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세력의 두번째 시험대
    2010년 07월 21일 01:33 오후

Print Friendly

지금의 민주당이 과연 개혁세력인지 의심되기는 하지만, 6.2 지방선거 이후 민주당을 비롯한 한국의 범진보개혁 세력은 2002년 노무현 전 대통령 당선 이후 두번째로 시험대에 섰다. 선거연합 전략을 통해 반이명박 표심을 수렴하여 상당수의 지역에서 민주당, 국민참여당, 민주노동당 등 범개혁진영이 단체장, 광역기초의원, 교육감 자리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김대중-노무현정부 기간 동안 지자체는 한나라당 일당독재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고, 민주노동당 후보가 일부 지역에서 실험적인 지방정치 실천을 했다지만 이번처럼 범개혁세력이 수도권을 포함한 전국에서 골고루 칼자루를 쥔 적은 없었다.

비록 전체 지방자치단체가 사용할 수 있는 예산이 일년 국가예산의 반 정도밖에 안되고 그나마도 재정자립도가 매우 낮기 때문에 중앙정부에 거의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나는 이번 6.2 선거를 작은 정권교체라 부르고 싶다. 그리고 이 작은 정권교체가 갖는 정치적·역사적 중요성은 대선과 총선으로 인한 권력교체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 본다.

지방선거, ‘작은 정권교체’인 이유

그 이유는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지방자치나 지역민주주의의 뿌리가 뽑히고 중앙권력이 지방을 수직적으로 장악, 하향식으로 통제한 이후 지금까지 60여년 동안 실질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록 이승만정권하에서 지방자치가 실시되었고 1991년부터 광역단체장 선거가 도입되었지만, 지방권력은 지금까지 중앙권력에 종속되어왔으며, 따라서 우리는 풀뿌리 차원에서 민주주의가 제대로 실천된 역사를 가져본 경험이 없다.

지금까지 한국의 지역사회는 중앙권력의 식민지였으며, 주민은 지역사회에서 삶의 닻을 내리지 못한 채 난민처럼 살아왔다. 수도권과 대도시 지역이 아파트의 성채로 채워지면서 주민의 유목민화·난민화 경향은 더욱 심각해졌다. 우리들에게 지역사회는 잠자는 곳, 소비하는 곳, 아이들 학교가 있는 곳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못했으며, 지방선거 때만 다가오면 언제나 식상한 메뉴를 원망스럽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둘째는 지금까지 지방권력을 독식해온 전국 대부분 지역의 한나라당 단체장과 의원들 상당수, 호남의 여당인 민주당 단체장과 의원들은 지역민의 무관심에 편승하여 주민의 세금을 건설업자 배불리기에 쓰거나 그들과의 유착을 통해 자신의 재선에만 신경써왔다. 선심성 행사, 공사수주 비리, 불법정치자금 수수, 친인척비리, 호화청사 건립, 낭비성 해외여행 등 이들이 저지른 비리 목록을 보면 조선시대 탐관오리가 울고 갈 지경이다. 주민의 무관심에 편승하여 교체되지 않고 감시되지 않는 권력이 이러한 비리에 빠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제대로 된 지역 언론이 없고, 지역 시민단체가 취약하고, 공무원 노조가 없는 지자체에서 단체장과 의원이 한통속이 되면 이들의 전횡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까지 이르게 된다.

2012년 총선·대선은 지방정치 평가의 장

따라서 이번 선거는 지금까지 지방정치를 좌우해온 두 세력, 즉 토건세력과 관료집단이라는 큰 산과 정면대결하면서 주민의 편에 서는 정치를 실천할 수 있는가를 가늠하는 시험대이기도 하다. 그것은 지역경제를 살리고 지역의 경쟁력을 높인다는 신자유주의, 신개발주의 논리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의 문제로 집약될 것이다.

지방은 작은 형태의 중앙정부이기 때문에 중앙정부와 마찬가지로 모든 현안이 나타나는 곳이고 다양한 계층?계급이 거주하는 곳이기 때문에 서민의 편에 서서 일하기가 어려운 공간이기도 하다. 따라서 여기서는 어느 당의 후보가 단체장에 당선되었다고 하더라도 자기 당의 노선을 곧바로 실천하기도 어려울뿐더러 빚더미에 놓인 재정여건과 중앙정부의 간섭, 가용예산의 한계 때문에 마음먹고 잘해보려 해도 그것이 주민들의 피부에 와닿도록 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분명히 공은 야당 단체장과 야당 지방의원들에게 넘어갔다. 따라서 지난 대선에서의 이명박의 압승이 노무현정부에 대한 반사적 득표에 힘입은 것이었듯이, 2년 후의 대선과 총선 때 국민의 선택 역시 상당부분은 지방정부의 칼자루를 쥔 야당의 지방정치에 대한 평가의 성격을 띨 것이다.

지역사회 거버넌스 구축이 관건

지금 한국의 실정에서 지역단위에서 가장 중요한 정책은 일자리, 복지, 그리고 교육 문제로 집약될 것이다. 그런데 건설경기 부양, 일회성 이벤트가 아닌 방식으로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고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을까? 서울의 유명대학 많이 보내기 식의 학교간 경쟁 유도가 아닌 방식으로 지역의 교육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어느 것 하나 쉬운 일은 없다. 더욱이 재정파탄 상태에 있는 지자체로서는 운신의 폭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시민, 노동 등 지역사회의 새로운 주체의 참여와 협력을 유도함으로써 새로운 거버넌스 모델을 만드는 일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여러 지역에서 실천한 바 있는 참여예산제 도입, 수년 전 울산 건설플랜트, 순천 현대하이스코 파업 조정의 사례처럼 지방에서 사회적 합의를 이룰 수 있도록 유도하는 일도 중요하다. 갈등이 발생했을 때 공익기관과 갈등 당사자가 만나는 장을 많이 만들 필요도 있다. 이번 선거과정에서 깊이 개입했던 시민사회단체도 대항권력에서 부분적으로는 참여권력으로서의 역할도 해야 한다.

결국 요점은 그동안 지역사회의 수동적·비참여적 객체로 살아온 주민들을 어떻게 주체로 끌어들일 수 있느냐다. 새로운 지자체장과 의원 들은 지역의 주민이나 사회단체의 역량을 강화(empowering)하는 방향으로 교육·훈련을 실시하고, 이들에게 적절한 권한과 책임을 부여해서, 장기적으로는 이들이 지역민주주의뿐 아니라 전국 단위에서도 민주주의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새로운 지방정치의 실험을 통해 범개혁세력이 한국을 다스릴 수 있다는 것을 다시 보여주어야 다음 총선과 대선에서 국민의 선택을 받을 수 있을 것이고, 나아가 60년 중앙정부의 지방식민지 시대를 마무리하고 한국정치의 새 장을 여는 역사적 소임을 다할 수 있을 것이다.

*. 이 글은 <창비주간논평>에 실린 글입니다.

필자소개
레디앙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