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이 아니었으면 가능했을까?"
    2010년 07월 26일 04:1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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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트와 노동자는 닮은 꼴

1990년, <그해 여름>을 쓰기 위해 창원에 내려왔을 때, 노동현장과 노동자를 자주 접하면서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노동자들에게는 시나 소설보다 꽁트가 더 어울린다는 사실이었다. 꽁트는 소설과 비교해, 분량이 짧다는 점 외에도 독특한 차별성이 있다. 삶에 대한 낙관과 해학이 바로 그것이다. 현장 노동자들에게서 느낀 것도 바로 이 삶의 낙관과 해학이다. 그러고 보면 꽁트와 노동자는 많이 닮았다.

이러한 꽁트를 통해 노동자에게 좀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었다. 꽁트가 노동자와 문학의 거리를 좁혀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혼자만의 꿈이었지만, 그때부터 꽁트를 노동문학의 새로운 장르로 실천하고 싶은 꿈을 꾸게 되었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화산처럼 폭발한 노동운동은 노동문학을 급박하게 필요로 했다. 노동문학은 미처 준비가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미천한 역량을 돌아볼 틈도 없이 현실적 요구에 부응하는 데만 급급했다. 주문은 빗발치지, 빨리 성과를 내놓고 싶은 조바심은 더하지, 그러다보니 쉬운 방법으로 글을 쓸 수밖에 없었다.

   
  

노동자의 총체적 삶을 성찰하면서 깊이 있는 글을 쓰는 게 아니라, 먼저 자기 이론을 세우고, 그 잣대로 현실을 재고, 그 이론에 맞는 현실의 전형을 끌어내는 식으로, 당위에 의해 글을 썼다. 여기에 효용성의 극대화를 위해 처음부터 ‘노동해방’이니 ‘파업’이니 ‘선봉’이니 하는 고강도의 단어와 소재를 남발했다.

노동자의 구체적 일상에서 출발, 의식화 단계를 거쳐 점차 투쟁에 이르는 과정을 통해, 총체적 삶의 감동이 나오는 법이다. 이게 맞는 순서다. 그런데 처음부터 강하게 나가나까 그 다음에도 계속해서 강하게 글을 쓸 수밖에 없었다. 그 사이에 노동자의 개인사적 가족사적 다양한 삶은 하찮은 소재나 유약한 목소리로 치부되어 뒷전으로 밀려났다. 그리고 노동문학은 도식을 답습하면서 점차 식상해져갔다.

노동자들조차 노동문학을 외면했다. 노동문학은 노동자로부터 멀어져갔다. 위기였다. 변화가 필요했다. 어디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답이 없었다. 그렇다면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하자. 다만 예전과는 다르게 시작하자. 시나 소설이 아닌, ‘꽁트’ 라는 새로운 장르로 말이다. 지금까지는 노동자의 총체적인 삶을 본격적으로 제대로 풍부하게 다루지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엔 현장의 치열한 투쟁과 함께, 노동자 개인과 그 가족의 삶도 다루자.

왜 하필 전노신 연재인가?

그런데 막상 쓰려니 막막했다. 엄두가 안 났다. 아무리 내 이론이 맞고, 또 의지가 강철같다 해도, 혼자 골방에 틀어박혀 무작정 쓰기만 하면 되는, 그런 작업이 아니었다. 최소한 쓴 작품을 봐주고, 함께 감동을 나눌 누군가가 필요했다. 그 누군가만 있다면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두리번거리던 내 눈에 전노신이 들어왔다.

전노신은 전노협 기관지다. 전국노동자들이 다 보는 신문이다. 그러니까 여기 실으면 최소한 전국 노동자들이 다 본다는 말이 된다. 수천명 독자가 생기는 것이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힘이 났다. 전국 노동자들과 약속하면 싫든 좋든 꼼짝없이 써야 한다. 아무리 힘들어도 약속을 지켜야 한다. 전국 노동자들이 수문장처럼 지키고 있으니 도망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을 것이다.

바로 이거야. 나는 무릎을 쳤다. 내가 필요한 게 바로 이런 강제와 구속이었다. 결국 전노신 연재는 나를 강제하고 구속하는 배수진인 셈이었다.

그런데 전노신은 전국노동자들의 투쟁기사만으로도 지면이 터질 정도였다. 이런 신문에 웬 꽁트? 안 어울려. 이런 반응도 예상 못한 건 아니다.

원래 신문이란 사건이 터지고 나서야, 안 좋은 일이 일어난 다음에서야 뉴스로 다룬다. 그러니 신문에는 큰 사건, 안 좋은 사건만 나오고, 자잘구레한 일상적 삶이나 좋은 이야기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너무 무겁고 진지하기만 하면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 힘들어서 외면하고 싶고, 무서워 도망가고 싶어진다. 가끔은 가벼운 듯 부드러운 위로의 말 한 마디가 백 마디의 날선 선전선동보다 더 효과적일 때도 있는 법이다.

전노신 연재를 핑계로 전국의 노동현장을 구석구석 찾아가, 기름 냄새 먼지 냄새 땀 냄새를 맡아보고 싶었다. 거친 손도 잡아보고, 마주앉아 밥도 먹고 술도 마시면서 눈물 콧물 흘려가며 굽이굽이 살아온 노동자들의 사연을 들어보고 싶었다. 그리하여 사람 냄새 풀풀 나는 노동자 꽁트를 써보고 싶었다.

다음날 나는 무턱대고 전노신 신문사를 찾아갔다. 맨 땅에 해딩하듯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편집자를 물어물어 찾아간 것이다. 처음엔 편집자들이 먼저 당황해 했다. 제 발로 찾아와 꽁트를 연재하겠다니 또라인가 아니면 프락치인가? 의심할 만도 했다. 하지만 꽁트 하나에 꽂힌 나는 낯 뜨거운 줄도 모르고 손짓발짓까지 해가며 열정적으로 꽁트에 대해 설명했다. 덕분에 처음에 반신반의하던 편집자들이 헤어질 때는 악수를 청하며 환하게 웃었다.

‘전노신 꽁트 연재’라는 무모한 도전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 * *

필자소개

김하경 / 소설가

인천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국어교육과를 졸업했다. 1978년 교육시평집 《여교사일기》를 펴냈으며, 1988년 계간 《실천문학》에 단편 〈전령〉으로 등단했다. 1990년 〈합포만의 8월〉(《그해 여름》으로 출간)로 제3회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했으며, 1999년 한국 민주노동사 연구의 소중한 모범이자 치열한 보고문학인 《내 사랑 마창노련》(전2권)을 출간했다. 그 밖에도 장편 《눈 뜨는 사람》, 콩트집 《숭어의 꿈》, 소설집 《속된 인생》, 편역본 《아라비안나이트》(전5권) 등을 펴냈다. 2008년 10월부터 인터넷 다음카페 ‘리얼리스트100’에 〈아침입니다〉를 연재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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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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