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식구가 늘었습니다"
        2010년 07월 26일 07:52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저희 집에 식구가 하나 늘었습니다. 24개월 된 사내 아이이고 이름은 시호입니다. 장애 영유아 보육시설에서 아내가 1년 정도 보살피던 아기입니다. 계속 같이 사는 건 아니고 일주일 정도 위탁을 받은 건데요, 일종의 적응 훈련이랍니다.

    24개월 된 시호

    아내나 저나 애 키우던 기억조차 가물가물한데 조그만 아기가 떡 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너무 신기했습니다. 어느듯 일주일이 다 되어가네요. 처음 만났을 때의 기억이 새롭습니다. 어느날 퇴근하고 집에 들어서는데 처음 보는 아기가 거실에서 놀고 있었습니다. 양손에 색연필을 들고 백지에 낙서를 하고 있는 겁니다. 제가 곁에 다가앉으니 대뜸 한 손에 쥐고 있던 색연필을 저에게 주면서 백지를 가리켰습니다. 같이 그리자는 거지요. 첨보는 얼굴인데 말입니다.

       
      

    이제 나이가 들어서인지 아기들이 다 예뻐 보입니다만 아직도 저는 남의 아기를 선뜻 안아주지 못합니다. 그런데 시호가 저를 온통 흔들어 놓았습니다. 시호가 처음 저희 집에서 자던 날 밤. 자정쯤에 거실에 앉아있는데 안방에서 아기가 혼자 걸어 나오는 겁니다. 바뀐 잠자리가 불편한가 했는데 문득 저랑 눈이 마주쳤습니다. 아기가 먼저 저에게 말을 했습니다. “아바바.” 그 순간 갑자기 가슴이 저려오고 머리가 멍해졌습니다. 하마터면 울 뻔했습니다.

    시호는 시설의 다른 아이들처럼 선천적인 장애 때문에 태어나자마자 버려졌습니다. 좌우뇌를 연결하는 뇌량이라는 부분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또래보다 말이 약간 느릴 뿐 겉으로는 아무 이상을 못 느낍니다. 시호는 앞으로도 전혀 문제없이 자랄 겁니다.

    사람들은 뇌가 작으면 사고능력이나 운동능력이 떨어질 거라고 믿고 있지만 여기에는 근본적인 의문이 있습니다. 1980년 <사이언스>에 ‘Is your brain really necessary?’라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영국 셰필드 대학의 뇌수종 권위자인 존 로버 교수는 어느 학생의 뇌를 스캔한 결과 뇌 조직이 거의 없고 아주 얇은 막만 남아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이 학생은 평범한 대학생이었고, 수학 경시대회에서 상을 받은 적도 있었습니다.

    2007년 의학 전문지 <란셋 Lancet>에는 프랑스 지중해 대학 교수들의 논문이 소개되었습니다. 리오넬 퓌예라는 의사가 한 중년남성의 뇌를 스캔한 결과 머리속의 대부분이 유체로 채워져 있고 뇌는 벽쪽에 아주 조금만 남아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공무원이며 두 아이의 아버지로 평범한 일상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뇌는 정말 필요한가?

    이 두 사람의 공통점은 어릴 때 뇌수종을 앓았다는 겁니다. 그 때문에 머리속의 대부분을 뇌수가 차지하고 있지만 남은 뇌만으로도 일상 생활에 전혀 지장을 받지 않았습니다. 제가 시호를 전혀 장애아로 보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물론 성인이 돼서 뇌에 손상을 입으면 회복하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작은 뇌에 적응이 되면 남은 부분이 전체 뇌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게 밝혀졌습니다. 그리고 뇌세포나 심장세포는 재생이 안된다고 알려져 왔지만 침 시술로 뇌경색 환자의 뇌세포가 재생되는 모습이 최근 실험에서 확인되었습니다.

    한의학에서는 뇌를 ‘골수의 바다(髓之海)’, ‘기항지부(奇恒之腑)’라고 합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생명활동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보조적인’ 시스템이란 뜻입니다. 보조적이라고 말한 것은 뇌가 생명의 중추는 아니라는 말입니다. 요즘엔 장기이식의 활성화를 위해 뇌사를 죽음으로 인정하지만 원래 죽음은 심장사를 의미했습니다.

    지식이나 운동기능에 있어서도 뇌는 중추가 아니라 터미널입니다. 뇌가 손상되면 정보망이 일시에 혼란에 빠지지만 회로와 생명 중추가 살아있으면 언젠가는 터미널은 복구됩니다. 인간이 만들어질 때도 뇌가 먼저 생기고 신경이 생긴 게 아니라 신경이 뻗어가면서 그 말단이 비대해진 게 뇌입니다. 길이 생기고, 사람들의 왕래가 활발해지면서 시장이 생기듯이 말입니다.

    아기와 헤어져야할 시간이 다가 옵니다. 일주일 정도 지나니 이제 여기가 제 집인 줄 아는지 소리를 지르고 뛰어다닙니다. 제가 부르면 달려와 무릎에 턱하니 걸터앉습니다.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자라면서 상처를 받지 않을까 걱정도 됩니다. 그러나 문득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아이는 어려움도 잘 극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앞날을 미리 걱정하기보다 지금 더 많은 사랑을 주는 게 중요하겠다 싶었습니다.

    시호가 위장에 탈이 좀 있습니다. 아기들의 문제는 대개 위장에서 출발합니다. 심각한 질환도 의외로 위장과 관계가 있습니다. 시호는 저희 집에 오면서부터 위장을 치료하는 약을 먹였습니다. 시설에 돌아가더라도 계속 약을 보내서 먹일 생각입니다.

    언제까지라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시호와의 인연을 계속 이어가려고 합니다. 여러분들에게도 좋은 인연들이 생기길 바랍니다.

    필자소개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