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위 폭력사태, 4.11 총선 여진
진보, 쇄신 아니라 재탄생 필요해"
[탐구, 진보 21] "통합진보, 너무 멀리 갔다…새로운 길 모색할 때"
    2012년 05월 14일 10:1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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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2 통합진보당 중앙위에서 폭력사태가 벌어졌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폭력사태와 직간접으로 연관된 모든 사람들을 가려내 처벌해야 한다. 특히 그 동안 진보진영이 정의와 진실보다는 현실적인 힘의 역관계에 따라 이합집산했던 관행이 사태를 악화시켜 왔던 점을 고려하면 지금 시기 유일한 판단 기준은 옳고 그름이다.(여기에는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사람들까지를 포괄한다)

단상에 난입한 당권파 측 사람들. 유시민 대표와 진행요원이 심상정 대표를 보호하고 있으나, 이들 역시 폭행의 피해자가 됐다.(사진=노동과 세계 이명익)

폭력사태 처리해도 남는 문제들

그래도 문제는 남는다. 그렇게 해서 폭력사태를 처리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될까? 모든 정치사회적 갈등은 그에 해당하는 뿌리가 있는 법이다. 필자는 이번 사태의 뿌리를 적어도 2005~06년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2003~04년 대통령 탄핵과 복귀 과정을 끝으로 길고 길었던 민주화 여정은 일단락되었다.(시작은 70년대 초반쯤으로 잡을 수 있을 듯하다) MB 집권 이후에도 여전히 민주화의 과제는 남았지만 보다 중요했던 것은 경제 특히 신자유주의에 대한 태도였다. 전대미문의 탄핵과 복귀 과정을 이겨내고 기사회생했던 노무현 정부가 2005년 이후 급전직하한 배경 또한 결국은 경제였다.

이 시기 진보진영에 새로운 흐름이 조성되기 시작했다. 각종 연구소들이 생겨나고 NL-PD라는 낡은 버전을 뛰어 넘는 담론(가령 사민주의나 복지론)들이 출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8년부터는 촛불시위가 한국사회를 강타했다.

돌이켜 보면 이 두 갈래의 흐름을 건설적인 차원에서 하나로 통합해 새로운 진보정치세력을 육성했어야 했다. 그랬다면 역사는 대단히 다른 길로 접어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의 정치지형은 정반대의 길로 방향을 틀었다. NL-PD를 뛰어 넘는 새로운 진보이론의 출현은 지체되었다. 진보학계의 논쟁은 아직도 2000년대 중반에 선보였던 장하준-김상조 논쟁의 수준을 뛰어 넘지 못하고 있다.

유토피아적 담론에 빠져든 진보세력

반면 현실 운동의 영역에서는 그것과도 무관하게 실천과 조직을 중시하는 활동가들이 대세를 장악했다. 덕분에 진보정치세력은 반MB, 진보적 정권교체, 원내 교섭단체와 같은 단순하고 추상적이며 유토피아적인 담론에 손쉽게 빠져들었다. (이 구호를 최근 치러진 프랑스와 그리스 선거의 쟁점이었던 긴축과 비교해 보라. 도대체 통합진보당의 핵심 주장이 무엇인가?)

2007년 대선에서 치명타를 입었던 정치세력(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은 반MB 정서에 편승해 손쉽게 정계에 복귀했다. 이들에게 2005~07년의 좌절 그리고 2008~10년 이후 밑으로부터의 대중적 진출이 갖는 의미는 무시되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조직화된 소수의 이합집산이 현실을 움직여 왔던 오랜 관성이 이들의 행동을 지배했다.

양자 사이의 간극이 극적으로 충돌한 것이 2011년이다. 2011년, 사람들은 안철수, 나꼼수, 김진숙에 열광했고 서울의 20대 청년들은 몇 차례의 선거를 거치며 집단적 체험을 축적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2012년 4월 시점에서 이들은 충분히 정치세력화하지 못했다.

