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칼날, 자존심도 없는 이유
        2010년 08월 04일 09:2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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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 아침신문이 1면 머리기사에서 모두 다른 내용을 내보낼 때가 있다. 언론 눈길을 한눈에 잡을 대형 이슈가 없거나 언론 각자의 시각을 담은 기사를 내보낼 때가 그렇다. 8월4일자 지면이 그런 경우이다. 9개 전국단위 주요 종합일간지 1면 머리기사는 제각각이다.

    신문 1면은 해당 언론의 얼굴이다. 그날 지면에서 가장 도드라진 내용이 담겨 있다. 특종이나 단독보도도 있고, 자사의 정체성에 걸맞은 기획성 기사를 내보내기도 한다. 언론은 2007년에도 2010년에도 2012년에도 제자리를 지켜야 한다.

    언론이 정권 변화에 따라 원칙과 기준, 자존심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 이는 상식이다. 지켜야 할 기본이다. 자존심 하나로 보면 한국 언론 으뜸이라 할 조선일보가 ‘부끄러운 기획기사’를 전했다.

    아니 훌륭한 기획기사이자 훌륭한 기사 아이템이지만, 중요한 알맹이를 쏙 빼놓았다. 조선일보가 똑똑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본질을 몰라서가 아니다. 조선일보는 왜 문제의 본질, 기획기사의 가장 시의성 있는 큰 줄기를 쏙 빼놓았을까.

    다음은 4일자 전국단위 주요 아침신문 1면 기사다.

    경향신문 <세계유산 물거품 위기>
    국민일보 <서민들 되레 사채시장 내몰린다>
    동아일보 <검, 강원교육청 항소취하 요청 거부>
    서울신문 <세종시 이전 공무원 절반 “혼자 가겠다”>
    세계일보 <북 "물리적 대응 타격" 위협>
    조선일보 <‘타당성 기준 미달’ 선심사업 안써도 될 예산 11조원 샜다>
    중앙일보 <리비아, 10억 달러 ‘공짜 공사’ 요구>
    한겨레 <낙동강 준설 뒤 부유물질 최고 16배>
    한국일보 <"타임오프 준수율 96%" 고용부 ‘뻥튀기’ 무리수>

    조선일보, 예비타당성 문제 지적한 기획 아이템

       
      ▲ 조선일보 8월4일자 1면.

    조선일보 8월4일자 1면 머리기사는 <‘타당성 기준 미달’ 선심사업 안써도 될 예산 11조원 샜다>이다. 정부가 도입한 예비타당성 조사가 부실하게 운영되면서 국가예산이 줄줄 새고 있다는 기획성 기사이다.

    예비타당성 조사 제도는 사업비 500억원 이상의 대규모 신규사업에 대해 사전에 평가를 거쳐 추진 여부와 우선순위를 정하는 절차다. 국가재정법은 대형 국책사업에 대한 예비타당성 조사를 의무화하고 있다는 게 조선일보가 전한 내용이다.

    조선일보 특유의 ‘칼날’이 살아 있는 기획 아이템이다. 그러나 내용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의문이 남는다. 조선일보는 민주당 의원에 대한 비판으로 1면 머리기사를 시작했다. 조선일보 1면 머리기사의 시작은 이런 내용이었다.

    “민주당 이윤석 의원은 지난달 21~22일 과천의 국토해양부장관 접견실에서 꼬박 1박2일간 농성을 벌였다. 자신의 지역구인 전남 무안의 국도 24호선 확장 공사 예산 75억원이 한국개발연구원(KDI)의 타당성 재조사에서 경제성이 없다는 판정을 받아 전액 삭감되자 이에 항의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이 예산은 대형 국책사업에는 하도록 돼 있는 ‘예비타당성 조사’를 하지 않아 정부가 편성하지 않았던 것을, 2008년 예산 심의 과정에서 국회가 끼워 넣은 것이었다.”

    조선일보 "예비타당성 조사도 하지 않은 대형사업을…"

       
      ▲ 조선일보 8월4일자 3면.

    민주당 의원의 문제가 있다면 언론 비판은 타당한 행동이다. 조선일보가 예비타당성 문제를 지적하고자 했다면 본질을 꿰뚫는 ‘아킬레스건’을 다뤘어야 했다. 그런 방향으로 가기는 했다. 3면 기사를 살펴보자.

    조선일보는 <타당성 조사도 안해 보고…국회, 매년 1조5000억 ‘무개념 예산’>이라는 기사에서 “예비타당성 조사제도는 대형 사업을 무분별하게 추진하는 것을 막고 우선순위를 다져 예산을 편성하자는 취지로 지난 1999년 도입한 것이다. 그러나 국회는 예산 심의 과정에서 예비 타당성 조사도 실시하지 않은 대형사업을 마구잡이로 끼워 넣어 제도 자체를 흔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대형사업이 예비타당성 조사도 거치지 않았다는 지적은 경청할 대목이다. 국회의 문제점을 지적한 것 역시 경청할 대목이다. 그렇다면 정부는? 이러한 의문이 남을 수밖에 없다. 조선일보가 이를 모를 리 없다.

    조선일보는 “예비 타당성 조사제도를 도입하고 기준(운용 지침)을 만든 정부도 이 제도를 잘 지키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조선일보가 정부 비판의 근거로 삼은 사업들은 간월호 관광도로 건설, 친환경농산물종합물류센터 건립사업, 온라인저기자동차, 울산~강릉 간 철도사업, 울산~포항 고속도로 등이었다.

