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륙되는 어미강, 낙동강에서
        2010년 07월 28일 02:0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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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수야, 불 들어간다”

    다비식에서 들은 소리가 잊히지 않았다. 낙동강을 바라보며 한 스님이 소신공양을 했다. 그 소리에 무슨 말인가를 답변해야 될 것 같았다. ‘불 들어간다’는 말은 생명을 위해 생명을 바쳐야 하는 세상에 던지는 죽비소리처럼 들렸다.

       
      ▲ 햇살을 가득 머금은 낙동강 한자락 (사진=이상엽 작가)

    유서는 평소 말없고 과묵한 성품 그대로 간결했다. 그는 평소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곤 했다. 예전에는 모르고 지나치던 것이 이제는 발걸음 하나도 마음대로 뗄 수가 없다고. 발밑에 개미라도 한 마리 있으면 어쩌느냐고. 깨달은 자는 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가 세상을 본다고 한다.

    얼마 전 읽은 글이 기억난다. 어느 가수가 딸과 함께 등산을 갔는데 갑자기 딸이 ‘아빠가 개미를 밟았다’면서 30분간 울었다는 얘기다. 그 아이의 눈으로 강을 바라보고 싶었다. 그 또래의 아이들이 4대강 공사 현장을 바라본다면 교과서 속 가르침도, 동화가 들려주는 이야기도, 어른들의 가르침도 더 이상 믿기 어려울 것이다.

    그맘때의 우리도 수달의 눈으로, 고라니의 눈으로, 재두루미의 눈으로 세상을 보았다. 나이가 들면서 생명을 보는 인간의 눈은 썩어가는 것일까? 썩은 두 눈동자를 도려내고 보지 않으면 저 4대강의 참극이 보이지 않는 것일까?

    스님은 평소 도반들에게 “내가 소신해야 4대강 사업을 해결할 수 있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떠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비 내리는 오늘도 강변 도처에서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공사장의 소음을 들으며 그가 홀로 감내한, 내면에 침잠해 세상을 바라보는 외로움과 고통의 시간들을 헤아린다.

    나는 그 시간들의 끝에서 스님께서 우리에게 강 하나를 남겨주고 떠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강을 품고 ‘함부로 발을 뗄 수 없다’던 길을 우리는 다시 걷고 있다. 스님이 결단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즈음이었다. 우리는 8개의 대형 보가 들어서는 4대강 사업 최대의 공사구간인 낙동강으로 떠났다. 우리가 처음 도착한 곳은 낙동강 하류의 삼락습지생태원이다.

    세 가지 낙(樂)을 잃어가는 삼락둔치

    삼락둔치 물가에 제상을 마련하고 주변을 정화한 후, 강신제를 올린다. 발치 앞의 낙동강 물을 떠와 정안수로 올리고, 팔당 유기농단지에서 가져온 감자, 상추, 계란, 파 등의 농산물을 제상에 올린다. 모두 강의 젖을 먹고 나온 뭇 생명들과 농민들의 피땀이다. 낙동강 둔치에서 자라는 채소들도 고사상에 올리고 제문을 낭독한다.

       
      ▲ 참가자들이 낙동강변에 상을 차린 뒤 제를 올리고 있다 (사진=이상엽 작가)

    칠백리 굽이굽이 옥토를 제 품에 거둘 적에 난데없는 도둑놈들 무슨 공사한답시고 저를 먹인 어미강을 무참히도 도륙하니 천지간 만물 중에 이런 패륜 또 있는가? 하룬들 놓칠 손가? 천년을 천만년을 흐르소서. 마음 모아 기원할 제 온 생명은 이리로.

    강신제를 마친 일행은 삼락습지생태원을 걷는다.
    낙동강 하류는 둔치가 폭넓게 형성되어 있다. 부산 인근지역만 해도 343만 평의 둔치가 강의 주변을 이루고 있다. 삼락둔치는 143만 평의 광활한 땅에 다양한 생명들이 강의 품에 깃들어 있다. 구포역에서 삼락둔치와 낙동강 하구, 염막둔치로 이어지는 길은 50킬로미터가 넘는, 도시에서 거의 유일한 긴 도보길이다.

