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닝'이 기아차가 아니라고?
    By 나난
        2010년 07월 25일 06:3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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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23일 현재까지도 현대-기아 본사 앞에는 용역경비들이 공공질서 확립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인도 절반까지 가로막은 바리케이트는 현대-기아 측의 작품으로, 보도블록 공사를 하기 위해서라는 게 저들의 주장이다. 멀쩡한 보도블록들을 들어낸 채 그대로 방치하고 있는 ‘이름만 보도블록 공사’는 언제나 끝이 날지 기약이 없다.동희오토 사내하청지회 조합원들의 농성이 언제나 끝이 날지 기약이 없듯이.

    현대-기아 측은 동희오토 사내하청지회 조합원들의 농성이 통행에 불편을 준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그 주장은 인도의 한 귀퉁이에서 한 평도 채 안 되는 돗자리를 깔고 투쟁하는 조합원들과 비교해봤을 때, 인도의 절반을 죄 막아버린 현대-기아 측이 할 말은 못된다. 

       
      ▲ 사진=동희오토사내하청지회.

    김혜진 불완전노동철폐연대 대표가 말했듯 “법을 준수하자는 현대 자본의 캠페인을 보니 법은 권력의 또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느낀다.” 그렇다. 법은 권력의 다른 이름이다. 노동자들에게 유독 가혹한 권력의 무게.

    싸구려 작업복 같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

    동희오토 이백윤 지회장은 여전히 현대-기아차그룹 본사 앞을 서성이는 용역 경비들을 보며 한숨을 쏟아낸다.

    “집회 할 때마다 용역경비와 마찰이 있습니다. 삼성 건물 앞 집회신고를 전담하는 용역경비 월급이 300만원이라는데, 지금 저 사람들도 못지않은 월급을 받지 않겠습니까.”

    이 지회장은 자신이 입고 있는 작업복을 내려다보며 허탈한 웃음으로 말을 이었다.

    “창피한 이야기지만, 지금 입고 있는 이 작업복은 재질이 싸구려라서 여름이면 땀에 젖은 옷감에 젖꼭지가 쓸려 이루 말할 수 없이 따가워요. 저 용역경비 두 명의 월급만 사내하청 노동자들 작업복 바꾸는 데 투자한다면 구겨진 비정규직 인생이 조금 펴지지 않겠습니까.”

    현대-기아차그룹 본사 건물은 그의 앞에 2년 간 끄떡없이 서 있었다. 그날따라 더욱 유난히 높고 견고해 보였다. 동희오토사내하청지회 조합원들은 2년을 하루같이 그 앞에서 절규했지만 건물의 문은 여전히 단단하게 닫힌 채로 열릴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우리의 목소리들에는 저들이 그렇게 싫어하는 동희오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정몽구 회장과 대화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한달 300만 원 줘 가며 집회 방해하면서 그 돈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비참한 삶을 해결해 줄 생각은 왜 못합니까. 노동자의 투지를 빼앗아가려는 정몽구 회장이 땀에 쓸린 작업복이 무슨 상관이겠습니까만…….

    그나마 여기서 정몽구 회장을 기다리는 것도 불법이라 합니다. 사유지를 침범 했다 합니다. 아무리 그들이 침낭을 뺏고, 매연을 뿜고, 물대포를 쏘아도 우리는 절대 물러날 수 없습니다.” 투쟁은 그들에게 절박한 삶에의 요청이다.

    “우리도 사람입니다. 죽어라 탄압하면 우리도 정말 죽습니다. 우리는 살기 위해서, 사람답게 살아보려고 투쟁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닝은 기아차입니까?

    기아자동차 노조와 동희오토 사내하청지회는 하나의 이름을 생산한다. 다름 아닌 기아다. 그러나 동희오토 노동자들은 사용자를 사용자라 부르지 못한다. 동희오토는 현대-기아차의 하청업체인데 거기서도 다시 17개 사내하청업체로 갈라져 일을 하던 노동자들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하청에 다시 하청을 거치면서 사용자들은 책임을 서로 떠넘기며 나몰라라 하고 있다. 기아차를 생산하는 노동자들은 현대-기아차의 노동자이고, 동희오토 노동자들은 기아차를 생산하고 있으니 사용자는 현대-기아차 측임이 분명할진대, 이 단순명백한 사실을 두고 동희오토 노동자들은 2년 넘게 투쟁해오고 있는 것이다.

       
      ▲ 사진=동희오토사내하청지회.

    “모닝차 타시는 분들, 모닝차 동희오토에서 만든 차라는 것을 아시는 분 계십니까?” 지난 7월 14일 기자회견장에서 윤난실 진보신당 부대표가 길을 가던 시민들에게 물었다.

    어느 누구를 세워 물어봤어도 대답은 같았을 것이다. 모닝은 기아의 이름으로 광고되고 기아의 이름으로 달리기 때문이다. 모닝의 어느 구석에도 동희오토라는 이름은 없다. 물론 사람들의 기억 속에도. 동희오토 노동자들은 이름 없이 존재하다 어느 날 흔적 없이 해고당한다.

    우리에게 남은 유일한 희망의 이름, 연대

    이 날 이어진 윤난실 부대표의 연대에 대한 발언은 인상깊었다. “연대란 유무상통해야 합니다. 즉 있고 없는 것이 서로 통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남은 힘을 가지고 하는 것을 두고 연대라 하지 않습니다. 연대란 부족한 힘이지만 함께 하는 것입니다.”

