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솔직함에 '격하게' 감사한다
    2010년 07월 23일 09:3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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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부분이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강용석’이라는 이름 석 자가 최고의 화제를 만들어내고 있다. 국회의원이라는 직함을 걸고 벌인 행사를 마친 다음, 그 행사에 참여했던 대학생들과 술을 곁들여 저녁을 먹던 자리에서 했던 말들이 문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놀라운 것은 문제가 된 그의 말들보다 그런 말 때문에 벌어진 일련의 사회적 현상이다.

놀라운 건 강용석 발언 이후

강용석 의원이 검색어 1위에 오르도록 만든 말들을 정리해 보자면, 먼저 ‘국회의장배 전국 대학생 토론대회’라는 공식적이고 꽤 권위있는 행사의 심사를 맡았던 당사자가 "사실 심사위원들은 토론 내용을 안 듣는다. 참가자들의 얼굴을 본다"면서 "토론할 때 패널을 구성하는 방법을 조언해주겠다. 못생긴 애 둘, 예쁜 애 하나로 이뤄진 구성이 최고다. 그래야 시선이 집중된다"고 한 말이다.

   
  ▲ 강용석 한나라당 의원이 20일 국회 정론관에서 중앙일보 ‘성희롱’ 기사에 대한 반박 기자회견을 열고 나오며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사진=미디어오늘)

국회의장의 이름을 걸고 전국의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행사가 사실은 ‘미팅에 나갔을 때 주목받는 비결’ 정도의 기준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차세대 주력인 대학생들에게 민주시민의 필수 자질인 토론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고 성숙한 토론문화를 유도하려는 데 그 취지가 있다’던 전국적 규모의 토론대회 수상 여부가 얼토당토않은 기준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 심사위원 당사자의 입으로 밝혀졌다.

그러니 전국 48개 대학에서 이 대회에 지원했던 110개 팀이나 최고상인 국회의장상에 걸린 상금 5백만 원을 비롯해 국회사무총장상, 국회도서관장상 등 총상금 1,900만원의 밑천이 되었을 세금을 낸 국민들이나 그 상금을 받은 학생들이나 기가 찰 일이다.

강용석 의원은 또 그 자리에서 아나운서를 지망한다는 한 여학생에게 "다 줄 생각을 해야 하는데 그래도 아나운서 할 수 있겠느냐"면서 특정 사립대학을 지칭하며 "OO여대 이상은 자존심 때문에 그렇게 못하더라"라고 했단다.

한나라당, 왜 갑자기 수선?

구체적 상황을 말하지 않고 여성에게 ‘다 주어야 한다’라고 할 때 그 ‘다’라는 것이 정확하게는 ‘성’이라는 것은 한국사회에서 관용적인 표현이라는 것은 상식이다. 이런 표현은 그 말을 듣는 당사자에게 성적 수치심을 주는 성희롱이며, 여성 아나운서라는 직업에 대한 모독이며, 특정 대학과 나머지 대학을 가르는 불공정한 태도이다.

자신이 내뱉은 말들을 뒷받침할 근거로 강용석 의원은 지난해 청와대를 방문한 적이 있는 여학생에게 "그때 대통령이 너만 쳐다보더라"며 "남자는 다 똑같다. 예쁜 여자만 좋아한다"는 말까지 했다. 그러면서 "옆에 사모님만 없었다면 네 (휴대전화) 번호도 따갔을 것"이라고까지 했단다. 이런!

여기까지 가지 않았으면 강용석 의원은 그렇게 신속하게 자기 당 소속 여성의원들로부터 출당을 촉구하는 긴급비난 성명의 대상이 되지도, 당 중앙윤리위원회에서 제명 처분을 받지도 않았을 것이다.

