중심에 놓여 있다.

다만, 가장 큰 규모의 민간행사가 두 개의 전국단체로 나뉘어져 진행된다는 점은 일본의 원수폭금지운동의 역사에서 아픈 부분이기도 하다. 1964년 중국의 핵실험을 계기로 사회주의권의 핵무기를 어떻게 볼 것인가를 둘러싸고 내부논쟁이 벌어진 원수폭금지운동은 원수폭금지일본협의회를 이탈한 세력이 원수폭금지일본국민회의를 결성해 따로 행사를 치르면서 두 개의 원수폭금지세계대회가 열리기 시작했다.

국제적 토론의 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원수폭금지세계대회의 핵심 의제가 올해 5월 개최된 NPT재검토회의(이하 ‘2010 NPT재검토회의’)에 대한 평가와 반핵운동의 향후과제라는 점은 공통점이다. NPT(핵확산금지조약) 재검토회의 직후에 원수폭금지세계대회가 개최되고 있기 때문이다.

   
  ▲ 원폭투하 65주년 원수폭금지세계대회 일정이 4일부터 시작되었다.

5년 전 NPT재검토회의(2005년)는 미국 부시 행정부의 일방주의가 정점에 달했던 시기였다. 그런 이유로 인해 NPT재검토회의는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채 끝났다. 그러나, 2009년 오바마 정권의 출범과 ‘핵무기 없는 세계’를 제창한 오바마 대통령의 ‘프라하 연설’을 계기로 부시행정부 시기와는 다르게 미국 정부의 정책이 변화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런 정세의 변화는 2010년 NPT재검토회의에 대한 기대감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2010 NPT재검토회의’는 몇 가지 성과와 한계를 동시에 노정했다. 무엇보다도, 2005년 미국과 비동맹 국가들, 그리고 새로운 의제 연합(New Agenda Coalition)-핵군축을 요구하는 비핵국가들이 만든 그룹- 소속 국가들이 격렬하게 대립하면서 최종문서조차 제출하지 못한 채 끝났지만, 이번 재검토회의에서는 전체회의 전원일치로 최종문서가 채택되었다.

바로 그러한 의미에서, 올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반핵운동단체들의 주도로 열리는 ‘원수폭금지세계대회’는 NPT재검토회의의 성과와 한계, 그리고 향후의 과제를 도출하기 위한 주요한 장이 되고 있는 것이다.

‘천안함 사건’이 평화와 안보 문제의 모든 의제를 흡수해버린 상태에서 남북관계와 ‘한반도 비핵화프로세스’마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한반도의 상황과는 비교되는 모습이기도 하다.

‘핵무기금지협약’을 향한 성과와 한계

2010 NPT재검토회의 ‘최종문서’에 ‘핵무기금지협약(Nuclear Weapon Convention)’이 명시된 부분은 성과이자 한계라고 할 수 있다. 핵무기금지협약은 한국에서 종종 ‘핵무기협약’으로 직역하기도 하지만, 그러한 번역은 이 협약이 제기된 취지에 부합하는 번역이라고 보기 어렵다.

애초 이 협약은 핵무기 철폐를 향한 구체적인 실행계획(로드맵)을 국가 간 협약을 통해 강제하고자 하는 의미에서 제기되었다. ‘2010 NPT재검토회의’의 최종문서가 바로 그 협약을 언급한 것이다.

NPT의 3대축(핵확산 저지, 핵군축,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중 하나인 핵군축의 지지부진함을 비판하면서, 핵강대국들에게 핵군축을 강제하기 위해 비핵국가들과 반핵운동세력이 핵군축의 구체적 틀과 로드맵을 제시하고 실행하라는 목소리를 높여 온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사실, 1995년 NPT의 무기한 연장을 합의할 때도 중요한 조건 중 하나가 핵강대국들이 핵군축을 위한 구체적 실천과 실천계획에 대한 조속한 협상의 개시였다. 또한, 핵군축과 관련된 13개 항목에 달하는 구체적인 과제가 최종합의 문서에 담긴 것은 2000년 NPT재검토회의였다. 2005년 최종문서가 제출되지 못했기 때문에, 10년 만의 최종문서에 핵무기 철폐와 핵무기 철폐를 위한 틀로서 핵무기금지협약이 언급된 것만으로도 일보전진이라는 평가는 가능할 것이다.