    얼마 전 사흘 만에 종료되었던 현대자동차 인도공장의 파업을 기억하는가. 남궁원 사회주의노동자정당건설 공동실천위원회 서울대표는 이 파업의 승리에 대해 발언했었다. “지금 우리의 투쟁은 단지 지금 여기의 투쟁이 아니라 전 세계 노동자 투쟁으로 나아가는 연대투쟁입니다.” 지금 여기, 우리의 화두는 바로 ‘연대’다.

    “노동자들에게 남의 일은 없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2008년 강연회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노동자들에게 남의 일은 없습니다.” 그는 이와 같이 한탄했다.

    “비정규직은 정규직들의 미래입니다. 그런데도 정규직들이 비정규직을 바라보는 눈은 자본하고 똑같습니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자는 하나다’라는 생각으로 싸웠으면 지금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 겁니다. 비정규직을 ‘위해서’ 운동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비정규직과 함께 연대하지 않으면 우리 운동은 한 발짝도 전진할 수 없습니다. 아니, 장애, 비정규, 이주노동자, 성적소수자 등을 노동운동 내에서 차별한다면 자본의 차별을 어떻게 극복하겠습니까.”

    그가 모든 강연에서 빼놓지 않는 말이 있다. “진정성이 없는 운동이 누구를 움직일 수 있겠습니까.” 지금 우리의 자리에서 그의 말은 무거운 울림으로 다가온다. 연대가 노동자의 가장 큰 힘이 될 수 있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진정성’ 때문일 것이다. 쉽게 연대를 말하지만, 또한 쉽게 잊고 있는 것도 바로 이 ‘연대의 진정성’이다.

    비정규직과 정규직, 그 멀고도 가까운 사람들

    동희오토 노동자들은 900명 전원이 100% 사내하청 간접고용 비정규직이다. 현대-기아차의 하청업체인 동희오토, 동희오토의 생산성은 기아차 공장보다 1.75배 높지만, 임금은 기아차 비정규직보다도 적다. 지금까지 해고자가 100명이 넘고, 자진퇴사자가 4000명이 넘는 곳, 잔업과 특근에 쉴 새 없이 시달리고도 최저시급만을 겨우 받는 그들의 공장은 이름하여 ‘절망의 공장’이다.

       
      ▲ 사진=동희오토사내하청지회

    지난 2년간 현대-기아 사측은 업체폐업 후 전원 해고, 미행, 협박, 조합원 탈퇴공작, 고소고발, 구속 등 온갖 방법을 동원해 지회를 탄압해왔다. 동희오토 사내하청노동자들에 대한 탄압은 그 시작에 불과했다. 타임오프제(근로시간면제제도) 시행 이후 현대-기아차 그룹은 본격 노동조합 무력화에 들어갔다.

    전임자 무급 휴직처리, 노조의 단체교섭 거부, 노조사무실 전화 발신제한, 교육참여 조합원 무급처리, 업무차량 회수 및 지원 중단, 사무기기 반납, 노조간부 숙소 철거, 판매․정비 분회 노조 사무실 철거 등, 탄압의 물줄기들은 현대-기아 계열사 노조들 모두를 무력화시킬 때까지 그 유속을 늦추지 않을 태세이다.

    기아자동차 정규직 노조에 대한 탄압은 결국 동희오토 노동자들의 눈물과 하나의 줄기로 마주친다. 동희오토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곧 기아의 목소리로 닥치게 될 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동희오토와 같은 시스템은 사용자에겐 꿈의 시스템이니, 더 많은 동희오토 공장을 더 많은 절망들을 역병처럼 퍼트리려 할 것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희오토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곧 기아 정규직 노동자의 목소리로 닥치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비정규직은 정규직들의 미래다”라는 김진숙 지도위원의 말처럼 동희오토 비정규 노동자들의 투쟁의 승리가 기아자동차지회 정규직 노동자들의 승리로 이어질 수 있다. 나란히 선 가운데, 이제는 손을 잡고 함께 물을 거슬러 올라야만 한다. 탄압의 유속이 더 거세어지면 그 때는 이미 늦다. 그러나, 함께한다면 아직은 오를 만하다.

    “동지들, 힘내십시다”

    박경수 기아자동차지부 조합원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힘든 것은 없어요. 동희오토 동지들이 힘들지요. 천막하나 없이 투쟁하는 동지들을 보면 뭐라 말할 수 없이 안타깝습니다.”

    기아자동차 지부는 지난 7월 14일 지부 쟁의대책위 회의에서 상집 간부들이 동희오토 사내하청지회에 연대투쟁을 하기로 결의했다. 7월 19일부터 1박 2일 릴레이 노숙농성에 함께하며 새벽 용역경비들의 물대포, 모래, 사이렌, 자동차 매연을 동희오토 해고노동자들과 나란히 앉아 온 몸으로 맞아내고 있다. 뜬 눈으로 보낸 밤의 시간들은, 함께 악으로 지켜낸 한 평 남짓의 돗자리는 그들에게 단지 ‘지금, 여기’가 아니다.

    ‘지금, 여기의 우리’가 된다. ‘동지’라는 것은 그런 것이다. ‘연대’라는 것은 그런 것이다. 그들은 지금 ‘절박한 삶’을 함께 살아내고 있는 것이다. 정규직 비정규직을 떠나 함께 살아보자고 어깨를 부둥킨 저들의 체온이 바로 ‘진정성’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마지막으로 동희오토 동지들에게 전할 말이 없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동지들 힘내십시다.” 오늘도 투쟁현장에는 그들이 함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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