강 의원이 한나라당 중앙위원을 맡고 있던 지난 2005년 4월, 당시 당 대표였던 박근혜 의원에 대해 애도 낳지 않은 쉰 살 넘은 처녀가 군살하나 없이 완벽한 몸매를 갖추었으며, 단전호흡 자세에서 보이는 완벽한 아치 허리로 연하의 유부남들까지 감탄하게 하고, 심지어 근엄하거나 장중하지 않고 해맑은 웃음까지 몽땅 ‘섹시하게’ 보이기 때문에 한나라당의 미래를 걸만한 인물이라고 추어올렸다.

그때 그런 표현을 문제 삼지 않았던 한나라당에서 갑자기 새삼스럽게 여성의 섹시함을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다는 이유로 강용석 의원을 제명 처분하겠는가?

한나라당은 이미 ‘성추행당’이라는 별칭을 가질 정도로 윤리위원회 부의장인 주성영 의원의 ‘대구 밤문화’ 사건에서부터, 후보 시절 이명박 현 대통령의 ‘못생긴 마사지 걸’까지 숱하게 문제적 발언과 행태를 보인 이들을 중심으로 운영되어오던 정당이다.

그런데 한나라당 여성의원들이 강의원의 발언이 보도되자마자 "충격과 실망을 금할 수 없다"면서 "음주상태라면 성희롱적 농담도 서슴없이 내뱉을 수 있는 그릇된 성의식과 여성 폄하 인식을 개탄"하도록 만들고, "강 의원의 발언은, 여성 비하 및 특정 직종에 근무하는 직장인들에 대한 왜곡된 성의식을 심어줄 수 있고, 대통령의 노력과 명예를 현저히 훼손했다"고 비난하게 만든 것은 기특하다기보다는 생뚱맞다.

여태 온갖 성희롱과 성추행에 잠자코 있던 한나라당이 유례없이 신속하고 강도 높게 강 의원에 대해 비난하고 처벌을 결정하게 만든 까닭은 딱 하나, 현직 대통령을 건드렸기 때문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이끼, 영화와 만화의 마지막 장면

이 지점에서 영화 <이끼>(강우석 감독)의 원작이 된 윤태호 작가의 만화 <이끼>의 마지막 장면이 떠오른다.

윤태호의 <이끼>든 강우석의 <이끼>든 외진 시골 마을에서 신앙심 깊던 노인이 어느 날 불현듯 숨을 거두면서 그 죽음을 둘러싼 비밀이 파헤쳐지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한다. 한적하고 평화로워 보이던 시골이 이 사회의 권력과 부정부패가 응축된 곳이라는 걸 밝혀내는 과정에서 끔찍한 폭력이 벌어지고, 폭력의 오랜 역사가 하나하나 드러난다.

   
  ▲ 원작 만화 <이끼>와 영화 <이끼> 포스터

윤태호의 <이끼>는 그 폭력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폭력과 부정부패의 뿌리가 어디까지 뻗어있는지, 그 뿌리에 얽혀있는 관계가 얼마나 촘촘하게 짜여있는지를 그려냈다. 그래서 80회 가까운 긴 연재 작품을 다 보고 나면 ‘아!’하고 깨닫게 된다.

그런데 강우석의 <이끼>는 그림과 인물과 사건은 거의 원작과 비슷하게 끌어다 옮기면서도 가장 중요한 폭력의 근원과 해결지점은 싹 바꿔치기 한다. 그래서 영화가 끝나는 순간 관객은 ‘아!’하는 대신 ‘에이, 그런 거였어~’라고 김빠져 하게 된다. 이건 영화를 못 만들어서라기보다 영화의 문제의식이 가진 한계 때문이다.

윤태호의 <이끼>는 베트남 전쟁, 삼덕 기도원, 유목형(허준호)을 비롯한 등장인물들의 개인사, 끝까지 버텨내는 영지에 이르기까지 여러 ‘여성’들에 대한 폭력을 문제 삼고 그에 대한 죄의식을 심연에서 끌어내 각성을 이루어낸다.

반대로 강우석의 <이끼>는 원작에 등장했던 그 많은 여성들을 싹 다 지워버리고, 남성들의 세계를 쥐고 흔드는 ‘팜므 파탈’ 역할을 맡길 딱 한 여성 캐릭터 영지(유선)만 남겨 놓는다. 이 여성은 각성을 이끌어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영화적 재미를 위한 반전의 장치일 뿐이다.

