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리운전, 눈물과 애환 법으로 풀어줘야
    By 나난
        2010년 08월 03일 01:3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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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대리운전 기사 유아무개 씨는 오후 5시부터 다음날 오전 7시까지 쉴 틈 없이 일을 했다. 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아들과 생활하기 위해서는 대리운전을 하나라도 더 뛰어야 했다. 그리고 지난 2008년 그는 “몸이 너무 안 좋다”며 집에 들어간 지 1시간 만에 과로사로 인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2. 대구에서 대리운전을 하는 김아무개 씨는 보험을 들지 않은 차량을 운전하던 중 발생한 사고로 전치 8주의 진단을 받았다. 치료비조차 충당할 수 없는 보상금을 받았을 뿐이다. 그를 대신해 아내가 생계를 위해 대리운전에 나선 상태며, 그는 대구지방노동청 앞에서 산재 적용을 요구하며 1인 시위를 펼치고 있다.

    #3. 어느 여성 대리운전 기사는 최근 여러 명의 동승객을 내려주고 이에 따른 추가 금액을 요구했다가 차주로부터 폭행을 당했다. “살려 달라”고 외쳤지만 그에게 날아오는 주먹은 멈추지 않았다.

    특수한 건 고용관계가 아니라 고용환경

    지난 6월 26일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IC에서 차주가 차를 후진해 대리운전 기사가 사망한 사건이 알려진 이후 대리운전 기사는 물론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권리 문제가 또 다시 현안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당시 차주 박아무개 씨는 “운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운전 중인 대리운전 기사 이아무개 씨의 뒤통수를 몇 차례 가격했다. 이에 도로 갓길에 차를 세워놓고 이 씨와 다툼을 벌이던 박 씨는 차량을 후진해 이 씨를 치었고, 다시 전진해 이 씨를 재차 치고 도주했다. 이 씨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노동계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의 법과 제도만 만들어져 있었더라도 이번 사건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대리운전기사가 전국 15만 명에 달하며 하루 대리운전 건수가 80만 건에 달하고 있지만 이들의 노동자성은 물론 권익은 외면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번 사건과 같이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업무 중 사망에까지 이르는 일이 간혹 발생하고 있다. 대리운전 기사, 퀵서비스, 보험설계사, 간병인 등 일반인보다 훨씬 더 위험한 근로환경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인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말 그대로 ‘고용 관계’가 특수하다기보다 ‘고용 환경’이 특수한 상황이다.

    최영환 대구지역 대리운전노조 위원장은 “별내IC 사건은 이미 예견된 상황”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러한 사건을 미리 예방하기 위해 (대리운전업체) 콜 센터에 불량 고객 명단을 작성하고, 이들을 특별 관리할 것을 수차례 요청했지만 회사 측은 이를 무시했다”고 말했다.

       
      ▲ 서비스연맹 등이 3일 지난 6월 발생한 대리운전 기사 사망사건과 관련해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노동3권 보장과 산재보험 적용"을 요구했다.(사진=이명익 기자 /노동과세계)

    피해 감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

    최 위원장은 “대리운전기사와 차주 간의 폭력 사건이 하루에도 수십 건씩 경찰서에 접수되고 있지만 이러한 상황에 대한 통계조차 없는 상황”이라며 “아울러 일의 특수성으로 인해 밤에 일을 함에 따라 누적된 건강악화 문제는 물론 여성 운전기사의 경우 성추행 사건도 경찰서마다 몇 건씩 걸려있다”고 말했다.

    이토록 위험에 손쉽게 노출돼 있지만 이들을 보호할 법과 제도는 없는 상태다. 차주와의 마찰로 파출소에라도 가는 날에는 회사로부터 지적을 받는 것은 물론 배차 제한에 걸려 일을 하지 못하게 된다. 때문에 명백한 피해자가 되더라도 대리운전 기사들은 피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 최 위원장은 “대리운전기사에겐 인권이라고는 없다”며 “법제화는 물론 산재 적용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박대규 민주노총 특수고용대책회의장은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에선가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죽어나가고 있다”며 “10년이 넘도록 이 사회에서 특수고용 노동자 문제를 제기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허공에 메아리로만 떠들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현장에서 일을 하다 예상치 못한 사고로 목숨을 잃는 분들이 대리운전기사 외에도 퀵서비스, 보험설계사, 간병인 등에서도 많다”며 “여성 보험설계사의 경우 밤 10시건, 12시건 ‘보험 들어주겠다’는 말에 나갔다가 성폭행 당하고, 목숨까지 잃은 일이 발생한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100만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노동자’가 아니라는 정부의 입장 하나로 권리는 무시되고 인권은 법의 사각지대로 내몰리고 있다”며 “그나마 레미콘, 보험, 학습지, 골프 등 4개 직종에 대해 산재보험 법제화를 했지만 사용자들은 이들에게 ‘산재보험 기피신청’을 강요해 이마저도 유명무실해졌다”고 지적했다.

    민주노총 등 "특수고용 노동자 기본권 전면 보장"

    민주노총과 전국민간서비스산업노동조합, 대구지역대리운전노조는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기본적 권리를 보장한다는 측면에서 산재보험 적용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3일 기자회견을 열고 “특수고용 노동자들에 대한 전면적인 산재보험 적용”과 “헌법과 노동관계법에 명시하고 있는 노동기본권의 전면 보장”을 요구했다.

    이들은 지난 6월 억울한 죽음을 당한 이 씨의 사건과 관련해 “그는 특정회사에 소속돼, 타인의 차량을 운전하는 특정한 업무를 수행하고 임금을 받는 노동자임에도 불구하고 근로기준법이나 노동조합법상 명시된 근로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억울한 죽음을 맞았다”며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노동3권과 근로기준법, 노동조합법 상 근로자로 인정되었다면 아마도 그는 사망에 이르기 전에 법과 제도적 보장된 자신의 권리를 당연히 행사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보편적으로 적용되어져야 할 법과 제도가 잘못된 관행과 정치권이나 기업들의 정략 등에 의해 편향돼 수많은 노동자가 위험에 처하고 있다”며 “정부는 특수고용형태라는 생소한 명칭을 도입해 기업(사용자)들의 노동관계법상 준수해야 할 의무(4대 보험 가입의무 등)를 합법적으로 회피하게 만들어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강규혁 서비스연맹 위원장은 “최근 도저히 일어날 수도 없고, 일어나서도 안 되는 일이 발생했다”며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고 말했다. 강 위원장은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치유책이 나와야 한다”며 “노동3권을 보장하고, 산재보험을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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