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청소노동자들의 투쟁과 승리
    2010년 07월 15일 10:2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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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에 지인 가족이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부부가 모두 중등교사로 공립학교에서 십 수 년씩 아이들을 가르쳐왔던 이들이 이민을 택한 까닭은 요즘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자녀교육’ 때문이라고 했다.

슬픈 이민? 기쁜 이민?

이 나라의 교육 현실이 얼마나 처참하기에 교사가 교육을 위해 이민을 택해야 하는지도 놀라웠지만, 또 하나 놀라운 건 그 이민이 이루어지는 방식이었다.

브로커에게 한 가족 당 수천만 원을 건네고 아예 영주권을 미리 받아서 가는데 그 영주권에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 미국에 간 첫 해만큼은 가족 중 대표 한 사람이 ‘닭 공장’에서 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소위 중산층으로 살던 여러 가족이 그렇게 이민 브로커에게 돈을 건네고 영주권을 챙겨 한꺼번에 미국으로 떠났다.

   
  ▲ 영화 <빵과 장미> 포스터

미국에서는 닭고기를 처리하는 일이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3D 업종인지라 특혜라면 특혜인 그런 식의 이민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 때 떠난 일행들은 1년 동안 닭 공장에서의 첫 해를 무사히 넘기고 지금은 각자 좀 더 조건 좋은 일을 찾아 자유로이 살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거기서부터는 각자 가진 밑천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에서 산업연수생을 데려와 험하고 임금 낮은 공장에서 일하도록 하는 것과 비슷한 경우다.

<깊고 푸른 밤>에서 안성기가 ‘그레고리 백’이 되어 그 놈의 영주권 하나 받겠다고 한국의 부인과 헤어져 위장결혼을 하고, 영주권 담당자 앞에서 ‘성조기여, 영원하라’를 불러가면서 박박 기다가 결국 황량한 그랜드캐년 골짜기에서 죽어갔던 것이 새삼스럽게 억울하고 불쌍했다.

비정규직 청소노동자, 여기나 거기나

그러나 미국에서건 한국에서건 대부분의 이주노동자들은 이렇게 잘 풀리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일단 알선비 자체도 만만한 액수가 아닌데다 사기를 당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고, 막상 닭 공장을 벗어난들 더 나은 일자리를 찾기도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험한 일을 기피하는 사회일수록 언어와 인종과 계급과 사회적 편견의 홈이 깊이 파여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많은 이주노동자들은 합법적 이민보다 밀입국을 택하게 되고 불법체류자 신세가 되어 쫓기게 된다.

켄 로치 감독의 <빵과 장미>는 이렇게 고단한 이주노동자의 곁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멕시코 처녀 마야가 미국으로 밀입국한 것은 오로지 살기 위해서였다.

막상 ‘기회의 땅’에 발을 들여 놓았다고는 하나 여자에, 멕시칸이며, 가진 것 하나 없는 무산자 마야가 그나마 비정규직 노동자로 빌딩 청소를 하게 된 것도 알고 보니 언니 로사가 성 상납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나마도 첫 월급은 중간관리자에게 떼이고 아무런 보험 혜택도 받지 못하는데다가, 수시로 해고 위협에 시달린다.

이런 팍팍한 현실에서도 마야가 원하는 건 ‘빵’만이 아니다. 20세기 초반 미국 이주노동자들의 절절한 외침처럼 ‘빵과 장미’를 함께 원하는 건 인간으로서의 당연한 권리라는 걸 놓치지 않는다. 줄거리만 놓고 보면 팍팍할 것 같은 이 영화가 경쾌하고 따스한 것도 이 때문이다. 빵만 꾸역꾸역 삼킬 때의 목 메이는 현실을 장미의 향기와 아름다움, 그리고 날카로운 가시로 숨통 트이게 한다.

   
  ▲ 영화의 한 장면

‘빵과 장미’는 여기서도 필요한 구호

연예인, 변호사와 펀드매니저들이 입주해 있는 빌딩에서 파티가 열리던 날, 화려한 파티 뒤치다꺼리를 하면서 동료 청소부가 마야에게 말한다. “우리가 유니폼을 입는 건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기 위해서야”라고. 이주노동자들이 보이지 않는 체하는 것은 미국만이 아니다.

우리 곁에도 수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있다. "때리지 마세요"라는 한국어를 가장 먼저 익히게 된다는 이들이 산업연수생으로 왔다가 불법체류자가 되었든, 브로커에게 목돈을 바치고 밀입국해 들어왔든 이들이 한국 땅으로 오게 된 것은 이 나라가 그들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눈 똑바로 뜨고 보자. ‘빵과 장미’는 이 땅에서도 필요한 구호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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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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