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원구 ‘SSM 전쟁’, 술렁이는 지역 여론
    By mywank
        2010년 07월 22일 04:2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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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기업형 슈퍼마켓(SSM)과의 ‘전쟁’을 선포한 김성환 서울 노원구청장(민주당)에 대한 지역 주민들의 반응은 극명히 엇갈렸다. 영세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상인들은 ‘구세주’라는 표현을 써가며 환영했지만, 주변 아파트단지 입주자들과 일부 상인들은 ‘월권 행위’라며 강력히 반발했다. 신임 구청장의 ‘소신 행보’에 지역 여론이 술렁이고 있었다.

    ‘SSM 전쟁’ 엇갈리는 지역 여론

    김성환 구청장은 당선자 시절인 지난달 21일 상계6·7동에 입점을 시도한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측에 ‘입점 자제’를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 또 취임 직후인 지난 5일부터 노원구에 있는 SSM 10곳에 대한 대대적인 합동 단속을 벌여, 유통기한이 지난 제품을 팔거나 한우 개체식별번호를 표기하지 않은 SSM 3곳에 ‘영업정지 7일’이라는 칼을 빼들기도 했다.

    법률적으로 SSM 입점 규제 권한이 없는 기초자치단체장의 이러한 행보는 단순한 행정조치를 넘어 SSM 문제에 대한 강력한 해결 의지로 해석되고 있다. 김 구청장이 단호한 태도를 갖게 된 배경을 두고, 일각에서는 상계6·7동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문제가 발단이 되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서울 노원구 상계6·7동 ‘하라 프라자’ 상가 1층에 입점을 시도하고 있는 홈플러스 익스프레스의 모습. 매장 내부를 볼 수 없도록 유리창이 가려져 있다. (사진=손기영 기자)

    (주)삼성테스코 측은 지난해 말 이곳에서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입점을 시도했지만, 지난 2월 지역 중소상인들이 낸 사업조정신청으로 영업이 일시 정지된 상태이다. 하지만 업체 측은 기존의 직영점 형태 대신 사업조정대상이 아닌 가맹점 형태로 재입점을 시도하고 있으며, 김 구청장이 당선자 시절 보낸 ‘입점 자제’ 공문에 대해 곧바로 거부의 뜻을 밝히면서 일대 결전를 예고했다.

    격전지가 된 노원구 상계6·7동

    결국 상계6·7동 홈플러스 익스프레스는 노원구청의 입장에서 지역에 더 이상 SSM이 들어설 수 없게끔 본보기로 삼을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인 반면, (주)삼성테스코 등 대기업 유통업체 입장에서는 대대적인 공세를 뚫고 재반격을 노려볼 수 있는 ‘최후의 보루’인 셈이다. <레디앙>은 지난 21일 오후 양측의 격전지나 다름없는 상계 6·7동을 찾아가 지역 분위기를 살펴봤다.

    상계 6·7동은 전형적인 ‘아파트촌’이었다. 영세 슈퍼마켓들은 주로 아파트단지 상가 내에 자리하고 있었으며, 단골손님은 대부분 주변 아파트단지 입주자들이었다. 상계 6·7동 미도아파트 정문 부근에서 8년째 ‘월드 마트’를 운영하고 있는 이성노 씨(44)는 요즘 아파트단지 부근에 입점을 시도하고 있는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때문에 걱정이 태산 같다고 밝혔다.

    이 씨는 국회에서 유통산업발전법과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법(상생법) 개정안 등 이른바 ‘SSM 규제법’이 통과되지 못하는 상황을 두고, “SSM이 들어서면 이곳 슈퍼마켓들은 모두 죽지만 중소상인들은 큰 힘이 없어 몸으로 막는 데는 한계가 있다”라며 “국회만 바라보면서 법안 통과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처지”라며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하지만 ‘SSM 전쟁’에 나선 김성환 노원구청장 이야기를 꺼내자, 금새 이 씨의 안색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는 “이분은 우리의 구세주나 다름없다”이라며 “이명박 대통령도 우리들한테 해준 게 아무 것도 없는데, 대통령보다 나은 분 같다”라며 기대감을 감추지 못했다.

    한나라당 구청장 심판한 중소상인들

    이 씨는 이노근 전 노원구청장(한나라당)이 지역 중소상인들의 면담 요구를 물리적으로 저지하는 등 ‘중소상인 무시정책’을 폈던 사례를 언급하며,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영세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중소상인들이 ‘한나라당 구청장 심판’에 나선 이야기를 들려줬다.

       
      ▲ 상계6·7동 미도아파트 정문 부근에 있는 ‘월드 마트’ (사진=손기영 기자) 
       
      ▲8년 째 ‘월드 마트’를 운영하고 있는 이성노 사장 (사진=손기영 기자) 

    그는 “그동안 장사 때문에 이곳 중소상인들은 투표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번 선거에서는 투표장에 많이 갔다. 전직 구청장에 대한 반감 때문에 그런 것 같다”라며 “평소 야당에 호감을 갖고 있지 않았던 중소상인들도 이번에는 대부분 민주당 구청장을 찍었고, 지금 다들 구청장 하나는 잘 뽑았다고 생각하고 있다”라며 중소상인들의 분위기를 전했다.

