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난 포수 손톱 매니큐어 광고가 싫다”
    [야구 야그] “기아처럼? 동희오토처럼?…마지막 장면 너무 구려”
        2012년 05월 14일 10:0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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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분들은 아마도 구단과의 계약에 따라 자신과 남편이 선수로 활동하고 있는 구단의 모기업의 광고에 출연했을 뿐이며, 광고의 내용이 그 분들의 실제 생각과 일치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글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 글의 주제는 그 분들에 대한 비판이 아닙니다.

    “조금 더 진하게 칠해야 돼.”
    “알았어.”
    그는 매니큐어가 싫지만 투수가 사인을 더 잘 볼 수 있도록 분홍색을 칠합니다.
    세상에 오직 야구만이 배려의 손 화장을 합니다.
    야구처럼. KIA자동차.

    KIA 자동차의 불편한 광고

    18.5m 뒤에서 포수의 사인이 안 보이는 투수라면 야구를 그만두는 게 차라리 낫다는 주장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맨손보다는 손톱에 색깔이 칠해진 쪽이 투수 입장에서는 더 잘 보일 것 같다.

    롯데자이언츠나 LG트윈스처럼 유니폼 하의가 줄무늬이거나, 야간 경기이거나, 신인투수인 경우 손가락 세 개와 네 개가 잘 구별이 안 된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어쨌건 이런 ‘배려’는 사인 교환에서의 실수를 줄이는데 도움이 될 것 같고 매니큐어는 이를 위해 생각해낼 수 있는 몇 가지 (어쩌면 유일한) 방법 중의 하나였을 것 같다. KIA 자동차는 이에 착안하여 기업광고를 만들었던 것 같고.

    그런데 어쩐지 불편하다. 포수이니 아마도 오른손잡이, 사인도 오른손으로 낼 테니 평소에는 정밀한 일을 많이 하지 않는 왼손에 매니큐어를 들고 오른손에 칠해야 한다. 이왕이면 깨끗하게 바르고 싶었을 것이니 매니큐어를 많이 발라본 부인에게 부탁하는 것이 꽤나 자연스러운 흐름 같기도 하다. 그게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꽤나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래도 여전히 불편하다. 왜일까. 사실 나는 많은 남성들이 그렇듯 매니큐어를 발라본 적이 없다. 그래서 그 사용법이라든가 특징 등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그래서 (대부분이 여성이었던) 매니큐어 사용자들에게 자문을 받았다.

    이 분들의 의견에 따르면 더 진한 색상을 내기 위해서는 얇게 여러 번 발라야 한다. 두껍게 바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얇게 잘 펴서 바르고, 잘 말린 후 그 위에 여러 번 덧바르기를 해야 진한 색을 얻을 수 있다는 얘기다.

    보통은 두 번 바르는데, 그 이상의 덧바르기는 훨씬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손톱에 답답한 느낌이 들고 손톱이 약간 무거워지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며 완성 후에도 매니큐어를 바른 면이 손상되기 쉬워 잘 하지 않는다고 한다. 즉, 진하게 칠해야 한다고 칭얼거린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매니큐어와 테이프

    더 진한 색깔이 필요했다면 매니큐어보다는 테이프가 낫다. 색상도 색상이지만 적당한 크기로 잘라서 붙일 수 있으니 훨씬 편하고 누군가에게 부탁하지 않아도 된다. 경기 중에 뜯어지거나 해도 보수하기도 편하고 매니큐어처럼 마를 때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싫어하는’ 매니큐어와는 달리 경기 직전에 붙이고 경기 끝나면 바로 뗄 수도 있다. 투수도 편하고 포수도 편하고 부인도 편하다. 조금 생각해보면 쉽고 편한 배려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그리고 이미 선수들은 매니큐어를 버리고 테이프로 옮겨간 것 같다.

    광고 제작에 참가한 사람들 중엔 분명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매니큐어 사용자도 있었을 것이고, 야구팬도 있었을 것이다. 이거 아닌데, 라고 생각했을 사람도 아마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광고는 광고주의 입맛대로 제작되어 방송을 타고 있다.

    이 광고는 그럴듯한 이미지들을 맥락 없이 나열하고 있다, 그것도 매니큐어 비사용자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남성 중심의 시각으로. 이 광고에 동원된 이미지들을 끄집어내보자.

    우긴다고 될 일이 아닌데도 “진하게 칠해야 해.” 라는 말에 별다른 저항 없이 “알았어.”로 받아주는 내조형 아내, 싫지만 한다는 ‘희생’의 이미지, OB베어스 원년 에이스로 해태 타이거스 및 KIA 타이거스와는 인연이 없었던 왕년의 인기 투수 박철순이 목소리.

    마지막 장면 너무 구리다

    이런 이미지들과 함께 ‘야구처럼’을 끼워 넣어 현재 가장 인기 있는 프로스포츠인 야구의 인기에 슬쩍 얹혀가려 했다. 그리고 한 가지. 이상한 공에 엉성한 폼으로 배트를 휘두르는 마지막 장면 솔직히 너무 구리다.

    광고가 원래 그런 거라고?

    하지만 그건 나에겐 “싫지만 해야 할 때는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면 된다.”처럼 들린다.

    KIA처럼, 동희오토처럼.

    필자소개
    뒤늦게 야구의 매력에 푹 빠져버린 동네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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