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황한 현대차, "하청업체, 교섭해"
    법적으론 이미 정규직…투쟁 필요
    By 나난
        2010년 07월 29일 11:2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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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대법원이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조합원이 제기한 부당해고 및 부당노동행위 구제 재심판정 취소 소송에서, 현대차 사내하청이 불법파견이므로, 2년 이상 근무시 원청의 정규직으로 봐야한다는 판결을 내놨다. 노동계는 6년간의 투쟁의 결과라며 환영하고 있다.

    하지만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실질적으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과제가 앞에 놓였다. 대법원 판결이 저절로 정규직화를 가져다 주진 않는다. 오히려 그 동안 불법을 시정하라는 노동자들의 요구에 회사쪽은 도리어 구타와 해고로 대응해왔다.

    <레디앙>은 이번 대법원 판결이 가능했던 배경, 의미, 그리고 전망 등에 대해 세 차례 걸쳐 연재를 한다. <편집자 주>

    현대차, 어떻게 할까?

    지난 7월 22일 ‘현대자동차에서 근무하는 사내하청노동자는 도급이 아닌 불법파견이다. 따라서 2년 이상 경과한 자는 정규직으로 간주한다’ 라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이 나와 제조업 근무 노동자는 물론, 기업에게도 커다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1만 여명의 사내하청 노동자를 불법으로 사용해 온 현대자동차는 이번 판결과 관련해 대응책을 고심하고 있는 분위기다. 1만 여명의 사내하청 노동자를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할 수도, 그렇다고 판결 이후 집중된 여론을 피해 불법파견을 그대로 유지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현대차는 향후 2년 이하 근무한 비정규직을 해고하고, 한시 하청을 늘리며 정규직 전환 대상자를 최대한 축소하려는 방향으로 이번 판결을 비껴가려 할지도 모른다.

    대법원 판결 이후 현대차는 사내하청 업체에 “회사의 의견을 일괄 제시할 예정이니 (노사)교섭에 참석하여 주시기 바란다”는 공문을 집단으로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각 사내하청 업체들은 비정규직 노조에 교섭을 요구하고 있다. 현대차 비정규직 3주체(울산, 아산, 전주 비정규지부)는 그간 현대차와 사내하청 업체에 꾸준히 올해 임단협을 위한 교섭을 요구해 왔지만, 이들은 단 한 번도 교섭에 임하지 않았다.

    하지만 판결 이후 변화한 현대차의 태도는 비정규직 노조의 조직력 약하다는 점을 이용해, 하청업체 사장을 내세워 현재의 상황을 유지하려는 의도록 해석된다. 하지만 비정규직 노조가 하청업체와의 교섭에 임할 의무는 없다.

       
      ▲ 사진=금속노조

    법적으로는 이미 정규직

    이번 판결에서 대법원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사내하청’이라는 거짓된 탈만 쓰고 있었을 뿐, 그 실체는 ‘정규직’이며, 이들의 사용자 역시 ‘사내하청업체’가 아닌 ‘현대차’라고 확실히 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현대차가 그간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향해 “교섭 대상이 아니”라고 줄기차게 이야기해 왔던 주장을 이제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하청업체에 되돌려 줘야 한다. “너희는 우리의 교섭 대상이 아니다. 진짜 교섭대상은 우리의 사용자인 현대차다.”

    이번 판결이 문서로만 남지 않고, 실질적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현장의 투쟁 동력이 필요하다. 지난 2003년 월차를 쓰려던 노동자에게 식칼을 휘두른 현대차에 분노해 노동조합을 결성한 현대차 아산공장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필두로, 울산과 전주에도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조합이 생겨났다.

    그리고 이들은 현대차의 불법파견을 증명하고,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쟁취하기 위해 스스로 투쟁해 왔다. 그 결과 2005년 현대차 내 1만여 사내하청 노동자의 불법파견 판정에 이어 2010년 대법원 판결을 이끌어낸 것이다.

    이번 판결은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투쟁에 의한 결과라 해도 무방하다. 부당해고 취소 소송을 제기한 최병승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조합원만의 판결이 아니다. 적게는 현대차의 1만여 명 많게는 제조업 전체 10만여 명의 사내하청 노동자에 대한 판결인 것이다.

    노동부가 2008년 고용보험에 등록된 300인 이상 대규모 사업장을 조사한 ‘사내하도급 현황’에 따르면 963개 사업장 노동자 1,685,995명 중 368,590명(21.9%)이 사내하청 노동자다.

