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세계화의 '보이는 손'들
    By 나난
        2010년 07월 17일 02:50 오전

    Print Friendly
       
      ▲책 표지 

    ‘금융시장의 지구화’는 누가 만들었을까? 신자유주의의 핵심이자 지배구조인 금융자본주의를 만든 것은 정말 ‘보이지 않는 손’, 즉 기술과 시장의 힘이 야기한 불가피한 결과일까?

    지배적 관점 비판

    『누가 금융세계화를 만들었나』(에릭 헬라이너, 후마니타스, 15,000원)를 보면 그렇지 않다. 이 책은 미국 학계의 지배적 경향에 대해 비판적인 대표적 국제정치경제학자인 에릭 헬라이너가 국제금융 질서를 역사적-제도적 관점에서 돌아본 책이다.

    저자는 1945년부터 1990년대까지 규제적인 국제금융 질서가 자유주의적 질서로 전환되는 과정을 다룬다. 특히 이 연구는 세계화의 과정을 거스를 수 없는 자본의 힘에 의한 발전의 결과로 보는 기존의 지배적 관점을 비판하고 있다.

    그리고 국가를 주요 변수로 삼아 주요 헤게모니 국가들과 국내의 금융 엘리트 집단, 산업가, 관료 집단들, 그리고 국제적으로는 신자유주의 지식인들과 국제기구 레짐이 어떤 정치경제적 역학 관계 속에서 금융 규제를 철폐하고 지금의 금융 세계화를 만들어 냈는지 상세히 분석하고 있다.

    저자는 국제금융 질서를 건설하고 해체하는 과정에서 국가가 언제나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고 주장한다. 브레턴우즈의 규제적 금융 질서를 형성한 것도, 그것을 해체하고 자유주의 금융 질서를 수립하는 것도 모두 국가의 정치적 결정에 의해 가능했다는 것이다.

    특히 저자는 결정적인 전환을 보여 주는 주요 국제회의 기록들과 간과되어 왔던 공문서들, 당시 현장에서 활동했던 실제 인물들의 증언 등을 세밀히 분석함으로써, 추상적인 국가 개념을 거부하면서도 큰 흐름을 놓치지 않는 날카로운 정치경제학자의 시선을 보여 주고 있다.

    헤게모니 국가의 이해관계

    국가 내부의 다양한 세력들의 역학 관계나 국제기구 내에서 벌어지는 국가 간의 갈등, 그리고 당대의 지배적 이데올로기를 대변하던 경제학자들의 활동에 대한 역사적 서술은, 이들의 정치적 역학 관계와 이에 따른 국가의 중요한 정책적-정치적 선택이 어떻게 금융 세계화 경향을 만들어 냈는지를 생생히 보여 주고 있다.

    그는 “국가가 왜 이런 정치적 선택을 했던 것일까?”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이에 대해 “주요 헤게모니 국가들은 금융 세계화에 대해 막강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었다”는 점을 든다. 미국은 이를 통해 엄청난 재정 적자를 해결할 수 있었고, 영국은 금융 헤게모니를 유지함으로써 큰 이득을 얻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금융 자유화는 무역 자유화와는 달리 화폐의 이동성과 대체성이라는 속성 때문에 어느 한 국가(금융 패권국)의 일방적 자유화 조치만으로도 가능했으며, 이는 다른 국가들의 경쟁적 탈규제화 경향을 만들어 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책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핵심은 무역 문제와 달리 금융 문제가 정치적으로 비가시적이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국제금융 문제가 대단히 기술적이고 외관상 복잡해 보이는 특성을 지니고 있어서 (거대한 위기가 발생했을 때를 제외하고는) 국내 정치에서 큰 주목을 받지 못해 소수 금융 엘리트들이 중요한 결정을 손쉽게 내리도록 만들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소수 헤게모니 국가의 일방적 정치적 행동이 가진 영향력의 문제, 금융 문제의 정치적 비가시성, 금융 엘리트들의 속성, 국가의 능력과 역할 등에 대한 많은 중요한 논제를 던져 주고 있지만, 결국은 수많은 제약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정치적 합의와 선택을 통해 또 다른 차원의 금융 질서를 건설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국제금융 현실 이해

    특히 자유화를 위해서 국제적 협력이 필요한 무역 질서와는 달리, 금융 질서에서는 규제를 위해서 국제적 협력이 필요하다는 차이를 강조하고, 실제 이런 시도가 이루어졌던 브레턴우즈 체제에 대한 논의를 통해서 가까운 과거에 현재의 금융 질서와는 전혀 다른 규제적 금융 질서가 가능했다는 점을 보여 주고 있다.

    이 책은 우리는 새로운 금융 질서로의 전환을 예고하고 있는 오늘날 금융 위기의 원인이 과거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살펴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최근의 금융 위기와 재규제화 논의에 대한 2009년 헬라이너의 논문을 보론으로 덧붙여, 현재의 국제금융 현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 * *

    저자 – 에릭 헬라이너 Eric Helleiner

    수전 스트레인지, 로버트 콕스와 더불어 미국 학계의 주류적 입장에 대해 비판적인 캐나다의 대표적인 정치경제학자이다. 국제정치경제를 국제정치학의 하위 분과로 상정하고 합리성 가정에 기초한 추상적인 연역 이론과 수학적 모델을 수립하는 데 몰두하는 현재 미국 정치경제학계의 경향을 비판하면서 정치학, 경제학, 역사학 등을 포괄하는 학제간 연구를 하고 있다.

    특히 역사적 관점을 중시하는데, 국제통화 정책에서의 이례적인 현상들, 즉 예상치 못한 정치적 전환이나 일련의 역설적인 정책들을 연구의 출발점으로 삼아, 마치 탐정과도 같이 기존의 연구들이 간과하고 있는 정보들을 찾아낸다.

    헬라이너는 “공문서를 뒤져 큰 그림을 보여 줄 수 있는 역사적?정치적 디테일들을 발견하는 데서 큰 만족감을 얻는다”고 말한다. 이 책에서도 그는 무역 질서와 금융 질서를 하나의 국제 질서로 뭉뚱그려 보던 기존의 관점을 깨버리고, ‘왜 규제적 무역 질서가 유지되던 시기에 자유주의 금융 질서가 등장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상세한 역사적 분석을 통해 금융 세계화가 정치적 과정의 결과임을 보여 주고 있다.

    캐나다 토론토 대학교를 졸업한 후, 영국 런던 정경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는 캐나다 워털루 대학교 정치학과 교수이다. 저서로는 The Making of National Money (Cornell University Press, 2003)와 Towards North American Monetary Union? (McGill-Queen’s University Press, 2006)가 있으며, 이외에도 국제통화 및 금융과 국제정치경제 이슈와 관련된 80편 이상의 논문과 책을 출간했다.

    역자 – 정재환

    서강대학교를 졸업하고, 캐나다 워털루 대학교에서 저자인 헬라이너 교수의 지도하에 한국의 금융 자유화에 대한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1997년 금융 위기 이후 한국의 경제 구조 조정에 대한 주제로 박사 학위 논문을 쓰고 있다.

    필자소개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