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운동 최고 단계는 '가족과 함께'
        2010년 08월 02일 12:0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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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히 노동운동 하면 현장 실천만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이게 전부가 아니다. 현장 밖 일상적인 삶의 공간에서도 부단히 실천하는 것이 노동운동이다. 최고의 성취단계는 가족을 설득해서 가족 전체가 함께 실천하는 것이다.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렵지만 또 반드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기도 하다.

    노동자만 하는 노동운동 잘 될 리 없어

    첫 꽁트 <유치원>(1991.4.11)은 해동이와 해자를 유치원에 보내는 대신, 가격이 훨씬 싼 어린이집에 보내, 이웃집 해고자 두 자녀를 포함해 네 아이들이 함께 다니게 한다는 이야기다. 여기엔 해고자를 돕는다는 현장 문제만이 아니라 가정의 사교육비 문제까지 포함되어있다.

       
      ▲ 자료=김하경

    노동자만 하는 운동은 아무리 잘해봤자 제 자리 걸음이다. 자칫하면 퇴보하기 십상이다. 아니 제대로 될 수도 없다. 아내와 남편, 어머니와 아버지, 삼촌과 이모, 아들과 딸 등 가족 전체가 참여하고 이해하고 협조해야 한다. 최소한 부정하거나 방해하지는 말아야한다. 그래야 노동운동이 제대로 발전한다. 그리고 그런 노동운동이 되어야만 세상을 바꿀 수 있다.

    내가 쓰고 싶었던 건 바로 이런 이야기였다. 현장 투쟁만이 아니라 그 배후에서 펼쳐지는 노동자 가족의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일상생활과 온갖 애환을 함께 담고 싶었다. 노동자 가족이 사회전체의 모순과 갈등 속에서 소용돌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총체적 삶을 풀어내고 싶었다. 해동이네 연작 시리즈는 이렇게 하여 탄생했다.

    그러다보니 등장인물이 가족 전체가 되었다. 해동이와 해자. 해동이 엄마와 아버지, 해동이 아빠의 회사 선후배, 해동이 이모와 해동이네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온 가족이 다 등장한다. 시점은 주인공 해동의 시점이다.

    고립을 벗어나기 위한 글쓰기 형식

    여기엔 장단점이 있다. 딱딱하고 어려운 노동현장을 쉽게 풀어 쓸 수 있는 장점이 있는가하면, 소년의 시점이 갖는 어쩔 수 없는 한계도 뚜렷하다. 폭풍처럼 몰아치는 전쟁터 같은 투쟁현장을 어떻게 소년의 시점으로 다 담아낸단 말인가.

    고심 끝에 시점을 고정하지 않고 자유자재로 다양하게 바꿀 수 있게 했다. 말하자면 해동이네 연작에선 해동이 시점으로, 중간에 사안 별로 독립된 작품을 끼어 넣어 전체적으로 변화를 줄 경우엔 해동이 아빠의 시점으로 바꿨다. 때로는 엉뚱하게 자본가나 경찰의 시점으로 변용하는 모험도 해보았다. 노동자가 상대적 위치에 놓이니까 훨씬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보였다. 또한 시점의 변화가 주는 재미나 흥미도 유발할 수 있어 좋았다.

    산재사망사고 세계 제1위이자 산재왕국인, 우리나라의 산재문제를 다룰 때였다. 노동현장에서 의문의 살인사건이 잇달아 일어나고, 경찰은 수사 끝에 범인이 바로 재벌사장임을 밝혀낸다. 이런 줄거리를 경찰의 시점으로 쓴 꽁트가 <꿈이여, 다시 한번>(1992.4.8)이다.

    그런가하면 전노협 탄압의 수단이었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다룬 <만병통치약>(1991.4.23.)은 자본가가 스스로 자신들의 탐욕과 술책을 폭로하는 장치로, 자본가의 시점을 활용했다.

    시급한 현장 투쟁의 현안을 다룰 때도 현장 안에만 국한하지 않았다. 가정이나 사회 저변으로 확대하여 사회문제화 하는데 주력했다. 예를 들어 부서통폐합이나 해고 등 고용관련 문제나 임금인상 등, 일상적인 현장 투쟁의 경우에도 가정이나 사회와 유기적으로 연결되도록 했다. 안 그러면 현장의 특수성, 노동자끼리의 이해관계, 제 밥그릇 챙기기로 인식되어, 사회로부터 고립되거나 왜곡될 위험이 있었다.