    현장 비정규직들 관심 급증

    이 중 조선업계와 철강업계 등 주요 제조업의 사내하청 노동자 비율이 각각 79,160명과 2,8912명으로, 10만여 명을 차지하고 있다. 전기전자, 철강, 조선 등 사내하청을 사용한 모든 제조업 상황이 현대자동차와 다를 바가 없다는 측면에서 적어도 10만여 명이 이번 판결의 대상자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판결에 현대차는 물론 완성차를 비롯한 제조업 전반이 주목하고 있다. 현장에서는 이번 판결과 관련해 본인이 판결에 해당되는지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컨베이어벨트 공정인지, 입사일은 2년이 넘었는지, 우리 부서도 해당되는지’ 등 현장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본인의 상황을 이번 판결에 대입해보며 ‘정규직이 될 수 있는지’를 따져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라인 운영 등 약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작업지시, 근태관리, 노동시간통제 등 실제로 원청의 개입이 없이는 모든 것이 불가능하다는 측면에서 볼 때, 이번 판결이 현대자동차의 사내하청 노동자만이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제조업의 모든 사내하청 노동자가 이번 판결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번 판결의 내용이 현실화 될 경우, 사내하청 노동자는 정규직의 직위를 얻게 된다. 그간 같은 라인에서 같은 일을 해도 임금에서부터 각종 복지 등의 혜택에서 차별을 받아왔던 사내하청 역시 취업규칙과 호봉표, 단체협약 등에 따라 임금, 근로조건, 후생복리 등 정규직과 똑같은 대우를 받게 되는 것이다. 사내하청 비정규직도 이제는 정규직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이번 판결이 갖는 의미가 중요하듯, 이번 판결을 현실화해 나가는 것이 더더욱 중요하다. 이번 대법원 판결도 오래된 세월의 어려움을 견디며 투쟁한 데 따른 결과인 것처럼, 판결이 현실화가 되는 과정에서 이 같은 투쟁은 불가피할 것이다. 오히려 더 강력한 투쟁이 필요할 것이다. 

       
      ▲ 금속노조가 지난 26일 기자회견을 열고 "모든 사내하청 노동자를 즉시 정규직화할 것"을 요구했다.(사진=이은영 기자)

    당사자들 조직화 투쟁이 중요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본의 공세는 더욱 강력해질 것이다.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스스로 투쟁하지 않으면 이번 판결 역시 물거품이 될 공산이 크다. 이번 판결은 최병승 조합원 한 사람에게 내려진 판결임과 동시에 불법파견 판정을 받거나, 불법파견에 해당하는 노동자 모두에게 해당하는 판결이라는 점을 다시한번 환기할 필요가 있다.

    아니, 제조업 공장의 사내하청 모든 공정이 불법파견 공정이므로 모든 사내하청 노동자가 당사자라고 보면 된다. 때문에 이번 판결에 해당하거나 설령 해당하지 않더라도 사내하청 모든 노동자가 ‘들불처럼’ 일어서야 한다.

    현대차는 물론 각 현장에서는 원청 사용자에 교섭창구를 요구하고 이에 따른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정규직으로서의 지위를 확보하는 투쟁을 계속해야 한다. 정규직과의 차별적 대우에는 조직적으로 항의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상대로 이번 판결의 결과와 의미를 알려내야 한다.

    지난 6년간 현대차의 불법파견을 증명하기 위해 비정규직 노동자 스스로가 끈질기게 투쟁해왔듯 이번 판결을 현실에서 실현하기 위해 스스로 투쟁해야 하는 것이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볼 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당사자들의 조직화와 투쟁이다.

    아울러 체불임금 소송 및 근로자지위 확인 소송도 진행해야 한다. 금속노조는 해고자까지 이번 소송의 대상자로 삼을 예정이다. 현대차를 제외한 또 다른 제조업체들 역시 불법파견을 증명할 수 있는 자료를 수집하며 함께 소송에 참여해야 할 것이다.

    이번 싸움은 누가 대신해 줄 수 없는 싸움이다. 2005년 불법파견 판정을 받고도 흐지부지 된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번 판결은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그동안의 끈질긴 투쟁으로 얻어진 값진 결과이며, 사용자를 강제할 수 있는 판결이다. 이제 남은 과제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조직된 투쟁으로 자신의 근로자지위를 확보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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