이 간극을 비집고 통합이라는 이름을 내건 두 개의 정당이 자신들이 시대의 적자라며 표를 구하기 시작했다. 불과 수개월 전에 민주통합당의 박영선 후보는 박원순 후보에게 참패한 바 있고(10.3 장충단 선거), 통합진보당은 10.26 선거 열풍이 서울을 강타할 무렵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당 대회(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각종 당 대회)로 세월을 소진하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중앙위 폭력사태, 4.11 총선의 여진

그러나 2012년은 2011년을 사이에 두고 2008~10년과 달랐다. 2008~10년 이명박 집권 초반기 MB에 대한 심판에 방점이 가 있었다면 2012년은 대선을 앞두고 향후 무엇을 할 것인가가 중심 화두였다.

2012년의 대회전을 앞두고 범여권은 주전 선수가 나온 반면 야권은 2011년의 주역들이 아닌 오픈 게임의 플레이어들이 과도한 욕심을 부렸다. 여기에 몇 가지 요소가 결합되면서 새누리당이 과반을 차지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2012년 5월 통합진보당 중앙위원회의 폭력 사태는 4.11 총선의 여진이다. 이것은 총선 이후 민주통합당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내홍과 본질적으로 동일한 것이다. 즉 2008~10년 반MB에 편승하여 아무런 성찰도 없이 정치권에 무임 복귀했다가 분위기에 취해 과욕을 부렸던 정치세력의 몰락인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민주통합당은 그마나 제도권 정당으로서의 관록 때문에 자중하고 있다면 통합진보당은 그마저도 갖고 있지 않은 것이다.(이 차이도 크다. 그런 면에서 통합진보당은 정당으로서의 기본 자질이 의심스러운 수준이다)

진보의 역할

상황을 이렇게 본다면 현 상황에서 진보가 해야 할 역할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는 진보의 쇄신이 아니라 진보의 재탄생이 필요하다. 경기동부가 자행한 폭력 사태는 말할 것도 없고, 이 기회에 정파들 사이의 뿌리 깊은 담합 관행, 시대착오적인 정치노선, 원내 교섭단체 운운하며 유토피아적 환상을 불러 일으켰던 흐름들 모두가 극복의 대상이다.

기회도 좋다. 통합진보당이 존립하고 상당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힘은 민주통합당에 대한 실망과 야권연대에 대한 희망이다. 그런데 2012년 대선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그럴 가능성은 사라졌다. 따라서 지금이 절호의 기회이다. 애매한 말로 정파들 사이의 타협에 면죄부를 주는 일이 없어야 한다.

둘째는 진보의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한다. 현재 통합진보당은 너무 멀리 갔다. 이제는 헤어날 길이 없다.

새로운 길을 나설 기초도 마련되어 있다. 2008~11년의 역사적 체험이 진보진영에 제대로 수렴되지 못한 것은 과거로부터 이어져 왔던 낡은 관성과 습관이 워낙 강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통합진보당 사태는 애매한 포지션을 유지하며 진보의 진정한 성장을 호도했던 집단의 몰락으로 볼 수 있다.

2008년 촛불시위는 무엇인가? 그리고 2011년 정치혁명이 갖는 의의는 무엇인가? 2012년 대선의 메인 플레이어로 등장한 안철수/문재인, 김두관 등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세계적으로도 비슷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2011년 1년 내내 이집트, 스페인, 미국과 그리스를 이어가며 벌어진 대규모 시위가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프랑스 대선과 그리스 총선에서 제기된 ‘긴축 반대’는 세계정세를 어떻게 바꿔 놓을 것인가?

통합진보당 사태는 거대한 역사적 흐름의 주변부적 현상에 불과하다. 주변부적 현상에 열중하기보다는 역사의 본류를 찾아 대담하게 전진하자.

필자소개
민경우
전 범민련 사무처장이었고, 현재는 의견공동체 ‘대안과 미래’의 대표를 맡고 있으며, 서울 금천지역에서 ‘교육생협’을 지향하면서 청소년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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