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성도 1위의 명곡 <단결투쟁가>
    By 나난
        2010년 07월 23일 10:0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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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9년 말인가 90년 말인가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소위 고급음악계의 진보적인 몇몇 작곡가겸 교수들이 모여 80년대 민중가요 중 음악적 완성도가 높은 노래 10곡을 선정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1위로 선정된 노래가 <단결투쟁가> 였습니다. 80년대의 주옥같은 서정가요와 스케일 있는 대곡들을 다 제치고 노동자 투쟁가요인 <단결투쟁가>가 1위를 차지한 건 참으로 의외였습니다.

    1위로 뽑힌 <단결투쟁가>

    하지만 수백만이 부르며 노동자가 스스로 “노동자는 노동자다 살아 움직이며 실천하는 진짜 노동자”를 선언했던 가사 뿐 아니라 우리말과 음의 조화, 악곡의 완성도 측면에서 가장 명곡으로 꼽힌 것은, 어쩌면 김호철 개인의 성과가 아닌 노동자 대중 모두의 성과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단결투쟁가>는 88년 발간된 백무산의 첫 시집 [만국의 노동자여]에 실린 ‘전진하는 노동전사’ 등의 시구를 가사말로 하여 창작된 노래입니다. 백무산 시인은 노동자 시인으로 박노해와 더불어 노동가요에 많이 등장을 하지요. <장작불>과 <사랑노래>도 백무산 시를 가사로 한 곡입니다.

    1987~88년 전국을 휩쓴 노동자 대투쟁. 이를 통해 사업장마다 민주노조가 세워지고, 지역별협의회들이 결성됩니다. 그리고는 민주노조의 전국적 구심인 전국노동조합협의회를 결성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이를 위해 1989년 겨울, 서울지역노동자문예운동단체협의회(서노문협) 소속 문화단체를 중심으로 집체공연이 제작되었습니다. 전노협 건설을 위한 노래판굿 꽃다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연세대학교 대강당에서 시작해 몇 개 지역 순회공연을 하고 1990년 전노협을 건설하게 됩니다.

    이 연합공연은 그 이후로도 몇 년간 해마다 가을이면 노동운동의 주요한 이슈를 주제로 각 장르별 창작성과를 집약해서 이어가는 새로운 공연형식으로 자리를 잡게 됩니다.

    쏟아져 나온 노동가요

    1990년 1월 22일, 경찰의 봉쇄로 수원 성균관대로 장소를 옮겨 전노협이 창립되었고, 이날 노동운동을 위시한 기층민중운동의 성장에 위기감을 느낀 자본과 권력은 기만적인 보수 대연합인 3당 야합을 선언했지요. 그리고 이런 보수대연합에 배신감을 느낀 진보진영의 총단결과 연대를 촉구하는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의 ‘자 우리 손을 잡자’라는 연합공연이 90년 3월 24일에 열립니다.

       
      ▲ 1991년 전국노동자대회 (사진=한내)

    때문에 봄이면 음악 중심의 범 진보진영의 연대를 위한 연합공연 ‘자 우리 손을 잡자’와 가을이면 노동운동의 핵심적 이슈를 집체공연으로 형상화하는 ‘노래판굿 꽃다지’가 열려 새로운 노동가요를 보급하기도 하고, 대중적으로 검증된 노래들을 대중들과 함께 부르기도 했답니다.

    대학 신입생이나 신규조합원들을 교육시키는 교육의 장으로, 단순한 공연이 아니라 그 시기 부문운동의 이슈들이 망라되는 선전, 선동의 장으로, 또 수 만 명이 모이는 문화집회의 장으로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던 자리입니다.

    노동가요도 엄청나게 쏟아져 나왔지요. 아무래도 투쟁이 고조되는 시기다 보니 행진곡풍의 투쟁가요가 주도하긴 했지만 광범위한 민주노조의 설립으로 노동가요를 부를 수 있는 일상공간이 창출되었고, 일상가요와 서정가요라는 새로운 종류의 노래가 요구되었기 때문에 다양한 노래들이 창작되어 불리게 된 것이지요.

    <포장마차>, <사랑과 행복>, <진짜 노동자3>, <참사랑>, <부모님께>(이상 김호철), <내가 왕이다>, <서울에서 평양까지>(이상 윤민석), <달동네의 부푼 꿈>, <거꾸로 돌아가는 세상>(이상 이건), <내사랑 민주노조>, <우리들의 사랑>(이상 조민하) 등이 이 시기에 창작되어 불린 일상가요들입니다.

