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국의 후예들'과 바보 영감 '신채호'
        2010년 08월 01일 11:3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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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7월 30일) 제 인생에 좀 뜻깊은 날이었습니다. 법문을 읽을 일이 있어 제천에 가는 길에 어떤 선지식의 도움으로 대전시에 있는 단재 신채호 선생의 생가를 참배함으로써 제 오랜 숙원을 성취했습니다. 정확한 번지수는 충남 대덕군 산내면 어남리 도리미 마을일 터인데, 지금이야 마을이라기보다는 도시, 즉 대전의 부근입니다.

    복원된 단재의 생가

    도시인데도 이렇다 할 만한 대중교통이 없어 저를 차로 데려다준 선지식의 도움이 아니라면 거기로 가지도 못했을 걸요. ‘생가’라고 하니 독자 여러분은 아주 오래된 뭔가를 상상하시겠지만, 그렇다면 오판입니다. ‘생가’를, 당국에서 1990년대에 들어서야 ‘복원’, 즉 사실상 고증해서 찾은 ‘그 자리’에서 다시 지은 것이었습니다.

    신채호 선생의 집안은 사실상 끼니도 잘 이어가지 못할 정도의 잔반 계통의 극빈자이었지만 ‘복원된 생가’는 조금 화려해 보입니다. 대표적인 시골 선비 주택이라고나 할까요? 참, 가난이 죄가 되는 나라에서는 ‘민족 영웅’이 극도로 가난하면 좀 안되는 모양이지요?

    물론 ‘민족 영웅’에게는 ‘민족’ 이외의 그 어떤 다른 타이틀을 겸하는 것도 배려심 많은 스파클링 코리아는 살짝(?) 불허합니다. 생가 쪽의 비문 등 그 무슨 자료를 봐도 신채호가 말년에 동서방 모든 피압박 민중, 민족들이 들고 일어나 예수 크리스트와 같은 착취자들의 정신적 아편의 상징을 호미로 쳐죽일 것을 호소하는 골수 아나키스트가 됐다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민족’이 ‘삼성 민족’을 의미해야 하는 것에서는, ‘민족 영웅’이 불굴의 아나키스트라면 절대 안 되죠. 그리고 재벌 CEO와 교회 쪽 ‘리더’와 국가 원수가 삼위일체가 될 수 있는 나라에서는, "예수를 쳐죽이자"는 이야기 정도면 벌써 신성 모독일 걸요. 문자 그대로.

    불순한 모든 요소들이 제거돼 교과서적 ‘민족, 독립 운동가’로 대전의 부근에서 다시 태어난(다시 죽은; 아니면 다시 죽임을 당한?) 신채호를 보면서, 저는 독립운동과 오늘날 대한민국의 아주 복잡한 관계를 생각했어요.

    신채호와 이광수

    우리의 지금 상식에 맞지 않지만, 지금 대다수가 자본주의와 그 한국적 버전(재벌들이 소유하는 국가와 국민)이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착각)하듯이, 그 때에도 절대 다수의 유식자들이 총독부가 영원하거나 적어도 아주 오래 가리라고 생각(착각)하면서 살았습니다.

    지금 영문 논문을 외국 학술지에 내는 것이 가문의 영광이 되듯이, 그 때에도 최남선이나 안확, 이병도 등이 일어로 일본 권위지에 조선이라는 대일본제국의 한 ‘로칼리티’의 재미있는 특징에 대한 글들을 기고나 하고, 문필적/학술적 권위나 축적하고, 조선이라는 한 ‘지방’의 문화유산 보존에 노력이나 쏟고 불러주면 교수질이나 하는 등 한 마디로 정해진 범위 내에서 ‘얌전하게’ 살았죠.

    그게 ‘정상’으로 여겨졌고, 단재처럼 외지에서 무일푼 분자로 고생하면서 중국 신문에의 기고로 연명하고 ‘폭력 분자’, 즉 국제 아나키스트들과 어울린다는 것은, 미쓰코시(三越 – 지금 신세계) 백화점의 3층에서 경양식이나 먹고 경성의 풍경을 즐기는 신사, 숙녀 입장에서는 말 그대로 ‘바보짓’이었죠.