    둔치의 이름인 ‘삼락’은 세 가지 낙(樂)이 있다고 해서 붙여진 명칭이다. 첫째는 딸기가 풍성하게 열린다는 것이고, 둘째는 무성한 갈대밭과 버드나무 사이로 바람이 많이 불어온다는 것이고, 셋째는 아름다운 낙조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버드나무와 갈대밭 사이로 둔치의 속살을 걷는 길은 산들바람과 함께하는 길이다. 바람에 실려 새소리가 들려온다. 칠팔월경이면 길을 걷는 내내 짝을 찾는 맹꽁이 울음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삼락둔치는 멸종위기종인 맹꽁이의 국내 최대 서식처로 알려져 있다. 길을 안내하는 이준경 씨(생태보전시민모임 생명그물)는 하천환경과 양서류 전문가다.

       
      ▲ 삼락둔치의 갈대숲 (사진=이상엽 작가)

    “양서류는 물과 육지 양쪽에 서식한다고 해서 양서류입니다. 물속에 살던 종들 중에 용감한 종들이 양서류가 된 거에요. 그러니까 수환경의 지표종이라고 하죠. 양서류는 30% 정도가 보호종이에요. 옛날엔 동네마다 다 있었는데 지금은 보호종이 됐어요. 대도시권에 이렇게 야생으로 서식하는 곳은 거의 없습니다.”

    이곳은 맹꽁이 외에도 황조롱이, 수달 등의 멸종위기종 생물이 살고 있는 종 다양성 1등급의 생태보전구역이다. 문화재 보호구역, 습지 보호구역으로도 지정되어 있다. 이 지역의 생태가 다양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개발과 관리를 최소화했기 때문이다. 해마다 1천억원 가량의 관리비를 투입하는 한강에 비해 1/50의 관리비만으로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곳에 콘크리트를 깔고 자전거 도로를 낼 예정이다.

    주말을 맞은 삼락둔치엔 많은 시민들이 찾아와 휴일을 보내고 있다. 연인들은 손을 잡고 버드나무와 갈대숲이 있는 강가로 걸어가고 있다. 홀로 길을 걷는 사람도 있다. 언젠가 내가 그랬듯 세상의 슬픔을 품고 와서 버드나무 아래 조용히 부리고 가는 사람도 있다. 그가 떠난 자리에 새 한 마리 날아와 그 슬픔을 부리에 물고 낙동강으로 날아가고 있다.

       
      ▲ 삼락둔치에서 휴일을 보내고 있는 시민들 (사진=이상엽 작가)

    논은 습지입니다

    카메라를 들고 온 기록자들은 둔치 곳곳에 흩어져 뷰파인더에 풀과 나무, 웅덩이며 바람을 담고 있다. 사진을 찍다 길을 잃은 자들이 뒤늦게 돌아오기도 했다. 발바닥이 아플 즈음 수변농업을 하는 농민들을 만났다. 머잖아 이곳에 무슨 일이 벌어질 지 알면서도 농부들은 허리를 구부려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삼락둔치에서 키운 채소를 가져와 제상에 올린 농민 김해근 씨는 자연재해보다 무서운 것이 무엇인지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 삼락둔치의 농민들 (사진=이상엽 작가)

    “자연의 재해보다 인간이 만드는 재해가 훨씬 더 무섭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당대에 한해서 영농 보장하는 걸로 부산시장과 협의하고 전 생명을 걸고 여기 살아가고 있는데 어이가 없습니다. 팔당 분들도 인위적인 재앙에 의해 시달리는 모습을 보면 앞날이 갑갑합니다.”

    정부는 삼락둔치에 조성된 7만 평의 농경지와 염막둔치의 농경지를 강제 수용할 예정이다. 농민들은 부산의 환경단체와 함께 2002년부터 4년에 걸쳐 부산시와 싸워 친환경 영농을 조건으로 농사를 지을 권리를 얻었다. 2002년 당시엔 100만 평에 달하는 비닐하우스가 있었다. 농민들은 농약을 사용하는 비닐하우스를 걷어내고 친환경 영농으로 전환했다. 그후 자연스럽게 강의 수질이 좋아졌다.

    부산 지역 환경단체는 자연친화적인 수변농업이 필요하다며 삼락둔치와 염막둔치에 유기농특화단지를 조성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2008년 경남 창원에서 열린 제10차 람사르 총회에서 ‘논 습지 결의안’이 채택됐다. 논이 다양한 생물들이 서식하는 습지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다. 습지로서의 장점 외에도 수변 농업은 여러 가지 유익한 역할을 하고 있다. 농민들이 농사를 짓는 땅은 별도의 관리비용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에 수변 관리 비용이 절감된다. 그리고 정부에서 만들려고 하는 풀장, 골프장, 인라인 스케이트장 등이 오염원 역할을 하는 데 비해 습지인 논은 수질을 정화시켜 준다.