    예비타당성 조사 부실의 대표사례 ‘4대강 사업’

       
      ▲ 한겨레 2009년 9월4일자 사설.

    조선일보 기획기사의 초점은 예비타당성 조사를 제대로 활용하지 않아 예산 낭비를 초래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잠깐. 어디서 많이 들어본 얘기 아닌가. 예비타당성조사와 국가 예산 낭비 문제….

    바로 이명박 정부 최대 국책사업이라는 4대강 공사 문제가 불거졌을 때 중요한 현안으로 떠올랐던 문제가 예비타당성 조사이다. 시간을 거꾸로 되돌려 약 1년 전으로 되돌아가보자. 한겨레는 2009년 9월14일자 <헌법과 법절차 무시한 채 내달리는 4대강 사업>이라는 사설에서 “모두 22조 2000억원 이상이 든다는 4대강 사업에 대한 예비타당성 조사, 환경영향 평가, 문화재 조사 등 사전 절차는 모두 편법으로 생략되거나 요식행위로 끝났다”고 비판했다.

    한겨레는 “예산의 부실 사용을 막기 위한 예비타당성 조사의 대상이 전체 4대강 사업 예산 가운데 고작 11.2%, 2조4773억원에 그친 것이 대표적이다. 논란의 핵심인 하천 준설, 보 건설 등 치수사업은 7조6000억원 규모로 가장 큰 사업인데도, 재해예방 사업이라는 이유로 조사 대상에서 제외됐다. 나머지 예산도 사업을 이리저리 쪼개 규모를 줄이는 방식 등으로 빠졌다. 그렇게 해서 예비타당성 조사를 받지 않게 된 예산이 19조7000억원”이라고 설명했다.

    조선도 알고 있었던 ‘4대강 공사’ 예비타당성 조사 부실

       
      ▲ 조선일보 2009년 11월10일자 사설.

    이명박 정부가 수십조 원이 드는 4대강 공사의 예비타당성 조사를 편법을 활용해 은근슬쩍 넘어갔다는 점을 꼬집은 내용이다. 조선일보가 2010년 8월4일자 1면 머리기사로 전한 바로 그 기획기사와 맥이 닿아있는 내용 아닌가.

    조선일보는 민주당 의원의 75억 원 예산 문제를 지적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예산 규모로 비교도 안 되게 큰 4대강 사업의 예비타당성 조사 부실에 대해 지적했어야 조선일보다운 깔끔한 기사라는 평가를 받을 것이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4대강 사업의 예비타당성 문제에 대해 다루지 않았다. 조선일보는 4대강 사업의 문제점, 예비타당성 부실에 대해 모르고 있었을까. 애석하게도 조선일보는 알고 있었다. 변명의 사유가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조선일보 2009년 11월10일자 사설 <4대강 사업이 성공하기 위한 6가지 조건>라는 사설에서 “지난 3월 국가재정법 시행령을 바꿔 4대강 사업을 예비타당성 조사 대상에서 제외시킨 것을 비롯해 사전환경성 검토를 약식으로 마친 것에 대해서도 비판이 많다. 환경영향평가를 3개월 만에 끝낸 것도 정상이라고 보긴 힘들다”고 비판했다. 조선일보가 지난해 사설로 지적했던 바로 그 문제가 4대강 주변에서 현실이 되고 있다.

    4대강 사업 졸속시행, 문화유산이 위험하다

       
      ▲ 경향신문 8월4일자 1면.

    경향신문 2010년 8월4일자 1면 <세계유산 물거품 위기>라는 기사에서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 중인 공주·부여 역사유적지구가 4대강 공사로 크게 훼손될 위기에 놓였다. 전문가들은 ‘4대강 공사로 문화유산과 주변 환경이 왜곡될 경우 세계유산 등재는 불투명해질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고 비판했다.

    경향신문은 <‘훼손 위기’ 4대강 문화유산 전면 재조사하라>라는 사설에서 “문화재는 한번 훼손되면 복원이 불가능한 만큼 4대강 속도전을 당장 중단하고 문화재 보전대책부터 세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겨레는 1면 <낙동강 준설 뒤 부유물질 초고 16배>라는 기사에서 “4대강 사업으로 준설공사가 한창인 낙동강에서 부유물질(SS) 농도가 예년보다 최고 16배나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침사지와 오탁방지막 등 저감대책을 세우면 준설을 해도 악영향이 거의 없을 것이라던 정부의 환경영향평가 결과는 사실과 부합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4대강 환경영향평가도 부실

       
      ▲ 조선일보 2009년 12월4일자 사설.

    조선일보는 2009년 12월4일자 사설에서 “정부는 4대강 살리기에 14조원이 든다고 했다가 22조원으로 바꿨고 예비타당성 조사를 생략하고 사전 환경 검토도 약식으로 끝냈다”면서 “4대강을 이대로 둘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정부가 이 큰일을 하면서 뭔가 허술하고 문제가 있다는 인식을 가지게 된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조선일보는 4대강 사업 문제의 본질을 꿰뚫고 있었다. 환경영향평가 문제도 그렇고, 예비타당성 조사 부실 문제도 마찬가지다. 조선일보는 가장 시의성 있는 내용이 빠진 것을 모르고 기획기사를 내보낼 정도의 허술한 조직이 아니다. 그렇다면 더욱 문제이다. 예비타당성 조사 부실을 지적하는 비판기사에서 4대강 사업만 빠진 것은 조선일보 ‘칼날’이 무뎌진 게 아니라 알면서 숨긴 것으로밖에 볼 수 없지 앟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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