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지대 문제를 생각한다
        2010년 07월 21일 01:35 오후

    Print Friendly, PDF & Email

    지금 상지대가 어려움에 처해 있다. 비리로 물러난 지 20년이 다 되어가는 김문기 전 이사장의 복귀가 사학분쟁조정위원회의 결정으로 초읽기에 들어가 있는 상황이다. 교수협의회, 총학생회, 직원노조, 총동문회 등 상지대 구성원들은 농성, 시위, 삭발, 단식 등의 방식으로 김 전 이사장의 복귀에 반대하고 있다.

    필자가 상지대에 온 지도 벌써 17년이다. 김문기 전 이사장이 물러난 지 1년이 지난 때에 이 학교에 부임했는데, 상지대에 온 다음에야 비로소 한국의 사학비리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게 되었다. 학원정상화 투쟁을 해온 선배 교수들로부터 듣게 된 김 전 이사장 시절의 비리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들이었다. 이사장의 친인척들이 학교의 주요 행정을 장악하고 있었고, 입시부정부터 시작해 건물 공사에서의 리베이트 따위는 기본이었다.

    상상을 초월했던 재단비리, 그리고 정상화 노력

    1978년부터 1993년까지는 단 한번도 이사회를 소집하지 않은 채 이사장이 모든 결정을 하면서 마치 이사회를 연 것처럼 꾸몄다. 그밖에도 상지대에는 지금도 똑같은 모양의 부실 건물이 다섯채가 서 있어서 경관을 망치고 있는데, 그 까닭을 듣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의 설계도로 다섯채의 건물을 지은 다음 건물 각각에 책정된 설계비를 착복하는 방식으로 부정을 저질렀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 건물들은 김 전 이사장 시절의 상징과도 같은데, 그후 지어진 번듯한 건물들과 대비되고 있다. 그래서 선배 교수들은 그 시절의 상지대를 ‘비리의 종합선물세트’라고 불렀다.

    필자가 부임한 직후의 상지대의 모습을 보고, 또한 김 전 이사장 측이 대학에 복귀하기 위해 취하는 행위들을 보고, 선배 교수들의 증언이 거짓이 아님을 바로 알 수 있었다. 당시의 상지대는 돈벌이의 수단으로 전락한 한국 사립대학의 슬픈 현실을 보여주었지만, 이후 상지대 민주화의 역사는 한국 대학의 역사에서 희망을 발견하는 과정이었다. 대학 구성원들과 많은 민주인사들의 노력으로 비리재단의 복귀 시도를 물리치고 상지대는 발전을 거듭했다.

    정상화 이후 상지대에는 김찬국, 한완상, 강만길, 김성훈 같은 분들이 총장을 역임했다. 그 면면을 보면 한국의 양심을 대표하는 분들에 의해 운영되어왔음을 알 수 있다. 나는 이러한 분들이 상지대를 거쳐간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이 시기에 상지대는 많은 발전을 거듭했는데, 재단에 돈이 없기 때문에 대학 발전이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은 기우에 불과했다. 한국 대학의 현실은 재단법인이 자금을 착복하지 않고 양심적으로 운영하기만 해도 바람직한 상황이라는 것인데, 상지대의 발전은 실제로 이를 잘 증명해주었다. 행복한 시절이었다.

    구재단의 복귀 거드는 사학분쟁조정위

    하지만 임시이사들이 대학 이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동안 구재단의 복귀 시도가 지속되었기 때문에 상지대 구성원들은 학원의 안정화를 위해 공익적인 정이사를 세우려고 노력했다. 발전기금재단을 만들고 시민사회의 협조를 얻는 노력 끝에 2004년에는 변형윤 이사장과 최장집 교수, 박원순 변호사 등으로 공익적인 정이사를 구성하고, 여러 어려운 과정을 거친 후에 교육부의 승인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구재단은 정이사 구성의 무효화를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고, 1심에서 상지대 승소했음에도 지리한 법정다툼이 지속되었다. 불행하게도 2007년 5월 대법원은 임시이사가 정이사를 선임한 것은 잘못이라고 판결하면서, 새로운 정이사는 직전 정이사(구재단)와의 협의를 통해 구성해야 한다고 규정하며 새로 선임된 공익적인 정이사의 무효를 결정했다. 이 판결로 변형윤 이사장 등 양심적인 정이사들이 물러날 수밖에 없었는데, 이는 상지대 불행의 시작이었다.

    이후 사학분쟁조정위원회(사분위)가 구성되어 임시이사 파견 학교들의 문제를 다루게 되었다. 이명박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는 사분위의 인적구성에 변화가 있을 때마다 사학법인의 이해를 대변하는 보수적인 인사들로 채워져왔고, 올해 새로 구성된 2기 사분위는 그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다. 대통령이 3명, 국회의장이 3명, 대법원장이 5명을 추천하여 구성되는 사분위는 분쟁 사학과 관련해 절대적 권한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사학비리 사슬을 끊기 위하여

    하지만 이들이 한국의 사립학교를 바라보는 인식을 보면, 한숨이 나온다. 사립학교를 특정인의 소유물로 여기고 있으며, 온갖 비리로 물러난 인사라도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학교의 운영권을 되찾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대표적인 지식인집단이라고 할 수 있는 변호사, 판사, 교수 등으로 구성된 사분위원들의 사고가 이 정도의 수준이라는 사실은 우리사회의 슬픈 자화상이다.

    이들은 현재 김문기 구재단 측 인사가 다수를 차지하는 이사회 구성을 곧 마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이러한 결정의 단초를 상지대 관련 대법원의 판결이 제공한 것은 사실이지만, 당시 판결이 구재단에 학교의 운영권을 넘겨주는 방식으로 정이사 구성을 하라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현재 사분위는 판결 취지를 그러한 방식으로 해석하고 싶어한다. 현재의 사분위가 이러한 결정을 계속하는 한 학교를 개인의 사유물로 여기는 세력과 학교의 공공성을 확립하려고 노력하는 이들과의 새로운 투쟁의 역사는 시작될 것이다.

    대학을 그저 돈벌이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교육계에서 퇴출되어야 한다. 하지만 아직 이러한 수준의 합의도 하기 어려운 것이 한국의 사립대학이 처한 현실이다. 사실 여기에는 인식의 문제만이 아니라 비리재단과 연결된 부패구조가 존재한다. 이는 법원, 국회, 교과부, 청와대 등 곳곳과 얽혀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대학의 공공성을 확립하려는 노력이 동시에 부패구조와의 투쟁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 이 글은 <창비주간논평>에 실린 글입니다.

    필자소개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