    노동자노래단과 예울림

    이러한 노래들은 <사노라면>, <불나비>의 뒤를 이으면서 노동자의 일상체험과 정서를 담고 있으며, 일상적 낙관성과 역동성을 획득하고 있다고 평가됩니다. 이러한 일상적 낙관성과 역동성은 투쟁적 낙관성, 역동성과 상호 전환하고 상생하는 관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특히나 이 시기의 일상가요들은 여태까지는 민중가요에서 잘 쓰지 않았던, 뽕짝과 스탠더드, 속화된 포크의 영향을 받은 통속적 대중가요의 어법을 사용하면서 노동자노래의 관행을 만들어갑니다. 이는 노동대중의 노래 문화적 관행 때문이라고 보면 될 겁니다.

    또 90년을 전후한 이즈음 <전노협진군가>, <구속동지 구출가>, <무노동무임금을 자본가에게>(이상 김호철), <연대투쟁가>(윤민석) 등 당시의 전술적 투쟁과제를 담은 전술가요가 출현한 것도 중요한 특징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전노협 결성으로 최고조에 오른 노동조합운동은 자본과 정권의 어마어마한 물리적 탄압에 부딪혀 상대적으로 주춤하게 되고, 이전에 비해 파업과 집회의 수는 줄어들게 됩니다. 이 시기 노동가요를 창작하고 보급하는 서울의 두 단체, 즉 ‘노동자노래단’과 ‘삶의 노래 예울림’은 그 전까지 하루에도 서너 건씩 다니던 지원공연의 숫자도 줄어들고, 비슷한 위상을 가진 두 단체가 서노문협 산하에 따로 존재할 필요가 있는가하는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공간을 각각 유지하기도 쉽지 않고, 또 노동자노래단은 연주단이 부족하고, 예울림은 가창자가 부족한 상황에서 노래판굿 ‘꽃다지’를 계기로 두 팀이 같이 공연을 다니거나 서로 가수나 연주자를 꿔주기도 했기 때문에 이런 논의가 가능했던 것이지요.

    <단결투쟁가> 대합창 편성

    1991년부터 통합에 대한 적극적인 논의를 하기에 이르렀고, 그간 두 단체의 음악적 성과를 집약하고, 확대하는 합동공연을 해보면서 통합 여부를 판단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올린 공연이 ‘평등한 세상, 평화로운 땅, 아름다운 노래’라는 제목의 합동공연입니다.

    1991년 12월 말, 중앙대학교 대학극장에서 이틀간 진행된 이 공연에 가수 15명과 연주자 7명이 무대에 서려니 자연스럽게 곡의 구성을 대합창곡으로 바꾸는 작업을 해보게 됩니다. 이 때 발표된 <단결투쟁가> 대합창 편성은 두고두고 많은 문화패들에게 전수되기도 하였고, 몇 년간 대합창 편성을 유행시켰으며, 노동자들의 투쟁의 거대한 물결과 함성을 잘 드러낸 편곡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답니다.

    물론 저희는 그 공연이 끝난 뒤풀이 자리에 서노문협 송년회를 겸하는 바람에 100만 원이 넘는 뒤풀이비 만큼 적자를 봤지만요. (그 당시 김치찌개 안주 1그릇에 2,500원이었고, 소주나 막걸리도 5~600원 이었던 걸 생각해 보면 엄청나게 먹은 거지요^^)

    결국 서로의 음악적 성과들을 집약하는 과정에서 활동방식 뿐만 아니라 음악적으로도 보다 폭넓게, 다양한 정서를 표현할 수 있다는 기대 속에 두 단체는 통합하여 92년 3월 꽃다지를 창립하게 된 것입니다. 바로 그렇게 수백만이 목 놓아 부르던 80년대 최고의 명곡을 노동자 대투쟁의 모습을 음악적으로 잘 형상화했다는 찬사를 받은 대합창 편성으로 들어보겠습니다.

     

    <단결투쟁가>

    백무산 시 / 김호철 글,곡 / 편곡 신양묘

    1. 동트는 새벽 밝아오면 붉은 태양 솟아온다.
    피맺힌 가슴 분노가 되어 거대한 파도가 되었다
    백골단 구사대 몰아쳐도 꺾어 버리고 하나 되어 나간다
    노동자는 노동자다 살아 움직이며 실천하는 진짜 노동자
    너희는 조금씩 갉아먹지만 우리는 한꺼번에 되찾으리라
    아~ 우리의 길은 힘찬 단결투쟁 뿐이다.

    2. 수천의 산맥 넘고 넘어 망치되어, 죽창되어
    적들의 총칼 가로막아도 우리는 기필코 가리라
    거짓 선전 분열의 음모 꺾어 버리고 하나 되어 나간다
    노동자는 노동자다 살아 움직이며 실천하는 진짜 노동자
    마침내 가리라 자유와 평등 해방의 깃발 들고 우리는 간다
    아~ 우리의 길은 힘찬 단결투쟁 뿐이다.

    *음원출처 : 꽃다지 합법음반 1집 [금지의 벽을 넘어 완전한 자유를 노래하리라!] (1994년 5월 발매, 한국음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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