이런 바꿔치기는 결론도 바꿔버린다. 윤태호의 <이끼>가 마지막에 깨닫는 폭력의 근원은 대한민국하고도 정치의 심장부에 닿아 있다. 그래서 사건이 해결되고도 현실적으로는 끊어낼 수 없는 어마어마한 폭력과 부정부패의 핵심이 만화가 끝난 지점에서 새로운 공포가 시작되도록 만든다.

식상한 강우석의 각색

그러나 강우석의 <이끼>는 윤태호가 그려냈던 여성들을 지워내면서 세상의 문제를 영지가 남아있는 마을에 몰아넣고 영화를 닫아 버린다. 이제 세상은 안전해졌고 마을만 수상쩍고 위험하다. 그래서 박검사(유준상)는 호기롭게 웃으며 쫓겨났던 곳으로 돌아가고, 자신을 쫓겨나도록 만들었던 유해국(박해일)과 화해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결말은 마을 이장 천용덕(정재영)이 죽은 자리에 감독 강우석이 들어서도록 만든다. 유목형을 무력화시킨 지점에 천용덕이 들어서듯이, 천용덕이 죽은 자리에 강우석이 버티고 있다. 여전히 반성하지 않고 폭력의 핑계를 자신의 존재가 아니라 다른 존재, 특히 여성에게 뒤집어씌우는 강우석 감독의 각색은 식상하다.

영화는 영지의 비웃음으로 끝나고, 마을을 여전히 폐쇄된 곳으로 남겨 놓으면서 관객들에게 지금까지의 모든 사건이 섹시한 여성의 복수극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만화는 마을을 벗어나 경복궁 뒤편 권력의 핵심부로 줌인해 들어가는 마지막 컷으로 독자의 시선을 이끌어낸다. 이런 종결을 통해 만화 속에서는 사건이 종결되었더라도 한국 사회 전반에서는 여전히 사건이 계속되고 있음을 깨닫도록 한다.

윤태호 작가는 후기를 통해 ‘마지막 장면을 광화문에서 시청까지의 위성사진으로 했던 이유는 대한민국에서 무언가가 가장 응축된 곳이라는 판단’에서였다고 밝힌다. 그러면서 작품이 정치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는 것을 경계하는 사람들에게 삶에서 정치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는 부분이 얼마나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만화는 가상의 공간에서 가상의 인물들이 펼치는 이야기지만 작가는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이고, 그것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건네는 것이기 때문에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고 분명히 한다.

   
  ▲ 영화 <이끼>의 한 장면

대통령의 위신을 위해서든, 다가오는 재보궐 선거를 치르기 위해서든 꼬리 자르기 식으로 한나라당이 강용석 의원 하나를 징계한다고 해서 이런 사태가 벌어진 책임을 면제받을 수 없다. 사실 강용석 의원은 소속 정당에서 지금껏 공유해온 가치관대로 말하고 행동한 것뿐이다.

‘남성 지도층’ 속내 화끈하게 보여주다

그러니 그를 두고 ‘X맨’이니 ‘용자’니 심지어 ‘열사’라는 말까지 나온다. 일관되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해온 그이를 중용한 것은 그 당이며, 그이를 자신들이 사는 지역의 대표로 뽑아준 것은 지역구민들이다.

강용석 의원 발언 소동은 따지고 보면 심각한 사건이 아니다. 그저 영화 <이끼>처럼 마을에 갇혀있는 결말로 대충 끝낼 것인지, 아니면 만화 <이끼>처럼 제대로 하늘 높은 곳에서 샅샅이 내려다보는 결말로 문제의 근원을 따져볼 것인지를 짚어보게 하는 계기일 뿐이다. 어쨌든 이렇게 한국 사회 남성 지도층 인사들의 비밀 아닌 속내를 화끈하게 보여준 강용석 의원의 솔직함에 대해서만큼은 격하게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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