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펙 쌓기, 성차별에 모욕 당하다
        2010년 07월 23일 03:5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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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는 다 똑같다. 그날 대통령도 너만 쳐다보더라. 옆에 사모님만 없었으면 네 번호 따갔을 것이다.” 지난 7월 16일 한나라당 강용석 의원이 던진 성희롱 발언이 파문을 거듭하고 있다. 제2회 국회의장배 전국대학생 토론대회가 끝난 뒤 강용석 의원이 상을 받은 Y대 토론동아리 학생들과 함께 한 저녁식사 자리가 문제의 발단이었다.

    복잡다단한 프리즘

    “다 줄 생각해야 하는데 그래도 아나운서 할래? OO여대 이상은 자존심 때문에 그렇게 못하더라.” 발언이 이미 위험수위를 넘어섰는데도 강 의원은 사실을 부인하고 사건을 보도한 언론을 고소하겠다며 도리어 큰 소리를 쳤다.

       
      ▲ 지난 2008년 강용석 의원이 마포구의 한 음식점에서 대학생들과 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강용석 홈페이지)

    그러나 Y대 토론동아리 학생들이 “강용석 의원의 발언들은 실제 있었다.”고 공개하면서 강 의원은 더욱 더 궁지에 몰린 처지다. 한나라당은 이미 강 의원을 당 윤리위를 통해 제명조치를 취했다. 7.28 재보선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또 다시 ‘성희롱당’으로 공격받고 선거에 악영향을 미칠 걸 두려워한 결과일 게다.

    민주당은 이미 강 의원의 의원직 자진사퇴를 요구하며 한나라당에 대한 정치공방으로 연결시키고 있다. 웃기는 건 민주당 소속 군수가 부하 여직원을 상대로 몇 차례 성희롱을 거듭했는데도 민주당은 문제의 군수를 윤리위에 회부하길 미루고 있다는 거다. 정치의 생리라는 게 그렇겠지만, 제 눈의 들보는 모르고 남 눈의 티끌만 나무라는 행태도 도무지 고와 보이질 않는다.

    강 의원이 이명박과 맺은 관계, 여성에 대한 그의 평소 생각, 이명박 정권 후기와 재보선을 같이 하여 강 의원 때리기에 골몰하는 보수 언론의 이해관계 등 강 의원 파문의 프리즘은 복잡다단하다.

    성희롱과 성차별의 관점에서도, 공인(公人)으로서 자각이 전무하다는 데 있어서도, 보수 정당 조직문화의 권위주의와 후진성에 대해서도 깔 거리는 무궁무진하다. 이보다 더 좋은 떡밥은 없을 것 같다. 요새 진보, 보수 가릴 것 없이 ‘트로이의 목마’ 얘기가 나오고 있는데, 보수 쪽의 트로이 목마는 다름 아닌 강 의원이 아닌가 싶다.

    파문에 가려진 피해 학생들

    그런데 이 파문에서 가려진 이들이 있다. 다름 아닌 피해 학생들이다. 강 의원에게 직접적으로 성희롱을 당한 학생들보다 정치권과 언론의 이해관계가 신문지상에 바쁘게 오르내리고 있을 뿐이다. 물론 제보자와 피해자의 사생활과 인권은 보호되어야 한다.

    강 의원이 피해 학생들에게 거듭 전화를 걸고 통화내용을 자신을 보호하는 수단으로 활용함에 따라, 사건을 보도한 언론이 사실관계 확인과정에서 피해자들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 측면도 눈여겨봐야 한다.

    그럼에도 이번 강 의원 파문에서 채 가려져 드러나지 않은 부분을 짚어봐야겠다. 먼저 우리 사회에 여전히 남아있는 권위주의다. 강 의원은 이번 성희롱 발언을 통해 평소의 여성관과 직업관을 솔직하게(?) 드러냈다.

    그의 생각이 이른바 지도층, 기득권층, 더 나아가 ‘어른들’의 상식이라고 확대해석할 수만은 없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표면적으로 우리 사회는 과거 군사독재정권 시절에 비해 정치적, 사회적으로 자유화되었기 때문이다. 성차별적인 발언들이 언론과 대중의 화젯거리가 되고 규탄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이를 증명한다.

    한편으로는 그런 ‘정치적 올바름’의 그늘 밑에 여전히 ‘실력보다는 외모’, ‘여자는 남자보다 사회적, 경제적으로 하위’, ‘높은 자리로 가기 위해서는 수단, 방법 가리지 말아야’ 등의 관념이 일종의 ‘상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의심을 거둘 수 없는 것이다.

