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구없는 ‘공짜 신문’의 딜레마
    2010년 08월 18일 03:4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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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형 평화신문 기자는 당돌했다. 이승만 대통령에게 물었다. “자유당 이기붕 의장이 의장단 선거를 앞두고 국회의원들에게 돈을 뿌리고 있다. 보고를 받아 알고 있을 것으로 믿는다. 어떻게 조치할 것인가.” 1956년 6월 경무대(지금의 청와대) 회견장은 그 순간 얼어붙었다. 무소불위 독재자의 역린(逆鱗)을 건드린 것이다. 대통령의 안면근육이 씰룩거렸다. 신문사도 물론 발칵 뒤집혔다.

그날 오후 그는 회사에서 파면된다. 그는 해직기자 1호로 기록됐다. 당시 평화신문은 ‘정치적 불편부당, 중립지’를 표방하고 있었다. 그것은 명목뿐이었다. 사장은 친여당적 사업가였다. 이승만 대통령 이야기를 할 땐 곧잘 눈물을 흘릴 정도였다.(조세형 추모문집)

적어도 부끄러움 알았던 그 시절 언론

당시 신문의 신뢰도는 꽤 높았다. 신문에 보도된 사실은 곧 진실로 인식됐다. 신문은 가장 믿음직한 정보원이었다. 그때 언론 역시 진실만을 보도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언론은 진실을 보도해야 한다’는 대원칙을 독자도, 신문도 한사코 잊지 않았다. 진실을 보도하지 못한 언론은 적어도 부끄러워할 줄 알았다. 언론사와 기자들에게 최소한의 염치가 아직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 전통은 박정희, 전두환 시절에도 살아 있었다. 기자들은 군사독재 폭압에 때로는 맞서고, 때로는 굴종하면서도 기사 행간에 진실을 담으려 노력했다. 언론과 독자 사이에는 이심전심의 교감이 있었다. 군사독재 시대를 마감하고 문민정부가 출범하는 데 언론도 한몫 기여한 것이 사실이다. 적어도 신문은 시민 대중과 뜻을 같이 하는 ‘동지’였다.

오늘은 어떤가. 신문은 시민의 편이 아니다. 특히 주류를 자처하는 신문들이 권력의 횡포에 침묵한다. 그것이 정치권력이든, 자본권력이든. 그 어느 새 신문에 대한 믿음은 사라졌다. 신문은 천덕꾸러기로 전락하고 있다. 그 추세를 입증하는 장면을 우리는 거리에서 흔히 목격한다.

그는 오늘도 상품권이 담긴 봉투를 내민다. “1년 동안 돈 내지 않아도 됩니다. 1년 후에, 1년 동안만 봐 주시면 됩니다.” 그는 신문 판촉 요원이다. 그는 야만의 시대를 세상에 알리는 ‘홍보대사’이다. 비싼 원가가 투입된 상품을 헐값에, 아니 거저 돌리는 어처구니없는 장면은 많은 얘깃거리를 제공한다.

한국 신문시장에서 시장경제 원리는 작동되지 않는다. 공정거래법에 어긋나는 불법판촉 행위는 이른바 ‘조중동’으로 불리는 신문들이 주도하고 있다. 그들은 비교적 든든한 자금을 등에 업고 야수적인 전쟁을 일삼는다. 야만적인 판촉경쟁은 때로는 살인의 비극을 저지르기까지 한다. 자본주의 경제의 아름다움은 공정한 게임의 룰에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그들의 위세에 눌려 공공연한 불법에도 눈 감고 있다. 게임의 룰이 무시되는 자본주의 사회는 정글의 법칙이 춤추는 야수들의 세계와 다르지 않다.

비싼 상품을 왜 ‘공짜’로 돌릴까. 한국 신문의 기형적 경영구조가 그 출발점이다. 신문들은 광고 수입에 생사를 맡기고 있다. 판매수입은 신문 용지 값에도 턱없이 모자란다. 광고를 수주하기 위해서는 경쟁사에 버금하는 부수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불법판촉은 신문이 독자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는 자기고백이자, 그럼에도 일정한 부수를 유지해보겠다는 안타까운 몸부림이다.

이 불법 행위에는 ‘치킨게임’의 성격도 숨어 있다. 자금력을 무기로 경쟁사를 따돌리면 시장을 독과점할 수 있다는 망상이 그것이다. 그러나 경쟁사라고 뒷짐 지고 먼 산만 바라보겠는가. 그들은 원천적으로 전혀 성공할 수 없는 전략을 추구하는 셈이다.

반자본주의적인 이 게임의 결과는 결코 달콤한 열매를 안겨주지 않는다. 판촉이 시장의 파이를 키우지 못한다. 이미 집에서 신문을 보고 있다고 말하면, 판촉요원은 말한다. “이 기회에 한번 바꿔 보시지요. 1년 공짜에 상품권까지 드리지 않습니까.” 판촉은 새로운 독자를 창출하는 대신, 대부분 ‘기존 독자 돌려 막기’에 그친다. 더구나 그 막대한 비용은 비수가 되어 돌아와 제 몸에 깊은 상처를 남긴다. 무차별적으로 뿌려지는 ‘공짜 상품’에서 가치를 느끼기는 어렵다. 막대한 자금을 제 상품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데 쓰는 아이러니라니. 수년전 우수수 부수가 떨어져 나갔던 한 신문이 상당한 흑자를 기록했다. 흑자 요인은 판촉경비의 감축과 막대한 신문용지 비용의 절감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울며 겨자 먹는 치킨 게임, 불법판촉의 본질적 성격이다.

기존독자 돌려막는 불법판촉의 비애

디지털의 거센 파도가 신문사를 덮친 것은 사실이다.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하다. 거기에 막대한 판촉비용과 신뢰도 추락, 시장 여건 악화라는 악순환이 한국 신문시장을 최악의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다양한 해법이 모색되고 있지만, 효과가 기대되는 방책은 보이지 않는다.

언론권력과 정치권력 사이에 회심의 짬짜미가 진행되고 있다. 종합편성 채널 선정 작업이 그것이다. 역시 성공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종편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기는 어렵다. 광고 시장은 한 개 이상의 종편을 감당할 여력이 없다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KBS 시청료를 올리면 길이 열릴까? 국민들이 마다하니 그것도 쉽지 않다. 종편 선정을 기다리고 있는 언론사들의 줄은 길기만 하다. 그것도 모른 체할 수 없는 ‘동지’들 뿐이다. 누구에게 인삼을, 누구에게 무를 던질 것인가. 대통령 이명박의 고민이자, 방통위원장 최시중의 딜레마다.

역시 답은 콘텐츠 자체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콘텐츠 혁신은 미디어 빅뱅시대의 으뜸 화두다. 언론사의 콘텐츠 경쟁이 뜨겁다. 다양한 시도가 눈에 띈다. 그러나 잃어버린 신뢰를 되찾을 수 있는 처방이 전제되지 않은 콘텐츠 변화는 무의미하다. 무릇 불의에 눈 감지 않은 야성을 독자들은 그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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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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