    집에서 피아노 소리나 즐기고 다이어트를 잘 지키는 식민지의 대표적 ‘신사 지식인’ 이광수는, ‘서서 세수하는’ 단재를 일종의 바보스러운 돈키호테처럼 묘사했지요. ‘바보 영감’이라는 별명의 구 대한제국 말기 망명객…

    식민모국의 언어와 ‘문명’을 내면화하고, 먹고, 마시고, 즐기고, 총독님께서 요청만 해주시면 당장이라도 "천황폐하를 위한 전국민적 동원"을 외칠 준비가 돼 있는 미쓰코시 백화점의 고객님들의 입장에서는 외국환이나 위조해 수류탄 만들 돈을 마련하려다 잡힌 단재는 위험하지도 않았어요. 그는 그냥 웃겼을 뿐이지요. 지금의 ‘주류’에게 송두율이나 오세철과 같은 지식인들이 ‘우습게’ 보이는 것처럼.

    급진 좌우파의 공통점

    결국 극좌가 돼버린 단재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다른 독립운동가들도 식민지 지배층이나 ‘주류’ 지식인들에게 우습거나 답답하게 보였을 뿐이죠. 중간 우파이었던 후기의 상해임시 정부까지 대규모 기업들의 국유화를 외쳤지만, 다수의 독립운동자들은 그렇게 ‘중간적’이지도 않았어요.

    급진 좌파의 박헌영도 급진 우파의 이범석도 – 해방 이후에 서로를 원수로 여겼지만 – 한 가지 공통점은 있었어요. 양쪽은 제국주의를 혐오했으며 시장 경제를 불신했어요. 그걸 노동계급 입장에서 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하나가 돼야 할 단군 자손의 순수한 혈통" 입장에서 하느냐의 차이 등 무시 못할 차이도 있었지만 말에요.

    그러나 식민지 안의 ‘주류’들에게는 시장경제도, ‘있는 이’들을 ‘없는 이’들로부터 보호할 외국 제국주의도 요람이자 보호막이었어요. 그들과 단재와 같은 이들 사이의 차이는, 단순히 친일이냐 반일이냐는 차이를 넘어, 인간을 명리로 사느냐 도리로 사느냐는 개성의 차이부터, 사회가 경쟁으로 이루어져야 하느냐 상부상조로 이루어져야 하느냐는 차이까지, 아주 전반적이었습니다. 결국, 기득권층과 기득권에 도전하는 양심의 차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지금 ‘스파클링 코리아’라는 커다란 수출 기업을 운영하는 CEO와 임원들은(꼭 생물적 의미라기보다는 이념적, 제도적 의미에서는) 물론 신채호나 이범석의 ‘적자’들은 아니죠. 미쓰코시 백화점의 고객님이나 화신백화점 주인님의 ‘적자’라고 보시면 맞을 것입니다.

    사실, 이들이 ‘내부적으로’ 보기에는 ‘서서 세수하고’, 조선 안에서 얌전하게 매문업이나 하는 대신에 중국에 가서 수류탄 만들 돈을 구하려다 덜미 잡힌 ‘바보 영감’ 단재는 말 그대로 ‘또라이’에 불과할 것입니다. 이와 같은 저들의 ‘내부적’ 사고를 외면화한 것은 바로 그 유명한(?) 뉴라이트와 ‘식민지 자본주의 찬양’입니다.

    제국의 후예들과 ‘아나키스트’

    그러나 이와 같은 ‘솔직한'(?) 이야기를 너무 크게 하면 안에서는 대다수의 ‘없는 사람’들에게 대한민국과 그 지배자들의 ‘정통성’을 세뇌시키기가 어려울 것이고, 바깥에서 ‘정통성’을 둘러싼 대북 경쟁에서도 이기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그리하여 주인님들은 저들의 머리를 겨냥하여 수류탄을 던지는 일을 ‘찬양고무'(?)한 무푼쟁이 아니키스트를 ‘민족 영웅’으로 인정하여 비문 만들고 ‘생가’도 ‘복원’하고 난리 치죠. 임금의 알몸에 뭔가를 걸쳐야 하니까요.

    그러나 그러면서도 ‘아나키스트’와 같은 말을, 저들이 가능만 하면 열심히 지워버립니다. 지금이라도 이 단어는 ‘제국의 후예’들의 귀에서 수류탄의 굉음으로, 만고의 저주로, 미래에 대한 어떤 불안한 예감으로 계속 들리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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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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