물론, 최종문서에는 다른 내용들도 포함되어 있다. 비핵지대와 관련해 중동비핵지대조약 구상에 대한 지지와 추진이 언급되었고,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 비준 촉구, 핵분열성물질생산금지조약 협상 개시, 미러 신전략핵무기삭감조약(New START)에 대한 지지 등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이번에 합의된 최종문서에 대해서는 모든 내용들이 애매모호하게 처리되었다는 비판들이 제기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예컨대, 이목을 집중시켰던 ‘핵무기금지협약’의 경우도, "핵무기금지협약에 대한 고려를 포함하고 있는 5가지 제안에 유의한다” “핵보유국은 2000년 합의의 모든 조치의 이행을 가속화할 것을 서약한다. 핵보유국은 구체적 조치에 대해 신속하게 대처”한다고 되어 있다.

이 문구는 애초 새로운 의제 연합이나 반핵운동 단체들이 제안한 문구에 비해 훨씬 후퇴한 내용이다. 그들은 ‘핵무기금지협약’을 포괄적 틀로 삼아 그 틀을 바탕으로 핵무기철폐 과정에 대한 실행계획 등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내용을 담아내야 한다고 주장해 왔기 때문이다.

반기문 총장의 히로시마, 나가사키 방문 의미

이상과 같은 배경 때문에, 이번 원수폭금지세계대회 기간 중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현직 유엔사무총장으로서는 최초로 히로시마 현지를 방문하는 것이 화제가 되고 있기도 하다. 반기문 사무총장은 올해 5월의 NPT재검토회의 개최 이전부터 반핵운동단체들과 비핵국가들이 제안해 온 ‘핵무기금지협약’에 대해 지지를 표명해 왔다.

반기문 사무총장의 히로시마 방문이 핵무기철폐 문제에 대한 여론을 환기함과 아울러, 무엇보다도 핵무기금지협약의 의제화에 힘을 실어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히로시마 방문은 그가 한국인이기 때문에 일본 현지 언론의 주목을 받는 부분도 크다. 유엔 사무총장이기도 하지만, 일본의 제국주의와 군국주의의 피해국 출신이기도 한 그가 히로시마를 방문해 원수폭금지운동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는 것은 히로시마에서 발신하는 반핵메시지의 보편화에도 크게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피폭’이라는 단어보다는 ‘원폭투하’라는 단어를 더 많이 쓰고 있고-피폭은 당하는 입장의 표현이라면 원폭투하는 행하는 입장의 표현이다-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이야기가 나오면 일본이 피해의 역사로 가해의 역사를 덮으려고 한다는 비판이 바로 제기되곤 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비판이 완전히 틀린 비판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핵무기와 핵무기의 사용에 관한한 광범위한 국제적 반대의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는 관점에 서서 문제를 바라볼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피폭일을 기해 유엔 사무총장이자 한국인이기도 한 반기문 사무총장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방문하는 것은, 그가 핵군축․핵무기 철폐를 위해 ‘실제로 실천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비판의 여부를 떠나 무시할 수 없는 무게감을 갖는 행동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 한국의 언론들이 거의 주목하고 있지 않는 점은 찬반의 논쟁을 떠나서라도 오히려 이해하기 힘든 모습이기도 하다.