       
      ▲ 삼락둔치 습지 (사진=이상엽 작가)

    2006년 협의 이후 부산시에서 500억이 넘는 사업비를 들여 삼락둔치 정비사업을 했지만 결국 4대강 사업으로 국민 세금을 들인 정비사업은 무용지물이 될 지경에 처했다.

    또 하나의 낙동강 하구둑

    낙동강 하구와 삼각주들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아미산 중턱의 전망대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하구의 풍경이 아득한 거리까지 펼쳐졌다. 강을 따라 걷던 걸음이 드디어 바다에 닿았다.

    태백산 황지에서 발원한 낙동강이 사람을 먹이고 생명들을 먹이며 1300리를 구비 구비 돌아 이곳에 도착한다. 강물은 여기서 하룻밤을 묵고 소금기를 머금으며 남해의 바다가 된다. 수만리 공중을 날아온 새들도 고단한 날개 깃을 거둬들이고 고요히 보금자리를 찾아 잠을 이룬다.

    을숙도, 일웅도, 장자도, 신자도, 진우도, 맹금머리등, 백합등, 도요등, 대마등 등 남북 26km, 동서 6km에 걸쳐 형성된 삼각주가 새들을 부르고 있다. 삼각주는 여러 차례 홍수를 거치면서 떠내려간 흙과 모래가 쌓여 만들어진 섬이다.

    낙동강 하구는 세계적인 습지이고 한때 동양에서 가장 큰 철새 도래지였다. 갯벌과 얕은 수심엔 새들의 먹이가 풍부해 한때 206종 22만 마리 철새들의 쉼터였다. 새들이 잠을 뒤척이기 시작한 것은 1983년 을숙도를 가로지르는 2.4km의 낙동강 하구둑을 만들면서부터다.

       
      ▲ 낙동강 하구의 늪지대 (사진=이상엽 작가)

    그때부터 을숙도는 사람의 발길이 닿고 자동차가 침범하는 육지로 바뀌었다. 그후 을숙도 하구둑에 쓰레기매립장을 건설했고, 1990년대 들어 서부산권 개발계획으로 갯벌이 매립되었다. 사람의 발길이 잦아지면서 새들은 하나둘 을숙도를 떠났다. 철새 공동체는 지금도 파괴되고 있다.

    하지만 철새들은 철거싸움을 할 수 없다. 겨울이면 낙동강 하구의 지표종인 고니가 3천여 마리 가량 찾아왔지만 그 수가 줄어 지난 겨울엔 400여 마리로 줄어들었다.

    하구의 풍경 너머로 장림, 신호, 녹산 공단의 공장 굴뚝이 열을 지어 서 있다. 낙동강 하구둑 건설은 자연스럽게 바다로 흘러가는 강의 길목을 막는 일이었고, 강과 바다를 분리하는 일이었다. 낙동강을 국내 최대의 인공호수로 만든 하구둑 건설은 물의 오염과 생태계 파괴로 이어졌다. 이준경 씨가 건설이 부른 비극을 들려준다.

    “하구둑을 준공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녹조가 생겼어요. 그래서 6개월 만에 물을 소통시켰죠. 이곳은 순천만과 더불어 가장 아름다운 지형을 형성했죠. 겨울엔 고니, 저어새 등 안 오는 새들이 없습니다. 대도시 인근에 이렇게 생태계 보고가 있는 곳은 거의 없습니다. 4대강 정비로 인해 저 쪽에 보를 하나 더 만들 예정입니다. 하구둑을 하나 더 만드는 거예요. 보를 세우면서 강을 준설했을 때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한 군데도 연구를 내놓고 있는 곳이 없습니다.”

    현재 4대강에 세우고 있는 보는 낙동강 하구둑과 같은 형태의 가동보이다. 둑 건설로 인해 낙동강 하구는 녹조류가 번성하는 오염이 심각한 곳이 되었다. 흐르는 물을 막았기 때문이다.

       
      ▲ 해질녘 낙동강 하구 (사진=이상엽 작가)

    뉘엿뉘엿 저무는 해가 새들의 잠을 재촉한다. 길을 떠나 만난 풍경들 중 기억의 퇴화작용을 견디며 잊히지 않는 풍경이 있다. 낙동강 하구에서 만난 풍경이 그런 풍경으로 남을 것이다. 어느 시에서처럼 나도 공중을 나는 철새들을 만날 때면 낙동강 하구의 ‘안부’가 궁금해질 것이다.

    네가 훠이훠이 돌아올 때면
    우리는 시베리아의 안부가 궁금하다
    – 박이도의 「을숙도에 가면 보금자리가 있을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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