    높아진 노동자 의식과 꽁트의 다양화

    전노협 건설 후 노동자 의식은 지역에서 전국으로, 한 사업장에서 수많은 다양한 사업장으로 열배 스무배 확대되었고, 조합원 급증으로 그들의 요구 또한 다양해졌다. 삶이란 얼마나 다양하고 복잡하게 뒤얽히는가. 임금인상 하나만 봐도 그렇다. 회사담장 안에서만 끝나지 않는다. 물가와도 직결되고, 공공요금 집값 사교육비 의료비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이는 곧 사회적 비용에 대한 요구로 이어진다.

    <호루라기>(1991.8.29)는 해동이 아빠와 엄마의 냉전을 다룬 꽁트다. 처음에 남편의 노조위원장 후보출마에 반대하던 해동이 엄마는 뒤에 찬성 쪽으로 급선회한다. 그 반전의 배경에는 치솟는 부동산 가격에 대한 분노가 자리 잡고 있다. <최후에 웃는 자>(1991.11.14)는 그 후속편으로, 해동이 아빠가 위원장 선거에 당선된 날 밤의 풍경이다.

    그런가하면 <부시와 부시맨>(1991.9.12)에서처럼 간혹 노동자의 정치사회적 위치나 입장을 짚어야 할 때도 있다. 자본이 해고나 고용불안이라는 탄압수단으로 겁박할 때 노동자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대항 아니면 굴복 둘 중 하나다.

    해동이 아빠가 대항하자고 주장하자 일부 대의원들이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를 거론하며 신중한 대처를 요구한다. 해동이 아빠는 울컥한다. “언제 우리가 소련보고 노조했냐? 소련을 제대로 배우려면 페레스트로이카를 본받아라.”

    리얼리즘 문학의 입구

    정치라고해서 대의명분이 다가 아니다. ‘민주주의’나 ‘남녀평등’ 같은 보편적 가치관의 실현도 중요하다. 노조 안이나 밖 어디서든 필요하다. 특히 가정에서는 더욱 필수적이다. 예를 들어 주안의 대우전자로 취재 갔을 때였다. 사전에 노조와 연락을 취했고 신분증을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경비실에서 가방까지 보자는 통에 1시간이나 실랑이를 벌여야했다.

    그때의 경험을 살려 <괜찮아유>(1991.8.15)에서는 유원지에서 경찰이 노동자에게 불심검문과 불법수색을 남발하는 경우를 다루어보았다. 말로는 민주주의라고 떠들면서 현실사회에서는 비민주적 불법행위가 공공연히 자행되는 모순을 폭로한 것이다. 남녀평등 역시 말로만 떠들게 아니라 실천해야할 가치다. <남자가 여자를 만났을 때>(1991.7.11), <가을남자1>(1991.10.17), <가을남자2>(1991.10.31)등은 노동자의 연애를 통해 남녀평등이 실현되는 장을 펼쳐보였다.

    그런가하면 아주 평범한 일상생활도 보편적 삶의 무대로 등장한다. <꿈보다 해몽>(1991.6.27)은, 해동이 엄마가 우연히 점쟁이로부터 남편 잘 못 만났다는 소리를 듣고 실망하자, 해동이 아빠가 자본주의적 가치관을 뒤집은 도발적 해몽으로 아내를 위로하는 유쾌한 이야기다.

    글 쓰는 사람은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아니다.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일 뿐이다. 하지만 문제가 뭔지를 알아야 제기할 게 아닌가. 문제를 찾아 구체적 현실을 파고들다보니 여기가 바로 리얼리즘 문학의 입구임을 깨달았다.

    역사의 현장이 작품 속에 고스란히 살아 숨 쉬다

    소재와 주제는 원칙적으로 자율에 맡겨졌다. 하지만 그때그때 급박하게 다루어야할 소재의 경우 전노신 편집자가 직접 관련노조와 연결시켜줘, 취재나 자료제공 등 각종 편의를 봐주었다. 덕분에 취재는 별 어려움이 없었다.