‘핵억지론’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또한, 올해 원수폭금지세계대회에는 한국 국회의원으로서는 유일하게 진보신당의 조승수 의원이 참석한다. 예년보다 훨씬 큰 규모로 진행되는 원수폭금지세계대회라는 측면에서, 민간 행사(원수폭금지일본협의회 주최 행사)에 한국의 국회의원이 초청되었다는 배경이 있지만 현재 반핵운동이 직면하고 있는 과제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올해 NPT재검토회의를 경과하면서 재차 확인된 핵군축의 장애물은 ‘핵억지론’이다. 핵억지론은 핵무기가 탄생한 때부터 지속되어 온 논리로, ‘핵무기에는 핵무기로 대항한다’는 단순하지만 명쾌한(?) 논리이기도 하다.

우선, 핵억지론은 핵강대국들이 핵무기 철폐에 대한 ‘선언’은 하면서도 당장의 구체적 실천에 있어서는 소극적 태도를 보이는 논리이기도 하다. ‘프라하 연설’에서 ‘핵무기 없는 세상’을 제창한 오바마 대통령조차도 핵무기에 기반한 억지력의 유지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또한, 핵억지론은 미국과 군사동맹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국가들, 특히 한국과 일본의 ‘확대억지(핵우산)’ 논리의 토대가 되고 있기도 하다. 한국은 북한의 핵개발과 핵실험에 대응하기 위해서, 일본은 북한뿐만아니라 ‘중국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자국의 핵은 아닐지라도 미국의 핵억지력의 제공은 필요하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북한과 같은 국가들은 미국의 핵위협에 대항한다는 논리로 자국의 핵개발을 정당화하고 있다. 파키스탄과 인도의 핵개발 경쟁도 그러한 논리에 기반하고 있다. 이스라엘과 이란이 중동의 불안정한 정세를 이유로 핵개발 경쟁을 하고 ‘핵 주권론’을 제기하는 근저에도 핵 억지론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핵억지론은 핵보유국은 핵군축을 회피하는 변명으로, 일부 비핵국가들은 핵개발을 하는 명분으로 악순환의 논리임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현실주의’라는 이름으로 만만치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향후 세계 반핵운동이 일보전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서야 할 과제이기도 한 것이다.

핵무기철폐를 위한 세계사적 흐름과 한반도

한반도는 ‘북한 핵문제’라는 최대 현안을 안고 있다. 또한, 한국과 일본은 미국과 핵우산 제공을 핵심으로 하고 있는 동맹관계를 맺고 있다. 북한의 두 번에 걸친 핵실험은 그러한 구조를 더욱 강화하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 일본은 비핵3원칙-핵무기를 만들지도 않고, 갖지도 않으며, 반입하지도 않는다-을 ‘국시(國是)’로 삼고 있으면서도, 미군의 핵무기에 관한 한 예외를 인정한 ‘핵 밀약’ 문제가 작년부터 극심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한국과 일본, 그리고 동아시아 지역은 현재 세계 반핵군축운동이 직면하고 있는 핵심적 과제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는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핵문제라고 하면, 북한의 핵개발을 어떻게 저지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만 초점을 맞추곤 한다. 그러나, 북한의 핵문제도 세계적 차원의 핵문제라는 맥락 속에 위치해 있다. 이것이 북한 핵문제 해결의 시급성을 간과하는 논리로 읽혀서는 안된다. 오히려, 북한 핵문제 해결과 한반도 비핵화라는 과제의 시급성을 재확인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세계적 차원의 핵문제, 반핵운동의 흐름이라는 시야를 확보함으로써 한반도적 과제에 대한 새로운 안목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이며, 역으로 북한 핵문제 해결과 한반도 비핵화라는 한반도적 과제의 해결을 세계사적 흐름에 공헌할 수 있도록 하는 전망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핵무기 철폐를 향한 또다른 일보전진을 모색하고 있는 세계 반핵군축운동의 국제적 토론의 장에 우리가 주목해야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리고, 매년 세계 반핵운동의 여론이 결집해 그와같은 공론의 장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수폭금지세계대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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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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