    이 씨는 상계6·7동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입점을 저지하기 위해 지역 중소상인들과 함께 지난 2월 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여기에서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현재 대책위는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미도아파트 부근 ‘하라 프라자’ 상가 1층에 있는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입점 예정지 앞에서 규탄 집회를 벌이며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미도 슈퍼’는 미도아파트 주변에 있는 영세 슈퍼마켓 중, 홈플러스 익스프레스와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3년 전 ‘미도 슈퍼’를 인수해 운영하고 있는 백영숙(54)씨는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입점 시도에 심신이 지칠 때로 지쳐있었다. 그는 “홈플러스만 생각하면 혈압이 오른다. 이젠 몸이 안 좋아져서 집회에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홈플러스만 생각하면 혈압 올라”

    “미도아파트 부근에 SSM이 들어서면 아파트 사람들이 다 그쪽으로 가기 때문에, 우리 가게는 바로 직격탄을 맞는다”라며 걱정했던 백 씨였지만, 김성환 구청장의 행보에 대해서는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라며 기대감을 내비쳤다. 하지만 그는 ‘SSM 전쟁‘에 나선 김 구청장을 ‘정치인’에 비유하면서 “100% 신뢰할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옆에 있던 백 씨의 남편 역시 “정치인은 처음에는 다들 서민들을 위한다고 말하지만, 나중에는 자신들의 이익을 좇는 것 같다. 김 구청장도 정치인이 아니냐”라며 “물론 중소상인들을 위하는 것에 희망을 걸어보겠지만, 이곳에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입점이 완전히 철회된다면 그 때 가서 김 구청장을 믿어볼 생각을 갖고 있다”라고 속 마음을 털어놨다.

    영세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중소상인들의 걱정과는 달리, 미도아파트 등 주변 아파트단지 입주자들은 대부분 홈플러스 익스프레스의 입점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지하철 7호선 중계역 6번 출구와 인접하고, 미도아파트 후문에 위치하고 있는 홈플러스 익스프레스의 용이한 ‘접근성’ 때문에, 장보기가 더욱 편리해질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손님들의 발길이 끊긴 ‘하라 프라자’ 상가의 모습 (사진=손기영 기자) 

    아파트단지 벤치에서 삼삼오오 모여 대화를 나누던 주부들에게 김성환 구청장이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측에 ‘입점 자제’ 공문을 보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자, “주민들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 정책”이라며 강력히 반발했다. 한 주부는 “홈플러스 슈퍼는 가격이 저렴하고, 싱싱한 물건들이 많이 들어오는데 그것을 왜 막느냐. 명백한 월권행위고 당 때문에 그런 게 아니냐”라고 맹비난했다.

    홈플러스 익스프레스가 입점할 예정인 ‘하라 프라자’ 상가 상인들의 반발은 이보다 더 거셌다. 이곳 상인들은 예전에 상가 1층에서 있던 슈퍼마켓이 폐업한 뒤, 상가를 찾는 손님들의 발길이 끊겼다고 주장했다. 또 지난 지방선거 당시 김 구청장이 ‘하라 프라자’에 선거사무소를 꾸린 점을 들며, “현실을 전혀 모르는 구청장”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하라프라자 상가 상인들 “김 구청장은 김일성”

    이곳에서 시계 판매점을 운영하는 한 상인은 “남이 사유재산을 자유롭게 행사한다는데 왜 그것을 못하게 하느냐.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인데, 여기가 북한이냐. 김 구청장은 김일성, 김정일 같은 사람”이라며 “상가에 다시 슈퍼마켓이 들어서면 내방객들이 늘어날 것이다. 영세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사람들만 노원구민이냐”라며 불만을 나타냈다.

    현재 상계6·7동 홈플러스 익스프레스는 매장 안을 들여다 볼 수 없게 하얀색 종이로 유리창을 가린 상태다. 이들은 지난해 말 처음 입점을 시도했을 때에도 매장을 천막으로 가친 채 스포츠용품점 개점을 알리는 펼침막을 내거는 등 지역 주민들을 속여 왔다. 지역 중소상인들에 따르면, 지난 21일 오전에도 이곳에서 내부 공사가 진행되는 등 입점 시도는 중단되지 않고 있었다.

    노원구청 측은 하절기 동안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지역 내 SSM 10곳에 대한 합동 단속을 계속 벌일 예정이며, 최근 교육과정을 이수하지 않은 직원이 위생교육을 실시한 롯데슈퍼 상계7동점에 경고 처분을, 농산물 원산지 표기를 하지 않은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공릉점에 과태료 처분을 내렸다. 노원구와 SSM 간 싸움의 승자가 누가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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