    첫 꽁트가 나가자마자 박창수 열사 의문사 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한 달을 쉬었다. 이 사건의 직접적 계기는 전노협 특위의 하나인 대기업 연대회의다. 전노협과 대기업연대회의는 불가분의 관계다. 꽁트가 아니라도 꼭 현장 취재를 해둘 필요가 있었다.

    안양병원에서 경수노련(경기수원노동자연합) 동지들의 피눈물 나는 사수투쟁에도 불구하고, 전경들에게 시신을 탈취당할 때는, 발을 동동 구르기도 했다. 부산에서 하루 밤 묵으며 장례식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았다. 김진숙 동지가 목메인 추모사를 낭독할 때 영도시민을 비롯한 전 부산시민이 굵은 눈물을 흘리며 배웅하던 모습은, 그대로 하나의 역사현장이었다.

    원진 레이온에 취재 갔을 때였다. 공장 안에 들어서자마자 매케한 독가스가 코를 찔렀다. 나도 모르게 코를 움켜쥐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가스실이 이랬겠지 하는 짐작이 들었다. 공장안에는 죽음의 냄새가 진동했다. 오죽하면 어린 전경의 입에서 “나 같으면 이런 데서 일 안 한다. 차라리 노가다를 할망정.”이란 푸념이 나왔을까.

    공장을 사수하는 원진 노동자들의 깊은 속을 나나 전경이 속속들이 다 알 수는 없다. 다만 ‘고 김봉환 장례식’에서 원진의 싸움이 고용 이상의 문제를 우리 사회에 던지고 있음을 어림잡아 짐작할 뿐이다. 그래서 제목은 <원진 사람들>(1991.5.30)이지만 내용은 해동이 아빠의 시점으로 그렸다.

    그래도 남는 아쉬움

    안산의 삼양금속 조합원들과 농성장에서 밤새워 열띤 토론을 벌이던 추억도 새롭다. 회사와 경찰의 모질고도 질긴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오뚜기처럼 일어선 젊은 조합원들의 뜨거운 열정과 패기를 <나폴레옹이 아닌가벼>(1991.7.25)에 제대로 담았는지 의문이다.

    <남과 여>(1992.2.27)는 상여금 투쟁의 함성이 파도처럼 물결치던, 울산 현대자동차 파업현장을 다녀온 후 쓴 꽁트다. 투쟁의 내면이자 속살인 현장의 일상적 노동에 초점을 맞추었다. 자동차노동자들의 살인적 노동을 폭로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남녀구별 없이 서로를 챙겨주는 동료애를 통해서 뼈아픈 노동자의 현실을 실감케 하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과연 그 의도가 제대로 반영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1992년 투쟁의 하이라이트는 총액임금제투쟁이다. 이 투쟁의 선봉은 단연 창원 세일중공업(통일중공업)노조다. 노조는 자본과의 협상마저 지연시키면서 전국의 투쟁일정을 맞추기 위해 헌신했다. 그만큼 민주노조의 상징과 같은 노조다. 그 노조결사대와 함께 옥상에서 날밤을 지샌 긴긴 하룻밤이 <슬픈 첫사랑>(1992.6.17)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쉴 새 없이 울리던 경비조의 무전기 소리, 새벽을 가르던 헬기 소리가 지금도 귀가 따갑게 들리는 것만 같다. 결사대의 분노에 이글거리던 눈과 포효하던 함성소리를 들으면서도 눈 앞에 보이는 모든 현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상상 속 비현실의 세계처럼 여겨졌다. 어쩌면 그 부박한 현실을 믿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눈물이 한 방울 떨어진 순간, 불현 듯 슬픈 첫사랑의 이야기가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났다.

    1992년 봄, 처음으로 노동자 출신 후보가 총선에 출사표를 던졌다. 설렘을 안고 안산과 창원 두 군데를 뛰어다니며 취재하는 동안, 새로운 정치적 경험에 눈을 뜨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아쉽게도 이런 얼굴들과 목소리를 생생하게 전달하고 담아내지 못했다. 역량이 미치지 못해 부끄럽고 후회스러울 뿐이다. (3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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