    특히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명목적으로 많이 신장되었다고는 하나, 성(性)정치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는 계급적 차별이라고 볼 수 있을 만큼 직업과 소득, 계층이라는 측면에서 아직도 하위에 있다는 걸 떠올린다.

    자기 계발이 마주친 것

    여기서 피해 학생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생각해 보자. 그들은 나이로는 20대에 속하고, 대학생이라는 사회적 위치에 있으며, 무엇보다 여성이다. 물론 Y대라는 ‘사회자본’의 존재를 무시할 수는 없다. 내 관심을 끄는 부분은 다른 데 있다.

    그들은 “자기 계발을 위해 토론대회에 참석했던 것인데 정작 심사위원이 참가자의 실력이 아닌 외모를 보고 평가했다니 실망스러웠다”며 “수치심과 모욕감을 느꼈다”고 했다.

    사건이 보도된 중앙일보 20일자 기사 중 일부다. ‘자기 계발.’ 학생들이 전국대학생 토론대회에 참가한 이유는 이 토론대회 활동이 스펙을 쌓는 데 도움이 될 거라는 기대에 있었다. 토론 동아리에서 활동한다는 것 자체가 언론, 정치계뿐만 아니라 일반 기업체에 취직할 때도 유리할 거라는 점을 전제로 깔고 있다. 취직을 위해서는 공모전, 토론대회, 각종 대외활동을 가리지 않는 시대에, 자기 계발은 대학생들을 활동하도록 유도하는 가장 강력한 동기이다.

    강 의원 파문은 이런 자기 계발에 대한 희망과 믿음이 우리 사회에 깔려 있는 권위주의와 암묵적인 성차별 문화에 부딪혀 손상된 사례다. 역설적인 것은 기업이든 정치권이든 심지어 군대까지도(!) 10~20대의 자기계발을 적극 권장한다는 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1997년 IMF 구제금융 이후 한국 역시 신자유주의 시스템이 본격화되었다고 진단한다. 주로 경제정책과 사회구조 측면에서 분석해 왔고, 특히 노동 유연화로 인한 노동계급과 서민계층의 빈곤화가 진보정당과 노동조합의 주된 화두였다.

    ‘자기 계발하는 신체’

    그러나 신자유주의화의 가장 결정적인 공로(?)는 ‘자기 계발하는 신체’를 탄생시킨 데 있다. 『88만원 세대』의 저자 우석훈의 지적대로, 기업은 구조조정을 거듭하고 그나마 존재하던 사회안전망이 흔들림에 따라 10대 때 구제금융기를 겪은 지금 20대들은 ‘각개약진’을 자신의 생존전략으로 삼을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믿고 이 난관을 헤쳐가야 하는가? 자기 자신이다. 오로지 자신을 믿고 자기가 갖고 있는 능력을 최대한 키워내는 것만이 방법이다. 어떻게 보면 주체적이고 자율적인 인간이다.

    하지만 이들이 자기를 계발할 자유는 오직 취업을 위한, 생존을 유지하기 위한 자유일 뿐이다. 노동계급이 생산수단에서 벗어날 자유, 생산물로부터 벗어날 자유를 갖고 있다는 맑스의 역설은 옳다. 자기 계발하는 신체들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간다.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기계’로 계발할 자유를 갖고 있는 것이다.

    이런 자기 계발하는 신체는 또한 정치적 자유주의에 의지한다. 계급이나 외모가 아닌 저마다 갖고 있는 다양한 스펙을 통해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공유한다. 그러나 한국의 현실은 실력보다 연줄, 재능보다 권위주의가 앞서고 성차별이 암묵적으로 용인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이 그들 앞을 가로막고 있다.

    더욱 역설적인 것은 우리 사회의 권위주의와 신자유주의가 동거하고 있는 상황이다. 사회 곳곳의 조직문화는 여전히 상명하복적이고 권위주의적인데, 사회에 갓 진출하는 젊은이들에게는 무한한 자기 계발과 투자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기업이고 정부고 대답은 짤막하다. “계발은 니 돈으로.”

    권위주의적 조직문화와 충돌하다

    강 의원 파문이 20대 여성 대학생들에게 특히 이율배반인 이유다. 단순히 세대론에 고착될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성정치적 접근에서 더 나아가 계급적인 문제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번 파문은 자기 계발하는 신체들이 양극화를 부추기는 사회구조 속에서 권위주의적인 조직문화와 충돌하는 상황을 직접적으로 드러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건은 철저히 정치적인 이슈도 되지 못한 채, 정치권의 공방전에 소모되다 대중의 기억에서 사라질 가능성이 큰 것 같다. 자기계발이 성차별 앞에서 얼마나 무력한가는 증발한 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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